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환보》에 빛나는 할아버지와 우리
이 전 규(정간공 한재 17세손)
2009년도에 발행한《황강공세보(黃崗公世譜)》1권 586면에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索引)> 즉 급제자 명단이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조선과환보(朝鮮科宦譜》를 보면
다신(茶神) 목(穆) 公(이하 존칭 생략)부터 세장(世璋)⇒구호(久濠)⇒철(鐵)⇒갱(鏗)⇒
구징(久澄)⇒태환(泰煥)⇒진환(震煥)⇒현수(顯秀)⇒육(堉)⇒익섭(益燮) 할아버지가
연이어 나오십니다.
가끔 족보를 펼쳐 이 어른만 찾아뵈어도 1등 종원이라 할 수 있고,
마음을 다잡아 종회와 시제 및 사우 제사에 참여하면 누구나 존경받습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행복감이 듭니다.
고산장(高山丈) 세병(世炳) 족숙은 대전광역시 요지의 비싼 상가를
사무실로 선뜻 내어놓아 씨족들이 모여 정담을 나누고
때로는 회식하며 종무를 정답게 처리하니 청풍명월 양반 골에서
위신이 서갑니다.
호서 공주 충현서원과 대전 전주이씨
공주 ‘충현서원’ 마당에 들어서면 스물여덟 살 한재 할아버님이 보여
눈물이 핑 돕니다.
이존오 선생은 31세에 죽었습니다.
이런 선생을 외면치 않고 사우 세운 유림과 유력한 사족 위대하지 않습니까?
사리 밝은 선비들은 조헌-김장생-송준길-송시열 현인을 추배하여
한국 기호 유학의 본산지를 이룩하셨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부터가 더 중요합니다.
1581년 이존오, 이목, 성제원을 모시기 시작했으니 그 역사가 433년이지요.
우리는 자유인임과 동시에 막중한 책무를 지닌 후손들입니다.
사람 알고 사람 대접 함은 온당한 상식입니다.
우리는 다행히 뒤지지 않고 공주 대전 호서지방에서나
호남 풍패지향 전주에서 조상 욕되기 않게 관리와
숭조업무를 추진해 나가니 천만다행입니다.
자손 만대 계계승승 발전하기를 기원하며 이일에 도움이 되도록
《문학대(文學臺)》3호집 묵은 판을 되찾아 다시 책을 출간하니
종회의 취지와 목적에 맞도록 고루고루 읽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