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 인문학 또는 사회학
- 평화와 인권의 록밴드 U2
전인식
2019년 12월 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록밴드 U2 공연이 있었다. 43년 만에 이루어진 역사적인 최초의 내한공연이었다. 이날 공연에는 대통령 영부인 김정숙 여사도 자리를 함께했다. 공연 다음날 그룹의 리더 보노는 청와대를 예방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가수가 아니라 어느 나라의 국가 정상이나 국빈급 정도 아닐까?
무슨 비행기나 잠수함 이름 같기도 한 U2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보다는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명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는 좀 덜 알려진 것도 사실이다. 오랜 활동 기간과 현존하는 탑클래스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한 번도 오질 않았다. 물론 몇 번 계획은 있었지만 공연 규모에 맞는 시설 등 조건이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일본은 여러 번 다녀간 것에 비하면 많이 늦은 감이 있다.
1976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고교친구들끼리 결성해서 멤버 교체도 없이 오늘날까지 43년간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멤버 대부분은 1960년, 1961년생들로 환갑을 앞둔 아저씨들이다. 이미 80년대와 90년대 걸쳐 전성기를 보냈다지만 아직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들에게 전성기란 무의미할 것 같다.
U2는 전 세계에서 1억 8천만 장의 앨범 판매고를 올리고 그래미상을 총 22회나 수상한 것에서 알 수 있듯 현존 넘버원 록그룹이다. U2의 노래들은 노래마다 사회성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허투루 흥얼거릴 노래들만은 아니다. 의미를 하나하나 새겨봄직하다.
이번 공연은 그들의 앨범 ‘더 조슈아 트리(The Joshua Tree)’ 발매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세계투어 일환이다. 조슈아 트리는 1987년 발매 이후 20개국에서 1위, 2천5백만 장 이상 판매되었고 3,760억 원 수익을 올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공연개시 전 화면에 나타난 검은색 이상한 나무가 바로 조수아 트리이다. 미국 모하비사막에서 자생하는데 비틀어지고 키가 작지만 튼튼하게 자라는 나무로 미국 속 아일랜드인 또는 고난 극복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아일랜드란 나라가 여러모로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분단의 아픔을 겪은 질곡 많은 역사 그리고 저항의 기질이 우리와 유사하다. 영국과의 관계는 우리의 한일관계 그 이상일 것이다.
이들의 공연은 이제껏 내한한 어느 가수들과 구분되는 역대급 공연으로 평가될 만큼 2만 8천 명의 관객들을 충분히 만족시키고도 남았다. 이날 단 한차례 공연을 위해 화물수송기 3대와 150명의 스텝들이 동원되었다. 그리고 가로 61m 세로14m, 8k 해상도의 대형 LED 스크린이 설치되었다. 공연의 1부는 그들의 초기 히트곡들, 2부는 앨범 조수아 트리의 수록곡들, 3부는 사랑과 평화 평등을 알리는 히트곡들로 구성되었다. 특이하게도 공연 시작 전 시(詩)들이 흘러나왔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노래한 이시영 시인의 ‘지리산’을 비롯하여 김혜순 시인의 ‘감기’ 최승자 시인의 ‘나는 기억하고 있다’ 등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오바마 미국대통령 취임식에서 낭송되기도 했던 엘리자베스 알렉산더의 시와 아프리카계 미국 시인 랭스턴 휴즈의 시가 나타나며 공연의 서막을 장식했다.
특히 오프닝 곡으로 ‘Sunday bloodySunday’는 1972년 영국군이 북아일랜드 비무장 민간인을 공격하여 14명이 죽고 13명이 다친 이른바 ‘피로 물든 일요일’을 노래한 것이다. 덧붙여 한국전쟁도 일요일에 일어났음을 환기시켰음을 알 수 있다.
다음 곡 ‘Newyear’s Day‘는 폴란드 자유노조 운동을 주도했던 바웬사에서 영감을 받아 부른 노래이며 ‘Pride’는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킹을 추모하는 노래였고 노래 중에 4월4일을 12월 8일로 살짝 개사를 했는데 이유는 이들의 공연일이기도 하고 존 레넌의 기일이었기 때문이었다. ‘Exit’에서는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거대한 벽을 짓자’라는 문구가 전광판에 새겨지기도 했는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풍자하는 내용이었다. 특히 ‘Ultra Violet’가 하이라이트였다. 리더인 보노가 구약성경 욥기를 바탕으로 만든 91년에 발표한 노래인데 무대연출이 압도적이었다. 대형 스크린에 History가 나타나더니 여성의 역사를 나타내는 Herstory로 바뀌었다. 그리고는 역사를 바꾼 주인공들이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을 등장시켰다. 최초 여성 변호사 이태영, 최초 서양화가 나혜석, 미투 운동의 불씨를 던진 서지현 검사, 최근 숨진 가수 설리까지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름 모를 제주 해녀까지 등장시키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우리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는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 이 멋진 문장으로 마무리하자 특히 여성 팬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다음날 ‘Ultra Violet’ 노래에 대한 실시간 검색이 폭증하기도 했다. 노래 한곡으로 그 어떤 여성인권운동가 이상의 활동이 아닐까? 알고 보니 그룹의 리더 보노는 민간기구 ‘ONE’을 설립하여 기아와 빈곤과 질병퇴치, 양성평등 문제해결에 앞장서고 있었다.
엔딩 곡 ‘One’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날 독일 통일되는 날 만들어진 곡으로 분단된 한반도에 울려 퍼져 더 의미가 있었다. ‘평화로 가는 여정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 타협이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리고 태극기가 마지막으로 등장하면서 공연은 마무리 되었다.
공연 다음날 청와대로 가서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하며 40여 분간 환담을 나누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의 길에 음악을 비롯한 문화 예술의 힘이 크다’라고 강조했고 보노는 ‘음악은 힘이 세다(music is powerful)’ 남북 평화 프로세스에 남북한음악인들의 역할론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아울러 그는 199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일랜드 시인 셰이머스 히니의 친필사인이 담긴 시집을 문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문 대통령은 다음에는 DMZ에서 노래해 줄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는 ‘U2의 미학은 융합에서 출발하는데 기술과 인력, 메시지, 이미지 등이 모든 것이 총 집결된 공연이었다.’라고 평가했다. 공연관계자에 의하면 스크린에 등장한 것들은 한국 쪽 관계자들이 일절 관여 없이 모두 U2측에서 알아서 작업한 것이라고 했다. 놀랍기만 하다. 사전 조사를 철저히 했고 공연의 현지화 전략에 정성을 들인 면이 눈에 띤다.
문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작품성과 대중성을 다 갖기는 어렵다. 작품성이 높으면 대중성은 떨어지고 대중성이 높으면 작품성이 떨어지는 상관관계에 있는데 이들의 음악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다 잡은 드문 경우라 하겠다.
학교 게시판을 보고 모여든 허접한 스쿨 밴드에서 열정 하나로 맨땅에 헤딩해서 현존 최고 인기와 최고 수익을 창출하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개성 강한 멤버들 간 갈등이나 불화가 없지는 않았을 텐데 경이롭다. 종교적 갈등과 음악 노선에 대한 불화도 있었지만 각자 양보와 배려 없이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그들이 함께 지속해온 43년간의 세월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이들은 그냥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고, 반미운동에 동참하고, 여성들의 인권과 아프리카의 기아와 질병 퇴치운동을 펼치며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철학하는 밴드, 실천하는 밴드 소리까지 듣고 있다. U2가 다른 가수들과 구분되는 것은 소외된 사람들, 목소리가 없는 이들을 위해 목소리가 되어주고 싶어 한다. 그들에게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그 지향점으로 가기 위해 기존의 방식을 파괴하며 늘 새로운 양식으로 음악을 만들어 왔다. 사운드도 중요하지만 어떤 정신으로 노래를 만드느냐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와 같은 정신들이 다른 밴드와 구별될 수 밖에 없는 요인들이다. 이런 사회공헌활동들 때문에 노벨 평화상 후보로 자주 등장하는 걸까 이들이 노벨평화상을 받을 때쯤 DMZ에서 그들의 노래 ‘ONE’ 노래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 새떼들이 날아갈 만큼 One love, One blood, One life(하나의 사랑, 하나의 피, 하나의 생명) 노랫말을 떼창할 그날을 기다려 봐도 될까?
나의 시 한 편이 강 하나 산 하나 넘어가지 못하고 있을 때, 겨우 몇 사람의 눈에서 사라지고 말 때 U2의 노래는 마닐라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런던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강한 메시지를 담고서. 보노의 말처럼 음악은 힘이 센 걸까?
U2 노래를 들으면 역사가 보인다. 사회가 보인다. 사람이 보인다.
전인식
1997년 《대구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8년 불교문예 신인상 수상.
시집으로 검은 해를 보았네가 있음. 1995년 신라문학대상, 1997년 통일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