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식은 자는 등 마는 등 새벽에 일찍 인천국제 공항으로 향했다. 아침 8시 베이징행 항공기편을 타야했기에 새벽 5시반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 했다. 종식이 공항에 도착하고 잠시후 본부장과 김 피디 부장이 도착했다. 출국 수속을 끝내고 잠시 공항안 로비에 있는 커피숍에 앉았다. 본부장은 말을 꺼냈다. " 종식부장은 처음 평양가는 것이니 조금 마음이 그렇고 그럴 것이야. 나도 처음 평양 들어갈 때 상당히 긴장했지. 하지만 기자가 취재하러 들어간다 생각하면 오히려 독한 감정 나아가 도전정신이 생기더라고. 일반적인 외국 취재때와 별반 차이가 없어. 독특한 장소임에는 틀림없지만 통역이 필요없다는 것은 얼마나 편안한 것인가. 단 하나 평양에 도착하자 마자 그네들이 우리를 데리고 가는 장소는 정해져 있어. 바로 만수대 언덕에 있는 김일성 김정일 동상이지. 그곳은 의례적으로 가야하는 곳이야. 가서 그냥 같이 서있으면 돼. 굳이 허리 숙여 묵념을 안해도 크게 상관이 없어. 일전에 같이 갔던 기자후배들이 그곳에 가면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을 하던데 그런 상황은 아니야. 우리는 통일부의 북한인 접촉사실을 보고 했고 여기서 발생하는 것은 민간 사업자들에 준해 법이 적용될 것이야.티내는 행동만 하지 않고 우리가 진행하는 방송관련 사업만 잘 처리하면 되는 것이야. 종식부장 너 사람들 만나 행동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잖아. 아니 너 그런 것 즐기는 편 아니냐. 이전번 베이징가서 했던 것처럼 하면 된다는 것이야. 사실 종식의 걱정도 그랬었다. 간혹 뉴스에 나오는 북한 체제의 상징인 김일성 김정일 동상에 가서 어떻게 해야하는지가 아주 궁금했었다.
잠시후 김부장이 종식에게 한만디 더 걸친다. " 부장. 평양가면 우리들의 말한마디가 모두 기록됩니다. 물론 우리가 그쪽 안내원들과 같이 있을 때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숙소에서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는 모두 도청된다고 보면 됩니다. 그건 북한 관계자들이 한국에 왔을 때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니 숙소에서 말할때는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북한 아이들 흉보는 소리는 아주 좋지 못한 것이 될 수 있어요. 그것만 조심하면 될거예요." 종식은 김부장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 체제가 다르고 정권 형식이 다르며 지금은 아직도 준전시상황속 아닌가. 전쟁속에 적진의 핵심 심장부로 지금 들어가는 것이다. 종식은 깊은 숨을 들이쉰다.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한 항공기는 베이징 공항을 향해 날아간다. 종식은 항공기안에서 이번 평양 출장에서 해야할 일들을 다시 머리속에 정리한다. 그리고 성질 급한 본부장과 능구렁이 김부장 사이에서 최대한 중심을 잡으면서 일을 추진해야할 것이라는 것도 다시 한번 마음 먹었다. 특히 김부장의 경우 평양은 그에게 아주 친숙한 장소여서 자칫 오버하는 일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를 후배 기자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항공기는 잠시후 베이징공항에 도착했다. 베이징공항 라운지에서 평양으로 들어가는 고려민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베이징발 평양도착 항공기는 일주일에 세번 있다. 날짜를 잘 못 맞출 경우 베이징에서 이틀을 그냥 지내야하는 경우도 왕왕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기상악화나 항공기 사정으로 결항하는 경우에는 일주일 이상 북경에 체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오늘 그래도 무사히 평양행 항공기를 탈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잠시후 항공기 탑승이 시작됐다. 평양행 고려민항 항공기는 아주 작고 낡았다. 130명정도가 탑승할 수 있는 항공기이며 연식이 적어도 30년 가까이 된 소련제 일류신기였다. 종식은 1988년 서울 올림픽때 공항 출입기자여서 항공기에 관해 지식이 좀 있는 편이었다. 경제 사정이 아주 좋지 못한 북한 입장에서는 거의 폐기수준의 소련제 일류신기를 싸게 들여와 조금 수리해서 운항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항공기 복도도 낡아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난다.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자국도 많다. 국내에서는 구경도 못한 항공기이다. 북한 상황이 정말 좋지 않구나 하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어떻게 할 방도는 없다. 오직 이것 외에는 평양으로 갈 수 있는 교통편이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육로로 통해 올라가면 서울에서 3시간 정도면 평양에 도착하는데 말이다. 항공기는 예정보다 조금 늦게 이륙한다. 항공기는 낡았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부드럽게 이륙한다. 북한도 남한과는 달리 민항기 조종사는 전원 공군 전투기 조종사 출신들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그래서 비행 기술만은 세계에서 수준급이다라는 말을 공항을 출입하면서 들었다. 고려민항의 승무원들은 그래도 반듯한 외모에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머리속에 생각했던 무뚝뚝하고 뭔가 경계심이 가득찬 그런 모습은 아니였다. 간단한 음료수와 빵과 햄 등이 제공됐다. 아침부터 별로 먹은 것이 없어서인지 제공된 음식을 맛잇게 먹었다. 옆에 앉아있던 김부장이 말한다. "아이구 부장. 잘드시네요. 저는 이것 먹어본 적이 없어요. 별반 맛이 있게 생기지도 않았고 평양 출장가기 하루 전날은 항상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가 봐요." "저는 먹는 것은 어디가나 잘 먹습니다. 머리와 배가 따로 움직이니까요."
베이징을 출발한지 한시간만에 종식일행을 태운 항공기는 북한 영토로 들어섰다. 그는 창가를 통해 밖을 내다 봤다. 자세히는 보이지 않지만 북한의 영토안에 일단 들어왔다는 데 대해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한때 한반도 같은 민족 같은 나라의 땅이었는데 이 땅을 두고 남북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치열하게 겪었고 그리고 휴전선으로 남북이 갈라지더니 그이후로도 서로 대천지 원수처럼 살았던 남과 북 아니든가. 종식은 갑자기 그의 장인생각이 들었다. 종식의 장인은 북한의 황해도 사람이었다. 1950년 남북이 38선으로 나눠지고 여러가지 불길한 징후가 나돌던 때 장인은 어머니와 함께 서울에서 공부중인 막내를 만나러 고향을 떠난다. 장인의 아버지는 설마 무슨 일이 있을까하고 고향집에 있었다. 그런데 서울에 있던 막내동생은 상황이 심상치 않자 서울을 출발해 고향집으로 향했다고 한다. 서로 엇갈린 행보속에 한국전쟁은 터지고 그렇게 장인은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 결혼뒤 사위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장모를 통해 종식은 장인 집안에 얽힌 그런 비극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술 담배로 세월을 보냈던 장인은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고향을 한번 찾아가보고 싶다는 희망을 결국 이루지 못한 한을 품은 채. 종식은 갑자기 착찹한 생각이 들었다. 평양이 가까워지고 있는 듯 했다. 여느 항공기와 마찬가지로 기장의 멘트가 나왔다. 곧 착륙한다는 의미이다. 작은 항공기여서 많이 흔들렸지만 착륙은 비교적 순조롭게 이뤄졌다. 드디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것이다. 차례차례 보딩브리지가 아닌 사다리차를 이용해 순안공항에 발을 디딛었다. 디제이가 2000년 6월에 내린 바로 그 공항이다. 공항안에는 비행기가 한두대 밖에 없었다. 이동하는 버스를 타고 입국장 건물앞에 도착했다. 정말 작은 건물이다. 한나라의 수도에 있는 대표공항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하긴 하루에 입국하는 사람들이 그다지 없으니 건물이 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입국수속받고 세관통과하고 그렇게 출국장으로 나왔다. 입국수속을 하는 직원이나 세관직원들은 남한과 다름없이 얼굴표정이 굳어 있었다. 공항직원들은 세계 어느나라나 다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출국장을 나서니 몇몇 건장한 체격의 안내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본부장과 김부장과는 서로 아는 모습으로 비교적 반갑게 우리 일행을 맞아주었다. 우리 일행은 그들이 제공한 차량편에 나눠타고 먼저 만수대 언덕에 위치한 김일성 김정일 동상으로 향했다. 차안에서 본부장이 간단하게 인사를 시킨다. " 우리 일행을 소개합니다. 저 본부장과 김부장은 잘 아는 사람이고 이번에 새로 온 사람 소개하겠습니다. 정종식부장으로 우리 팀의 부장을 맡고 있고 평양은 이번이 처음인 사람입니다. 이번 출장에 북측 여러분의 많은 도움을 기대합니다." 본부장의 간단한 말이 끝나자 안내원가운데 한명이 말을 받는다. "본부장 선생 그리고 김부장 선생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십니다. 그리고 처음 온 정부장 선생도 힘든 여행 하셨습니다. 우리 북측 안내원들은 남측 북남협력팀의 평양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네다. 특히 새로온 정선생은 비록 우리쪽 음식 등이 맞지 않더라도 편안해 잘 지내다 가시기를 바랍니다. 저희들이 최대한 잘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북측 안내원은 북한 어투가 강하지 않았다. 한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도 자주 출장을 가는 이들이기에 남한 표준어를 숙지한 듯 생각이 됐다. 이들은 아마도 국가안전보위부 소속이리라. 남측으로 보면 국정원 직원들이라는 말이다.
차는 만수대 언덕에 주차했다. 저편에 20미터 정도되는 거대한 동상 두개 모습이 보인다. 김일성 김정일 동상이다. 동상 아래에는 꽃을 파는 여인들이 여럿 있었다. 당시에는 우리 일행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김부장이 공항에서 현지 돈으로 바꿨는지 여자에게 돈을 건네고 꽃다발을 건네 받았다. 그것을 가지고 동상앞으로 갔다. 오늘 아침 본부장의 말이 기억난다. 이건 의례적으로 외국인에게 요청하는 행위이니 그냥 받아드리면 된다는 말 말이다. 종식은 동상앞에서 그냥 서 있었다. 묵념은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싶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순간은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아 이런 경험도 해보는구나. 그런 심정이었다. 이른바 김일성 김정일 동상 참배가 끝나고 차량은 우리 일행이 머물 보통강 호텔로 향한다. 안내원이 말을 한다. "선생들. 일단 호텔에 여장을 푸십시오. 그리고 호텔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드시고 오후 2시부터 회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으니 짐을 방에 놓으시고 곧 식당으로 이동하겠습니다."
평양에는 두개의 큰 호텔이 있었다. 하나는 고려호텔이고 하나는 보통강호텔이었다. 둘다 대동강 변에 위치하는데 고려호텔은 상당히 큰 규모의 호텔로 국제 회의나 대규모 인원이 참석하는 행사때 주로 사용되는 곳이다. 남북 이산가족들의 상봉때 주로 이용되곤 한 호텔이다. 이에 반해 보통강 호텔은 고려호텔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당히 작은 규모이다. 그러나 조용한 것을 즐기는 외국관광객들이 즐겨 이용하는 호텔이다. 주변도 아주 조용해 아침 산책하기 좋은 호텔로 여겨진다. 아마도 조용한 곳에서 진지하게 회의를 나누고 싶다는 북측의 생각이 담긴 숙소배정이 아닌가 종식은 생각했다. 일단 호텔방에 짐은 내려 놓는다. 방은 깨끗한 시골 모텔을 연상케 한다. 침대에 작은 테이블 그리고 텔레비젼이 있었다. 화장실과 샤워시설도 조금 낡았지만 그래도 깨끗한 편이었다. 일행은 짐은 놓고 식당으로 향한다. 식당도 자그마했다. 점심은 백반종류였다. 우리가 남한에서 백반으로 먹던 그런 것이었다. 음식은 조미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 달지 않고 담백했다. 조미료에 익숙한 남한사람들에게는 조금 맹맹한 그런 맛이었다. 그래도 종식일행은 시장해서 인지 잘 먹었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잠시 누어있다가 오후 1시반에 회의자료를 들고 회의장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