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최근 한일 양국 갈등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올해로 10년째를 맞는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친일 인물 중 68명이 여전히 국립묘지에 묻혀 국민의 공분을 사며 ‘친일미화금지법’ 발의 및 제정을 향한 물결이 일기도 했다.
친일 미화 흔적은 문학계 또한 자유롭지 않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김기진, 김동인, 서정주 등의 이름 또는 호를 딴 문학상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특히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동인문학상은 매년 문학계의 꾸준한 문제 제기와 반발 아래서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번 해 수상자는 “독의 꽃” 최수철 작가로, 시상식은 예년과 같이 26일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초청장을 받은 일부만 출입을 허용해 진행했다. 일반인의 출입과 기자의 취재는 허용되지 않았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최수철 작가는 동인문학상 수상소감을 통해 “잡다한 세상사로 마디를 만들어 매듭을 짓는 일”이 소설 쓰는 일이라 전했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일제강점기의 잔재 속에서 인간 본연의 문제를 다룬 “독의 꽃”을 통해 친일문인기념상을 받은 것은 아이러니하다. 최수철의 “독의 꽃”은 독과 약, 선과 악, 삶과 죽음 등을 다룬 장편 소설이다.
이에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학연구회와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를 필두로 한 단체들은 “친일문인 김동인을 기리는 동인문학상 폐지 촉구 집회”를 열었다. 동인문학상 시상식인 조선일보미술관 앞에서 열린 해당 집회는 친일 잔재의 청산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조선일보사에 해당 문학상의 폐지를 요구했다.
김동인은 친일 문학인 중에서도 특히 적극적인 친일 행위와 함께 꾸준히 내선일체, 황민화, 조선 학생들의 강제징병을 옹호하는 글을 싣는 등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조선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과를 직접 방문해 ‘북지황군위문 문단사절’을 조직했으며 조선총독부의 외곽단체인 조선문인협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하며 내국민들에게 일제의 사상을 널리 전파했다.
집회 측은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고 쓰는 평론가, 교수, 작가들은 국민 여론에 귀 기울여 친일문인기념상인 동인문학상 심사와 수상을 거부할 것”을 요청하는 등 문학인, 지식인으로서의 양심과 행동을 강조했다. 마이크를 잡은 한 작가는 이번 수상자인 최수철 작가를 언급하며 “수상을 취소하길 바란다”라는 바람을 내보였으나 이후 업로드된 사진 속 최수철 작가는 환한 얼굴로 꽃다발을 안고 있었다.
한편, 과거 한국작가회의가 “친일문인기념상들에 권위를 부여하는 데 일조, 방관해왔다.”는 지적 역시 상당했다. 과거 한국작가회의 이사회에서 친일문인기념상 수상 또는 심사에 대해 징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일부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한국작가회의의 미온적 태도에 연이은 문제 제기가 잇따르자 내부 ‘권고안’을 발표하였으나 강제력을 갖고 있지 않아 실질적 효력이 없는 형식상의 대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수상자 최수철 작가 역시 한국작가회의 소속이다. 한국작가회의 관계자는 뉴스페이퍼와의 통화에서 “한국작가회의 차원에서의 입장문 발표나 징계는 예정된 사실이 없다.”라고 전했다.
2017년 한국작가회의 대전지회는 권고에 그친 내부 성명문에 대하여 “한국작가회의 성명문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며 “친일문인기념상을 받는 행위는 순국선열들을 짓밟는 행위일 뿐 아니라 역사 앞에 죄를 짓는 일”이라 비판했다. 충남지회는 “한국작가회의가 무엇을 추구하며 출범했는지”를 짚으며 작가로서 시대 정신과 정의를 강조했다.
당일 진행된 집회는 미리 준비한 성명서와 창작 항일시, 구호 등을 제창하며 거듭 동인문학상의 문제를 지적했다. 함께 뜻을 모은 최강민 문학평론가(우석대 교수)는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세미나 – 동인문학상”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동인문학상은 친일 문인 김동인에게 과도한 상찬, 신비화, 우상화를 낳도록 만든 진앙지”라 칭했다. 해당 논문은 “집회를 하게 된 배경 – 좀비 동인문학상의 폐지하라”라는 제목으로 집회 항의문 서두에 실렸다.
더불어 동인문학상 폐지 촉구 집회는 “거대 언론사인 조선일보가 자사의 친일 역사를 은폐 축소 시키거나 극우 지배 담론을 생산하려는” 시도와의 싸움이라고 기술했다.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 심사와 수상을 꿈꾸는 문인이라면 주최 측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강민 평론가는 “동인문학상 수상작품집” 말미에 실린 ‘김동인의 생애’라는 연표의 모호성을 지적하며 “조선일보사는 김동인의 친일행적을 은폐시키려는 의도를 보여준다.”고 설파했다. 그가 언급한 연표에는 김동인이 ‘천황 모독죄로 약 반년의 옥살이’를 한 사실이 적혀있으나 이는 단순한 말실수에서 비롯했으며 김동인은 이후 일제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 더욱 많은 친일행적을 보여줬다.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제창하던 집회 인원은 시상식장 내부가 아닌 건물 로비에서 만이라도 ‘동인문학상과 관련한 항의문’을 전달할 것을 제안했으나 경찰의 강력한 제지로 무산됐다. 그들은 입구 계단 아래에서 잠시간의 발언을 마친 후 다시 길 건너편으로 돌아갔다.
집회 측은 “상금에 눈이 멀어 민족 치욕 잊었는가! 작가들은 반성하고 친일문학 청산하자!”, “일제 강점 끝났어도 친일정신 여전한가! 순국선열 굳센 정기 지하에서 통곡한다!”와 같은 구호들을 제창하며 거듭 친일문인기념상 반대의 뜻을 밝혔다.
최근 뉴스페이퍼는 ‘작가정신’에서 주관한 ‘최수철 작가와의 만남’을 취재하려 했으나 출판사 편집부 쪽에서 ‘작가가 부담스러울 수 있음’, ‘작은 규모로 꾸리고 싶음’ 등의 이유로 촬영 및 취재 일체를 거절한 바 있다.
금년도 동인문학상 심사위원으로는 오정희, 정과리, 이승우, 김인숙, 김인환, 김화영, 구효서가 참여했으며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시상식 내부에는 초청장을 받은 박병두, 성지혜, 이은선, 곽효환 작가와 조선일보사 사장 및 발행인 등이 참석했다. 26일 진행된 “친일문인 김동인을 기리는 동인문학상 폐지 촉구 집회” 성명서 전문은 링크(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