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짐
이정선
바야흐로 곡우, 때 아닌 바람의 기세에 연두 빛 새순들이 요동치며 몸살을 친다. 봄 시샘 바람에 문득 내 마음의 물결이 출렁거린다. 이런 내게 스쳐가는 ‘바닥짐’이란 단어다.
내 마음은 어느새 망망대해에 가 있다, 누구보다 바람에 예민할 뱃사람들, 사계절 내내 바다가 삶의 터전인 그들은 이 바람을 어찌 견딜까. 바닥짐은 항해 중 거센 풍랑의 위험을 대비해 배 하부에 미리 실어두는 짐을 말한다. 인생 항로라고 별다를까. 사별이라는, 처음 마주하는 높은 파고에 정신이 없었다. 유난히 무거웠던 짐, 삼 남매를 짊어지고 허둥대던 내 중년의 바닷길, 가까스로 뭍에 닿아 하선작업 후 연안에 정박하게 되었다. 그런데 안전한 닻줄에 매어서도 헛개비처럼 요동치는 나라는 배, 어인 까닭일까? 배 역시도 홀가분히 하역작업 후의 시기가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것. 그래서 먼 길을 떠나는 선박들은 항해를 시작하기 전에 밑바닥에 물을 가득 채운다던가.
사람의 생 역시나 무거운 책임에서 벗어난 때가 인생에서 가장 위험할 시기라고 한다. 자식이라는 부피 나가는 짐을 훌훌 부려버리고 룰루랄라 자유롭게 지내다 코로나 펜데믹에 빠졌다. 지척에 사는 자식들조차 왕래가 어려우니 집은 감옥 아닌 감옥 인 셈이다. 조심스레 눈치를 보다가 주말이면 근린공원에서 운동한다는 아들과 손자에게 토요일마다 내 집에 들러 점심을 먹자 권했다. 어느 주말이던가. 아들 혼자만 왔다. 손주는 TV 시청을 해야 한데나.
“영우야, 얼굴을 봐야 할머니가 용돈을 줄 게 아니냐?”
할머니보다 돈의 위력이 컸을까? 즉각 반응하는 손자다. 돈 주며 욕먹을 일 있는가. 콩 한 쪽에도 시샘하는 손녀가 스쳐 하는 수 없이 손녀의 용돈까지 챙겨 손자에게 맡겼다.
“할머니, 누나는 할머니 집에 오지도 않았는데요”
주말마다 제 얼굴 보여주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양 생색을 낸다.
천륜 간에 오고 간 정리(情理)의 발길이야말로 제 생에 두고두고 지울 수 없는 아름다운 흔적으로 남는 것을 아직 어린 것이 어이 알겠는가. 쓴웃음과 함께 일렁이는 서운함의 잔물결! 요 귀여운 투정쟁이 손자녀석도 흔들리는 내 생의 균형을 잡아주는 바닥짐일 터, 돌아보니 거세게 몰아닥친 삶의 풍랑, 그 소용돌이에서 나와 얽힌 모든 인연들도 내 생의 뱃길을 무사히 견디게 지켜주는 바닥짐이었던 것을.
영산강변에 흩어진 제주 화산석은 『남명소승』의 증거물이다. 백호 임제 선생이 아버지의 부임지였던 제주도를 찾던 길의 생생한 그 기록물에는 그날 몰아닥친 거센 풍파와 노란 귤도 등장한다. 백호 선생의 가친이 부임해 계시는 동안 베푸신 선정(善政)에 대한 답례로 지역주민들은 위험천만한 제주 뱃길에 바닥짐 삼아 싣고 가시라며 너나없이 쌀가마니를 선창으로 져 날랐다. 그 광경을 목도하신 임제 선생의 가친께선 섬에서 너무도 귀한 쌀가마를 대신해 주변에 굴러다니는 돌로 채우라 명하셨다. 그런 연유를 거쳐 제주의 곰보바위들은 오백 년 넘게 전라도의 영산강변에 역사를 품은 바닥짐으로 남게 된 것이다. 값나가는 쌀가마면 어떻고 길바닥에 지천인 돌덩인들 어떠랴. 누가 뭐래도 자식이란 바닥짐은 내 생의 든든한 보물이다. 남도 강변 전설 같은 바닥짐의 유래와 함께 내 바닥짐들의 흐믓함에 한껏 취해 보는 오후, 내 뱃길은 잔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