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전 조르쥬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의 '카르멘'을 보고 왔습니다.그랜드 오페라단과 러시아 노보시비 르스크 국립 오페라극장이 지난해 토스카 공연에 이어 새롭게 선보인 한.러 합동공연 오페라 '카르멘'
4막으로 구성되었고 3번의 휴식시간이 있었는데여..
4시에 시작해서 8시에가 되어서야 문화회관을 빠져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4시간의 공연이 왜그다지도 짧았는지..
사실 이 공연을 기다린 건 5월경에 있었던 [카르멘]갈라공연을 본 뒤였거든여..
너무도 많이 들어 본 '하바네라'부터 '토레아도르'까지..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이 오페라를 프랑스 최고의 걸작 오페라로 만들어 주는 또 다른 힘은 주인공들의 독특한 성격에 있다, 그 중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물론 여자 주인공'카르멘'이다. 카르멘은 이제까지 다른 오페라의 여주인공들이 보여주던 순수하고 지고한 사랑과는 아주 다른 식의 사랑을 하는 여자다.
카르멘의 사랑이 풍기는 이미지는 한마디로 악녀의 그것이다. 붉은 장미의 독가시처럼, 혹은 진한 향수처럼 매혹적이면서도 그래서 더욱 위헌한 여성. 한번 사랑에 빠지면 불같이 뜨거운 열정을 쏟아 붓지만 일단 마음이 돌아서면 얼음같이 차가워지는 여자. 그러고는 어느 때고 마음내키는 대로 사랑의 상대를 바꾸는 자유분방한 여자.
카르멘은 정대로 '사랑은 식었지만 이놈의 정 때문에' 상대와 지겨운 만남을 지속시키는 법이 없다. '죽은 뒤에라도 영원히 그대만을 사랑해요'라는 낭만적인 유형을 유감없이 깨뜨리는 오페라의 혁명녀 카르멘은 이렇게 뜨거움과 냉혹함을 동시에 갖춘 여자다. 이 오페라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희생? 남자들이여, 꿈도 꾸지 말지어다.
마치 영화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이나 [위험한 정사]의 글렌 클로즈같은 유형의 이런 여자 주인공을 일컬어 '팜므 파탈'(femme fatale)이라 부른다. 우리말로 하면 '운명적 여인'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운명'은 우리말이 주는 부드러움 어감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뜻인 '치명적'타격을 나타낸다. 이런 여자에게 잘못 걸려들면 남자는 대개 형편없이 스타일이 구겨지거나 치유불능의 상처를 입게 된다.
비제의 오페라[카르멘]은 매력적이지만 위험한 여자 카르멘이 호세라는 남자를 유혹하여 사랑을 나누는 데에서 시작한다. 예상할 수 있듯이 카르멘은 호세를 유혹하여 사랑에 빠지게 만들고, 결국 그에게 싫즐을 느껴 그를 헌신짝처럼 버린다. 결말은 카르멘에게 버림받은 호세가 제발 다시 돌아와 달라고 애원하다가 이를 거부하는 카르멘을 죽여 버리는 끔찍한 결말을 맺는다.
이런 위험한 여자 카르멘에게 걸려드는 호세는 어떤 인물일까? 호세는 한마디로 평범하기 이응 데 없는 보통 남자이다. 그의 직업은 하사관, 직업군인이다. 마음씨도 착하기 이를 데 없고 여자 경험도 별로 없는 그런 남자.
이 오페라의 카르멘의 상대역으로 이처럼 평범한 남자를 설정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이는 이제까지 나오던 오페라의 잘난 남자 주인공들로부터 벗어나 파격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오페라으ㅢ 남자 주인공은 대개 인물도 잘나고 부유한, 세상에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남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멋있는 남자들은 대개 청순한 여자 주인공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여주인공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먹고 산다. 이 오페라의 남녀 주인공은 정반대다. 순수와 헌신과는 거리가 먼 잔인하고 자유분방한 여자 카르멘과 착하고 순진한 호세. 호세에게 유일하게 내새울 수 있는 것이라곤 한 여자를 향한 앞 뒤 안 가리는 사랑뿐이다.
호세와 카르멘은 서로 사랑을 나누지만 사랑하는 방식은 서로 너무 다르다. 카르멘에게 사랑이 자유와 욕망이라면, 호세에게 있어서 사랑은 맹목이다. 페미니스트들을 속시원하게 만들어 줄 만한 이러한 파격적 남녀 관계는 사실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이 오페라의 매력은 이처럼 일상에서 gms히 볼 수 있는 사랑의 한 유형을 극화시켰다는 데에 있다. 이 오페라를 사실주의 오페라의 선두주자로 꼽는 것도 나름대로 이런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호세는 원래 카르멘을 알기 전에 미카엘라라고 하는 여자를 알고 있었다. 미카엘라는 호세의 어머니가 며느리로 점 찍어둔 고향의 착한 시골처녀이다. 그녀는 호세가 자기를 바라보기만 해도 수줌어 얼굴이 붉어지는, 한마디로 순정녀다. 호세는 한동안 어머니의 뜻에 따라 미카엘라와 결혼할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녀를 애인으로 택하기에는 카르멘의 독한 향기는 너무나 강했다. 미카엘라의 청순하고 순종적인 이미지는 카르멘의 강렬한 매력과 변덕스러움을 부각시켜주는 역활을 한다.
이 오페라에서 또 한명의 중요한 인물은 에스카미요다. 미카엘라가 여자 조연이라고 한다면 에스카미요는 남자 조연에 해당한다.
에스카미요는 카르멘이 호세 대신 선택한 남자로, 스페인 최고의 투우사다. 동과 면예, 힘. 여기에 적당한 매너까지 갖춘 이 멋있는 남자에게 카르멘의 필이 꽂혔을 때, 버림받은 호세의 기분이 어땠을까? 원래 가진 것도 변변치 않았지만 그나마도 역자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린 그였다. 그런데 그 여자가 자기를 버리고 이처럼 멋있는 남자에게 가 버렸다. 호세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갖추지 못할 것을 다 갖춘 남자를 떠올리는 호세의 마음은 초라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호세의 비참함은 잘난 에스카미요의 모습과 극단적인 대비를 이루면서 더욱 극대화된다.
이처럼 상처받은 남자가 잘난 투우사에게 가버린 매정한 여인 카르멘을 되찾고자 집착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죽이면 그녀를 소유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러한 생각을 할 여유조차 호세에게는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랑했던 여자에 대한 배신감은 그를 파괴의 극단으로 치닫게 한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로 여자에게 버림받은 호세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결국 살인이라는 극단으로 치닫지만, 그는 처음부터 그렇게 형편없는 남자가 아니었다. 이 오페라의 비극성은 멀쩡했던 호세가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해결 이외에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