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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과
창조본래의 에덴가정으로의 회복
1. 에덴의 가정(家庭)으로 회복(回復)
하나님께서 태초에 가정을 구상하셨던 창조본래의 가정은 에덴동산에 있었습니다. 타락함으로서 파괴되고 말았던 에덴의 가정을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 가정으로 하여금 회복하시기를 간절히 원하시고 계십니다.
1) 가정도 주의 보혈로 거듭나서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은 전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이 타락된 우리 가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으로 내가 거듭나고 아내와 자식들이 거듭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정도 중생 시키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고 이것을 하나님은 강력하게 소원하십니다.
2) 부부관계(夫婦關係)가 회복(回復)되는 것이 우선
에덴동산에서의 유일한 인간관계는 오직 부부관계(夫婦關係)밖에는 없습니다. 이 부부관계(夫婦關係)는 그래서 모든 인간관계의 기초가 됩니다. 이 관계를 기초를 해서 모든 관계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부부관계(夫婦關係)는 모든 관계의 기초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에덴동산에 두셨던 창조본래의 가정을 보면, 맨 위로는 하나님이 계셨고, 그 아래로는 피조물이 있었고 그 중간에 사람을 두셨습니다. 아담의 아래도, 위도 아닌 곳에 하와를 두셨습니다. 그것은 위로는 하나님을 섬기며 순종하게 하시고, 아래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창조본래의 에덴동산의 밑그림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처럼 하나님과 아담과 하와가 삼각형의 각 꼭지 점이 되어서 아담은 하나님께만 가까이 가고 하와도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될 때, 그들은 점점 거리가 좁혀져서 하나님 안에서 마침내 하나가 되는 모습인 것입니다.
3) 에덴동산의 가정은 완성된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던 그 가정은 아이들도, 시부모도, 형제자매도 없었던 부부 두 사람으로서 완성된 단위였습니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보시기에 심히도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 가정의 문제점은 확장된 가족관계에 있습니다. 부부가 중심이 아니라 자식중심이 되어 내외간의 강한 관계가 흔들리게 됩니다.
지나치게 자식에게 비중이 쏠린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결혼해서 둘이 살다가 아이를 낳아 기르고 결혼시켜서 떠나보내면 결국 또다시 둘만 남습니다.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완전한 단위는 결과적으로 둘인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주 예수님, 성령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래, 성자 예수님이 게시고 성자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께 무조건 순종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 아래에는 성령 하나님이 계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반드시 성자 주 예수님께 순종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무조건 성자 주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성자 주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니다. 이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의 원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법칙이 부부관계(夫婦關係)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부부는 둘이면서도 하나입니다. 하나로 보면 잘 못 본 것입니다. 부부를 서로 떼어 놓고 생각을 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 위치상 ⇒ 남편과 아내가 동등(同等)
* 기능상 ⇒ 남편이 머리, 아내는 몸, 몸 된 아내는 머리된 남편에게 순종.
머리된 남편은 사랑으로 아내를 지도, 보살핌. 몸 된 아내는 남편의 그 사랑에 순종.
4) 부부관계(夫婦關係)는 사회적인 관계의 첫 걸음, 첫 단추가 됩니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사회를 구성하고 더불어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혼자서는 못 삽니다. 누군가와 상호작용,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회가 시작되기 전에 부부관계(夫婦關係)가 가장 먼저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부관계(夫婦關係)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렇게 중요하다보니 그래서 마귀의 타킷이 되었습니다.
부부관계(夫婦關係)를 파괴하면 모든 관계가 끝장나고 맙니다. 한국이 2015년 OECD국가에서 이혼율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성경에 말세의 징조가 마태복음 24:7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처처(處 집 처 處)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5) 부부관계(夫婦關係)는 서로가 첫 번째로 “상호의존(相互依存)”하는 관계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을 빼놓고는 아담, 하와가 의존할 대상이 상호간 이외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유일하게 서로 의존할 수밖에 사이입니다. 상호의존적(相互依存的)인 관계가 의미하는 것이 큽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아무에게나 기대어 살면 안 됩니다. 부부관계(夫婦關係)는 서로 기대어서 살도록 허락된 관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6) 부부관계(夫婦關係)는 첫 번째 우선권(優先權)이 주어지는 관계(關係)입니다.
어떤 인간관계도 부부관계(夫婦關係)보다 우선적인 관계는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관계가 부부관계(夫婦關係)에 의존합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다음에 나와 가장 가까운 아내와 그 다음이 자녀와의 관계입니다.
① 하나님과의 관계
② 부부와의 관계
③ 자식과의 관계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와 창조의 목적대로 살아 갈 때, 인간은 행복하게 됩니다.
2. 에덴동산의 가정(家庭)의 모습
우리는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찾고 찾았습니다. 하지만 찾는 방법을 몰라서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원해도 어떻게 해야 행복한 가정이 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델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적으로 가정생활을 시작해야만 합니다. 성경적인 가정생활을 위해서 성경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타락하기 전 죄가 들어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원래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가정이 어떠한지를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1)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사람을 두셨습니다.
창세기 2:8절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하나님은 사람을 흙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흙은 15가지 화학성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치로 따진다면 불과 몇 천원의 가치에 불과합니다. 시편 103:14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티끌’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가장 낮고 천한자라라고 하는 고백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런 고백을 좋아 하셨습니다.
▶ ‘흙’, ‘진토’ 라고 하신 의미
① 값어치 없고 연약함을 상징적으로 묘사하셨습니다.
“너희의 본래 모습이 바로 아무 가치가 없는 흙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고 하신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②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완성되지 않는 소재로서의 상태를 묘사하셨습니다.
흙은 ⇒ 땅이 되고, 땅은 ⇒ 돌이 되고, 돌은 ⇒ 보석이 됩니다.
하찮은 흙이 하나님의 손길이 임하여 고난의 풀무를 통과하고 나면 땅이 되고 보석이 되는 것입니다. 흙이 보석이 되어야 하는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③ 하나님은 흙인 나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존재이심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지혜와 능력이 상대적으로 하찮은 흙을 통해서 드러내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7절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 흙으로 지음 받은 ‘나’
하나님의 손으로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습니다. 본질은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지만 빚으신 분의 손길 때문에 너무나 귀한 명품이 되어 귀하디귀한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서로 존중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을 존경할 수 없을 때, 남편을 지으신 하나님의 솜씨를 생각하고 남편이 어떻게 지음을 받았는지를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아담을 지으실 때’ ⇒ 하나님께서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아담이 되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창세전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이미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해 대속물이 되실 분으로 예정되어 있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을 빚으실 때에 온전하게 빚으셨습니다.
얼마나 온전하게 빚으셨는가 하면, 하나님의 독생자 주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입으실 몸으로 빚으셨기에 온전하게 빚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온전히 알 때만이 인간의 가치가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아무런 가치가 없는 진흙 덩어리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진흙 자체에 창세기 2:7절에 “하나님의 생기가 그 코에 불어 넣으셨으니까 생령”이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금 하나님의 생기가 빠져 버리면 인간은 한 덩어리의 진흙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육적인 생과 영적인 생이 주어진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다른 피조물과 다른 점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창조주와 떨어져 살 수가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떨어져 살면 고통스럽고 불행하고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하고 맙니다. 기름 떨어진 자동차와 같은 존재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결혼하기 이전부터 놀라운 창조물 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에서도 서로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놀라운 창조물로서 존경하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존경하는 일입니다.
‘에덴’ ⇒ ‘기쁨’, ‘즐거움’ ⇒ 그곳은 땅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창세기 2:8절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에덴동산은 부족함이 없고 기쁨과 영광이 가득 찬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금방 망가질 것을 아시고도 첫 신랑, 신부를 위해 최고 아름다운 신방을 꾸미셨던 것입니다. 창세기 2:15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지키고 다스릴 수 있는 통치권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2:16~17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드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조건은 ‘순종(順從)’이었습니다. ‘순종(順從)’이라는 조건 속에서 아담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만물을 다스리고 자기 아내와 사회적인 관계를 맺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만 가지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그 은혜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그 유일한 길은 바로 “선악(善惡)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의 따먹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順從)하는 것입니다.
대신 ‘생명(生命)나무의 실과’를 선택하여 하나님의 생명(生命)으로 충만(充滿)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순종(順從)’안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겸손한 자 만이 순종(順從)할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 정체성을 아는 자만이 겸손할 수가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돕는 배필(配匹)을 지으셨습니다.
창세기 2:18절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돕는 배필(配匹)’ ⇒ “그의 필요에 꼭 적합하게 돕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① ‘돕는 배필(配匹)’이라는 첫 번째 의미는 무엇입니까?
‘독처하다’ ⇒ 원어 상 ‘Cut off’ ⇒ ‘끊어졌다.’ ⇒ ‘공급이 중단 되었다.’
남자가 머리인데 몸에서 끊어 졌습니다. 머리가 아무리 훌륭해도 몸에서 끊어지면 보기 좋을 리가 없습니다. 남자가 ‘돕는 배필(配匹)’에게서 끊어진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으셨습니다. 상대방, 짝, 돕는 배필(配匹)은 사람이 볼 때는 잘못 만났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확실한 짝입니다.
② ‘돕는 배필’이라는 두 번째 의미는 무엇입니까?
“보충해서 완전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장점 둘이 만나면 보충될 것이 없습니다. 남자에게서 모자라는 것을 여자를 통해 보충해서 완성시키기 때문에, 서로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면 그 사람이 제 짝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상대를 대하게 되면 아주 희한하게도 잘 맞게 되는 것입니다.
③ ‘돕는 배필(配匹)’이라는 세 번째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도움”이라는 뜻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듯이, 돕는 배필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도록 아담을 위해서 여자를 지으셨습니다.
“여자가 없다” ⇒ “돕는 배필이 없다” ⇒ 하나님의 도움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보충하여 완성해 주는 반쪽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좋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도움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남편이 이기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남편이 이겨야 합니다. 생존경쟁에서도, 사탄과의 싸움에서도, 남편이 이겨야 하고,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노릇하는 데서도 이겨야 하고 사업에서도 이겨야 합니다.
운동 경기할 때도 같은 팀끼리 싸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불화가 많은 가정은 부부간에 경쟁하고 있는 것입니다. 팀웍을 무시하고 어떤 슈퍼스타가 혼자서 설쳐대면 그 팀은 패하고 마는 것처럼 자기 팀 끼리 경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④ ‘돕는 배필(配匹)’이라는 네 번째 의미는 무엇입니까?
“나를 만드는 최고 훈련 파트너”라는 뜻입니다. 내 속의 죄성(罪性), 악성(惡性) 즉 자아(自我)를 깨뜨리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훈련 파트너가 필요합니다.
파트너끼리 서로 맞지 않는 것 때문에 치고 박고 서로 부딪치면서 깨지고 부서지게 되면서 결국은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피차간에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 두 손들고 항복하고 나옵니다. 그럴 때 주님이 개입하시어 주님이 만져 주심으로 주님의 성품을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 사탄의 전략 ⇒ 남편과 불필요 이상의 경쟁심을 유발시켜 경쟁하게 하고 불화하게 합니다. 같은 편 끼리 싸우게 합니다. 결국은 자중지란을 일으켜서 자멸하게 만듭니다.
* 하나님의 전략 ⇒ 서로의 모습을 통하여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내 힘으로 상대방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상대방의 문제를 내 문제로 보듬고 십자가 앞으로 나가게 하십니다.
에베소서 2:15절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페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으로 지어 화평케 하시고.”
한국의 남존여비 사상 때문에 여자들이 본능적으로 독이 차 있습니다. 여자들의 자아상이 상당하게 구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여자를 바라는 시각, 창조주 하나님의 시각은 어떠합니까?
창조 사역 중에 하나님께서는 일곱 번이나 “좋았더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좋지 못하다고 한 번 하셨는데 그것은 ‘아담의 독처(獨處)’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자가 창조되지 않았을 때까지 하나님의 창조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좋았더라고 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 하나님의 창조순서
① 광물계 ⇒ ② 식물계 ⇒ ③ 동물계 ⇒ ④ 남자 ⇒ ⑤ 여자
갈수록 더 정교하게 완벽하게 점점 좋게 만들었습니다. 여자를 만들기 이전에 여자를 환영하고 대접하기 위한 채비를 다 하신 것입니다.
남자 ⇒ 흙, ⇒ 여자 ⇒ 뼈(더 나은 재료)
신학자 매튜 헨리는 “남자는 정결한 흙이다. 그러나 여자는 배나 더 정결한 흙이다.” 라고 했습니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서 하나님께서는 남자를 먼저 죽도록 애당초에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대부분 남자들이 여자 보다 먼저 죽습니다. ‘독처하는 꼴’이 하나님에게는 보기 싫으신 것입니다.
창세기 2:19~20절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이름을 주니라.”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머리의 위치(headship)를 주신 것을 말합니다. 아담이 여자의 이름을 ‘하와’ 라고 이름을 지어 줬습니다.
창세기 3:20절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 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이것은 아담이 머리가 된 것을 의미합니다. 남자인 아담은 머리역할을, 여자인 하와는 그 머리의 지도력에 순복하는 몸의 역할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이름을 주니라”
머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성적인 능력이 남자에게 있음을 나타냅니다. 아담은 각종 들짐승과 새를 가만히 보고서, 모든 특징과 특성을 다 고려해서 이름을 지었던 것입니다.
창세기 2:22~23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셨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아담의 옆구리에서 뼈를 하나 빼내서 여자를 만든 것을 신학자 메튜 헨리는 “아담의 머리에서 뼈를 빼내지 않는 것은 남자에게 짓밟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요, 옆에서 빼낸 것은 남자와 동등함을 말하며, 팔 아래서 뺀 것은 옆에 끼고 보호해 주라는 것이요, 심장 가까이서 뺀 것은 그에게 사랑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옆구리에서 뼈를 꺼내서 하와를 만드신 것은 주 예수님께서 옆구리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며 죽으심으로 신부가 되는 교회가 탄생할 것을 예언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9:34절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사도행전 20:28절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님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에베소서 5:31~32절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부부관계(夫婦關係)는 교회(敎會)와 그리스도의 관계(關係)를 그림자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남편은 머리로서 그리스도를, 아내는 몸으로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보여 주는 것이 부부관계(夫婦關係)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그리스도께 절대 순종하고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는 그런 관계를, 부부 두 사람을 통해 세상에 알리는 모본으로 사용하고 계신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본질로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결코 땅에 속한 사람의 본질로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깊이 잠든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하와를 만드신 것처럼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써 물과 피를 흘리도록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9:34절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피는 구속을 위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1:7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베드로전서 1:18~19절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물은 아담의 갈빗대가 상징하는 교회를 출현(出現)하는 본질인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生命)을 나누어 주기위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2: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하와의 생명은 아담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하와의 그 생명과 본성이 아담과 같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그리스도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하와의 그 생명과 본성이 그리스도와 같은 것입니다. 하와는 아담에게로 돌아가 아담의 배후자요, 신부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도 역시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 그리스도의 배필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오직 아담에게서 나와서 하와만이 아담에게로 돌아가 아담의 배필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만이 그리스도께로 돌아 갈 수가 있습니다.
교회는 반드시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온 것이어야 하며 반드시 그리스도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창세기 2:22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인류의 최초의 결혼식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신랑 아담의 한 부분을 취하여서 하와를 만드시고 하와를 자신의 손으로 아담에게 이끌어 오셨습니다. 주례를 하나님이 친히 하신 것입니다. 요즘 결혼식도 신부 아버지가 신부를 신랑에게 데려다 주고 물러갑니다.
결혼식장에 신랑이 먼저 입장하고 나중에 신부가 입장하듯이 천국도 주 예수 신랑이 먼저 부활 승천하시고 나중에 성도인 신부가 천국에 들어가야 천국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3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계시록 19:9절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이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많은 사람들이 결혼 생활을 해나가다가 어려움에 빠지게 되면 짝을 잘못 만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결혼 생활이 불행할수록 자신의 배후자가 원래 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지 결혼이 성립되었으면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이 맺어준 확실한 내 짝이다.” 라고 생각하는 결혼 생활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모릅니다.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데 밑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9:3~6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그런 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가정(家庭)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뜻이거나, 혹은 허락하신 뜻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부부가 중생(重生)한 경우, 부모가 허락한 경우에 하나님의 직접적인 뜻한 바에 의해 가정이 이뤄집니다. 불신자가 결혼하는 경우도 하나님의 뜻은 아니지만 허용하셔서 가정이 이뤄진 것입니다.
결혼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뜻이었는지, 허락하신 뜻이었는지, 일단 결혼이 성립되면 그것은 하나님이 짝을 지어 주신 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준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합니다. 이혼하면 문제가 작아질 것처럼 생각되는데 더 많아 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혼(離婚)’ 이라는 단어를 생각 속에서 애당초 지워 버려야 합니다. 창세기 2:23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 말에는 아담이 얼마나 하와를 애지중지하고 아끼는 사랑이 표현되었는지 모릅니다. 배필(配匹)을 맞이한 남자의 지극한 기쁨이 표현된 감격의 시요, 감사와 찬양의 노래인 것입니다. 이 친밀함은 부부를 하나로 만들고 마음의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하나님이 짝지어준 여자를 자기 몸, 자신의 짝으로 인정하여 기뻐하면서 고백하는 말입니다. 주 예수님은 교회를 자신의 몸이라고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5:23절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골로새서 1:18절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골로새서 2:19절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주 예수님의 고백입니다. 신부를 사랑하기에 그 죄를 대신 사하시려고, 자존심을 모두 버리시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으시고 온갖 수치와 모욕과 고통과 고난을 다 참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외친 마지막 아담이신 주 예수님의 고백입니다.
신부를 향한 신랑의 고백으로 인하여 신랑의 품(천국)에 돌아와서 안기게 될 신부들을 마음속으로 세시면서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참으시면서 즐거움으로 십자가를 승리하셨습니다.
시편 22:14~18절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 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곁 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마가복음 15:15~25절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님은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군병들이 예수님을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예수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우고 예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 할지어다. 하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희롱을 다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님의 십자를 지우고 예수님을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몰 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님은 받지 아니하시니라.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 새 누가 어는 것을 얻을까하여 제비를 뽑더라.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 으니라.”
요한복음 19:34절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히브리서 12:2절 “믿음 주여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인하여 십자가를 참으시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렇게 얻은 아내를 괴롭히는 주 예수님을 보았습니까?
“이는 내 살 중의 살이라.”
주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고 하시면서 “받아먹으라.”하신 것은 주 예수님의 생명, 곧 생명의 말씀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로 인하여 존재하게 된 것처럼, 우리의 생명도, 인격도, 권세도, 영광도, 모두 주 예수님으로 인하여 비롯되어졌음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골로새서 2:2~3절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져 있느니라.”
엄마 품에서 나온 아기가 엄마의 건강한 젖을 먹어야 살 듯이 주 예수님의 품속에서 나온 우리는 생명의 떡이시며, 신령한 양식인 주 예수님을 먹어야 사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2절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누가복음 22:19절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요한복음 6:51~55절 “나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나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 로라. 하시니라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한복음 1:1~4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와가 아담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아담의 아내가 된 것처럼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신부는 반드시 신랑과 동질(同質)로만 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신부가 되기 위해서 주어진 전제 조건입니다. 천연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옛 사람 성품의 아담의 속성은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새 성품으로 처리되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속성으로 덧입혀져야만 합니다.
육신의 옛 사람의 성품을 가지고는 영이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옛 사람의 성품을 반드시 처리 받아야만 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만 담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23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에베소서 5:30~33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로마서 8:9절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 말씀은 여자가 남자의 연장선에 있고, 남자에게 속했다는 것을 설명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 남자 ⇒ (히)이쉬, (영)man,
* 여자 ⇒ (히)이샤, (영)woman
같은 말 이면서도 다른 말뜻입니다. 소프라노와 엘토는 소리는 다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조화를 이루어 하나처럼 느껴집니다. 남편과 하나가 되었다고 내 주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다르면서도 조화를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 남자 ⇒ 동산을 지키며 다스림 ⇒ 머리, 지도자, 사람(man)
* 여자 ⇒ 그것을 돕게 함 ⇒ 몸, 순복하는 자, 여자사람(woman)
“여자사람” 의 어근 ⇒ “부드러운 사람”(to be soft)
여자들이 부드러움을 잃어버리면 고유한 생명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3) 아담이 하와와 연합(聯合)합니다.
창세기 2:24~25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 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성경은 남자가 부모를 떠납니다(한국은 여자가 부모를 떠납니다).
“떠난다.” ⇒ “단절하다.”, “떨어져 나간다.”는 뜻입니다(종족 번식의 법칙).
“땅에 충만 하라.” ⇒ “떠나다.” 같은 뜻입니다.
떠나지 않고 자꾸 한 곳에 모여 살면 땅에 충만(充滿)해 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동물의 세계는 이 법칙이 철저합니다. 어미는 새끼가 어느 정도까지 자라게 되면 떠나보내려고 물어서 쫓아내 버립니다.
* 남자가 부모를 떠나는 세 가지 의미
첫 번째 의미; 육체적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 말씀의 실재가 되려면 부모로부터 떠나보내야만 합니다.
두 번째 의미; 심리적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결정권을 갖는 것입니다. 결정을 자신이 내릴 수 있어야 비로소 독립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자식이 내린 결정을 부모가 존중해 주고, 그 결정을 부모가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자꾸 간섭하면 자식의 가정이 서지 못합니다. 자신들이 문제를 가지고 넘어지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하면서 성장하게 해야 합니다. 다만 부모의 역할은 자식이 문제를 가지고 십자가 앞으로 가는 것을 교육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의미; 경제적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실력을 어려서부터 길러야 합니다. 신문 배달을 해보고, 저축도 해보고, 사고 싶은 것을 자기가 돈을 벌어서 사기도 해야 합니다. 미국의 부모들은 자녀가 아무리 어려서 결혼해도 말리지 않습니다.
가족을 부양할 수 있으면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부모의 집에서 살면서 부모의 도움을 받고 있으면 부모의 권위에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를 떠난 다음에는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은 완전한 연합을 말합니다.
“한 몸이 되었다.” ⇒ 원어로는 ‘에케드’라 합니다. ⇒ ‘복수이지만 하나인 것’을 의미합니다. 둘이지만 하나로 나눌 수가 없는 것,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결혼(結婚)의 목적(目的)이 무엇입니까?
둘이 만나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둘이 하나가 되고 나면 행복은 저절로 오게 됩니다. 행복은 둘이 하나 된 결과인 것입니다. 부부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가 하나인 것을 보여 주는 징표(徵標)가 되기 때문에 너무나 중요합니다.
에베소서 5장은 성경의 창세기 2장에서 인류의 최초의 부부인 아담과 하와가 그리스도와 교회(敎會)에 대한 의미심장하고 완전한 그림자이자 비밀한 예표(豫表)임을 계시합니다.
창세기 2:21~24 ⇒ 에베소서 5:23~32
창세기 2:21~24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
에베소서 5:23~32절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런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함이니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를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남편을 경외하라.”
하와가 아담에게서 나왔듯이 교회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나옵니다. 하와가 아담과 똑같은 생명과 본성을 가졌듯이 교회(敎會)는 그리스도와 같은 생명(生命)과 본성(本性)을 가집니다. 하와가 아담과 한 육체가 되었듯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배필로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됩니다.
아담에게서 나온 것만이 아담의 배필로서 아담에게로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만이 교회가 됩니다.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은 부부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간절하신 소원도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뒤집으려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2:25절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벌거벗다’는 말은 ‘벗고 누웠다.’ ⇒ 솔질하고 감출 것이 없을 만큼 친밀한 상태를 말합니다.
두 사람이 완전한 케뮤니케이션이 이뤄진 사랑의 관계를 말합니다. 또한 순진하고 아이들같이 자기를 의식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성관계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맘껏 즐기고 있는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순종하고 하나님 안에서 사는 가정은 하나님께서 전부 책임져 주시기 때문에 영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절대로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입니다.
먼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로 될 때 하나님께서 아내와의 관계도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을 제쳐 놓고 내가 내 아내를 뜯어 고치려고 하면 할 수 록 안 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가정(家庭)으로 회복(回復)하는 것, 그것은 먼저 나 자신부터 중생(重生)함으로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