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믿음의 언어 (삼상 26:7-12)
1. 한국 가수 중에 <이적>이라는 분이 “말하는 대로” 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가 직접 만든 노래입니다. 자신이 말하는 대로, 마음 먹은 대로, 할 수 있다는 그런 노래입니다. 자신이 하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말하는 노래입니다.
“나 스무살적에 하루를 견디고/ 불안한 잠자리에 누울때면/ 내일 뭐하지 내일 뭐하지 걱정을 했지/ 두 눈을 감아도 통 잠은 안 오고/ 가슴은 아프도록 답답할때/ 난 왜 안 되지 왜 난 안 되지 되뇌었지/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다곤 믿지 않았지/ 믿을 수 없었지/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할 수 있단 건 거짓말 같았지/ 고개를 저었지/
그러던 어느 날 내 맘에 찾아온/ 작지만 놀라운 깨달음이/ 내일 뭘 할지 내일 뭘 할지 꿈꾸게 했지/ 사실은 한번도 미친 듯 그렇게/ 달려든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 봤지 일으켜 세웠지 내 자신을/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단 걸 눈으로 본 순간/ 믿어보기로 했지/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할 수 있단 걸 알게 된 순간/ 고갤 끄덕였지”
내일 뭐하지 하면 내일 할 것이 없어보이지만, 내일 뭘해야지 하면, 그렇게 말한대로 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게 됩니다.
2. 내가 말하는 대로 되어진다는 것은 성경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아담을 만드신 후에 제일 처음으로 시킨 일이 각종 짐승과 각종 새들의 이름을 짓게 한 일입니다.
창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이 말하는 대로, 마음의 생각대로 이름을 붙인 것이 곧 그들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마치 너는 순하게 생겼으니 ‘순둥이’라 하고, 너는 막내로 태어났으니 ‘말순이’라고 하고, 너는 물이 많으면서 호박처럼 생겼으니 ‘수박’이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말에 그만큼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신대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매 빛이 있었습니다.
3. 성경에는 말을 그렇게 하므로 그 말로 인하여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 사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1) 백부장은 “내 신하들도 오라하면 오고 가라하면 가니, 주께서 말씀만 하시면 그대로 될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이스라엘에서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하시면서 “너의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2) 베드로가 밤새워 그물을 내렸지만 전혀 고기를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말씀을 그리하시니 내가 따르겠습니다” 하고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말씀처럼 엄청난 고기를 잡았습니다.
(3) 나중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었을 때, 베드로가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놀라운 천복을 내려주십니다. 이것을 알게 한 것은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라” 하였습니다.
너의 이름을 베드로라 부를 것이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천국 열쇠를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을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결코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런 믿음을 그 마음에 담아주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4. 다윗의 이야기를 통하여 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 다윗은 본격적으로 도망다니게 됩니다. 사울왕이 집요하게 다윗을 잡아 죽이려 합니다. 심지어 군사들을 삼천명씩이나 동원하여 이잡듯이 다윗을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런 중에도 오히려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1) 한번은 엔게디 광야 들염소 바위 옆의 동굴에 숨었을 때입니다. 다윗과 일행들이 동굴 깊은 곳에 숨었습니다. 그 때 사울 왕이 더위를 피하고, 또 소대변을 보기 위해 동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안에서는 바깥이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캄캄한 것입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볼 수 없었지만, 다윗과 일행은 동굴 입구에 들어온 자가 사울 왕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때 다윗이 일행들이 다윗에게 단호하게 말합니다. 지금이야 말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입니다. 너무도 강요하기에 다윗은 하다 못해 사울 왕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벱니다.
그 일로 인하여 다윗은 마음에 찔림을 받고 이렇게 말합니다.
삼상 24:5-7, “그리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을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2) 두번째는 다윗이 십광야에 숨었을 때입니다.
사울은 삼천 명의 군사들을 데리고 십광야에 이르러 장기전을 펼치고자 사령부를 꾸렸습니다. 그때 다윗이 신하들과 함께 진영을 염탐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사울이 피곤에 지친 나머지 사령부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의 신하 중에 아비새가 밤 중에 사울을 죽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도 도망자의 삶이 너무도 지겨웠던지, 사울을 죽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막상 사울을 죽이지는 못합니다. 신하 아비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삼상 26: 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는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그리고 다윗과 일행이 잠들어 있는 사울의 텐트로 들어가서 머리 맡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옵니다.
5. 충분히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울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이다.”
이 말은 다윗의 믿음의 언어입니다.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고, 다윗 만이 이 말을 하였습니다.
모세 오경의 율법에도 없는 말입니다. 오로지 다윗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신앙의 언어입니다. 다윗은 여러번 이 말을 반복하여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삼상 24: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24:10,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넘기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어떤 사람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 하였나이다.”
26: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26:11, “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26:23,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와 신실을 따라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내 손에 넘기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다윗의 위대한 신앙 중의 하나가 이것입니다.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이다.” 이 말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고 오직 다윗의 언어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6. 성경은 다윗의 이 말을 왜 이토록 강조하는 것일까요? 분명한 2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1) 하나는 사무엘서의 주제를 밝히기 위한 것입니다.
사무엘서를 시작하면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무엘서의 주제는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고 하나님을 경멸하는 자를 멸시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존중히 여김을 받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릅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신다는 말을 하므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다윗이었습니다. 이것을 밝히기 위하여 이 말을 계속하여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다윗도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임명 받은 것을 귀하게 여기는 다윗인 것입니다.
다윗이 그의 나이 13살 쯤에 사무엘로부터 차기 지도자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사무엘이 다윗의 머리에 올리브기름을 부을 때, 다윗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다윗은 “나를 하나님께서 택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나는 내 맘대로 살아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하는구나”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시다”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으면서, 자신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나를 택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믿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믿음이 사울 왕에게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신 것입니다. 사울의 생명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울왕의 권한도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울을 죽일 수가 없습니다. 그를 해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마음에 저절로 생겨진 하나님의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결코 생길 수 없는 마음인 것입니다.
7. 오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 자신의 믿음의 언어를 확립시키자는 것입니다. 그 사람하면 그 사람의 믿음의 언어가 생각나는 것입니다.
(1) 백부장이 그런 신앙의 말을 하였던 것처럼, 베드로가 그러한 신앙고백을 하였던 것처럼, 수로보니게 여인이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라는 말을 하였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신앙의 언어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의 언어가 중요한 것은, 이 말을 할 때, 우리는 나의 삶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 속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은 이 말을 통하여 나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2) 제가 전에 한참 하나님에게 집중하여 살 때, 제 입에서 이런 말을 자주 하였습니다.
“하나님 없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없는 것처럼 말하지 말고, 하나님 없는 것을 행하지 말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을 느끼게 되니 함부로 생각해서도 안되고 말해서도 안되었던 것입니다.
(3) 또 “하나님은 제 인생의 브레이크와 같으신 분이십니다.”고 말하였습니다. 돌아보니 욕심 맡고, 성취욕에 빠져 있는 저를 곁길로 빠지지 않게 하시고, 브레이크를 밟으시면서 차분하게 목회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은 나를 참되게 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아니었으면 나 중심대로 살았을 것입니다. 욕망을 쫓아 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중심을 붙잡고 살게 해 주셨습니다.” 라고 말하게 하셨습니다.
분명 제가 하는 말이지만, 그 말을 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어떤 분의 기도의 언어를 듣기 좋아합니다. 그것은 오직 그분의 기도의 말 속에서만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그분을 통하여 그 말을 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고 말합니다. 어떤 분은 날마다 주님을 만나듯이 대화를 나눈다고 말합니다.
어떤 분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죽으면 그제서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들은 모두 우리를 이기게 하는 말입니다. 우리를 절망에서 희망으로 이끄는 말입니다.
사람의 말이기는 하지만, 그 말 속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믿음이 있습니다.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보배가 있는 것입니다.
8. 저는 성경의 언어 중에서 이것만큼은 최고의 언어라 할 수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한 언어입니다. 함께 읽어보실까요?
롬 8:31-39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세상의 잡다한 말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의 언어를 붙잡고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9. 영화배우 신영균 씨는 “나의 관에 성경책 한 권만 넣어달라” 는 말을 남겼습니다. 신앙의 말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링컨의 어머니는 이렇게 유언을 하였습니다. "성경 속에는 부자가 되는 비결, 정치를 잘 하는 비결, 세상 사는 비결이 다 들어 있단다. 성경을 늘 읽으면서 성경대로 살아라"
세계 최고 부자 록펠러는 그의 어머니의 유언을 간증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손을 붙잡고 4가지를 유언하고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평생 주일을 어기지 마라, 십일조를 반드시 드려라, 예배드릴 때에는 꼭 앞자리에 앉거라, 평생 목사의 협조자가 되라."
이런 말이 결코 그냥 하는 말이 아닐 것입니다. 정말 그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말일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이실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네덜란드를 점령하였습니다.
이때 헬리 그래머 목사가 시무하던 교회 교인들이 밤중에 은밀히 목사관에 모여들었습니다. “목사님, 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러자 그래머 목사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의 질문은 내가 누구인지를 대답하면 자연히 결정됩니다 .”
그래서 모여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고백했습니다.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그레머 목사는 그렇다면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독립자유 운동을 하였고, 네덜란트를 지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10. 항상 내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하시는 언어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언어를 통해서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12월 구주강림절기에 어떤 말을 하면 좋을까요? 내 속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시는 절기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