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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교육청에서 운행하는 통학버스 |
마을 앞 버스 승강장 |
<버스시간표>
장흥터미널출발시간 : 오전 08:10/ 오전 11:20 / 오후 5:10
신풍 → 인암 : 오전 08:25 / 오전 11:35 / 오후 5: 25
마을입구→ 장흥 : 오전 8:30 / 오전 11:40 / 오후 5:30
■ 마을 가구 및 인구
마을은 큰마을과 작은마을로 구분되는데, 큰마을에는 9호 17명, 작은 마을에는 6호 9명 등 총 15호에 26명이 주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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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마을 전경 |
작은마을 전경 |
■ 마을 특색
인암마을은 유치 반란사건의 근원지(시발지)로 1949년 5.16에 여순 반란사건 후 잔 무리들이 유치의 한치에 집결하여 반란을 일으켰다.(반란군 수백명으로 추정) 당시 31사(당시 광주 20년대) 1개 연대 병력과 경찰 1개 대대가 출동하여 완전 섬멸하기까지 2개월 걸렸으며 그로 인해 한치 마을은 완전히 불에 타버렸다.
인암마을은 작가촌이라 불리우기도 하고 한봉마을, 생약초마을로 많이 알려져 있다. 외지에서 들어온 주민중에는 한국화가(사군자, 서예, 동양화), 시인(시와 글쓰기, 고전 읽기), 목공예가(목공예, 숲해설), 한학자(한학 서당(유교경전)), 자연철학자 등이 있어 향후 슬로시티 사업에서 도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당을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00년도에 문화운동가 문충선씨(장흥문화마당 전 대표)가 이곳에 처음에 정착하겠다며 이사해 왔고(지금은 장흥으로 이사 나왔다), 그 후 역시 문화마당 회원으로 시인이자‘고독한 철학자’인 김효문씨 부부가 이곳에 땅을 매입하고 흙집을 지어 이사해 왔으며, 이후 역시 문화마당 회원으로 전 記者 출신인 박형모씨가 새집을 지었고, 이어 문화마당 대표이자 화가인 정찬용씨가 한치 마을로 이사왔다. 또 목포에서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정치균씨 부부가 새집을 짓고 이사 왔다.(장흥신문에서)
■ 등산로, 임도, 주요도로
62년도부터 72년도까지 지방도로에서 마을 입구 4km를 10년 간에 걸쳐 삽, 괭이 등으로 폭 5m 넓이의 길을 밀가루 취로 사업( 밀가루로 임금 대치) 으 로 확장하였다. 2006년 확포장 사업을 실시하였다.
2006년 마을 진입로 약 700m(폭 약3m)가 시멘트로 포장되었으나, 기존 도로 좌우의 가로수가 제거되어 현재는 절개면이 노출되고, 가시오가피가 식재되어 있으나 토양 조건상 성장이 미약한 상태에 있다. 따라서 마을의 인상을 좌우하는 진입로에 대한 개성적인 가로수 조성과 정비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포크레인으로 5m 간격의 구덩이를 만들고 자갈과 잡석 위주의 기존 토양을 대체할 흙을 준비하고 가로수를 심어 흙으로 덮어주는 사업인 가로수 식재사업을 2010년에 실시하였다.
인암마을에서 국사봉까지 1시간 거리의 등산로가 있다.
■ 천연기념물, 보호 및 희귀동물 등
꾀꼬리, 소쩍새, 오소리, 멧돼지, 노루, 산또끼 등이 서식한다.
■ 水자원(하천, 저수지, 지하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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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천은 수량이 풍부하여 여름철에는 피서를 즐길 수 있으며 조양저수지로 흘러 간다 |
■ 신앙공간(성황당, 돌무덤, 당나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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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각 옆에 2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는데 수령이 400년 되었다. |
■ 마을상징물(마을안내석, 솟대, 장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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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에 설치된 안내석과 솟대 |
마을회관 앞에 설치된 솟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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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불고필유인(덕이 있는 자는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
신풍리 23호선 국도에 있는 마을 표지석 |
■ 풍수지리나 전설(마을유래, 설화 등)
400년 전 인암이라 칭하였는데 이는 마을 입구에 도아바위(인암바위)가 있어 인암이라 칭하였다. 이때 노씨(확실히 살았다는 증거는 없다)와 장흥 마씨가 들어와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점차 가구 수가 늘어 인암에 63호 가구가 모여 살기 시작하였으며 작은 한치에 33호가 집단 거주하여 마을 주민과 인근 마을 주민이 영산포 장을 보러가기 위해 재를 넘는데 재가 어찌나 추운지(여름에도) 그 재를 한치(寒峙)라 불리게 되어 큰 마을을 큰 한치, 작은 마을을 작은 한치라 불리게 됐으며 이 때가 일제 말엽이였다 한다.
■ 공동생활시설(마을회관, 노인정, 마을마당, 어린이놀이터 등)
인암마을회관은 2006년 신축하였는데 방2개, 거실1개, 부엌,화장실로 이루어져 있다. 1일 7-10만원으로 숙박이 가능하다. 숙박연락처는 임선옥(061-863-0615)으로 하면 된다. 식사는 자체 해결하여야 한다.
옛날에는 修仁薺라고 하는 서당이 있었다. 서당은 지금으로부터 60년 전까지, 즉 6.25후까지는 있었다. 이를 기리기 위하여 수인정이라 하였다. 큰마을에는 슬로시티사업으로 학당을 조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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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암경로단 및 마을회관(큰마을)으로 평소 마을회의 뿐 아니라 각종 회의, 외지인 숙박까지 가능하다. |
수인정(2009년 8월 기존의 정자를 참살기좋은마을만들기 사업으로 리모델링하여 주민이 4계절 활용토록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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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마을 정자 |
성재하(863-4561) (작은마을) |
■ 기반시설(방범등, 상수도, 하수도, 공동주차장 등)
전 기 : 1981년도에 가설되었다.
전 화 : 1985년도에 가설되었다.
지붕개량 : 1974년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지붕개량을 하였다.
■ 정보기반시설(인터넷, 컴퓨터네트워크, 마을홈페이지 등)
마을카페 : 한치마을(http://cafe.daum.net/mlion)
솔바람의 블로그 : http://kr.blog.yahoo.com/cyart2005
■ 농업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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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내 산야초 재배지역 |
한봉작목반이 운영하는 한봉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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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봉을 키우기 위해 밀원식물을 재배하고 있으며 마을 유채밭(13,000평)을 조성하였다. 또한 다랭이 논을 경관농업 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밤나무, 회화나무, 기룹나무, 피나무, 이팝나무, 드룹나무 등 약 5천주를 2008년부터2010년까지 식재하였다. |
■ 도농교류활동(관광농원, 휴양단지, 민박 등)
민박은 마을회관에서 가능하다
2009년 광주학부모독서클럽 방문
2010년 10월 장흥고등학교 환경동아리 회관숙박 및 체험행사
■ 농특산물 생산
인암마을은 한봉외에도 표고와 산나물(취나무)을 생산하고 있다.
한봉토종꿀의 홍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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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치마을 소개 국사봉(國師峰)* 슬하에 살아라 세상의 처음을 일구는 아침 햇살(朝陽)* 이마에 환히 받으며 살아라 나무와 풀의 내음에 몸 담그고 벌들의 둥그렇게 물결치는 춤사위에 두 귓바퀴 흥건히 적시며 살아라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이 일지 않고 달빛이 연못의 바닥까지 비추어도 흔적을 남기지 않듯이* 찬 고개(寒峙)* 너머 붓끝을 놓고 인암(印岩)*을 들어 생의 화폭에 자서의 낙관을 찍는 날에도 하늘 우러르며 발 밑 살펴 디디며 산 물끄러미 바라보며 살아라 *한치 마을은 국사봉(해발 614m) 기슭에 터를 내리고 있습니다. *한치 마을은 행정구역상 조양리 2구입니다. * 竹影掃階塵不動 月穿潭低水無痕 *한치는 장흥 유치와 영암 금정을 연결하는 고개로 한치 마을에 속합니다. *인암은 마을을 상징하는 바위입니다.
● 한치한봉 토종꿀 벌꿀 ‘里仁爲美’를 생산하는 인암 마을은 장흥군 유치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장흥과 영암의 경계인 국사봉(해발 614m) 기슭에 터를 내린 산골 마을입니다. 숲이 깊고 공기와 물이 맑아 고라니와 멧돼지가 노닐며 여름이면 반딧불이가 밤을 아름답게 수놓고 겨울이면 솜이불 같은 눈을 수북이 덮고 겸허하게 불 밝히는 착한 마을입니다. 벌꿀 ‘里仁爲美’는 토종벌들의 수고를 빌려 인암 마을 사람들이 생산한 순수한 꿀입니다. 인암 마을은 깊은 산골이니 만큼 겹겹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 천연 밀원을 풍부히 제공하고 있지만 더욱 더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깨끗한 꿀을 생산하기 위하여 해마다 자운영과 유채 메밀을 논과 밭에 가득히 파종하고 밤나무 쉬나무 피나무 회화나무 귀룽나무 바이텍스와 같은 나무를 대량 식재하는 등 밀원 확보를 위해 마을 사람 모두가 마음을 모아 땀 흘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산된 한치 벌꿀 ‘里仁爲美’는 자연이 제공하는 맑은 기운과 사람의 정성어린 마음을 담았으므로 그것을 두 손으로 받는 여러분의 마음도 밤하늘의 별처럼 환히 빛나리라 믿습니다. 가내에 건강과 평안과 행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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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치 里仁爲美(이인위미) 토종꿀 상식 및 음용방법
- 한지 里仁爲美(이인위미) 토종꿀 열처리를 하지 않는 순수한 생꿀입니다
- 한치 里仁爲美(이인위미) 토종꿀은 순수한 생꿀이므로 생 꿀 그대로 공복에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마을 어르신들 말씀으로는 생꿀을 드시고 물을 드시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 꿀을 드실 때 스텐 수저로 드시지 마시고 나무수저 또는 일회용 플라스틱 수저로 떠서 드시길 바랍니다(스텐수저는 꿀을 중화시킨다고 합니다)
- 벌꿀(진꿀)이 굳어지는 (하얀 결정)현상은 물리적인 성질 때문입니다. 벌꿀은 꽃의 종류에 따라서 맛과 향 그리고 색이 다르며 구성된 성분 또한 다른데 전화당으로 구성된 당의 조성(과당,포도당)이 꿀벌이 채밀해 오는 꽃 꿀에 따라 비율이 다릅니다. 이 벌꿀을 굳어지게 하는 것은 과당보다 포도당이 많을 때 일어나는 물리적인 현상인데 굳어 결정이 되었다고 해서 벌꿀의 성분 및 맛과 향 등이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벌꿀이 굳어지는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포도당이 과당보다 많이 함유된 벌꿀일 때 2. 외부에서 온도가 영상 15도 이하로 내려갈 때 3. 화분 등의 유입이 많을 때 4. 일년생의 꽃에서 얻어지는 벌꿀이 많을 때 굳어져 결정이 된 벌꿀을 원상태로 만들려면 영상 15도 이상의 장소에 보관하면 원상태로 돌아옵니다.
한지 里仁爲美(이인위미) 한봉꿀은 순수한 토종꿀임을 한치 한봉작목반에서 보증합니다.
생산지 : 전남 장흥군 유치면 조양리 인암(한치)마을 내 생산자 : 한치 한봉작목반 한치 한봉작목반장 : 정찬용 H.010-8940-8637 마케팅 : 임선옥 T 061) 863-06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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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암마을 한봉작목반에서 생산한 전통 토종꿀 『이인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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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마을의 대표적 음식)
인암마을에는 모시떡과 메밀묵이 마을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 생활공동체활동(관혼상제부조, 경로잔치, 친목계 등 )
동계가 양력으로 동짓날 12월 22일 개최단다. 이때 마을 총회를 겸하게 된다.
마을 청년회는 11명으로 조직이 되어있으며, 부녀회는 9명으로 회관관리와 민박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이외에 노인회가 11명으로 조직되어 있다.
■ 농업공동체활동
한치한봉작목반이 2010년 10명으로 조직되었다. 반장은 정찬용씨이며 총무는 부녀회장이 맡고 있다.
■ 마을관리 및 홍보활동(마을정비, 마을청소, 쓰레기 분리수거, 마을홍보․안내활동)
음식쓰레기는 퇴비로 사용하며, 쓰레기 분리수거를 통해 재활용을 하고 있다.
마을 홍보는 장흥신문, 오마이뉴스 및 각종 블로그에 게시되고 있다.
광주일보 마을기사내용
(2009.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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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별 특징(인물별 업적)
문낙선씨 모친(1965년도)열녀표창, 16살 때 수절(결혼 후 3달 만에 홀로됨) 87살까지 홀로 생활다가 일생을 마침
정기홍씨(~1977) : 효자 효부
마양선씨(?) : 동학 혁명 의병대장, 전국 전투에 참여
■ 마을 주민
가구주 |
전화번호 |
영농형태 및 특징 |
거주마을 |
고귀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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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한치 |
고형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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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한치 |
김효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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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한치 |
문용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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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한치 |
문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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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한치 |
박형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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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한치 |
서분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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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한치 |
원민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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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한치 |
이병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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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한치 |
이점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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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한치 |
임선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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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한치 |
임종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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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한치 |
임채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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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한치 |
장인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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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한치 |
정기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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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한치 |
정정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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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한치 |
정찬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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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한치 |
정치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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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한치 |
조성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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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한치 |
진일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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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한치 |
추유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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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한치 |
한병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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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한치 |
첫댓글 전기는 1981년이 아니라 1976년에 가설되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