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박 경 (S22:53)
Upaya-sutta
1. <사왓띠의 아나타삔디까 원림에서>
3. “비구들이여, 속박되면(*1)
해탈하지 못하고, 속박되지 않으면 해탈한다.
(*1) “‘속박(upaya)’이란
갈애와 자만과 사견(taṇhā-māna- diṭṭhi)을 통해서
오온에 압도된 것이다.(SA.ⅱ.271)
비구들이여, 알음알이는(*2)
머무는 동안에 물질에 속박되어 머물게 되나니
그것은 물질을 대상으로 하고 물질에 확립되고
즐김을 통해서 촉촉이 적셔져서(*3)
자라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4)
(*2) “여기서 ‘알음알이’는 업을 짓는 마음이다.”(SA.ⅱ.271)
(*3) Ee: ‘즐김을 추구함’ 대신에 ‘즐김을 통해서 촉촉이 적셔져서’라고 옮긴 것은
다음 경에서 씨앗이 물에 의해서 증장하는 비유를 참조했다.
(*4) “‘충만하게 될 것이다’라는 것은
업의 속행을 지은 뒤 재생연결을 촉진할 능력이 있음을 통해서
자라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SA.ⅱ.271)
알음알이는 머무는 동안에 [느낌에… 인식에… ]
심리현상들에 속박되어 머물게 되나니
그것은 심리현상들을 대상으로 하고, 심리현상들에 확립되고,
즐김을 통해서 촉촉이 적셔져서
자라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5)
(*5) 본 문단은 ‘네 가지 알음알이 거주처(viññāṇa-ṭṭhiti)'로 나타나고 있다.
알음알이는 물질 느낌 인식 심리현상들의 4온을 거주처로 삼아서 일어나고
여기에 머물기 때문에 이 넷을 알음알이의 거주처라 한다.(SA.ⅱ.271)
본경에서 보듯이 식온은 오온 가운데서 나머지 네 가지 무더기들보다도 더 중요하게 취급된다.
이런 입장이 자연스럽게 아비담마에 반영되어서 존재일반을 識 혹은 마음[心] 위주로 살펴보게 된 것일 것이다.
그래서 수상행 3온은 마음부수[心所]라 하고 마음 혹은 식에 종속되고 부수된 것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아비달마 대비바사론』이나 『아비달마순정이론』 같은 북방 아비달마 논서에서도
심(心)을 心王이라 표현하고 있으며 중국의 유식학에서도 그대로 채용되었다.
그리고 유식에서는 물질을 포함한 일체가 식의 찰나생 찰나멸,
즉 식전변(識轉變)에 의해서 드러난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유식30송 17번 게송
“이 식전변은 곧 분별이며 그에 의해 분별된 것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다만 식일 뿐이다.”
4.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물질과도 다르고 느낌과도 다르고 인식과도 다르고
심리현상들과도 다른 알음알이가 오거나 가거나 죽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자라거나 증장하거나
충만하게 되는 것을 천명하리라.’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5.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물질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6)
알음알이는 확립되지 않는다.(*7)
(*6) “‘대상이 끊어지고(vocchljjat-ārammaṇa)'란
재생연결을 촉진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졌다고 하는 것이다.(SA.ⅱ.272)
"업의 표상(kamma-nimitta) 등을 통해서 재생연결의 조건이 되는 것을 대상(ārammaṇa)'이라고 한다.
이것은 재생연결을 생산하는 업을 [끊음을] 통해서 끊어진다는 뜻이다.(SAT.ⅱ.198)
(*7) “업을 짓는 알음알이(kamma-viññāṇa)가 확립되지(patiṭṭhā) 못한다는 말이다.”(SA.ⅱ.272)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느낌의 요소에 대한…
인식의 요소에 대한… 심리현상들의 요소에 대한…
알음알이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알음알이는 확립되지 않는다.”
6. “알음알이가 확립되지 않고 증장하지 않으면
의도적 행위를 짓지 못하고 해탈한다.(*8)
(*8) “의도적 행위를 짓지 못하고 해탈한다(anabhisaṅkhacca vimuttaṃ)'는 것은
재생연결을 의도적으로 형성하지 못하고 해탈한다는 말이다.”(SA.ⅱ.272)
해탈하기 때문에 안주하고 안주하기 때문에 만족하고
만족하기 때문에 갈증내지 않고
갈증내지 않으면 스스로 열반에 든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각묵스님옮김 『상윳따니까야』 제3권 205-2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