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ZgAeYQW4Ea0
누가복음 15장 8~10절 [잃은 한 드라크마 비유의 의미]
8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오늘은~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 중 한 드라크마를 잃어 버렸다가
다시 찾게 되었다는 비유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잃은 한 드라크마 비유’는 지난주에 나누었던 ‘잃어버린 양 한 마리 비유’에 이어서 말씀하신 하신 것으로
예수님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온 ‘모든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하고 그리고 그들과 음식을 같이 먹으시는 것을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보고
예수님을 영접하기는커녕 도리어 회개하는 ‘모든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하는 예수님을 원망하는~
예수님과 상관없는 ‘바리새인과 서기관, 이들과 같은 자들’에게
예수님이 영접하시고 구원하시는 자가 누구인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 두 비유가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 각각의 비유의 말씀에 나타나 있는데~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은 후
5, 6절에 보면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였고
‘어느 여자가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은 후에도
9절에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했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은 후
7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하였고
‘어느 여자가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은 후에도
10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함으로~
⇨ ‘이 두 비유’는~
예수님은 회개하는 자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말하는 ‘같은 비유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 의미하는 것도,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 그리고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이~ 의미하는 것도
⇨ ‘스스로 죄인임을 알고 회개한 1절에 모든 세리와 죄인들’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99마리 양 같이 스스로 죄가 없는 의인으로 생각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구원과 상관없는 것을 말합니다.
지난주에 나누었던 것과 같이~
‘잃어버린 양 한 마리’는, 예수님이 구원하시는 자를 말하는데~
비록 사회적으로는 무시당하고 천대받고 소외 당했지만
예수님이 언약대로 오셨을 때,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한~
예수님 앞에 나온 ‘모든 세리와 죄인’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비유’에서 ‘잃어버렸다는 것’은 신앙을 버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에서 소외되고 무시당하고 차별받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전해드릴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 비유의 말씀’에서도
앞서도 나누었던 것과 같이 ‘잃어버린 한 드라크’가 의미하는 것이 ‘회개를 의미한다는 것’이~
10절 말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한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은~ ‘무엇을 잃어버리고 찾았다는 것’입니까?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잃어버리며 살다가
말씀을 통해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이 오셨을 때 참 회개가 이루어진 것을 말합니다.
⇨ 9절에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한 것은
자기가 죄인임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통해 참 회개가 이루어지니~
죄사함의 기쁨, 구원의 기쁨을 표현한 것이요,
10절에 그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일인 것입니다.
죄인이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이유는
⇨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목적이 바로
죄인을 용서하시고 죄 사함을 받은 자를 구원하셔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시는 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잃어비린 한 마리 양’과 같이 ‘어느 여자’ 라고 한 것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진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특히 종교지도자들의 위치에 있는 자들, 유대교에 빠진 자들은
오랜 기간동안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드라크마 9개가 의미하는 언약과 율법’은 가지고 있지만
세례요한이 그리고 예수님이 오셔서 가르쳤음에도
‘자기가 죄인이고 또 회개해야 한다.’는 이 ‘귀한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것을 깨닫지 못한 채
그렇게 예수님과 상관없는 자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드라크마’는~ 그 당시 은전으로 된 화폐인데, ‘한 드라크마’는 ‘노동자의 하루 품삯 정도’입니다.
그 당시 유대의 결혼 풍습을 보면 남자는 결혼할 여자에게~
⇨ ‘나는 일생 동안 변함없이 아내될 여인을 사랑하고 남편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것을 약속한다는 증표’로~
‘열 개의 은전 드라크마’를 꿰어서 결혼을 할 여자에게 줍니다.
그리고 여자도 남편이 될 남자가 주는 이 ‘열 드라크마’를 받으면
‘자기도 아내로서 일생 동안 남편을 존중하고 섬기겠다는 뜻’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자는 결혼하기 전까지, 또 결혼 후에도~ 이 ‘열 드라크마’를 지니고 있어야 하고
결혼할 때는, 남자에게서 받은 그 증표인 ‘열 드라크마’를 머리에 아름답게 장식으로 달고,
결혼식에 임해야 하고 그것으로 모든 증인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이 성립이 됩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열 드라크마’중에 하나든지 전부든지 잃어버리면
결혼에 합당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어 결혼은 취소가 되고 여자는 웃음거리가 되죠,
이 ‘열 드라크마’비유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 선민이라는 증표’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율법과 언약을 지키며 짐승의 피로 죄를 씻으며 그들의 죄를 대신 지실 메시야를 소망하며
메시야가 오셨을 때 그 앞에 나아가 죄 사함의 은혜를 받는 이것이 하나님의 선민의 증표입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런데 ‘모든 세리와 죄인’은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죄 사함의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었지만‘
스스로 의인이라고 자처한 99마리의 양으로 비유된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가르침을 듣고도 자신들이 용서받아야 할 죄인, 회개해야 할 죄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 사실을 깨들으려고 노력도, 그 한 드라크마를 찾으려고 노력도 하지 않고
결국 예수님과 상관없는 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다같이 이 말씀을 함께 봅시다.
마태복음 3장 11절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이 세례는 죄 사함의 세례입니다.
마가복음 1장 4절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누가복음 1장 77절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누가복음 3장 3절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누가복음 7장 48절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사도행전 2장 38절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요한일서 1장 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여러분, 복음은 ’심판받을 수 밖에 죄인을 그 죄에서 깨끗하게 하신다는 이것‘입니다.
이것을 세례 요한도, 예수님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이것이요,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는 것이~ 그리고 말씀을 통해 그 죄를 회개함으로 죄 사함의 은혜를 받는 이것이~
죄인에게 있어서 최고의 기쁨이요, 최고의 은혜요
이것이 세례요한,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시고자 하시는 것이요,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죄 사함의 은혜가 얼마나 기쁜지,
’한 드라크마를 잃었다가 다가 다시 찾은 이 여인, 즉 모든 세리와 죄인들‘의 모습을 비유한 것을 보십시오.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즐겼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복음이, 기독교가 세상의 종교와 별 차이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추구하고 구하는 것이 같습니다.
자기 마음속에 있는 죄악된 정욕을 채우기 위해 복음을 왜곡하거나 합리화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통해 누가복음 18장 13절에 나오는 세리처럼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는 고백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죄 사함의 기쁨이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가르치신 복음이 무엇인지
잘 깨달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