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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2.08.04(일)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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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분만 관심 '부쩍' 조산원 뜬다
△ 한 부부가 조산원에서 수중분만으로 갓 낳은 아이를 쳐다보고 있다. 일신조산원 제공
충남 서산에 사는 이은경(33)씨는 두 아이를 제왕절개로 낳는 고역을 치뤄 세번째 아이만은 자연분만을 하고 싶었다. 그는 유명 병원을 샅샅이 찾아다녔으나 모두 “이미 제왕절개를 했기 때문에 자연분만이 불가능하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다시는 칼로 배를 가르고 아이를 끄집어내는 식의 분만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씨는 수소문 끝에 ‘제왕절개를 하고도 자연분만이 가능하다’는 조산원을 찾아내 지난 1일 4.8kg의 아이를 순산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보건기구 권고치인 10%보다 무려 4배나 높은 40%대에 육박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제왕절개 남용실태를 개선하는 대안으로 100% 자연분만을 유도하는 조산원의 필요성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2∼3년 전부터 인터넷과 언론매체를 통해 제왕절개가 아니라도 고통없이 편안한 환경에서 자연분만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산모들이 조산원을 주로 찾아왔던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고학력층 산모들이 늘어나는 현상도 보이고 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임산부에게 산부인과보다 더 친근했던 조산원이 사라지게 된 이유는 의료보험이 전국민을 대상으로 실시되면서 병원 문턱이 낮아지고 조산원이 비전문적 의료기관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퍼지면서다.30년 전 1000여군데에 이르던 조산원은 현재 대략 130여군데로 훌쩍 줄었고, 전국적으로 약 1000여명의 조산사가 활동하고 있을 뿐이다.하지만 조산사는 현행 의료법에서 의료인으로 인정하고 있고, 간호사 출신을 대상으로 국가 고시를 거쳐 자격을 부여하는 전문인이다.
최근 유니세프한국위원회가 모유수유를 실천하는 ‘아이에게 친근한 병원’ 가운데 조산원을 처음으로 포함시킨 것도 엄마젖을 제대로 먹이기 위해서는 자연분만과 수유를 도와주는 전문가의 손길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첫 선정 대상인 일신조산원(원장 서란희)은 이제 서울에서 9곳 밖에 남지 않은 조산원 중의 하나다.30년째 조산원을 운영하고 있는 서 원장은 지금까지 2만명이 넘는 아기를 받아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전치태반이나 아이가 거꾸로 누워 있어 모자의 생명이 위태로운 사례 등 제왕절개가 불가피한 임산부는 10% 미만”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우리나라의 제왕절개율이 유독 높은 이유에 대해 “자연분만을 하다 의료사고가 나면 병원이 책임져야 하지만, 제왕절개 때는 수술에 동의한 산모가 책임져야 하는 의료법 적용 관행이 문제”라며 “이는 유럽 등 선진국과는 정반대의 법 적용”이라고 지적했다.또 산모들이 진통을 참지 못해 스스로 제왕절개를 요구하기도 하고, 병원도 30분만에 수술하는 것이 시간과 돈을 벌 수 있어 공공연하게 수술을 유도하기도 한다.
조산원에서는 조산사가 진통 내내 산모의 옆을 지키며 이야기도 나누고 주물러주기도 하면서 분만을 도와 정서적 안정효과도 크다.
대부분의 조산원이 가족분만을 기본 원칙으로 해 남편은 물론이고 자매나 어머니가 분만을 지켜보며 고통과 기쁨을 나누도록 배려하고 있다.이는 프랑스 의사 르봐이에가 주창한 ‘르봐이에 분만법’에 따른 것이지만,실은 우리나라 전통적인 분만법과 다를 게 없다.평소 산모가 즐기는 음악이 조용히 흐르고 조명을 어둡게 한 환경에서 아이를 낳은 뒤 아버지가 탯줄을 끊고 바로 어머니의 품에서 젖을 빨리도록 하는 방법이다.
서 원장은 아이를 받을 때마다 출산 사진과 함께 아이 한명 한명의 탄생을 축하하는 시를 직접 지어 조산원 홈페이지( www.becob.co.kr에 올리고 출산 뒤에도 아이에 관한 문의 전화라면 한밤중이나 새벽도 가리지 않고 받고 있다. 번호표가 아니면 구별하지 조차 어려워 종종 아이가 뒤바뀌는 비극이 연출되는 병원 분만의 익명성이나 일회성과 달리 이웃에서 아이의 성장과 산모의 건강을 지켜보며 지속적으로 돌볼 수 있는 조산사만의 ‘평생 서비스’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출산은 질병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고 출산 과정은 공포와 고통이 아닌 ‘기다림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서 원장은 조산원에서든 병원에서든 우리의 출산철학과 문화가 이처럼 인간 중심으로 바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왕절개 분만을 한 산모들 가운데는 기억력 감퇴와 같은 마취 후유증과 내장 노출로 인한 감염 등으로 고생한 이들이 적지 않다. 한번 제왕절개를 하면 계속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아야 하는 부담 때문에 단산을 재촉하기도 한다. 또 산모가 항생제에 노출되고 신생아와 격리되는 탓에 모유 수유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산모에게 신성한 생명을 탄생시켰다는 충족감보다는 질병을 수술하는 듯한 느낌을 주어 태아와 유대감을 방해하는 것이다. 최근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은 안아무개(34)씨는 “마취상태에서 아무 느낌없이 아이를 낳은 뒤 신생아실에 가서 아이를 보니 내 아이인지 별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권분만’ 개념을 국내 처음으로 알린 임산부 전용문화교육관 ‘토끼와여우’ 최대우 과장은 “병원이 산모를 환자로 인식하고 출산이 의사 중심으로 이뤄지는 출산 문화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인권분만이란 프랑스의 산부인과 의사 프레드릭 르봐이에의 책 <폭력없는 탄생>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의사가 아닌 산모와 태아가 중심이 되는 출산문화를 의미한다. 여러명의 임산부들이 아우성을 치는 분만대기실에서 초조하게 진통을 겪다 가끔 얼굴을 내비치는 의사의 지시만을 기다리다 마침내 수술대 위에서 배를 갈라 강제로 아이를 꺼내 빛에 비추고 때리는 것은 산모나 태아에게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환경센터 명진숙 사무국장은 “의사와 수술 중심의 병원 패러다임의 전환이 근본적인 해결방법”이라면서 “정부가 의료보험 수가조정, 의사들이 자연분만에 따른 의료사고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의료법 적용 문제를 해결해 대형병원이 자발적으로 제왕절개를 줄이도록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모들도 지나치게 의료진에 기대지만 말고 주체적으로 자연분만을 위한 대비를 하고 병원이나 정부에 지원을 요구하는 사회적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최 과장 역시 “무엇보다도 산모들이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태아는 이미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