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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시 : 2013년 5월 11일(토)
장 소 : 충북 괴산군, 음성군
코 스 : 모래재(新도로, 09:23~25)-보광산(09:59~10:02)-고리티고개(10:25)-백마산갈림길(10:50)-
377.9m봉(11:13)-보천고개(11:51)-오대산갈림길(중식, 12:06~36)-오대산(12:43~46)-
오대산갈림길(12:54)-행치재(반기문생가, 13:40~44)-큰산(14:20~37)-삼실재(15:18)-
돌고개(16:05)
* 산행거리 : 20.8 km(오대산 왕복 1.4 km 포함)
* 산행시간 : 6시간 40분(고사리, 두룹, 취나물 한봉지 수확)
내 용 : 석모도 섬 산행으로 2주를 순연후에 다시 시작하는 한남금북정맥이다.
벌써 날씨는 더워서 거의 여름 날씨라 얼음물과 미리 준비해 간 냉동 샤벳 막걸리가 주위의
인기가 상종가네.
정맥길이다 보니 이번 구간도 곳곳에 이정표와 선답자분들의 시그널이 있어 알바 걱정은
없을 듯.
오늘은 구간이 좀 길다(?)는 건의가 있어 일부 회원님들은 산나물도 뜯고, 행치재에 있는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生家도 둘러보고 좀 여유있는 산행을 위해 거의 중간지점인 보천고개
에서 산행을 출발한다. 참고로 이번 구간은 산나물이 보광산 인근이 더 많은 것 같다.
전구간 종주팀은 급히 산나물도 뜯어면서 부지런히 따라가 산행종료 30분 전에 결국 305봉
에서 모두 다 만나 휴식과 간식을 함께 하고, 20여분을 동행하여 돌고개에서 같이 산행을
종료한다.
한남금북정맥 8구간 모래재-보광산-큰산-돌고개 상세요약
일자 ; 2013. 5.11(토)
09:23~25 모래재(230 m)/34번 4차선 신도로/보광산 등산안내도/모래재 구도로에서 연결(2분
거리)되는 지하통로
09:30 묘지 통과
09:43 이정표 통과(보광산 20분)
09:44 이정표 통과(괴산의 명산 보광산 1.5 km)/ ←차도보광사인도→표지판/우측 인도길로
09:50 이정표 통과(보광산 15분)/임도길 버리고, 우측 등산로로
09:56 봉학사지 5층석탑/괴산 봉학사지 안내표지판/등산로 좌측 10 m 아래쪽 잡초 속에 위치
09:58 보광산갈림길 이정표(보광산 5분)/좌틀하여
09:59~10:02 보광산 정상/정상석/전망대(5분) 이정표/왔던 길로
10:04 되 돌아온 보광산갈림길 이정표(고리티재 30분)
10:22 소암 갈림길 이정표(백마산 40분) 통과
10:23 395.4 m봉(gps 411 m)/삼각점과 삼각점안내판
10:25 고리티고개(gps 391 m)/임도/고리티고개 아크릴표지판
10:29 희미한 사거리 안부
10:42 돌무더기있는 희미한 사거리 안부
10:50 백마산갈림길 이정표(gps 391 m)/주봉저수지 방면으로
11:13 377.9 m봉(gps 381 m)의 삼각점 통과
11:51 보천고개(gps 243 m)/515번 2차선 지방도(원소로)/450년 된 느티나무와 보호수 안내석
12:06~36 오대산갈림길(gps 380 m)/중식
12:43~46 오대산 정상(gps 411 m)/정상석/넓은 공터
12:54 되돌아 온 오대산갈림길
12:57 378.5 m봉(gps 390 m)/등산로에 있는 작은 삼각점
13:04 사거리 안부
13:11 임도/밭을 지나 우측 능선으로
13:15 시멘트도로(gps 207 m)/묘지있는 언덕위로
13:40 행치재 지하통로(gps 200 m)/36번 4차선 지방도 아래
13:40~44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기념관과 生家 관람
13:50 이정표(큰산(보덕산)정상 0.7 km)/직 우틀로 통과
14:02 이정표(큰산(보덕산)정상 0.4 km)
14:20~37 큰산(보덕산)정상/정자/무인산불감시탑/보덕산, 반기문 비치길안내판/삼각점과
삼각점 안내판
14:41 이정표있는 임도사거리 가로질러 우측 능선으로
14:50 517봉(gps 527 m)/우틀 하산길
15:06 등산로 우측 하단 벌목지 통과
15:18 삼실재(gps 260 m)/516번 2차선 지방도/좌틀후 우틀해 농산물판매장앞 포장농로로 진행
15:23 묘지있는 능선으로
15:30 포장임도 가로질러 능선으로
15:35~45 305봉/일행 모두 다시 만나 간식및 휴식
15:54 351.7 m봉(gps 357 m)//삼각점과 표지판/직좌틀 진행
16:03 516번 2차선 지방도(gps 286 m)/좌틀하여 시멘트도로로 가면
16:05 돌고개(gps 285 m)/돌고개 개통기념비 표지석
모래재 구 도로(2차선)에서 오는 암거(下)있는 신 도로(34번 4차선도로)에서 산행준비를 하고...
한남금북정맥이 통과하는 괴산군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역이었다가 고구려의 잉근내현,
상모현, 도서현이 되었고, 다시 신라에 속해 괴양현과 도서현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995년
(고려 성종 14) 충주, 청주 등 13주 45현으로 구성된 중원도에 속했다가, 1018년(현종 9) 괴주
지역이 괴주군, 장연현, 장풍현, 청천현, 청당현, 청안현이 되었고 1413년(태종 13)부터
괴산군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현재는 1읍 10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북과 경계를 이루면서 솟아오른 백두대간이 동남쪽으로 가로막고 있어 충북에서도 가장
오지인 괴산읍의 동쪽으로 흐르는 달천을 괴강이라고 부르며 괴산읍 대덕리에는 괴탄(槐灘)
이라는 느티여울도 있다. 이 지역 지명에 유난히 홰나무 괴(槐)字가 많이 들어가 있다.
신라 진평왕 28년(606년) 가잠성을 지키던 신라장수 찬덕은 백제의 대군에게 포위되어 석 달
열흘을 버티다가 끝내 항복을 거부하고 느티나무에 머리를 받아 자결을 하였다. 후에 왕위에
오른 태종무열왕은 찬덕을 기리기 위해 이 지역 고을이름에 “槐”字를 넣었다고 전해진다.
충북의 지형이 그믐달 모양이다. 그 그믐달의 오목한곳 가운데가 괴산군이다.
한남정맥 길은 괴산군을 빙 돌아 지나가지만 괴산군 명산 35개나 있는 백두대간에 비할
바는 아니다.
09:28, 임도길 두고, 우측 등산로로
09:31, 김찬판 묘지 우측으로 통과
09:44, 이정표 통과
09:45, 이정표 통과(인도 방면 우측 오르막으로)
설화에 따르면 대웅전에 봉안된 석조여래좌상은 본래 봉학사의 법당에 있었는데, 조선 현종때
충청도 관찰사였던 김 소의 자손들이 이 절터가 풍수지리설에서 금계포란형의 명당자리로 소문
났기 때문에 김 소의 묘를 법당자리에 쓰면서 불상을 근처에 파묻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스님이 찾아와 명당을 더 복되게 하려면 계곡아래 물을 막아 복이 새나가는
것을 막으라고 일러주었고, 자손들이 그 말대로 하자 집안이 망했다. 금계포란형은 금 닭이 알을
품은 형국인데, 물이 흐르지 못하여 알이 썩는 바람에 집안이 망했다는 것이다.
그 뒤 19세기 중엽 보광산 아래 하도마을에 사는 손씨의 꿈에 노승이 나타나서 옛날에 파묻은
불상의 위치를 알려주고는 ‘이제 때가 됐으니 보광사 남쪽 언덕에 있는 땅속에서 불상을 파내어
봉안하라’고 했다. 이에 손 씨는 마을사람들과 산에 올라가 불상을 파내고 봉안했는데 그 후로
손씨 집안은 크게 번창 했다 고 한다.
09:50, 임도 두고, 보광산 방면으로 우측 오르막 등산로로(보광사로 가도 나중에 만나게 된다)
봉학사지 5층석탑
보광사 200m 위쪽에 위치한 봉학사지 5층석탑은 충북유형문화재 29호로 기단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체 평평한 돌로 5층의 탑신이 올려 져 있다. 탑신의 1층 몸돌은 2개의 돌로 이뤄졌고 나머지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1층 몸돌은 큰 편이고 2층 몸돌에서 급격히 낮아지다가 5층까지는 비슷한 크기를 유지한다.
각 층 지붕돌은 두꺼운 편이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좋지 않고
지붕돌이 두꺼워진 점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작품으로 짐작된다.
09;56, 봉학사지 5층석탑(上)과 등산로에서 연결되는 통로의 예쁜 잡초(下)
등산로에 복귀해서 나무가지 사이로 보는 5층석탑
09:58 보광산갈림길 이정표(보광산 5분)/좌틀하여
보광산(寶光山 : 539m : 괴산군 시리면)
원래 이름은 봉학산 이었다가, 조선 중기부터 보광산이라고 부른다. 정상 바로 아래에는 봉학사
터가 있다. 사찰 건물은 남아 있지 않으나, 괴산봉학사지오층석탑(충북유형문화재 29)이 전해진다.
고려 때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일제강점기 때 무너졌던 것을 1967년 복원하였다.
山 아래에는 봉학사의 후신인 보광사가 자리 잡고 있다. 보광사 대웅전에는 봉학사지석조여래상을
주존불로 모시고 있다. 대웅전 오른쪽의 바위 아래에서는 석간수가 솟아난다.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10:22 백마산, 소암 갈림길 이정표(백마산 40분) 통과
10:23 395.4 m봉(gps 411 m)/삼각점과 삼각점안내판
10:25 고리티고개(gps 391 m)
고리티고개
충북 괴산군 사리면 소암리와 소매리를 잇는 고개로 이 높은 곳까지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나있다.
원래는 이곳이 고리티 고개가 아니고, 약 15分 정도 더 가면 성황당 흔적이 있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곳) 돌무덤이 있는 곳이 고리티 고개라고 한다.
10:29 희미한 사거리 안부
10:42 좌측으로(뒤돌아서 촬영) 돌무더기있는 희미한 사거리 안부. 그럼 옛날에는 이곳이
고리티고개?
10:50 백마산갈림길 이정표(gps 391 m)/주봉저수지 방면으로
여기서부터 음성군에 들어섰는데 잠시 괴산군의 경계와 함께 간다.
백마산(465m)은 산세가 이름다워 소금강이라 부른다. 백마산 중턱에는 백마굴이 있고, 산의
서쪽 5㎞ 정도 떨어진 곳에 백마령이 있는데 백마령은 예로부터 교통로의 몫을 해왔으며, 현재는
충북선 철도와 청주∼충주 간 국도가 지난다.
이곳 갈림길에서 백마산까지 왕복 1시간 가까이 걸린다고 한다. 북진하던 정맥은 오대산
갈림봉을 지나면서 서쪽으로 간다. 이제 백마산을 기점으로 음성군과 괴산군의 경계를 타던
정맥은 괴산군과 이별한다.
11:13 377.9 m봉(gps 381 m)의 삼각점 통과
11:51 보천고개(gps 243 m)/515번 2차선 지방도(원소로)/450년 된 느티나무와 보호수 안내석
음성군 원남면과 괴산군 소수면을 잇는 515번 지방도가 지나는 보천고개는 '토골고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곳은 수령이 450년이나 되는 커다란 느티나무 한그루가 있다.
12:06~36 오대산갈림길(gps 380 m)/중식
12:43~46 오대산 정상(gps 411 m)/정상석/넓은 공터
12:54 되돌아 온 오대산갈림길
12:57 378.5 m봉(gps 390 m)/등산로에 있는 작은 삼각점
13:04 사거리 안부
13:07, 산행기에 나오는 주의할 갈림길. 능선길 두고, 우측 사면길 내리막으로(시그널이 많아..)
13:11 임도/밭을 지나 우측 능선으로
13:15 시멘트도로(gps 207 m)/묘지있는 언덕위로
13:25, 등산로 좌측으로 큰산의 정자가 멀리 보인다.
13:30, 오늘 산행중 요소요소에 잘 달려있는 벽소령금북정맥종주팀의 시그널
13:34, 혼자 오대산을 다녀와 이곳에서 일행과 합류한다.
15:35, 행치재 주유소 뒤로 행치재 휴게소와 그 뒤로 큰산 정상의 정자가 보인다.
13:40 행치재 지하통로(gps 200 m)/36번 4차선 지방도 아래
행치재
음성 원남의 한 고개를 두고 한금령, 백마령, 행치재 등 3가지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한금령은 그 고개에서 한강과 금강물이 갈라진다는 뜻이고, 백마령은 인근에 백마조형물이
세워진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이곳의 공식 지명은 '행치재'이다.
반석편 후손들은 과거부터 내려온 지명에서 이름을 따 자신들을 '장절공 행치파'라고 불러왔다.
장절공은 반석평의 시호로, 현 반 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그의 직손이 된다.
예전에 이곳 서낭당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어서 杏峙라고 하며 행치고개라고 불렸다고 한다.
13:40~44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기념관과 生家 관람
윗행치마을 광주반씨 씨족 마을
이곳은 반 기문 U.N 사무총장을 배출한 곳으로 현재는 광주 반씨 14가구가 살고있는 호젓한
시골마을이다. 조선시대 팔도감사(관찰사)를 다 역임하고, 육조판서와 한성판윤(지금의 서울
시장)을 역임하는 등 조선 전기에 행정의 달인이라고 불렸던 반석평(1472~1540)이 이곳 출신이다.
그러니 반 기문 총장의 선대가 되는 셈이다.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에 그 분의 묘가 있다. 그 분은
'서얼'(庶孼) 출신이면서 양반, 쌍놈을 엄청나게 따지는 조선시대에 성공한 대표적인 분이라고나
할까.
'서얼'(庶孼)
조선시대에는 양반과 첩 사이에서 난 자식을 '서얼'(庶孼)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서'와 '얼'에는 구별이 있다. 서자는 양반 아버지와 평민 어머니 사이에서, 얼자는 양반과
노비 사이에서 난 자식을 일컫는 표현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서얼을 차별하지 않았으나 주자학을
수용한 조선은 달랐다. 서얼은 가정에서도 천하게 여겨졌고, 관직에 등용되기도 어려웠다.
반 기문님의 생가를 지나 도로따라 오르다 'T'자 삼거리에서 좌틀하면
13:50 이정표(큰산(보덕산)정상 0.7 km) 만나/직 우틀로 통과
13:51, 조금이라도 올라 왔는데 큰산(보덕산)과의 거리는 오히려 멀어졌네요?
14:02 이정표(큰산(보덕산)정상 0.4 km)
이제 체력이 다 소진되니 이런 계단 하나하나가 힘이 드네요.ㅠㅠ
14:20~37 힘들게 도착한 큰산(보덕산) 정상
시원한 정자에서 오늘 유일하게 탁트인 지나온 구간의 조망을 즐긴다.
큰산(보덕산, 해발 509 m)
원남면 보룡리, 하당리, 덕정리에 걸쳐있는 산으로서 일명 보덕산이라고 한다.
큰산의 서남쪽으로 꽃절이 있으며 바위가 움푹 패여 10여평이 되는데 특이하게 바위아래 불상이
있으며, 꽃절 바위에서 나오는 약수가 유명하다. 등산을 하다보면, 임도가 잘 닦여 있어 등산하기가
매우 편리 하며, 천연림이 울창하게 생육하고 있다.
'큰산'은 백두대간이 속리산에서 갈라져 충북내륙지방을 모두 아우르다 안성 칠장산에서 다시
한남과 금북으로 가지를 쳐 서해바다를 향해 뻗어나가게 만드는 한남금북정맥 상에 위치해 있다.
한남금북엔 시루산, 국사봉, 구봉산 등등 높은 산들이 즐비하지만, '큰산'은 보은,청주, 청원,
괴산을 거쳐 오며, 점점 고도를 낮춰가던 한남금북정맥의 산맥이 음성지방에 들어서며, 한번 불끈
솟아 오르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산의 높이가 낮아지며, 평야가 넓어지는 곳에 우뚝 솟아 올라 주변을 호령하니 비록 작은 산이
지만 큰 산으로서의 역할과 명성을 얻게 되었던 모양이다.
큰산에서 내려오면 이런 우측의 임도길 두고, 직진해 등산로로 두번을 지나 가면
14:41 이정표있는 임도사거리를 만나 가로질러 우측 능선으로
14:50 517봉(gps 527 m)/우틀 하산길
15:06 등산로 우측 하단 벌목지 통과
15:18 삼실고개(gps 260 m)/516번 2차선 지방도/좌틀후(上) 우틀하여 농산물판매장(下)앞
포장농로로 진행.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와 초전리를 잇는 고개로, 이곳은 밤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밤나무재'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일행은 묘지 밑으로 진행하여
15:20, 보이는 개가 짖어대는 주택앞을 지나 시멘트임도에서 우틀하여 사거리에서 좌틀하여
등산로로 진행
gps트렉이 달라 마루금을 찾아 나 혼자 우측의 언덕을 올라 묘지를 따라 올라
뒤돌아보니 좌측의 시그널과 묘지 아래로 삼실재에서 오는 시멘트 농로가 뚜렷하다.
15:30 주택앞 도로에서 우틀하면 쉽게 오게 되는 마루금을 거의 10分을 돌아와서 포장임도를
가로 질러 능선으로
15:35~45 305봉/이곳에서 일행을 모두 다 다시 만나 간식및 휴식
15:54 351.7 m봉(gps 357 m)/삼각점과 표지판/직좌틀 진행
16:03, 516번 2차선 지방도(gps 286 m)에 도착하여
좌틀하여 보이는 시멘트도로로 가면
16:05, 오늘의 산행종점인 돌고개(gps 285 m)/돌고개 개통기념비 표지석
돌고개 (石峴:285m)
음성읍 신천리 냇말 주막거리에서 초전리 풋내로 넘어가는 516번 도로가 지나가는 고개로서 돌이
많아서 돌고개라 불렀다고 한다. 급경사가 아주 심하여 1978년부터 지금까지 여러 차례 확. 포장을
하여 지금은 음성읍내로 가는 버스가 다니고 있다.
한자로 표현하면 ‘石峴’이라고 한다. 돌고개는 한강 수계와 금강 수계의 분수령을 이룬다. 이곳에는
새로난 도로에 개통비가 있고, 구 도로에도 개통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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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생 하셨습니다.ㅎㅎㅎ 즐거운 하루가 또 지나갔네요....
고맙습니다.
함께해서 행복했습니다. 오래두고 기억하겠지요?
행치재의 반기문 총장의 生家, 그 뒤 큰산 오를 때...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