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촌에 눈이 오니 돌길이 묻혔어라 시비(柴扉)를 열지 마라 날 찾을 이 뉘 있으리 밤중의 일편명월(一片明月)이 내 벗인가 하노라"
시비(사립문)를 열지 말라던 풍류가객의 길. 조선시대 선비처럼 한껏 풍류를 즐긴다. 그 옛날 선비들은 세상 시름을 잊고자 물 맑고 경치 좋은 계곡에 정자를 지어 놀았다. 함양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자연을 벗 삼아 노년을 보내던 곳이다. ‘좌안동 우함양’이라는 말이 있듯 영남 사림의 큰 축을 이뤘던 함양의 양반은 저마다 이곳에 멋스러운 정자를 세웠다. 출셋길을 버리고 세속마저 외면하고 풍류를 읊으며 시를 지었다. 함양은 양반의 도시 안동과 비교하면 덜 알려진 편이지만, 정자의 수만 150개가 넘고 최근에 지은 것까지 합하면 모두 195개의 정자가 있다. 남덕유산 화림계곡에 자리 잡은 선비문화탐방로는 계류를 따라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경모정, 람천정 등 여러 개의 정자를 품고 있다. 이름 하여 ‘팔정팔담’이다. 맑은 계곡물이 기암괴석을 굽이굽이 돌며 작은 담을 만들기에 여덟 개의 정자가 여덟 개의 담 옆에 있다는 뜻이다.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농월정은 조선 후기에 세워졌고, 경모정과 람천정은 최근에 지은 정자다. 하지만 지금은 여덟 개의 정자를 다 볼 수가 없다. 2003년에 농월정이 불타버렸기 때문이다. 함양 선비문화탐방로는 거연정에서 시작한다. 화림재 전시서가 머물렀던 곳이다. 전시서는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자연의 품으로 숨어든 72명의 선비 중 1명이다. 계곡 가운데 바위에 세워져 있어 ‘화림교’라는 구름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니 짙푸른 계곡물과 바위를 뚫고 솟은 거목, 기묘하게 놓인 괴석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자에 다다르기도 전에 벌써 마음을 빼앗긴다. 그야말로 우리 선조가 꽃피운 정자문화의 진수를 맛보는 느낌이다. 계곡의 넓은 바위에 고풍스러운 정자가 놓여 있고 그 뒤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반석 위로 흐르는 옥류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무릉도원을 이룬다. 화림계곡을 흐르는 물은 색깔이 마치 푸른 구슬 같아서 ‘옥류’라 부른다더니 과연 그렇다. 바위 위에서 수백 년 동안 모진 풍파를 견뎌낸 거연정의 자태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청청한 계곡물과 오랜 세월을 견딘 바위, 우거진 나무로 둘러싸인 모습에 감탄이 터진다. 거연정의 누대에 올랐다. 정자에 앉아 바람에 땀을 식히고 있자니 계곡과 정자의 멋들어진 조화에 노래 한 곡조가 절로 나올 것 같다. 술 한 잔과 노래 한 가락, 이것이 과연 풍류겠다. 화림계곡의 정자는 아무나 들러 쉬었다 갈 수 있다.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표지가 어디에도 없다. ‘자연에 내가 거하고 내가 자연에 거하니’ 길손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세상일을 잊게 한다. 누구나 선비의 마음이 된다.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다 바로 아래에 있는 군자정으로 발길을 옮긴다. 멀찍이 떨어져 거연정을 바라보니 기암계곡 속 풍광이 훌륭하다. 거연정에서 관망하던 풍경도 좋지만 군자정으로 가는 길에서 거연정을 바라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아니 어쩌면 훨씬 더 마음에 들지도 모른다.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보는 느낌이다. 그 장관을 눈에 담고 싶어 오래도록 서성인다. 거연정도 그렇지만 딱 이쯤에서 쉬어 가면 좋겠다 싶은 산 깊고 물 맑은 곳에는 영락없이 정자가 들어서 있다. 150m 아래에 있는 군자정이다. 군자정은 선비 전세걸이 세운 정자다. 바람이 불어오는 바람길을 어떻게 알고 정자를 지은 것인지, 주변의 모든 바람이 이곳으로 불어오는 것 같은 기분이다. 한여름에도 부채가 따로 필요 없겠다. 군자정은 조선 성리학의 대가 일두 정여창이 벗들을 불러 담소를 나누던 곳이다. 정여창은 조선 최고의 유학자를 칭하는 ‘동방 5현’의 한 사람으로, 후학들에게 큰 존경을 받았다. 이기론을 꽃피우고 지행일치를 강조한 학자다. 무오사화에 휘말려 죽는 것으로 모자라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를 당한 비극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군자정은 그런 정여창을 닮았다. 거연정과 비교해 단출하지만 계곡에서 잠시 비껴 너른 바위에 터를 잡은 것이 멋스러운 정자다. 정여창처럼 옹골진 기품이 서려 있다. 하나 더. 자세히 보니 바위에 구멍을 내거나 깎은 게 아니라 바위 모양에 맞춰 나무기둥을 다듬고 그 위에 고스란히 정자를 얹었다. 울퉁불퉁한 바위 바닥을 인위적으로 평평하게 만들지 않고 높낮이를 맞춘 것이다. 그런데도 정자의 무게가 기둥과 바위를 한 몸으로 만들어 비바람에도 끄떡없다. 우리 선조의 뛰어난 건축기술에 그저 놀라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바위 하나하나마다 애써 기둥을 세운 마음이 정감 어리다. 자연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지키려는 선비들의 지혜일까.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한’ 것. 자연을 닮고자 했던 그 마음이 고스란히 보인다. 선비문화탐방로에서 만나는 정자들은 조선시대의 유교문화와 선비정신을 그대로 전한다. 거연정에서 동호정에 이르는 길은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코스다. 300~400년이나 된 울창한 나무 덕에 걷기에 참 좋다. 위로 쭉 뻗은 소나무가 시원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계곡의 품이 참 깊다. 흙길을 걷는 맛도 좋다. 세상이 아니라 자연의 품을 택했던 옛 선현의 마음이 그대로 놓여 있다. 선비라도 된 양 고색창연한 숲길을 걷노라면 굽이치는 계곡과 오래된 툇마루가 어우러져 건조했던 마음에 생기가 되살아난다. 숲길을 계속 걸으니 어느덧 다곡마을을 지나 동호정에 다다른다. 너른 바위들이 엎드려 있는 큰 계곡을 하나 건너자 동호정이 보인다. 겹처마에 팔각지붕 형식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다.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로 피난시킨 동호 장만리가 이곳에 유영했고 후손들이 정자를 세워 동호정이라 이름 붙였다 한다. 동호정은 계곡물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는 재미도 선사한다. 징검다리를 지나 동호정 앞에 서면 아래로는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흐르고, 옆에는 500명이 너끈하게 앉는다는 ‘차일암’이라는 너럭바위가 있다. 해를 가릴 정도로 넓은 바위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 옛날 김차흡은 “큰 바위에 악기를 백 개나 매달 수 있겠구나”라고 말했다. 차일암에 앉아 물소리를 듣자니 그 소리가 악기 소리와 다르지 않다. 세파에 시달리던 지친 마음이 사라진다. 옛 선비들이 이 넓은 바위에서 무엇을 했겠는가. 술을 마시고 거문고나 가야금 연주를 들으며 풍월을 읊었을 것이다. 착각일지라도 물소리가 음악 소리처럼 들린 이유가 있었다. 이토록 유려한 풍경을 두고 정자 하나 짓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인지 동호정은 화림계곡에서 가장 크고 수려한 자태를 뽐낸다. 정자를 받치고 있는 것은 마름질하지 않은 나무기둥이다. 누대에 오르는 계단도 나무를 잘라 만든 모양이 그대로 보인다. 부러 꾸미거나 단장하지 않았다. 투박함이 살아 있다. 그런데도 화려해 보이는 것은 단청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유독 동호정에만 단청을 만들었다. 동호정에서 노니다가 앞에 보이는 도로로 5~7분 정도 걷다 보면 호성교가 나온다. 이를 건너 내려가면 숲길이 다시 이어진다. 경모정으로 가는 길이다. 굽이굽이마다 선비의 숨결이 느껴진다. 경모정에 들렀다 가는 길부터는 잘 닦인 산책로다. 중간 중간 벤치가 있고 갓길에는 나무데크도 보인다. 시름을 잊은 채 걷다 보면 람천정이 가까워온다. 이곳을 둘러보고 계곡의 돌다리를 건너니 길의 끝인 황암사가 나온다. 정유재란 때 황석산성을 지키기 위해 왜적과 싸우다 죽은 곽준, 조종도 등 호국선열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산성은 고려 때 지어졌는데, 계속 방치돼 있다가 정유년에 안의현감 곽준이 성을 정비하고 왜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끝내 산화했던 곳이다. 황석산성 전투에서 곽준이 장렬하게 전사하자 그 죽음을 따라 아들과 딸, 사위까지 목숨을 바쳤다. 황암사는 이렇듯 호국선열의 충과 의가 서려 있는 곳이다. 나라를 빼앗긴 일제 강점기에는 이런 사실이 은폐되었다가 지역 주민의 노력으로 성역화가 이루어졌다. 이 나라 비운의 역사다. 원래 이 길의 끝은 황암사가 아니었다. 길의 끝에는 농월정이 있었는데 소실되어 지금은 터만 남았다. ‘월연암’이라는 너럭바위가 그것이다. 바위에 한자가 새겨져 있는데, ‘지족당이 지팡이 짚고 신을 끌던 곳’이라는 뜻이란다. 학자 지족당 박명부가 영창대군의 죽음과 인목대비의 유배에 대해 부당함을 지목하다가 고향 함양에 유배당했을 때 지은 정자라 그런 모양이다. 화림계곡을 대표하는 정자였기에 화재로 인한 유실이 더욱 안타깝다. 달을 희롱하는 정자라는 농월정은 ‘밤중의 일편명월이 내 벗인가 하노라’라는 시를 읊기에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당장 농월정을 볼 수 없다 한들 어떠랴. 풍류는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야 누릴 수 있다. 그제야 비로소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가 들린다. 일편명월의 시를 읊으면 바로 그곳이 농월정이다. 자연과 하나가 되고자 했던 조선시대 선비들의 여유와 풍류가 그러했을 것이다. 풍류가객이 되어 돌아간다.
코스
함양 선비문화탐방로가 있는 화림동계곡은 과거 보러 떠나는 영남 유생이 덕유산 60령을 넘기 전 지나던 길목으로 예쁜 정자와 시원한 너럭바위가 많았다. 길을 걷다 보면 그 옛날 선비들이 지나쳤던 숲과 계곡, 정자의 자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탐방로는 거연정에서 농월정 터까지 6.2km 정도 되는 숲길이다. 길 마지막에 있었던 농월정은 2003년에 불타서 지금은 ‘월연암’이라는 바위가 터로만 남아 있다. 탐방객은 거연정, 군자정을 지나 다곡마을을 거쳐 동호정, 경모정, 람천정, 황암사, 농월정 국민관광지(농월정 터)의 순으로 걷는다. 코스마다 나무데크를 설치하는 등 하나의 길로 정비를 잘 해놓았기 때문에 길 찾는 데 어렵지 않다. 가파르지 않은 평탄한 길이어서 2시간 정도면 누구나 걸을 수 있다. 계곡물이 불어나는 장마철에는 구간별로 통제를 하기 때문에 미리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 농월정 국민관광지까지 걸은 후에는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 된다. 거연정으로 가는 버스와 함양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있다. 목적지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