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해파랑길
경주의 역사를 읽는 일은 더위를 잊게 한다. 자전거를 타고 사적지를 돌아보는 것은 걷거나 자동차로 다니는 것보다 오히려 불편함을 다소 덜어준다. 두 개의 바퀴가 주는 편리함이 오늘은 물론 천 년 이전까지 세세히 들여다 볼 수 있어 더욱 알차다. 자전거가 타임머신이 되는 것이다. 천년 역사를 찾아가는 경주 힐링로드 천리길을 자전거로 돌아보기로 한다.
경주지역의 자전거 투어코스는 일반지역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경주만의 무엇이 있다. 시가지의 역사문화자원과 변두리에 산재한 문화재, 계절별로 변신을 시도하는 역사도시 경주의 얼굴들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어 좋다. 봉황대에서 대릉원, 황룡사, 월성과 첨성대, 계림, 경주박물관, 교촌한옥마을, 오릉 등등 시가지를 가볍게 돌아보는 코스에서도 엄청난 역사문화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보문단지와 낭산 가는 길 등의 외곽지 투어코스는 시원한 하이킹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한다.
특히 부산 오륙도에서 부터 동해안길을 바다와 연접해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지는 해파랑길 경주구간의 풍경은 달리는 걸음에 브레이크를 수시로 걸게 한다. 바퀴 두개로 읽는 경주의 하이킹코스를 10구간으로 나누어 달려본다.
경주시는 부산에서부터 시작하는 바닷가를 끼고 강릉으로 이어지는 해파랑길을 자전거로 달릴 수 있게 조성했다. 관성에서부터 감포로 이어지는 38㎞, 두 시간 반 거리의 경주 해파랑길을 먼저 읽어본다.
◆경주 나폴리를 읽다
여행은 무엇으로 하는가에 따라 그 맛의 차이가 있다. 기차를 타고 떠나는 자신만의 추억에 빠지는 여행에서의 여운이나 승용차로 제멋대로 달리다 멈추어 쉬어가는 자유도 좋다. 하지만 걷기보다는 편하게 나아가며 좀 더 넓고 깊이 있게 보는 동시에 바람과 햇살을 피부로 직접 느끼는 자전거 하이킹이 그 중 으뜸일 것이다.
울산과 경계를 이루는 지경, 경주의 관문인 관성으로 자전거를 타고 들어서면 호흡이 편해진다. 시원하게 트인 바다가 가슴에 와락 직접 와 닿으면서 맑고 시원한 푸른 공기를 선물하기 때문이다. 예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관성해수욕장의 붐비는 풍경에 사람사는 맛을 느끼며 패달에 힘을 뺀다. 내리막이어서 자연스럽게 굴러가며 바람이 온 몸을 관통해 지나간다. 내리막이 끝날 즈음 직진방향으로 이어지는 자동차도로에서 벗어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된다. 경주의 나폴리 수렴항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봉고차 크기의 작은 배들이 찰방찰방 물소리를 내며 정박하고 있는 항구를 에워싸고 있는 섬 같은 바위들이 저마다 인물자랑이라도 하듯 들쑥날쑥 다른 키 높이로 파도를 온몸으로 맞고 있다. 바다 속에서 불쑥 솟아오른 것도 같고, 바다로 뛰어들어가다가 멈추어 선 것도 같다. 갈매기들의 흔적이 하얀 페인트로 도색된 바위는 늙은이의 형상이기도 하지만 멀리서 보면 파도가 바위산을 훌쩍 뛰어넘는 모습이기도 하다. 머리 위에 푸른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바위는 육지를 향해 걸어 들어오는 것 같기도 하고, 바다를 향한 애타는 무슨 사연이 담긴 망부석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렴항에서 영원히 머물고 싶은 마음은 빨리 내려놓고 페달에 힘을 가해야 된다. 쥐라기시대에 형성된 육각, 또는 오각형의 바위기둥들이 눕거나 비스듬하게 서서 빚어내는 천상의 풍경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양남 주상절리군이다. 천연기념물로 등록되면서 국내는 물론 세계 관광인파가 몰려드는 경주의 명소가 되어버린 파도소리길이 시작되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코스다. 장사꾼들이 이를 놓칠 리가 없다. 온갖 모양으로 디자인한 카페와 레스토랑, 펜션들이 신비로운 이름에 간판을 달고 천연의 비경을 감상하기 좋은 곳에 자리잡고 손님들을 유혹해댄다. 까페라떼를 주문하고 창가에 턱 앉으면 다시 일어나고 싶은 생각이 사라진다. 현해탄을 건너 온 해풍이 청솔가지에 스며들어 다시 몸을 일으키며 세상을 흔들고, 시나브로 날아오르는 갈매기들은 오만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순간 그 자리에서 망부석 되어 다시 떠나야 한다는 생각조차 잊게 한다.
다시 자전거를 찾아 갈 길을 서둘러보지만 해풍을 맞으면서 지붕을 지키는 읍천항의 담벼락은 온갖 고달픈 삶의 형태와 세계 각국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림으로 재현하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풍경도 그림이고 그림은 또 다른 풍경이 되어 가는 길을 막아서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소를 돌아
가까스로 읍천항에서 빠져나오면 하서리의 고향마을 같은 숲길과 항구가 바다와 접해 이어진다. 할매바위에서 그만 바다풍경에 넋을 잃고 자전거를 세워두고 해변으로 걸어 들어가 본다. 올망졸망 바위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는데 태풍이 잠든 날에는 파도소리가 자분자분 온갖 이야기를 사설로 풀어놓는다. 세월을 낚으려 추를 던지는 강태공들은 쉴 사이 없이 달려드는 입질에 그만 세월을 잊고 자신마저 잃어버리기 일쑤다. 이곳을 그냥 지나치기는 어렵다. 가족단위로 아니면 친구, 연인들끼리 텐트를 치거나 자리를 깔고 앉아 고기를 구워댄다. 배고픈 사람은 접근을 삼가는 것이 좋겠다.
정신을 차리고 패달을 밟는데 하서리 송림으로 이어지는 해파랑길은 위험하다. 자전거길을 도색으로 그려두고 있지만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이 많이 알려진 터라 몰려든 관광객들이 도로변에 주차하는 바람에 자전거길은 주차장이 되어버리고, 자동차도로는 편도 일차선으로 팍 좁혀들어 자동차들의 교행조차 어려워 자전거 하이킹족들은 주변 풍경에 정신 팔 겨를이 없다.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 다시 느긋하게 해풍을 만끽하면서 패달을 밟는다. 멀리 둥근 지붕들이 낯설게 다가온다. 정부에서 배척하려는 원자력발전소의 둥근 지붕패션이 조형물처럼 바닷바람을 맞고 있다. 원전으로 이어지는 해변에는 깨알 같은 모래알들이 길게 포진해 놀기 딱 좋다. 여기저기 텐트들이 밀집해 아파트촌을 연상케 하고, 해변에서 낚시를 즐기는 인파와 철없이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놀이는 원자력발전소의 위험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인다.
원자력발전소 정문 앞을 지나면서 해안길과는 잠시 거리를 두게 된다. 원전이 들어서면서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하는 법률적인 문제 때문에 자동차는 터널 안으로 들어가버리고, 자전거와 경운기는 내륙으로 크게 돌아가는 우회도로를 타야 된다. 돌아나오며 다시 바다를 조우하는 길에서는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이견대를 만난다. 신라 삼국통일의 기원을 이룩한 문무대왕과 신문왕의 전설들이 서린 곳이다.
◆등대박물관
바다는 항구를 만든다. 항구에는 등대가 필수 구조물이다. 등대는 희망이다. 항구에는 희망이 늘 파도친다. 항구마다 정박하고 있는 배들의 쉼에는 거친 삶의 여정이 잔잔한 파도를 출렁이게 한다. 이정표마다 어김없이 사람들이 몰려드는 항구는 스스로 정화하면서 다시 도전할 장도를 꿈꾸는 텃밭으로 기능한다. 등대를 남겨두고 떠났던 걸음 다시 등대를 좌표로 회귀하는 되돌이표 여행이 쳇바퀴로 구르며 저마다의 삶을 일구어 간다. 항구에는 그러한 다양한 삶이 머물고 있다.
경주의 입구인 수렴항에서부터 읍천항, 대본항, 전촌항, 감포항까지는 아늑한 공간을 형성하면서 들어오고 나가는 정문의 파수꾼처럼 등대가 서있다. 특히나 감포항은 온갖 종류의 등대들이 전시장처럼 들어선 등대박물관이다. 일제강점기에 수동으로 조작해야 했던 등대와 감은사지 삼층석탑 모형으로 세운 등대, 붉게 색칠한 야한 등대, 하얗게 파도색으로 변신을 시도하는 감포항구등대, 바다 깊숙한 곳에 섬처럼 세워진 노란 등대 등등 7개의 등대가 밀집해 있다. 이곳이 지명조차 맛깔스런 송대말등대다. 해풍을 막아선 소나무들이 우거져 숲을 이루고 있고, 등대들이 해풍림처럼 둘러 서 있는 마을이다.
송대말은 경주 감포와 포항 양포의 경계를 이루는 지점이다. 일제강점기의 흔적들도 곳곳에 묻어나는 곳으로 경치 또한 빼어나 감포사람들은 손님들을 곧잘 이곳으로 안내한다. 감포의 자랑거리인 셈이다.
감포항을 깊숙하게 둘러볼 수 있게 자전거길이 나있고, 항구를 따라 다시 바다 속으로 뛰어들 듯 동해로 깊이 길이 나있는 곳이어서 자전거 하이킹족이든 드라이브를 즐기는 여행객이든 송대말에서는 일단 쉬어가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다. 등대들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를 엿보며 아름다운 경치에 빠져 잠시 땀을 훔치려던 하이킹족의 마음은 바다로 점점 깊숙이 빠져드는 곳이기도 하다.
◆자전거코스를 개발한 경주시청 윤병록 팀장
경주시는 풍부한 역사문화자원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둘러 볼 수 있도록 다양한 투어코스를 개발해 방문객들을 유혹한다. 버스와 승용차로 둘러보는 시티투어 개발에 이어 자전거로 둘러보는 자전거 투어코스도 10코스로 압축 지도로 제작했다.
경주시청 윤병록 팀장은 “경주시를 알뜰하게, 재미나게 둘러볼 수 있도록 ‘경주 자전거투어 추천코스’를 지도로 제작해 보급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경주를 보다 알차고 재미나게 둘러보는 팁으로 귀뜸했다.
윤 팀장은 “경주 자전거투어코스는 경사가 완만한 평지로 조성돼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으며, 곳곳에 자전거대여소가 있어 편리하다”면서 “자전거투어코스를 난이도와 지역별, 문화탐방과 레저로 구분해 10개의 코스로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도로 제작된 코스를 통해 취향과 자전거 숙련도에 맞는 코스를 선택할 것”을 추천했다.
경주에서는 굳이 지정된 코스가 아니라도 자전거 핸들에 방향을 맡기고 바퀴가 구르는 대로 달려도 교과서에서나 접했던 문화유적들을 만나고 여유롭게 탐구하면서 직접 둘러볼 수 있다. “봄에는 꽃눈이 날리는 아름다운 벚꽃길을, 여름과 겨울은 역사문화에 채움과 비움의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가을에는 붉고 노란 단풍이 가득한 경주를 달리며 천년의 역사를 느낄 수 있다”고 입이 마르게 경주를 자랑한다.
윤 팀장은 “전국 아름다운 자전거길 100선에 선정된 경주코스가 있다”고 알려준다. 경주시가지를 벗어난 외곽지의 김유신장군묘, 오릉, 포석정, 삼릉을 들러 신라역사와 함께 자연에서 힐링을 체험하고 문화사적지가 몰려있는 교촌한옥마을, 대릉원, 첨성대, 동궁과 월지에 이르는 4.5키로 코스가 그곳이다. 비교적 짧은 코스이지만 계절에 상관없이 다양한 경주의 모습을 즐기면서 삼릉이나, 포석정 주변과 첨성대 일대의 다양한 음식메뉴를 선택할 수 있어 좋다는 것.
“경주시는 동해안자전거 경주코스인 울산광역시 경계지점 지경교차로, 양남 수렴리에서 포항시와의 경계 감포 연동마을까지 38㎞ 구간에 자전거 인증센터를 3개소 정도 설치할 계획”이라고 윤 팀장은 밝혔다. 이어 “매년 주기적으로 방치된 자전거를 정리하고, 경주시민공영자전거 운영, 자전거거치대 확충 등의 계획을 추진한다”고 덧붙였다.
윤병록 팀장은 또 국가에서 전국자전거네트워크사업을 추진해 자치단체에서 건설한 동해안 자전거길의 유지보수비 국비 지원이 필요하다는 건의사항도 슬쩍 흘렸다.
첫댓글 해파랑길은 부산에서 강릉까지 해안길로 연결된 자전거길입니다.
경주 구간의 해파랑길도 절경이 너무 많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