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이사야 14장24~32절
제목 : 곤고한 자들의 피난처
앗수르는 유다에게 괴로운 멍에이자 무거운 짐이었지만 그것은 곧 풀어질 것입니다.
또 많은 블레셋 자손이 기근으로 죽을 것이며, 남은 백성은 적군의 칼날에 죽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온을 세우시고, 고통당하는 자기 백성을 안전하게 피신시켜주실 것입니다.
1. 앗수르를 향한 심판(24~27절)
1) 하나님의 경영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24절)
“[24]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 직역하면 '만일 내가(임로) 생각한 대로 되지 않았더라면...'입니다.
단축형의 맹세에 대하여는 5:9을 참조하라.
이 같은 맹세 형식에서 여호와의 신실하심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신자들의 믿음의 확실성이 근거합니다.
2) 앗수르를 파괴하게 하겠다고 합니다(25절)
“[25] 내가 앗수르를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그것을 짓밟으리니 그 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 ”
내가 앗수르를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그것을 짓밟으리니. - 하나님의 계획은 앗수르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 파괴는 '나의 땅'(=나의 산), 즉 유다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이는 예루살렘을 포위한 산헤립의 군대가 갑작스레 전복된 사건과 무관하지 않은 듯이 보입니다(37:36;왕하 19:35).
그 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 - 앗수르의 파멸은 곧 이스라엘의 해방으로 귀결됩니다.
본문에 언급된 사상은 10:27과 비슷합니다.
3)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하나님의 경영입니다(26절)
“[26]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 ”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 바벨론의 몰락과 앗수르의 멸망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세계 경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땅과 열방에 대하여 계획하신 일은 이루어지고야 말 것이니, 왜냐하면 그 지혜와 능력에 있어서 감히 하나님과 겨룰 수 있는 자는 없기 때문입니다(시 33:11).
*시33:11 “[11]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4) 하나님의 경영과 손을 펴셨은즉 그것을 돌이킬자가 없습니다(27절)
“[27]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경영하셨은즉...그 손을 펴셨은즉 - '경영'(에차)과 '손'(야드)은 여기서 '지혜와 능력'(Vitringa) 혹은 '계획과 실행'(Gill)을 뜻합니다.
*이 말씀에서 ‘경영’이란 구체적인 계획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앗수르가 마음껏 팽창하게 내버려두셨습니다.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고, 도시와 나라들을 멸망시키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그럼에도 앗수르에게는 결코 넘지 못한 한계선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정복한 후 그 여세를 몰아 남 유다의 예루살렘을 포위했지만, 히스기야의 기도로 하룻밤 사이에 군사 18만 5천명을 잃었습니다(36-37장).
‘나의 땅에서 피하며 나의 산에서 그것을 짓밟는다’는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지금 내가 쌓고 있는 우상도 그처럼 하루아침에 짓밟힐 수 있습니다.
2. 블레셋을 향한 심판(28~31절)
1) 아하스 왕이 죽던 해에 받은 경고입니다(28절)
“[28] 아하스 왕이 죽던 해에 받은 이 경고가 임하니라”
아하스 왕의 죽던 해에 받은 경고라 - '경고'에 대하여는 13:1 주석을 참조하라.
2) 블레셋이 기뻐해서는 안 될 이유입니다(29절)
“[29] 블레셋 온 땅이여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의 열매는 날아다니는 불뱀이 되리라 ”
블레셋 온 땅이여 - '블레셋'(펠레쉐트)은 한때 소아시아 남서 지방에 거주하다가 지중해 연안으로 이주하여 가나안 남부 해안 지역에 정착한 해상 백성들로, 그 이름의 뜻은 '유랑자들', '이주자들'입니다.
이들은 다섯 도시국가. -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 가사, 가드 - 를 형성하여 각각 군주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가나안 문화와 종교에 쉽게 적응했으며 헷 족속으로부터는 철 제련 기술을 전수받았습니다.
유능한 군사 조직가들이나 용맹스러운 전투 행위로 이름난 이들은 사사시대 이래 통일 국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을 크게 위협하였습니다.
너를 치던 막대기 - 아하스 왕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죽은 디글랏 빌레셀 3세를 가리킵니다(B.C.727년 사망).
블레셋에 상당한 타격을 가했던 그의 죽음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커다란 기쁨이 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막대기가 아하스 왕을 가리킨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블레셋을 때린 막대기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로부터 얻어맞은 북이었기 때문입니다(대하 28:18).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의 열매는 날아다니는 불뱀이 되리라. - 블레셋이 기뻐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주석가들은 이것을 미래로 갈수록 위험이 증폭되고 연속되는 세 단계로 파악합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해석은 본문의 '뱀의 뿌리'와 '그 열매', 그리고 '독사'와 '나는 불뱀'을 시적 평행법에 따른 동의어로 보는 것입니다(Gray, Oswalt).
그렇다면 그 의미는 블레셋이 전에 경험했던 것보다 더 엄청난 일이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이 될 것입니다.
사실 그 말대로, 디글랏 빌레셀의 사후(死後) 사르곤 왕은 아스돗을 치고(20:1) 가사의 왕 카눈을 포로로 잡았으며, 산헤립은 아스글론과 에그론을 정복하고 가사와 아스돗의 왕을 사로잡았던 것입니다(G.Rawlinson).
3) 유다의 미래와 블레셋의 미래입니다(30절)
“[30] 가난한 자의 장자는 먹겠고 궁핍한 자는 평안히 누우려니와 내가 네 뿌리를 기근으로 죽일 것이요 네게 남은 자는 살륙을 당하리라 ”
가난한 자의 장자는 먹겠고 궁핍한 자는 평안히 누우려니와. - 선지자는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허덕이는 유다 백성을 '가난한 자의 장자'라 부릅니다.
'장자'(베코레)는 여기서 최상급의 의미로 쓰였습니다(욥 18:13).
'궁핍한 자'(에베요님)는 유리방황하는 양에 비유된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킵니다.
비록 현재의 고난이 이와 같을지라도 미래의 모습은 이와 전혀 다를 것입니다. 즉, 그들은 목자 되신 하나님의 품에서 편히 누울 것이며, 굶주림의 고통으로부터도 영구히 해방될 것입니다.
여기 두 겹의 대조가 있습니다.
즉, 유다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유다의 미래와 블레셋의 미래입니다.
4) 블레셋이 소멸 될 것이라 합니다(31절)
“[31] 성문이여 슬피 울지어다 성읍이여 부르짖을지어다 너 블레셋이여 다 소멸되리로다 대저 연기가 북방에서 오는데 그 대열에서 벗어난 자가 없느니라”
연기가 북방에서 오는데 그 대열에서 벗어난 자가 없느니라 - 선지자는 블레셋에 임박한 재난을 북방에서 다가오는 연기로 표현합니다.
'연기'는 블레셋을 침공하는 군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행진하는 군데에서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먼지에서 착안된 것인지(Lowth, Gesenius, Rosenmuller), 아니면 침략군에 의해서 파괴당한 도성들에서 솟아오르는 화재와 연관된 말인지(Knobel, Maurer)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여튼 이 군대는 전열(戰列)에서 낙오되는 이가 하나도 없을 만큼 훈련이 잘되어 있습니다(5:26-29).
아마도 앗수르 군대를 가리킬 것입니다(Oswalt).
*아하스 왕이 죽던 해에 블레셋은 자신을 치던 막대기(앗수르 왈)가 부러졌다고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자기 죄도 모르고 아무리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단지 눈앞의 위기로 모면한 것만 좋아합니다.
이러한 자들을 향해 하나님은 “기뻐할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강한 대적이 일어날 것입니다.”하고 경고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면 바벨론 군대와 같은 몽둥이 세례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 즉 가난하여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자들을 푸른 초장에 누이시듯 지키십니다.
하나님을 대적할 것이냐 의지할 것이냐는 우리의 선택이지만,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3. 피난처 시온(32절)
“[32] 그 나라 사신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 할 것이니라”
그 나라 사신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 '사신들'은 아마도 예루살렘에 와서 반 앗수르 동맹에 가입해 주기를 요청하는 블레셋 사신들을 가리킬 것입니다(Gray, Leupold).
그 대답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보호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즉 시온을 세우신 그가 시온을 지켜주실 것이니, 다른 나라와의 군사적 동맹 따위는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아하스 왕이 죽고 히스기야가 왕으로 즉위하던 때에 블레셋 사신 들이 축하 사절단으로 예루살렘에 옵니다.
이사야는 유다의 왕실이 블레셋 사신들에게 “시온의 운명은 여호와 손에 달려 있지 동맹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뜻을 분명히 전하라고 합니다.
‘곤고한 자들’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으니 오직 여호와의 날게 아래 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이들을 지켜주시기 때문에 앗수르도 감히 넘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곤고한 마음으로 통화하는 심령으로 드리는 기도를 결코 멸시치 않으십니다.
곤고한 자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친히 구원해주십니다.
기도하기
저의 구원을 위해서 구체적인 경영을 하고 계심에 감사드립니다.
눈에 보이는 위기를 모면한 것만을 좋아하며 안주하고 있었음을 회개합니다.
사건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민감함을 허락하옵소서.
제게 곤고한 마음,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