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정성 원리'라는 말은 딱히 물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들어보았을 정도로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현대물리학 개념일 것입니다.
널리 알려진 만큼 그만큼 오해 또한 클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에 대해 누군가 SNS 물리그룹에 다음 질문을 올렸더군요.
- 불확정성 원리에 의하면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입자가 운동량이 0인 정지상태로 존재할 수 없다고 하는데 그럼 관측과 상관없이 우주 어디에도 정지상태로 존재하는 입자는 아예 존재할 수 없는 건가요?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변을 올렸습니다.
- 정지상태인 입자( △p=0 )는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x~무한대 )라는 것이 불확정성 원리가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다음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습니다.
- 그럼 어딘가엔 정지상태의 입자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요?
- 그렇죠. 전 공간에 다 존재할 수 있어서 어디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먼저 위의 질의 답변에서 '입자가 운동량이 0인 정지상태로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양자역학을 배울 때, 거의 처음 나오는 개념이 바로 운동량의 고유상태입니다.
여기서 고유상태라는 것은 해당 물리량을 측정해서 얻을 수 있는 값을 가진 상태를 뜻합니다.
따라서 측정한 운동량의 값이 0인 상태, 즉 정지상태는 운동량의 고유상태로서 당연히 존재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오해가 왜 생기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첫 질문에서와 같이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 불확정성 원리라고
부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기술은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흔히 물리에서는 위치의 부정확성 △x와
운동량의 부정확성 △p를 곱한 값이 (매우 작지만 0 보다 큰) 플랑크 상수보다 더 커야 한다라고 표현합니다.
이에 따르면 정지상태는 운동량이 0 으로 정해지므로 운동량의 부정확성 역시 0 이 됩니다. 따라서 불확정성 원리가 만족되려면 위치의 부정확성은 부득이 (수학적으로) 무한대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첫 번째 답변입니다.
그런데 운동량이 0, 즉 입자가 정지해 있는데 위치의 부정확성이 무한대라는 것은 또 무슨 말입니까? 아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일 것입니다.
정지해 있다면서 왜 위치를 특정할 수 없지?
당연한 의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상식의 경계 안에서는.
그러나 그것이 바로 불확정성 원리(자연계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리/법칙)가 뜻하는 바입니다.
사실 불확정성 원리에 내재된 뜻을 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위치와 운동량이라는 두 가지 변수가 더 이상 서로 독립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의 적절한 수학적 표현은 우리가 흔히 아는 고전(?) 수학의 경계를 넘어섭니다.
고전(?) 수학에서는 독립적인 두 변수의 순서를 바꾸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적분에서 독립변수들 간의 순서를 바꾸어서 적분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그 예입니다.
그런데 불확정성 원리에 나오는 위치와 운동량이라는 두 변수는 그들 사이의 순서를 바꾸면 그 결과가 달라집니다. 순서를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 두 가지 변수들을 더 이상 숫자와 같은 변수가 아니라 연산자(operator)라고 부릅니다.
사실 operator는 '작용자'라고 부르는 게 더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한 변수가 다른 변수에 작용하여 변화를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변수들 간의 대수를 다루는 비교적 새로운 수학 분야를 수학에서는 연산자 대수(operator algebra)라고도 합니다.
이처럼 순서를 바꿀 수 없는 변수들을 비가환 변수들이라 칭한다면, 이런 비가환 변수들로 기술되는 공간의 기하를 다루는 학문이 1980년대 이후 새로이 등장하였습니다.
바로 프랑스의 수학자 알렝 꼰(Alain Connes)이 1980~90년대에 걸쳐 그 기반을 닦은 비가환 기하(non-commutative geometry)입니다. 꼰은 스스로 양자역학에서 나오는 측정량(observable)들의 비가환적인 연산자적 특성에 기반한 기하를 만들고자 하였다고 말합니다. 리만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의 바탕이 되는 기하를 정립하였듯이. 꼰은 이와 관련된 업적으로 필즈상을 받았습니다.
다시 물리로 돌아가서.
'운동량이 0 인 정지상태의 입자는 위치의 불확정성이 무한대여서 전 공간에 다 존재할 수 있으므로 어디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라고 하였는데 무슨 의미일까요?
사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어떤 측정량의 고유상태라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그 상태가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입니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주어진 상태의 시간 변화는 그 상태의 에너지를 측정값으로 주는 해밀토니안에 의해 변화하게 됩니다.
그래서 해밀토니안의 고유상태인 경우에만 상태는 같은 상태에 계속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상태를 정지 상태(stationary state)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불확정성 원리는 주어진 어떤 특정한 시각에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시간에는 측정량의 특정한 고유상태에 있을 수 있지만 다음 순간에는 다른 상태로 바뀌어 불확정성 원리의 적용 결과도 바뀔 수 있습니다.
자유 입자의 경우는 운동량 고유상태가 해밀토니안의 고유상태도 되므로 이 경우는 동일한 운동량 값을 계속 가질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는 운동량이 특정되므로 위치의 불확정성이 무한대가 됩니다. 이는 입자가 운동량의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며, 공간 상의 모든 점에 고루 위치할 수 있지만 어떤 지점인지는 결코 알 수 없음을 뜻합니다.
위에서 위치와 운동량과 같은 비가환 변수들은 서로 독립적인 변수들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이는 중대한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바로 비가환 변수들은 함께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입자의 운동은 운동량이나 위치 두 가지 변수 중 하나만 가지고 표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불확정성 원리를 이미 내포하고 있습니다. 위치로 상태를 표시한 경우는 운동량은 표시할 수가 없으니까요.
이 경우 운동량은 위치에 작용하는 (미분) 연산자가 되어 위치를 변화시킵니다.
이처럼 독립적이지 않은 변수들은 독립 변수에 작용하는 연산자가 되어 독립변수를 변화시킵니다.
참고로 위치 쪽을 독립변수로 하여 나타낸 상태의 함수표현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파동함수(wave function)라고 부릅니다.
운동량으로 나타낸 경우는 특별히 파동함수의
운동량 표현이라고 부릅니다.
서로 가환하지 않는 위치와 운동량 중 하나만 택하여 상태를 기술하는 것처럼 주어진 상태에 관련된 변수들 중에서 (서로 가환하는) 독립적인 것들만 남기고 독립적이지 않은 변수들을 표현에서 제외하는 것을 우리는 양자화(quantization)라고 말합니다.
이는 위의 위치와 운동량의 경우를 일반화하여 주어진 계의 변수들 중에서 측정량들과 그것의 켤레 운동량들(conjugate momenta)을 구분하여 그 두 가지 중 한쪽 변수들만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실 양자역학은 주어진 (물리적인) 계를 양자화하여 이해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