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에 이르는 길
(람림) LAM RIM
쫑카파 지음/ 청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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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승이 제자들을 이끄는 단계
* 스승에게 귀의함
정진(精進)이란
이웃을 위하여
견고한 원(願)을 실천하는 것이다.
싫증을 극복한다는 것은
거듭 강설해도 피곤을 느끼지 않고,
강설의 어려움을 참아낸다는 것이다.
뽀또와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삼학(三學)과
법성(法性)의 통달, 연민 등의
다섯 가지는 주된 것이다.
나의 스승 샹쮠뀐은
많이 들음도 없었고,
노고를 인내함도 없었고,
강설을 기억해 둔 적이 한 번도 없었으나
위에서 말한
다섯 가지를 갖추고 있어서
그 앞에 있으면 누구나 이득이 있었다.
귀신을 지적하는 데도
예로부터 능하지 못했고,
공양 보시를 찬탄하는 것만 한번 설하면서,
누구에게나 지금까지
이것은 알지 못했다고 인정하는 것밖에
다른 것은 몰랐지만,
다섯 가지를 갖추었기 때문에
누구나
그와 가까이 하면 이득이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삼학을 열심히 수행하지 않고
다만 찬탄과 그 공덕을 말함으로써
자기 삶을 살아간다면 선지식이 될 수 없다.
이것은 전단(栴檀)64)을 찬양하는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전단을 찾는 몇 사람이
그에게 전단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없다고 대답한 것과 똑같아
전혀 무의미한 빈말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삼매왕경»에서
“말세의 비구들은 계율 없는 이가 많다.
비록 많이 들으려고는 하나
계율을 찬탄하기만 할 뿐
계율을 지키려는 자가 없구나”
라고 말하면서,
정(定) · 혜(慧) · 해탈(解脫)
세 가지에 관해서도
역시 그렇게 말하면서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전단이 좋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향기가 지극히 좋다고 전단의 덕을 칭찬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그처럼 찬탄해 말하는 전단을
좀 태워보자고 말하니,
그 사람은 그 물음을 물은 이에게
‘나는 생계(生計)로서
전단을 찬탄해 말하는 것이지,
나에겐 그 향이 없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유가(瑜伽)65)에 노력 없이
계율의 찬탄만으로 살아가는 자는
말세에 이르면 이들에게는 계율이 없다.
나머지 세 가지에 관해서도
그와 같이 말하였다.
이처럼 해탈을 수행하는 존사(스승)는
확실한 희망의 근본이다.
스승을 의지하려는 사람들은
이런 것을 알아차려
법상(法相)을 갖춘 자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스승에 의지하려는 학인들 또한
이런 것을 알아차려
법상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시절 인연 때문에
이 모두를 갖추기 어려워
.이런 스승을 모시지 못했다면 어찌할 것인가.
«묘비청문경 妙臂請問經»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바퀴가 하나밖에 없는 수레는
말을 매어도 굴러갈 수 없듯이
수행하는 자에게 반려자 없이는
금생에 성취하지 못하리.
지혜와 용모와 정갈함을 갖추어
태생이 존귀하고 법에 전념하며
신념이 크고 용감하고 온화하며
말씨는 부드럽고 베풂에 자비를 갖춘 자
배고픔 목마름 번뇌를 이겨내며
바라문도 어떤 신도 받들지 않고
총명하고 재치 있어 은혜를 갚을 줄 알고
삼보를 벗으로 믿고 받든다.
이런 공덕을 빠짐없이 갖춘 자
다투는 이 시대엔 극히 드문
공덕의 반절 · 사분의 일 · 팔분의 일만 있어도
그가 주사(呪師)66) 일지라도 친구로 의지해야 하리.
여기서 반려자로 말한
전체 법상(法相)의 팔분의 일은
최저 한도의 기준이다.
“나는 그 큰 스승과 똑같다”
라고,
지존 아티샤도 말했다고
뽀또와(1292~1361)의
전체 어룩 중에 쓰여 있다.
스승은 법상으로 말한 이것을
원만히 다 갖춘 이들의
난이(難易) 정도에 따라
팔분의 일이라도 갖추는 것을 최저 한도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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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전단(旜檀)으로 쓰기도 한다.
향목(香木)의 일종으로 방향을 말하는데
백(白) · 적(赤) · 자(紫) 등의 종류가 있고
고열 · 풍종(風腫) 등의 병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65)
마음을 다 잡는 것.
어떤 목적을 위해
마음을 다잡고 힘을 집중한다는 뜻으로
뜻을 제어하여
마음의 통일을 도모하는 수행법이다.
여기서는 계율수행의 실천을 말한다.
66)
주술을 행하는 사람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