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문화재단에서 수강생을 모집했다. 유월부터 팔월까지 여름밤학 프로그램을 개설하였다. 나는 한달음에 달려갔다. '야생화 그리기' 를 신청하였다. 순천에 이사하고나서 삼년 동안 순천대 평생교육원에서 한문을 들었고 작년에는 여성문화회관에서 동화구연을 해서 자격증도 땄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어느것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폐강되어 수강료만 돌려받았다. 그래서 올해는 평소 좋아하고 공부를 해 왔던 장자 철학을 인터넷으로 듣고, 본격적으로 그림 그리기에 들어갔다.
그림에 대한 나의 역사는 길다. 중학교 1학년 때 소 그림으로 명성을 날리신 서봉한 화가가 미술선생님이셨다. 어린이 청소년 그림을 대만에 보내면 잘된 것을 뽑아 시상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접수비로 만오천원이 필요하단다. 납부금도 제때에 내지 못하던 내게 만오천원이라니~ 나는 그림이 좋다는 미술선생님의 종용에 죄송하다는 말씀만으로 아쉬움을 표했다. 그 이후 그림은 나에게 로망에 지나지 않았다. 돈이 안 드는 시에 몰입하였고, 대학 졸업 때까지 거의 한 해에 한 번은 시화전으로 그림을 그려 그림에 대한 엶망을 달래였다.
그림을 다시 손에 댄 것은 결혼을 하고 아들이 미술학원에 다니고 부터다. 마흔 이쪽저쪽이다. 미술학원에서 요구하는 스케치 밑작업으로 데셍을 하는데 나도 끼었다. 문득 고등학교 다닐 때 감창구 미술선생닝께서 내가 그린 아그리파를 전시하시고 모범 작품으로 보여주신 게 생각났다. 그러나 애 키우고 교사로서 학교 생활하느라 계속 이어가지 못 하고 말았다.
내가 아프고 나서 집에 있으면서 캘리그래피를 알아 스케치북으로 작품을 시작했다. 서서히 집에 있는 꽃을그리고 식구들이 놀라워하였다. 아들은 화방에서 파는 전문가용 스케치북, 갖가지 색연필을 주문해 주었다. 나는 왼 쪽 손으로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연필도 아들과 남편이 미리 깎아 주었고 어렵게 어렵게 그렸으나 정말 좋았고 행복했다. 그런데 작년 여름방학 때 순천대 평생교육원에서 특강을 했다. 캘리그래피였다. 다른 미술 강좌도 있었으나 한 쪽으로만 걷고 쓰니 삼층까지 올라가기도 힘들었고, 야외로 가거나 밤에 참석하기 힘들어서 그나마 그 강죄만은 딱이었다. 그 때 처음으로 내가 돈 내고 그림을 배운다고 나선 것이다. 나는 정말 그 시간을 아꺼 가면서 재밌게 배웠다. 그때 작품에 낙관도 찍어 보았고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다. 김경아 선생님이셨다.
나는 서서히 그림의 세계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사람들에게 작품을 보여주곤 한다. 이젤, 파레트, 캔버스도 사고, 한국화, 수채화, 아크릴 물감이며 파스텔과 물감에 맞는 붓까지 구비하였다. 지금은 꽃만 그리다가 무궁무진한 소재에 추상화까지 시도하면서 주제와 표현에 집중하고 있다. 매일 하루에 한 두개는 꼭 그려야 속이 풀린다. 가만히 누워있으면 소재가 떠오르고 길을 걸을 때나 티비에서 좋은 풍경이 나오면 눈에 넣는다. 사람들은 시 쓰는 것보다 그림에 소질이 크다고 부추기고 머지않아 전시회도 가능할 것 같다고 한다.
시도 마찬가지지만 그림도 자세히 보기, 관찰이 관건이다. 그리고 초보에게는 사실적인 표현이 우선인 듯 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실적으로 그리려고 애썼다. 물론 지금까지는 정확히 그리려고 무척 힘겨운 작업을 한다.
야생화 그리기에는 열 여섯 명의 묵직한 여성들이 자리를 했다. 스케치북에 색연필, 물감, 연필과 지우개를 가지고 단단히 무장하였다. 나는 첫 날이라 준비물에 대한 언급이 없어 볼펜만 들고 갔다. 다들 이삼 년은 족히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었고 집에서만 그려본 사람은 나와 두셋. 그들의 작품을 보니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모정 이윤숙 선생님이셨다. 삼십년 경력의 화가 이셨다. 얼핏 들어본 이름이었다. 야생화에 대한 이름의 유래나 특징까지 꼼꼼하게 알려주시고 그림을 그릴 때 즐기면서 하기를 당부하셨다. 편하게 그리라고~ 나는 옆 사람에게 스케치할 종이와 연필을 빌려 예전부터 그리려던 코스모스를 그렸다. 시간이 남아 선생님이 사진 찍어 올리신 금난초를 그렸다. 오전 열시에서 열 두 시까지 시간이 엄청 빠르게 지나갔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색칠하기 시작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나만의 그림이다. 장자가 말한 작은 물고기가 구만리를 나는 대붕이 될 때까지 많은 세월 동안 두터운 덕을 쌓고 기를 모으는 것, 그림에 인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정말 소중한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