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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 기말시험 준비-학습목표 위주로 교재요약】
-문화교양학과 신명옥-
<제1부 동아시아의 역사><제1장. 중국문명의 형성과 통일제국의 출현>
1. 중국 최초의 국가인 상(은)나라와 이를 잇는 주나라 시대의 국가 제도 형성과정과 성격
*중국의 신석기문화(1000년전): 황허강, 양쯔강, 랴오허강 유역을 중심으로 형성 발전
*최초의 국가 상(은)나라: 은허발굴, 갑골문, 제정일치 사회, 도시국가(왕과 제후),
*주나라(BC.1): 혈연, 종법적봉건제, 천명을 주장(덕), 유학자들이 이상국가로 평가
2. 춘주.전국시대의 전개과정과 의의
*주나라 혈연의식 약화, 영토와 인구를 둘러싸고 제후국과 무력으로 경쟁, 견융족의 침략으로 멸망(771년)
*춘추시대: 왕을 대신하여 분쟁 조정, 5개의 강대국(오패)
*전국시대: 하극상 발생, 7개의 강대국(전국칠웅-진,초,연,제,한,위,조)
*사회적변화: 군주권 강화/인재 등용과 법가사상(변법)으로 부국강병책 추진/개간과 관개시설 설치,
철제농기구 사용, 우경도입, 농경지 확대, 농작물생산 증가 => 상업과 수공업 발달,
노동력 분산, 군사로 징집할 수 있도록 분가정책 실시=>5인 가족단위 구성,사회를 이루는 기본 단위
-농업 생산성 향상은 상업/수공업 발달로 이어져-교통 요충지에 대도시 출현-청동화폐 출현
-전국 유통망의 단일 교역권, 이른바 통일국가 출현 예고
3. 제자백가의 사상과 영향에 대한 설명(중국 문화의 기틀이 형성)
*인간의 의지에 대한 확신으로 국가와 사회 질서에 대한 원리를 추구
유가-가족윤리 중심의 규범을 가족사회와 국가의 정치규범으로 확대(공자, 맹자의 왕도정치)
순자-성악설 // 묵가-유가에 반박, 사회공공이익을 중시, 신분보다 능력,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
법가-중앙집권국가의 확립, 군주 중심의 법치국가 추구. 성문법제정, 한비자 법가집대성
도가-노자가 창시, 장자가 완성. 자연의 원리이자 무위인 도에서 만물이 생성
4. 진한 통일제국과 유교사회의 성립과 융성, 몰락 과정을 집권세력 및 국가제도의 변천과 연관지어 이해
*진나라: 인재선발(초현령), 법가사상(변법)활용하여 전국칠웅 통일,
-진시황제: 중앙집권정책, 군현제실시(36개군), 도량형. 화폐. 문자통일, 만리장성. 도로망 건설, 분서갱유
-진시황 사망 이후 농민반란(진승, 오만)으로 멸망
*한나라: 항우와 유방이 건국, 유방이 항우 축출
-유방: 진나라의 중앙집권 답습, 군국제(군현제+분봉제) 실시, 흉노와 화친정책(혼인)
-유방 사망후: 부인 여후가 15년 통치/여후 사망 후 공신 쿠데타로 유방의 서자, 文帝 등극.
*무제가 제후 반란을 진압하고 황제 통치의 본격화.
-55년간 재위, 강력한 중앙집권 추진, 자사파견, 상서중용, 유학(통치이념), 흉노토벌, 실크로드개척,
재정고갈(소금, 철의전매), 균수법과 평준법 실시, 화폐주조권 독점
장안에 태학 설치: 오경(시, 서, 주역, 예기, 춘추)을 가르치는 박사들이 10명의 제자를 관리
임용 자원으로 양성. 유학자 중심의 관리 등용. 훗날 과거제의 근간.
☞ 호족의 성장과 유교이념의 정착
*지방에서는 대토지 소유로 농민을 부리는 호족들이 향리에 영향력 행사.
*중앙정부: 승상대신 군대지휘권을 가진 외척(8촌 이내 모계)출신의 상서(황제비서)가 장악.
이후 100년 간 외척 전성기 시대 열림.
*왕망-외척 전성기에 신나라 건국, 복고정책 추진, 유교적 이상국가(주나라) 건설 추진, 농민반란에 멸망
*유수-후한건국, 수도(뤄양), 지방호족과의 연합정권, 통치이념(유학) 환관 횡포(갈등발생)
*호족출신의 태학생(청류)과 중앙정부의 환관세력(탁류)간 힘겨루기: 탁류파의 ‘청류파 감금.’
*새로운 국가 수립을 지향하는 대규모의 농민반란(황건-184년)
*신흥종교의 부활- 병자를 치료하는 주술적 행위로 인기상승, 태평도, 오두미도
*세력커진 호족들은 군사력을 토대로 각지에서 자발적 행보를 통해 중앙정부와 대립
<제 2장 한족왕조와 정복왕조>
1. 삼국시대 이후 중국 왕조의 변천: 삼국시대(3세기 초)
-위(조조): 화북지역, 전란발생 / 촉(유비): 쓰촨성 지역,
-오(손권): 강남지역, 귀족문화+문벌귀족사회+호국불교, 안정된 지역, 농업생산성 증가
*서진: 분봉제와 구품중정제 실시로 문벌귀족 출현, 왕권약화, 내란발생, 흉노의 침공으로 멸망
-화북지방의 오호 정권대립(흉노, 선비족, 저족, 갈족, 강족), 단명왕조, 유목의 단점
-선비족(북위: 유목 정권의 한계 극복하고 장기간 지속): 수도(뤄양), 유목부락 해체, 세습제 실시,
호환융합정책, 균전제, 호적과 토지대장 작성(삼장제실시), 선비족과 한족의 통혼(멸망의 원인)
*동진: 사마예가 건국, 수도(난징), 왕권 취약으로 군벌에 의한 왕조교체(남조-송,제,양,진), 국교(불교)
2. 수당 통율령국가의 체제와 동아시아 고대 국가의 구조에 대해서 이해
*수나라(단명왕조-율령국가): 581년 건국(양견), 남조와 진을 통일, 동아시아 고대국가 형성의 토대
-수 문제: 중앙정부 기구(삼성육부), 과거제와 부병제 실시, 율령반포,
-수 양제: 대운하 건설(중국경제의 대동맥) // 멸망: 고구려 침략 실패, 농민반란
*당나라: 건국(이연), 기본법전 율령(율-형법, 령-행정법) // 태종 이세민: 황제권 강화, 영토확장
-현종: 당나라의 전성기 // 수도 장안: 상업적 교류의 중심지, 상인+종교(국제도시)
-안녹산과 사사명의 반란으로 쇠퇴(제도개편-균전제와 부병제폐지: 장원제와 모병제로 전환),
->번진의 설치로 재정수요 증가, 조세수입은 감소로 재정고갈(양세법실시-소금과 차 전매실시),
-멸망: 주절충(절도사)의 반란
3. 중국 정복왕조의 성격과 몽골 세계제국의 의의에 대해 서술
1). 연이은 정복왕조의 등장: 문신 관료계급의 성장
*오대십국시대: 절도사가 군벌이 되어 서로 다투던 분열시대
*송나라: 조광윤의 쿠데타로 건국, 황제권 강화, 과거시험제, 사대부 등용(문신관료제 정착)
-과거제도: 평등하고 객관적(장점), 모든 학문이 종속되어 교육과 실용적 학문발달에 저해(단점)
-왕안석의 신법(12세기 중엽): 모병제, 관료의 증가, 거란에 제공하는 물자 등으로 재정고갈,
부국강병책과 과거 시험의 개혁 추진하여 재정확보 // 신법당과 구법당 대치
-거란(요)와 연운십육주를 둘러싸고 군사적 대립(건국직후부터~1004년까지), 여진족에 멸망
*남송: 금나라와 화친, 평화조약(은을 조세로 헌납), 농업과 상업의 발전과 도시 발달,
화폐 교자발행, 목판인쇄술 발달, 서민문화의 성장(희곡, 잡극)
-군사적 열세 이유: 문신관료제, 무인 차별과 유교국가 이념인 화이의식 때문
-주희: 성리학(인간과 자연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탐구를 지향하는 신유학), 사대부들의 이념으로 발전
*금나라: 여진족이 건국, 송나라와 연합하여 거란(요) 멸망시키고 송을 멸망시킴
2) 몽골 세계제국의 등장
*정복왕조: 거란(요),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 등 10세기 이후에 등장한 북방의 유목민족이 세운 왕조
-만리장성 이북, 중국의 일부 또는 전부를 점령 지배한 왕조
-한족과 대비되는 강렬한 민족의식, 정복자 의식, 독자적인 문자제정, 고유의 문화와 관습유지
-농경민과 한족과 지배민족인 자신들을 분리하여 통치(이중적 통치)
*원나라(13세기초-대몽골제국): 건국(테무친=징키스칸), 몽골지상주의(군사업무:몽골인/재정업무:색목인)
-영토 확장: 금나라,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인더스강, 모스크바, 키예프공국점령(유라시아지역)
-남송정복으로 최초의 중국 정복, 단일화폐인 교초발행, 티베트불교수용(타종교활동가능)
-실크로드 장악: 동서교역안정(기술도입) // 교류활발-동방견문록(마르코폴로),
-행중서성과 다루가치 파견(지방), 역참설치
-멸망: 14세기 이후 방만한 재정운용, 자연재해 등으로 국력약화, 백련교의 난
4. 명·청 시대의 국가 성격과 이 시기 지배계층인 신사층
*명나라: 건국(주원장), 유교이념선포, 과거시험제 도입(주자학), 이갑제실시(향촌연대조직),
-토지측량(인구조사병행=농촌부흥지향), 공포정치(황제직접통치, 첩보기관으로 통제)
-영략제: 황제독재권력 강화, 환관세력 성장 // 멸망: 환관의 횡포에 반발한 농민반란(이자성)
*청나라: 건국(누루하치-여진족통일), 팔기제실시(군사제도), 만주문자(민족적 자립성 강조), 중국정복
-몽골정복, 티벳과 신강정복, 만한병용제실시(만주족,한족관리)
-상업발달(자유무역->서양문물교류->은의 유입), 조세(은으로 통일)
-신사층(명·청 시대 향촌거주의 특권계층, 향촌질서유지와 행정보좌),
-학문적 발달(양명학, 경세치용학, 고증학)
<제 3장 근대 중국의 탐색>
1.제 1.2차 중영전쟁과 중국 개항의 과정의 성격
*제1차 중영전쟁(아편전쟁 1840년~1842년): 아편엄금론에 타격을 입은 영국의 선제공격, 영국승
-난징조약체결(불평등조약-광둥무역체제 포기) / 홍콩 영국에 양도, 항구개방(5개),
-관세자주권상실, 영사재판권 인정, 최혜국 대우(미국,프랑스), 조계지 허용
*제2차 중영전쟁(에로호사건빌미 1856~1860): 프랑스 선교사 처형이 원인, 영국승
-베이징조약, 개항의 확대(11개항), 외국군함 내륙하천 진입권 허용,
-여행.통상.포교(토지조매권)의 자유 허용, 노동자 이민허용,
-주룽지 할영(영국), 내지통상권 인하, 세계의 종속적 시장으로 전락
☞ 중화제국 질서의 붕괴: 류큐, 타이완, 베드남, 조선의 운명
*타이완사건: 일본 표류민 살해발생, 류큐 종주권 포기(오키나현으로 일본에 종속)
*청불전쟁: 프랑스와 베트남 종주권으로 인한 분쟁 발생, 베트남종주권상실
*청일전쟁: 일본과 조선 종주권으로 분쟁(시모노세키 조약체결), 조선과 타이완 종주권 상실, 배상금지불
-양무운동 종식의 원인, 중국이 세계의 열강에 분할, 식민지화 될 것에 대한 위기의식 고조
2. 태평천국운동의 경과와 뒤이은 지배층의 개혁시도
*태평천국운동(1851~1864): 배상제회(홍수전-청조타도운동으로 변화), 난징점령
-서구식 기술과 문물도입을 통한 근대화 방안 제시, 민중운동 및 혁명으로 평가
*의화단(1899~1900): 반기독교운동(산둥성-부청멸양),
-의화단 진압을 구실로 8개 연합군 베이징 함락(공개적 약탈), 청의 군대에 진압됨
-러시아의 침탈(만주지역), 신축조약(배상금지불-열강의 군대주둔 허용)
☞지배층의 개혁 시도: 양무, 변법에서 신정까지
*양무운동: 정부주도의 군수산업, 서구식 공업화 추진(전신,철도,해군양성,유학생파견,신식교육관 설립 등)
-관리의 기업통제, 부패와 비능률, 운동추진 주체의 한계성으로 실패, 청일전쟁의 패배로 종식
*변법운동: 서구식 제도개혁(캉유웨이), 광서 황제의 지지, 서태후의 견제로 100일 만에 실패
*신정개혁: 서태후 주도, 서구식 제도개혁 추진, 과거제 폐지, 재정부담 확대로 민중 폭동발생(혁명)
3. 신해혁명(1911년)과 중화민국의 수립과정이 갖은 의의
*신해혁명: 홍중회설립(쑨원), 삼민주의에 의한 공화국수립, 무장폭동의 성공으로 혁명발화
-난징임시정부수립, 임시대총통(쑨원), 임시약법 제정.공포
-위안스카이(청조의 위임)를 대총통(황제 퇴위)으로 하는 중화민국 수립(동아시아 최초)
☞ 군벌통치와 5.4운동
*군벌통치: 지방의 군벌들이 중앙권력을 두고 분쟁(국지전), 민생고 발생, 중화민국 최대의 함흑기
*5.4운동(애국운동): 일본과 맺은 베르사이유 조약에 반발,
-신문화운동(천듀슈 주도의 계몽운동)이 계기가 되어 발생, 백화 사용을 전제
-중국공산당 창당(천듀슈), 국민당 성장(쑨원), 여성해방 논의 확산
4. 제1·2차 국공합작과 항일전쟁의 경과
*국민혁명: 국민당+공산당 합작, 군벌시대 종결
-1차 국공합작: 소련과 코민테른의 지원으로 시작(쑨원), 삼민주의(민족,민권,민생)
-쑨원의 사망, 장제스의 공산당 퇴출로 1차 국공합작 실패,
*항일전쟁(2차 국공합작): 만주사변(일본의 침략), 8년간의 항일전쟁
-일본군의 난징 점령(난징대학살 발생),
-공산당 토벌이 우선인 장제스(연금-시안사건)+국민당(일본에 항쟁-공산당 세력확장),
-일본의 3국(독일,이탈리아)동맹으로 제2차 세계대전(진주만폭격)발화, 중국(연합군)의 승리(1945년)
<제 4장 현대 중국의 전개>
1.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의 분열과정
*마오쩌둥과 장제스의 회담(쌍심협정-내전방지책 발표), 내전발생(농민의 공산당지지)
*타이완으로 옮겨 간 중화민국: 부패척결, 국가통제의 중공업, 일본에서 몰수한 기업의 민영화
*내전에서 패배(장제스 타이완으로 철수), 2.28사건 발생(자치와 기본권 요구-계엄령선포), 유엔활동
*1970년대 이후: 미국과 중화인민공화국 화해로 유엔에서 탈퇴
2. 중화인민공화국(1949년 10월)의 경제정책과 변화과정
*중화인민공화국: 마오쩌둥을 주석으로 수립, 삼반운동과 오반운동, 토지개혁 전국적 확대,
-3반(독직, 낭비, 관료주의)운동 통해 자본주의 영향력 약화 시도.
-1950년 한국동란에 참여: *항미원조(미국에 저항, 조선을 지원) 실시.
-미국의 봉쇄정책으로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 고급합작사의 출현, 상공업의 집단화
-백화제방, 백가쟁명운동->반우파 투쟁의 시발점
☞ 대약진운동과 실패(1958년)
*마오쩌둥 주도: 노동력동원, 철강+에너지+식량의 증산을 목적(용광로, 수리건설운동 전개)
-식량부족 및 자재낭비, 생산의욕저하, 자연재해로 실패 //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이 조정(개방시도)
3.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의 발발, 소위 문혁의 전개과정(1965년~1966년)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 대약진 운동의 실패를 비난하는 문학평론(해서판관)이 도화선, 문예계숙청
-개인숭배의 마오주석어록(린뱌오) 발행, 홍위병조직 // 실패: 홍위병 내부의 폭력발생(해산),
-마오쩌둥 사망, 문혁 4인방 체포, 문혁종결, 미국과의 교류 시작
4. 현대 중국이 전통사회에 비해 변화한 점을 역사적 전개와 연관지어 이해
1)개혁개방, 4대 현대화의 개시(1981년)
*개혁개방정책: 농업,공업,국방, 과학기술 부문의 4대 현대화 건설 목표, 국제시장에 참여
-인민공사의 해체와 향진기업의 육성, 경제활동의 권한 중앙·상급에서 지방·하급으로 개정,
-다양한 기업의 민영화와 경제 특구설치, 연해도시가 개방도시로 설정
*천안문 사건(1989년 6월): 제5의 현대화로 정치민주화 요구, 군에 의한 진압(서방사회의 비난과 경제제재)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아시아와 관계개선, 서방세계와 관계회복,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성장
☞ 오늘날 중국인의 생활
*사회생활의 변화: 변발과 전족폐지, 오락생활의 변화, 가족제도의 변화(핵가족화, 결혼의 자유)
<제 5장 일본사>
1. 일본 고대 국가의 등장과 성격에 대하여 이해
1)조몬(새끼줄 무늬 토기 사용)시대 / 야요이 시대: 한반도와 중국 남부에서 이동, 철제농기구 사용
2)야마토 정권과 고대 국가의 형성-고분시대와 아스카시대
*야마토 정권(3세기 말): 최초의 통일 세력, 오키미(대왕) 중심의 호족 연합정권
*아스카문화: 백제와의 유대, 소가씨의 승리(6세기 중엽), 불교중심의 아스카 문화성장
*다이카개신: 소가씨멸망(을사의 변-나카노오왕자), 중앙집권 강화, 백제와 고구려 유민 유입, 천황지배강화
3)나라.헤이안시대 - 귀족제 사회와 문화의 성장, 천황가에 유리한 토지정책,
2. 가마쿠라 막부와 무로마치 막부를 통해 존 일본 봉건제의 성격
-막부시대(12세기~19세기 후반: 중세)// 메이지 유신(19세기 후반 이후: 근세)
1)가마쿠라 막부
*사무라이: 개별 영주와 용병집단의 무사를 일컬음 // 무사정권의 시대인 막부(12세기말~19세기 후반)
*가마쿠라 막부: 동부의 간토지역으로 영토 확장, 무사에게 토지분배(주종관계 성립)
-멸망: 2회 몽골의 침공(고려와 연합-태풍 때문에 실패), 고다이고 천황이 막부 타도
2)무로마치 막부: 쇼군(고케닌의 주군, 무사 지도자 신분) 전국 통치자로 부상
*내란과 분열의 전국시대: 중앙집권 시도 실패(고다이고 천황), 무로마치 막부 수립
-무사의 자립 세력성장, 오닌의 난 발생 // 촌락공동체 형성(소손)
-농업기술의 발달로 상공업 발달로 교역도시 등장, 다이묘들의 시장 개설 욕구발생(자치도시 등장)
3. 전국시대를 거쳐 등장한 도쿠가와 막부의 성격과 전개과정
1)전국시대: 지역패권을 둘러 싼 분쟁, 1세기 가량 진행,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2회의 조선 침략 실패)-> 도투가와 이에야스 시대로 전개
2)도쿠가와 막부: 막번 체제(다이묘 통제), 에도(도쿄) 소비도시 성립,
-상업유통망 형성으로 대상인(조닌) 등장 /다이묘, 사무라이 중심 사회에서 서민 주도사회로 변모.
-18세기 중엽: 전통기술 산업 쇠퇴/흉년
4. 일본 근대의 전개과정과 제국주의의 발호를 통해 현대 본 일본의 성립과정
1) 쇄국에서 개국으로: 네달란드와 독점 외교, 미국 동인도함대 에도만 진입, 대외교섭권 포기,
미일화친조약, 미일수호통상조약 체결, 막부시대 종결(메이지 정부 수립)
2) 근대의 성립과 전개
*메이지유신과 국민 만들기: 서남부지역의 사무라이가 주도, 급진적 서구화, 중앙집권 정책(독일모델)
-천황의 권한으로 헌법 발표(내각제 추진)
*제국주의 체제: 청일전쟁(배상금 획득), 러일전쟁(한반도와 만주지배권 확립),
-제1차 세계대전 후 산업국가로 성장
-급진 우익과 군부 대두, 해외 침략을 정당화, 베르사이유 워싱턴 체제 붕괴
*중일전쟁:3국 동맹으로 중국과 전쟁, 미국의 경제 제제, 진주만 공격, 태평양전쟁 발발(제2차 세계대전)
-1945년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 일본 항복, 극동군사 재판(전쟁 도발 책임)
-전쟁 책임에 대한 일본인의 역사인식에서 식민지 인식은 경시되고 있다.
<제 2부 유럽과 미국의 역사> <제 6장 고대 지중해세계>
1. 고대 동방문명이 그리스 및 로마 문명과 상호작용해 온 과정
☞오리엔트문명: 인류 최초의 문명(메소포타미아,기원전 4000년경), 그리스 지역의 문화적 발전
-이집트: 나일강의 범람을 대비하는 과정에서 통일왕국 건설, 태양신 중심, 태양력, 기하학 발전
2. 고대 그리스 폴리스에서 추구되었던 정의와 자유의 개념과 후대에 미친 영향
1)폴리스와 고대 그리스문명: 에게문명(선주문명)-> 크레타문명-> 15세기 미케네문명으로 전개
*폴리스: 기원전 1100년경 성립한 전사공동체, 부족연합, 정치·군사적 실권을 장악
-기원전 8세기 폴리스체제를 기반으로 에게 해와 지중해 각지로 진출(식민운동-영토확장)
-수공업의 발전하여 부유한 농민과 상공업자가 출현, 평민들의 정치참여로 귀족정에서 민주정으로 변화
*스파르타: 정복자인 소수의 도리아인들이 지배, 귀족정이면서 스파르타 시민의 입장에서는 철저한 민주정
*아테네: 도리아인에 대항하여 성립된 가장 전형적인 민주정, 해상활동 전개(상공업 발달-빈부격차 심화)
-솔론의 금권정치(재산에 따른 4등분) 실시-> 귀족과 평민의 대립 발생
-토지분배,상공업장려,대규모토목공사,공공제전 실시로 빈민층의 지지 얻어 페이시스트라토스 참주정 수립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참주정: 토지분재, 상공업장려, 토목공사와 공공제전 등의 민중 이익 추구->사후 붕괴
*클레이스테네스 행정개혁단행, 혈연부족 해체->10개의 행정부족으로 구성// 정치참여(폐쇄적)
*페르시아 전쟁: 폴리스 연합으로 참전, 아테네 주도의 델로스 동맹(그리스 패권장악)
*펠로폰네스 전쟁: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대결, 그리스 쇠퇴. // 마케도니아에 멸망
3. 헬레니즘의 문명사적 의미을 파악(알렉산드로의 동방원정과 헬레니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동방 진출, 유럽+아시아+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 건설
-그리스 문화의 오리엔트에 전파(헬레니즘 문명으로 발달) //알렉산더스의 사망으로 분열
4. 로마가 그리스로부터 물려받아 후대의 서양인들에게 남긴 문화적 유산
1)로마공화정의 전개
*라틴족이 새운 폴리스로 출발->이탈리아 반도 통일-> 포에니전쟁으로 카르타고 점령->지중해무역 독점
*신분투쟁: 귀족들과 평등한 권리 획득(2세기에 걸쳐 투쟁), 벌족(새로운 지배계급)
*라티푼디움(대농장): 포에니전쟁으로 인한 농토황폐, 부유층에서 토지매점,
-노예노동으로 목장운영 및 과일, 채소 등의 상업적 작물 재배/프롤레타리우스 발생(생산력 상실한 무산자)
*그라쿠스형제의 개혁 추진-> 귀족들의 반대로 실패 -> 군인 정치가 등장-> 1차 3두 정치(카이사르)
*2차 3두 정치(옥타비아누스)->이집트 정복-> 지중해세계 통일
2)로마제정의 수립과 전개
*로마제정 수립(옥타비아누스), 원로원 복속, 무상분배 실시, 대규모의 공공건물 건설, 200년간의 평화유지
*50년간 26명의 황체가 교체(군인황제-혼란과 쇠퇴 시기) //라티푼디움 해체, 경제악화
*콜로누스제도: 소작인에 분할, 대여 경작하는 제도, 중세 농노의 기원 // 농민폭동, 내란, 게르만족의 침입
*디오클레타아누스(로마제국 4등분, 군사력, 행정력 강화시도) -> 콘스탄티누스(기독교 공인)
*분할통치제: 시민정신 소멸, 동, 서로마의 영구적인 분열초래, 서로마제국 멸망(게르만족의 침입-5세기 말)
3)그리스, 로마의 유산
*그리스 문화의 특징: 오리엔트 선진문화를 인간적, 합리적, 이상주의적인 문화로 발전시켰다.
-철학+ 수학+ 역사 등의 제반 학문체계 수립, 희곡+시+음악과 건축 등 제반 예술분야 성장
*로마의 유산: 그리스문화를 국제화(헬레니즘), 후대에 전달되어 서양문화를 형성
-가족법, 경제법, 시민법 등은 유럽 법체계의 골격 형성 -> 로마의 만민법->자연법사상으로 전개
-기독교의 수용(만민의 형제적유대와 평등 및 보편적공동체로서의 기독교 공화국의 개념 제공-영화 300)
<제 7장 서양 중세의 사회와 문화>
1. 로마 가톨리과 프랑크족의 제휴가 유럽 중세 사회의 출현으로 이어진다는 점
1)게르만족의 대이동과 중세 유럽의 탄생
*게르만 왕국 중 유일하게 존속한 프랑크족->유럽의 기독교 문화권을 수호, 방어하는 데 기여
*서로마제국 계승->게르만문화+로마문화+기독교 신앙이 융합된 중세 유럽 사회와 문화를 형성
*샤를마르텔: 푸아티에 전투(이슬람 세력을 피레네로 몰아냄)
2. 중세 봉건사회의 구조: 주종제, 지방분권제, 장원제
*주종제: 군사· 법률적인 제도(위계질서 및 상하, 주종관계 정립), 토지분배
*지방분권제: 모든 기사는 자신의 봉토 안에서 영주로서 배타적 통치권-> 교황권과 기사층의 쇠퇴(중앙집권)
*장원제(농노제, 영주제): 귀족이 가진 장원으로서 농촌의 자급자족적인 경제단위
*농노: 영주의 직영지를 경작해 주고 부역과 세금을 납부하는 예속인, 가정을 이룰 권리와 촌락의 공동체적 권리를 보유했다.
☞ 중세 사회의 역동성: 상업과 도시의 성장
*10세기 말: 농업기술의 혁신-> 농작물 생산증가->인구증가->개간운동으로 엘베강 동쪽의 동유럽으로 확산
*상업과 도시 형성-> 동방무역(시장확산)
*길드: 성원 상호간의 평등과 상부상조를 목표로 자유경쟁 억제, 생산과정 통제
--> 중세말 경제침체와 사회불안 심화의 요인으로 작용
*장원제 해체: 화폐와 교환 중심의 도시생활과 경제활동의 자유 및 정치적 자치권 획득(농노의 지위향상)
3. 서양 중세 봉건사회의 위계 안에서 가톨릭교회가 차지하는 위치
1)십자군 전쟁(1096년-11세기)
*목적: 셀주크투르크에게 점령된 예루살렘 성지탈환, 동서교회의 통합 및 기독교 세력의 확장 추구
*종교적 명분으로 시작-> 통치자들의 정치적 야심과 상인들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실패
*200년간 지속된 전쟁으로 교황권 실추, 기도교적 열정 위축, 봉건사회 붕괴 촉진->중앙집권체제
*동방세계와의 교류로 문화적 자극과 원거리 무역 확대
2)중세 가톨릭교회의 확립
*기독교 교회는 고대 로마의 가장 중요한 유산 중 하나
*동로마 황제의 우상숭배 금지, 동로마교회(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로 분열
--> 로마 가톨릭교회 중세 유럽의 정체성 형성을 위한 핵심을 제공
*서로마 제국 부활(프랑크족 샤를마뉴-황제로 즉위),
3) 중세 가톨릭교회의 성장과 부패
*서임권투쟁 발생(11세기): 교회의 세속권 확대로 인한 부패(성직자의 혼인, 성직 매매 등)
--> 성직임명권을 둘러싸고 로마교황과 군주가 대립(카노사의 굴욕)
4)교회의 대분열
*1309년 프랑스 국왕이 교황청을 프랑스(바빌론 유수)로 옮겨 통제로 로마에서도 교황선출(분열)
*교황권의 실추, 성직자의 타락과 부패심화->종교개혁 제기(위클리프와 후스)/14세기 민중적 신비주의 출현
4. 영주와 농민, 그리고 도시민 사이의 상호작용
1)중세의 문화
*중세 문화 주도(성직자): 7성사를 바탕으로 하여 중세 유럽의 생활을 관장함
*기사도 정신 강화 // 미술과 건축에도 종교적 영향(로마네스코 양식, 고딕 양식)
2)중세의 조락과 새로운 시대의 등장
*사회 갈등의 심화: 농민반란과 도시 직인의 대립, 흑사병으로 인구 감소
-영주들의 영지확장 봉건전쟁 빈발->영국과 프랑스 전쟁(백년전쟁), 영국기사들의 장미전쟁
*근대국가의 출현: 봉건 귀족의 몰락으로 프랑스와 영국의 중앙집권강화,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축출하는 재정복 운동으로 통일왕국 출현(에스파니아와 포트투갈)
-독일과 이탈리아: 지방분권적 세력 유지
-대상인과 은행가들이 길드의 규제에서 벗어나 합리적 기업방식 체택(지본주의 요소 도입)
<제 8장 유럽 국가체제의 수립>
1. 16~16세기 말 유럽인들의 해상 탐험 동기
1)유럽인들의 해상탐험과 유럽의 팽창
*15세기 말 지리상 발견, 서유럽이 지리적·경제적 팽창하면서 근대사 주도
*1453년 오스만 투르크의 콘스탄티노플 점령으로 무역로 통제를 계기로 지중해 이외의 항로 모색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동양에 대한 유럽인들의 모험심을 자극,
-새로운 항로 탐색을 위한 기술과 국가체제의 강화로 국가적 지원이 가능.
2)에스파니아와 포르투갈의 활약
*중앙집권화에 성공, 지중해 무역에서 소외되었던 에스파니아와 포르투갈이 선두로 무역로 개척
*포르투갈: 1486년 바르틀로메우 디아스 아프리카 남단인 희망봉, 1498년 바스코 다 가마 인도항로 개척
-인도와 중국(브라질, 아시아)동방무역의 실권을 장악, 경제적 이익 추구
*에스파니아: 1492년 콜롬버스 서인도제도에 도착, 아메리카 대륙 진출, 1519년 마젤란 필리핀 도착
-광범위한 식민제국 건설, 엔코미엔다의 제도 도입, 경제적 지원으로 인한 타격
2. 유럽의 지리적 팽창이 갖는 세계사적 의미
1) 상업혁명: 경제활동의 증대와 촉진, 식민제국 및 아시아와의 유리한 거래
-담배,커피,차,설탕,감자,옥수수,목면,아편 등의 새로운 물품이 싼값으로 풍부하게 유입,
*경제활동 방향과 무대의 변화: 유럽 경제 중심 이동->대서양 연안의 중앙집권적인 국가로 이동
2) 상업활동의 가속화로 가격혁명 발생: 은과 금의 유입으로 화폐량 증가, 물가 급상승(16세기전후 3배
3) 중상주의: 상업 중심의 새로운 경제정책으로 국가별 체택(국내의 부 축적에 의한 국가권력의 강화)
-유럽국가들건설의 에데올로기로 작용
-중금주의(금)와 무역차액주의를 지향, 중공주의(수출지향), 식민지 정책(원료공급지 및 해외시장 확보)
-초기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장점), 권력유착과 특권과 독점, 규제로 인한 발전의 한계(단점)
☞부르주아의 성장과 사회의 변화
*부르주아 집단의 성장: 상공업에 종사하는 자본가 집단의 등장, 국가의 특혜 속에 빠르게 부를 축적
*물가인상과 곡가의 인상으로 경제적 난관 발생(도시의 서민, 농민), 착취로 인한 농민폭동과 도시폭동 빈발
-국왕의 힘이 나약해지면서 지배집단의 내부의 갈등에 의하여 절대주의 위기 발생
3. 서유럽과 동유럽의 절대주의 체제 비교
1) 서유럽의 절대주의: 동유럽보다 일찍 수립, 유지 강화
*절대주의적인 왕정(16~17세기): 상비군(용병), 관료제(부르주아 위주), 징세제도(전국적 실시), 왕권신수설
2) 동유럽의 절대주의: 엘베강 동쪽에 위치, 관리와 군인(귀족), 미약한 부르주아, 부자유한 농노로 구성
-부루주아 미성장과 봉건영주의 세력 강화로 절대주의 체제 수립의 난항, 농노제 강화(재판농노제)
-봉건적 성격(군주와 귀족의 타협)이 강한 동유럽식 절대주의 체제 등장
-산업화 지연, 중상층의 미성장으로 정치, 경제적인 근대화(자유화, 민주화)에 순조롭지 못했다.
3) 유럽 각국의 절대주의
*에스파니아, 포르투갈: 중앙집권화 성공, 신대륙의 발견으로 국제 정치와 성업에서 우위 확보
-비능률적인 체제와 사치, 전쟁으로 산업기반의 낙후
*네덜란드: 에스파니아의 식민지(16세기 독립), 모직물과 중개무역으로 자본주의 성장(영국에 패배)
*프랑스: 루이14세의 절대주의 체제, 중상주의 정책으로 국부와 국력 신장, 유럽 중심국가로 성장
-사치품 생산위주, 소농위주의 농업 위축, 종교분쟁과 대외 전쟁으로 재정상태 악화, 프랑스혁명발생
*영국: 튜더왕조의 절대왕정 수립->종교개혁(핸리8세)->엘리자베스1세 전성기
-인클로저 및 목양으로 성장한 지주-젠트리 계층 의회 진출,
-스튜어트 왕실의 전제정치 시도로 젠트리계층과 대립으로 청교도혁명 발생, 명예혁명으로 입헌군주제 수립
-의회민주주의 발전과 중상주의 정책으로 유럽 경제의 주도권 장악 산업혁명의 도화선이 됨
*독일: 종교개혁으로 장기간의 분쟁과 지방분권적인 할거주의, 경제 중심지 이동으로 인한 쇠퇴
-융커 계층의 주도로 군국주의 성격의 절대주의 성립 이후 19세기 프로이센의 독일 통일
*러시아: 유럽적인 근대국가 지향(표트르대제:17~18세기초), 농노제 강화, 군대 양성,
-강력한 황제전제체제 추구, 산업화에 낙후되면서 20세기 초 사회주의 혁명 발생
4. 16~17세기 유럽 각국의 양상에 대한 설명
1) 바로크 예술: 17세기 궁정문화와 르네상스의 결합
*프랑스: 문화중심지, 바로크고전주의 양식 출현(베르사이유 궁전)
*네덜란드: 시민적 특징이 강한 자연주의 요소
-램브란트와 할스: 예술 프롤레타리아 //루벤스:궁정의 후원, 고전주의적 미술제작으로 부와 명성
2)합리적 인식의 발전: 실험과 관찰을 통한 과학혁명으로 자연과학 발전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 철학적 전통 형성
-이탈리아 마키아벨리, 프랑스의 보댕: 정치사상으로 발전
-영국의 홉스와 로크의 자연법사상과 계약설(미국혁명, 프랑스혁명에 영향)
-네덜란드의 그티우스(각국의 주권 보장 및 국제법의 필요성 촉구)
3)민중문화의 쇠퇴와 변화:문화적 통일과 견실한 기독교인의 등장, 가족의 도덕적 기능중시로 민중문화 쇠퇴
☞근대적 세계체제 확립의 전주곡: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및 아시아 일부 지역: 16세기 유럽인들의 진출 및 점거 대상(19세기 식민지화)
-제 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지역 제 3세계로 형성: 현대 국제질서의 변수로 작용
<제10장 프랑스 혁명의 이해>
1. 프랑스혁명을 낳은 구체제의 모순
1)구체제의 모순: 3개 신분으로 나뉜 프랑스의 신분제와 그에 따른 불평등 구조
*1신분 성직자(10만 명): 최대지주, 전 국토의 10% 소유(고위/하급 성직자 간의 차별 존재)
*2신분 귀족(40만 명): 전 국토의 20% 소유(전통귀족/신흥(법복)귀족의 차별화)
-루이 14세 사망 후 국왕권이 약화되자 양 귀족 집단은 파리 고등법원으로 집결
-귀족 반동으로 부르주아의 신분상승 차단(봉건적 자치권 회복)
*3신분: 앞의 두 계급 제외한 프랑스인 전체
-상층부: 부르주아지 / 도시 제3신분: 도시의 상퀼로트(중세 도시장인의 후예로 편차가 크다)
-농촌 제3신분: 농민, 부유한 자영농, 영세한 자영농, 소작농, 농업노동자 등 구분복잡
-상퀼로트는 과도한 세금과 빵 값 폭등에 고통.
-1780년대의 흉작. 빈농들 비적 떼로 돌변. 신분內-신분間 갈등 심화.
2)왕실의 재정 위기
*루이15세: 산업과 농업의 낙후, 대외전쟁과 식민지 경쟁에서 패배->개정결손
*영국 견제위한 루이16세의 미국지원-> 재정악화원인-> 절대주의개혁 시도 실패
3)삼부회 소집과 결렬
- 1신분(294인)/2신분(270인)/3신분(578인): 의견일치 실패(*1인1표? 1원1표?)
- 국민의회 결성(제 3신분): 테니스 코트의 선언->민중동요
2. 혁명의 전개과정과 여러 당파의 성격 및 활동에 대해 설명
1) 민중의 동원: 자치 선포, 국민방위대 조직, 바스티유감옥 습격 / 농촌 7~8월 사이 대공포만연
-삼부회 소집은 도시시민과 농민들의 정치 참여의식을 자극
2)군주정과 공화정을 둘러싼 논쟁
-봉건제 폐지선언과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혁명이념 제시, 농민지지와 혁명의 주도권 확보
-결과: 부유한 농민에게 혜택, 구체제의 붕괴와 새로운 질서를 제시한 점에 의미가 있다.
* 국민의회의 개혁: 교회토지 국유화->성직자민사기본법 제정(공무원으로 전락), 시민선서 요구->
->내국관세와 통행세 폐기, 사법구역과 행정구역 정리->고등법원 폐지/
*10월폭동: 1789년 10월 물가고와 식량부족으로 여성주도로 일어난 폭동 / 프랑스의 헌법 제정 후 해산
3)공화정의 수립
*루이 16세 체포, 국민의회에 의하여 유산계급에 입각한 입헌군주제 수립, 국민의회 분열
-푀양파: 귀족과 상층부루주아로 구성, 입헌군주제와 자유경제를 추구 / 지롱트파, 자코뱅파: 공화정을 추구
*혁명전쟁: 시위대 튈르리궁 기습, 루이 16세의 왕정을 정지
-발미전투승리(프로이센 격퇴), 국민공회 시작, 프랑스 제1 공화정 수립
4)자코뱅의 독재의 확립
*루이16세의 처형으로 공화정 분열:
-중산층 부루주아지 기반을 둔 지코뱅파 / 상층부루주아지 기반을 둔 지롱드파 분열
*자코뱅파 권력 장악: 도시 상퀼르트의지지, 민중의 국민공회 습격, 지롱드파 숙청
-93년 헌법: 보통선거권, 노동권과 생존권 등을 규정한 민주적 헌법-> 평화시까지 실시보류
-봉건제의 무상폐지 선언, 농촌공동체 약화-> 농촌개인주의 강화
*공포정치 시작: 영국의 툴롱 함락으로 민중의 국민공회 습격
-로베스피에르(덕의 공화국 건설 추구): 당통+ 관용파 연합전선 구축-> 에베르파와 격앙파 제거
-좌파: 에베르파와 격앙파(비기독교화: 성직자 처형과 환속, 결혼 강행, 교회 패쇄와 파괴 등)
-우파: 당통(재정적 부패와 안락한 삶을 추구)과 관용파
5)혁명의 쇠퇴와 종식
*국민공회의 온건파 부루주아 의원들의 테르미도르의 반동으로 로베스피에르 단두대에서 사형.
-1795년 유산계급에 의한 총재 정부(군대에 의존) 출범.
-총재정부는 전쟁에 따른 경제난과 좌우파의 갈등으로 권력의 공백기 초래.
*혁명군 지도자 나폴레옹이 난세영웅으로 등장. 1799 쿠데타로 통령 정부수립.
-나폴레옹: 혁명의 성과를 수용해 시민계급과 재산권, 행정제도 확립으로 프랑스사회의 제도적 틀을 마련
3. 프랑스혁명에 대한 정통파 해석과 수정주의 해석 비교
1)정통파의 해석(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해석): 반봉건적, 반귀족적인 부루주아혁명
-자유, 평등, 형제애의 이념으로 봉건적인 절대주의 구체제를 타도하려던 부르주아 혁명이라고 규정
2)수정주의 해석(정치를 우선함): 정치혁명으로 축소, 유산계급의 혁명이며 정치혁명에 불과하다고 해석
-왕정 폐지 이후의 사태는 우발적이고 부수적인 것으로 파악
4. 프랑스혁명이 인류에게 남긴 과제
*혁명의 역사적 유산: 인간의 제반 자유와 권리를 증진, 자본주의적인 경제활동을 촉진
-관세장벽을 철폐하여 국내 경제통합의 범위 확장,
-신분체 철폐하여 법적으로 평등한 사회구조로 전환(투표의 권리)
-사회,경제적 평등의 개념은 서양의 정치적인 사유에 사회주의 흐름을 제공
-민중의 선택이 혁명의 진행에 주요한 변수로 작용
<제 10장 19세기 시민사회의 전개>
1. 산업화의 결과와 산업사회의 문제점
1)유럽과 미국의 산업화: 18세기 후반 영국을 중심으로 서유럽에서 산업혁명 발생
-기계의 발명과 기술의 혁신으로 생산력 증대, 이로 인한 정치·사회·경제적 구조변화
*영국: 해상진출(해외시장 확보), 농업생산성의 혁신(인구증가), 자본가집단 형성, 국내정치적 안정
-면직물의 수요급증, 방적기와 방직기 발명,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사용,
*유럽대륙(영국의 기계와 기술에 의존하여 모직물산업에서 목면산업으로 전환)
-벨기에(철과 석탄이용, 제 2의 산업국으로 성장) //네덜란드 산업화에 낙후, 벨기에에 투자
*프랑스: 사치품과 수공업 위주의 생산형태로 점진적 산업화, 노동자 집단은 정치세력으로 결집
*독일: 1871년 통일 이후 비역적인 산업화를 이룸, 독점으로 인하여 사회갈등 발생
*러시아: 1890년 관료의 주도로 산업화 진행, 제국주의 전쟁과 사회주의 혁명 발생
*미국: 18세기 영국으로부터 독립(경제적 종속 유지), 남북전쟁 이후 국가적 단합으로 산업화 진행
-광대한 영토와 막대한 자원, 농공업과 교통수단의 발전으로 비약적 발전
☞산업혁명의 의의: 지리, 경제적 팽창 이후 유럽이 쌓아 온 정치·사회경제·정신적 성과의 복합적 산물,
-세계적으로 확산, 농업혁명 이후 가장 큰 영향
-풍요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한편 자본가와 임금노동자의 양대 계급 형성
2. 19세기 제반 사상경향을 계급적 기반과 연결지어 설명
1)19세기 제반 이데올로기의 추이
☞보수주의: 프랑스의 계몽사상에 대한 반발, 전통·역사·공동체 중시, 에드먼드 버크
-빈체제 성립 이후 지배적 경향으로 19세기 유럽에 주요한 영향
☞자유주의: 자유·평등·개인의 가치 중요시하는 이념,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로 구분
-존로크와 프랑스 계몽사상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갈등: 부르주아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며 정치적 자유주의에 인색
☞낭만주의: 바이런, 19세기 유럽문화생활지배(계몽주의,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동), 민중과 민중문화중시
☞민족주의: 프랑스혁명에서 주권을 소유한 정치적인 실체로 처음 등장(민중),
-독일: 나폴레옹의 침입, 정치적 민족주의로 발전(민족공동체의 정신 구현)
-이탈리아와 마자르족의 헝가리, 폴란드 등 슬라브 소수민족을 자극
-국수적이고 성격으로 변화하면서 와해-> 침략전쟁의 제국주의에 편향됨
☞사회주의: 19세기 산업화의 모순 극복 시도, 1830년과 1948년의 혁명으로 인해 사상->현실적으로 진행
*마르크스와 앵겔스: 당대의 사유를 종합하여 과학적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제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망을 제시, 노동자의 단결 촉구로 제1차 인터내셔널 조직(마르크스)
-러시아, 동유럽 사회주의 노선 체택
3. 빈체제, 2월 혁명, 7월 혁명의 전개과정과 의의
1)빈체제(1815년): 절대주의 시대 교체시도(유럽협조체제), 혁명정신과 민족주의 정신 척결로 탄압정책 동반
-자유주의, 민족주의 운동지속 // 그리스 독립운동과 먼로독트린으로 와해
2)7월 혁명(1830년): 빈체제의 결정적 붕괴요인, 유럽 전역으로 확산,
-사회, 경제적 후신성과 민중(농민)외면으로 쇠퇴
3)2월 혁명: 자유와 민족의 독립을 추구했던 유럽 전체의 봉기
-흉작, 재정적 위기, 실업 등의 사회불안과 선거권의 확대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기폭제(프랑스)
-자유주의 개혁을 통한 민족주의 국가 수립실패-> 점진적 개혁으로 자유주의 및 민족주의 제도화
☞각국의 역사 전개(19세기)
*영국: 식민지 경쟁에서 승리, 산업혁명을 통한 경제·사회구조의 변화,
-7월 혁명으로 선거법 개조, 의회정치 확립, 산업자본가 참정권 획득, 자유방임 경제구조로 발전
-차티스크운동: 노동자들의 인민헌장, 참정권 확대와 사회보장제도의 가이드라인으로 변화
*프랑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정착, 7월 혁명으로 복고왕정 붕괴,
-소수의 부르주아에 의한 입헌군주제와 강화 노동자 착취로 2월 혁명 발생
-제2공화정: 노동권보장, 국립작업장 도입, 성인남성의 보통선거권 보장
-쿠데타로 제2제정수립(나폴레옹 3세)->보블전쟁의 패배로 몰락->파리코뮌수립(정부진압)->제3공화정수립
*독일: 프로이센의 주도로 통일, 2월 혁명으로 입헌군주제 도입, 빌헤름 4세 황제 추대 프로이센 반대
-비스마르크 주도로 무력 통일
*이탈리아: 마치니의 민족주의 운동좌절
-샤르데나 왕국의 카부르와 붉은 셔츠단이 이끈 공화주의적 민족주의자 가르발디의 주도하에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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