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대사
의상은 화엄종의 시조라고 해 조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의상에 대한 기록은 출가한 나이를 비롯해 그의 행보를 전하는데 다소 차이가 있다. 삼국유사를 중심으로 의상의 일대기를 소개한다.
의상법사의 아버지는 한신이며, 성은 김씨이다. 나이 열아홉에 서울의 황복사에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됐다. 얼마 안 돼 중국으로 가 부처의 교화를 보고자 해 마침내 원효와 함께 길을 나서 요동으로 가다가 국경의 수비군이 간첩으로 오인받아 수십 일 동안 갇혀 있다가 간신히 풀려나 돌아왔다.
영휘 초년(650)에 때마침 당나라 사신의 배가 본국으로 돌아가자 그 배에 편승해 중국으로 들어갔다. 처음에 양주에 있었는데 양주의 장군 유지인이 청하여 의상을 관청 안에 머무르게 하며 융숭하게 대접했다.
의상은 종남산 지상사를 찾아가 지엄을 만났다. 지엄이 전날 밤 꿈에, 큰 나무 한 그루가 신라 지역에 나서 가지와 잎이 널리 퍼져와 중국까지 덮었는데 나무 위에는 봉황의 둥지가 있어 올라가 보니 한 개의 마니보주에서 나온 빛이 멀리까지 비치는 것이었다.
꿈에서 깨자 놀랍고 이상하여 청소를 하고 기다리니 의상이 바로 도착하는 것이었다. 극진한 예절로 그를 맞이하면서 조용히 “내가 어제 꾼 꿈은 그대가 내게 올 징조였구려”하면서 방으로 들어오게 했다.
의상이 화엄경의 오묘한 뜻을 그윽하고 미묘한 데까지 해석하니, 지엄은 학문을 서로 이야기할 동반자를 만나 기뻐하며 새로운 이치를 터득했다.
670년 경에 신라의 승상 김흠순(김인문이라고도 한다)과 양도 등이 당나라에 갔다가 갇혀 있었는데, 당 고종이 군사를 크게 일으켜 신라를 정벌하려 하자 인문 등이 남몰래 의상에게 정보를 줘 신라로 들어가 알리게 했다.
의상이 함형 원년 경오(670)에 귀국해 이 일을 문무왕에 전하자 신인종의 고승 명랑을 시켜 임시로 밀교의식을 행할 단을 세우고 비법으로 기도하며 풍랑을 일으켜 당나라 군사들을 수몰시키고 국란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의상은 관음보살 진신을 만나 양양에 낙산사를 세웠다. 이어 의봉 원년(676)에 의상이 태백산으로 가서 조정의 뜻을 받들어 부석사를 창건하고, 제자들을 길러 신라에 불교의 진리를 널리 펼쳤다.
첫댓글 의상대사는 원효대사와 함께 신라 불교대중화를 꽃피운 대명사다.
원효가 백성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 교리를 책으로 편찬하고
강좌를 통해 대중화에 앞장섰다면
의상은 제자들을 길러 사상을 퍼뜨리는데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