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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현실
-인공지능이 발달한 미래를 다룬 <유령해마>(문목하)를 읽고 나눈 책대화 편집 보고서
광동고 2학년 1반 최유정 신예은 한정우 이수혁 chldbwjd5117@naver.com
알게 모르게 발전해가는 과학기술은 어느새 우리 옆으로 다가와 놀라움을 선사한다. <유령해마>는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전한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은 인간의 삶 전반에 개입하는 인공지능 결정체 해마와 발전된 기술로 인해 편안하고 안전해진 세계 속에서 불행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미정의 대비된 상황을 보여준다. 점점 서로의 삶 속에 녹아들며 따로 또 같이 실패를 겪는 과정에서 비파와 이미정은 성장한다. 이러한 면에서 이 소설은 미래 속 현실을 다루고 있다. 우리의 삶의 방식이나 주변 환경은 현재와 매우 다르지만 미래를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의 가치관, 생각, 감정은 현재와 다르지 않다. 발전해가는 미래에 대비하여 우리는 무슨 준비를 해야 하며 또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유령해마>를 읽으며 우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인공지능의 양면성
해마는 중앙이라는 가상세계에서 생활하고 행성 세계인 지구에서 각종 임무를 수행하는 존재이다. 해마는 여러 대의 인공지능을 연결해 인간 세상의 관리자 역할을 한다. 소설처럼 시간이 흘러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우리의 삶에 인공지능이 함께한다면 어떨까?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의 몸에 인공지능 칩을 심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기술들이 개발 중에 있다. 머지않아 우리의 삶에 깊게 녹아들어 있는 인공지능이나 기계들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한정우: 작품에 등장한 해마나 해마와 같은 과학기술이 실존한다면 어떨까? 소설 속에서 해마의 모습을 보면 여러 힘든 일을 도와주고 인간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잖아. 해마를 통해 범죄를 예방할 수 있고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인간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 같아. 하지만 해마가 사람들의 동의 없이 모든 인간의 삶을 지켜보는 모습에서는 개인정보와 사생활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아.
최유정: 나도 이에 동의해. 해마는 전자기기를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을 지켜보잖아. 반면에 인간은 사생활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걸 꺼려 하고. 소설 상에서는 인간을 지켜보는 것이 해마의 일이지만 인간의 동의 없이 일상생활을 수집하는 것은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이라고 생각해.
이수혁: 나는 해마가 등장하면 일상생활이 편해질 것 같아. 해마는 인공지능을 담을 수 있는 그릇같은 존재잖아. 그래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연구를 하거나 위험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대신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고 편한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드는 예산이 부족해질 수도 있을 것아.
신예은: 우선 장점은 해마 정도의 기술력이라면 나라의 경제가 좋아질 것 같고, 경제 면에서 선진국 대열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인공지능과 관련한 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가치관 갈등이나 윤리 등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아. 또, 인공지능에게 사람이 먹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아.
최유정: 인공지능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실업을 당하는 일이 많아지는 것처럼?
신예은: 응. 그래서 시대가 발전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인간의 삶에 너무 많이 개입하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
세상 모든 것에는 장점과 단점이 존재한다. 발전하는 과학기술 또한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줄 수 있다는 점과 그로 인한 생산력 증대로 나라의 경제가 부흥한다는 점은 발전된 과학기술이 가져다 줄 수 있는 큰 이익이다. 하지만 이로 인한 신흥 범죄가 생겨나고 그에 따른 법을 개정하는 데에 있어 갈등이 생길 수 있고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하게 되면서 실업률이 증가할 수도 있다.
도플갱어
살아가면서 도플갱어를 만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비파는 ‘백업’ 즉, 자신의 도플갱어를 만난다. 세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비파와 백업이 마주칠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 해마의 임무로 인해 비파와 백업이 임무를 교대할 시간이 지나버려 둘은 만난다. 이 과정에서 비파와 백업은 서로를 두려워하고 경계한다. 비파와 백업은 서로 자신이 진짜라고 주장하며 갈등한다. 만약 우리가 소설 속 ‘백업’을 현실에서 만난다면 어떨까?
한정우: 나는 백업을 만나면 조금 신기할 것 같기도 해. 백업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니까 내가 백업을 만나면 놀라는 것처럼 백업도 나를 만나면 놀랄 걸 생각하니까 웃길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백업이 나랑 같은 생각을 하지만 언제나 같은 판단을 내리는 건 아니잖아. 그래서 나랑 같지만 어떤 사건에서 다르게 행동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예측이 안되니까 좀 신기한 것 같아.
신예은: 백업을 만나면 무서운 감정이 먼저 들지 않을까. 자기 자신이 뭔지도 모르겠고 ‘누가 진짜인가’ 같은 자신에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들 것 같아. 또,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 같은 감정이 들기도 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
이수혁: 나는 백업을 만난다면 굉장히 당황스러울 것 같고 제대로 된 사고 능력이 불가능할 것 같아. 그리고 나는 둘 다 진짜가 맞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나 자체는 나니까 진짜이고 백업도 나와 몇 시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기억을 가지고 있잖아. 그래서 백업도 나처럼 똑같은 삶을 살아왔으니까 똑같은 생각을 하는 거고. 그래서 둘 다 진짜인 것 같아.
최유정: 나는 수혁이랑 생각이 좀 달라. 나는 내가 진짜라고 생각해. 일단 백업이라는 단어 자체가 데이터가 날아갈 때를 대비해서 저장해 놓은 거잖아. 그래서 나는 백업이 내 보조라고 생각했어. 또, 소설 속에서 비파가 백업을 가둬놓은 점이나 자기의 의지만으로 지정된 시간보다 현실에 오래 머무른 점에서도 백업은 그저 나를 대체하는 인공지능 정도인 것 같아. 그래도 실제로 백업을 만난다면 무서울 것 같아. 하지만 내 내면과 소통하는 느낌일 것 같아서 새로울 것 같기도 해.
나와 같은 존재를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나와 같은 기억을 가진, 하지만 현재의 생각은 다른 존재를 과연 나라고 할 수 있을까. 그와 자신 중 무엇이 진짜일까. 우리는 그들을 두려워할 것이다. 거울을 보는 느낌이지만 나와는 다르게 움직이는 그들은 우리에게 공포심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한편으로는 그 존재에 대해 흥미로워할 수도 있다. 자신 같지만 자신이 아닌 그 존재는 나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도 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친한 친구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될 수도 있다.
해마 vs 인간
인공지능은 감정이 없다. 0과 1로 이루어진 코딩 프로그램일 뿐이다. 소설 속 해마들도 개인적인 감정을 보이지 않는다. 슬픔이나 행복함 등과 같은 감정들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표정이나 말투, 행동을 보고 인식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들은 거짓말도 할 수 없다. 그렇기에 해마의 세계는 중립적이고 평화롭다. 반면 인간은 풍부한 감정들을 느낀다. 긍정적인 감정부터 부정적인 감정까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정이 요동친다. 때문에 어쩌다 겪게 된 실패에 좌절하고 절망하고 슬퍼한다. 심지어는 감정이 없다면 삶이 조금 더 편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인간과 해마 중 선택하여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최유정: 나는 인간보다 해마로 사는 게 편할 것 같아. 해마가 사는 세상이 일단 평화롭고 거짓이 없는 세상이어서 살아가기 편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 또 감정에 크게 휘둘리지 않고 원리와 원칙이 최우선이 되어서 살아가는 세상이 내 성격과 잘 맞을 것 같다고 느꼈고 해마는 기억이 리셋되어도 두 번째 생을 살 수 있잖아. 그것도 좋고 몸이 아프지 않다는 점도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어. 마지막으로 지금보다 발전된 기술을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해마로 사는 게 좋을 것 같아.
이수혁: 나도 유정이처럼 해마가 좋을 것 같아. 인간은 태어나기만 했지 앞으로 어떻게 살지는 자신이 정해야 되고 또 그 과정에서 실패가 있을 수도 있잖아. 그렇지만 해마는 정해진 삶을 살아가고 또 그래서 실패할 일도 없어서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마가 좋다고 생각했어.
신예은: 나도 너희와 의견이 같아. 사람은 슬픈 거 기쁜 거 다 느끼면서 살아가잖아.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 굉장히 오래 아파했고 지금도 그 기억을 떠올리면 마음이 안 좋더라고. 그래서 해마처럼 힘든 일이든 기쁜 일이든 아무 감정 없이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어. 또 그렇게 살 때 실제로 편할지도 궁금해서 해마로 사는 게 좋을 것 같아.
한정우: 나는 좀 의견이 달라. 나는 인간이 더 나은 것 같아. 해마처럼 완벽하게 살진 못하겠지만 인간이 살면서 실패도 하고 좌절도 겪고 그 과정에서 성장하는 것이 인간의 매력이라고 생각하거든. 또,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이나 즐거움 같은 긍정적인 감정들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쉬울 것 같아.
대부분의 친구들이 해마로 살아가기를 선택했다. 짜여진 틀 속에서 생활하는 것은 우리에게 평안을 가져다 준다. 실패할 위험이 적으면서도 끊이지 않는 일, 규칙적으로 주어지는 휴식 시간 등은 우리가 원하는 삶의 표본을 보여주는 듯하다. 또, 감정의 부재는 일상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다툼이나 갈등을 없애줄 수 있고 이에 따라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해마는 성장할 수 없다. 성장은 정해진 길을 벗어나야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며 실패의 쓴맛과 좌절을 원동력으로 삼는다. 인간은 실패하기에 또 성장하기에 위대하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은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해주고 나 스스로 나의 길을 선택할 수 있게 해준다.
너는 나에게 의미로 다가왔다
해마는 본디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존재이다. 거의 모든 인구를 지켜보고 있으며 그 중 어느 하나에 특별한 가치를 두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정이라는 한 인간에 비파는 의미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미정이 어릴 때 일어난 건물 붕괴 사고에서 비파가 이미정을 처음 인간으로 등록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후 이미정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어려운 삶을 살았다. 성인이 된 후에도 애정을 갖게 된 양세진이 죽으면서 불행의 굴레가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삶 속에서 이미정은 자신의 삶을 놓지 않았다. 이 모든 과정을 비파는 지켜보고 적극적으로 이미정의 삶에 개입하기까지 한다. 비파는 왜 이미정만을 특별하게 대했을까?
신예은: 비파가 거의 4천 명 정도의 삶을 본다고 했잖아. 근데 그런 사람들의 삶 중에서 이미정은 가장 고단한 삶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힘들게 살았어. 그럼에도 그 힘든 삶을 견뎌내고 있는 강한 이미정의 모습에서 비파가 이미정에게 애정이 생기고 이미정을 다르게 바라보게 된 것 같아.
이수혁: 나도 예은이의 생각과 비슷해. 이미정의 삶은 처음부터 혼자였잖아. 이미정이 어렸을 때 일어났던 건물 붕괴 사고에서도 자신의 힘으로 탈출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 깊어서 이미정을 특별하게 본 것 같아. 또, 내 친구 중에 자신과 친하지 않으면 아예 관심이 없는 친구가 한 명 있거든. 근데 그 친구가 다른 친구랑 수행평가를 준비하면서 다른 친구한테 많이 도움받고 그 친구가 수행평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거든. 이미정을 바라보는 비파의 생각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이미정과 함께 임무를 수행해 가면서 더 관심이 생긴 거지.
한정우: 세진이가 네트워킹 렌즈를 착용했다가 의문사했고 이 때문에 이미정이 베딘에 소송을 걸었잖아.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것도 일반인의 입장에선 쉬운 일이 아닌데 심지어는 소송을 이어나가면서 죽은 세진이를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어. 계속된 좌절에 포기해버리는 사람들이 많잖아.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이미정의 모습 때문에 이미정을 주시한 것 같아.
최유정: 이미정이 성인이 되기 전부터 힘들게 컸잖아. 건물 붕괴 사고도 겪고 보육원에서 자라고. 그런 면에서 처음에는 동정심으로 이미정을 지켜봤을 것 같아.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자신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이미정과 임무를 포기하지 않는 자신이 겹쳐 보이면서 동질감을 느낀 것 같아. 그래서 이미정을 특별하게 여겼다고 생각했어.
의미를 부여한다는 건 뭘까. 그것에 대한 애정이 생기고 자꾸 그것을 보게 되고 그것에 대해 궁금해지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하지만 그 중 우리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이다. 소설 속 이미정이 비파에게 동정, 응원, 동질감 등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듯이 몇몇 사람들은 우리가 강렬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그들이 한 번 특별해지고 나면 우리는 그들을 놓칠 수 없게 된다.
두려워할 수 있기에 용기 낼 수 있다
감정적으로 행동하지만 누구보다 강한 이미정의 삶에서도, 많은 인간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점차 감정을 느끼는 비파의 삶에서도, 우리는 무언가를 배울 수 있었다. 이미정과 비파는 아주 미숙하지만 그들에게서도 우리는 깨달음을 얻었다.
최유정: 나는 ‘그들은 해낼 겁니다.’라는 문장이 가장 와닿았어. 이 문장은 임무를 포기하고 중앙으로 돌아가는 비파에게 함수가 한 질문에 대한 답이야. 하지만 함수가 원하는 올바른 답은 아니지. 그래서 결국 비파는 리셋돼. 하지만 임무를 포기함으로써 헤쳐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는 문장이라고 생각해서 인상 깊었어.
이수혁: 나는 ‘네가 두려워 할 것을 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두려워하는 건 네 숙명이고 그걸 아는 건 그날의 네 두려움만은 충분히 알 수 있다.’라는 문장이 인상깊었어. 도입부 처음에 나오는 문장인데 이미정이라는 인물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야. 이미정은 끈기있게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 나가잖아.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미정의 모습을 본받고 싶다고 느꼈어.
한정우: ‘비극은 흔하기 때문에 비극인 것이다.’라는 문장이 나에게 와닿았어. 보통 비극이 닥치면 우리는 비극은 왜 우리에게만 일어날까? 라는 생각을 하잖아. 그런데 이 문장에서 비극은 ‘흔하다’라는 말을 통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은 찾아오는 것이라는 의미를 전달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많은 위로를 받았어.
신예은: ‘두려웠음에도 여전히 두려움에도 너는 다시 용기를 낼 것이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용기를 낼 기회를 만들어주는 무대에 불과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설령 원하는 만큼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세상이 답하지 않더라도 내 자신이 달라지리라는 걸 너는 알기 때문에.’라는 문장이 인상 깊었어. 모두들 두려우면 포기하기 마련이잖아. 근데 이미정은 두려움에도 자신이 달라질 것을 아니까 용기를 내고 한 발짝 더 나아가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서 가장 기억에 남았어.
두려움은 정말 무서운 존재다. 사람을 가장 약한 상태로 만들고, 극복해낼 힘을 앗아 간다. 모든 사람들의 삶에 한 번씩은 찾아오고 그들의 삶을 멋대로 헤집어 놓는다. 인간은 두려움을 거부할 수도 피할 수도 없다. 하지만 두려움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기도 한다.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갈 용기, 포기하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용기 모두를 준다. 소설 속 비파와 이미정은 두 가지 용기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임무를, 목표를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다. 이뤄낼 수 없다고 여겨지는 목표도 최선을 다해 이루려고 한다. 그들은 끝내 그 목표를 포기하지만 그것 또한 용기이다. 내가 지금까지 이뤄온 것들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용기. 그럼으로써 새로운 탈출구를 찾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이 소설의 많은 문장들은 우리에게 그러한 용기에 대해 깨닫게 해준다.
끝없는 투쟁
이미정의 삶에서 양세진은 어쩌다 발견한 네잎클로버 같았다. 외로운 이미정의 삶에 양세진은 활기를 불어 넣어주었고 이미정이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주었다. 그런 양세진에게 이미정은 네트워킹 렌즈를 선물한다. 하지만 얼마 후 양세진은 죽어버리고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느낀 이미정은 절망한다. 그녀의 삶에 또다시 거대한 불행의 파도가 밀려온 것이다. 이미정은 네트워킹 렌즈를 생산한 회사인 베딘을 고소하기로 결정하고 힘겨운 법정 싸움을 이어간다.
신예은: 베딘과의 싸움에서 계속 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미정이 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일단 나는 혼자였던 미정이 자신과 같은 처지인 세진을 만나 서로 많이 의지했잖아. 그런 사람을 허무하게 잃고 나서 베딘에게 앙심을 품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베딘의 성공을 막고 세진이의 복수를 하기 위해 싸운 것 같아.
최유정: 겉으로는 정의를 위해서 더 이상의 피해자를 만들지 않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은 세진이를 위한 복수 때문이겠지.
한정우: 나는 양세진이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이 이미정의 원동력이 된 것 같아. 세진이에게 속죄하는 의미로 다시는 세진이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일을 겪도록 하고 싶지 않아서 베딘과의 싸움을 이어갔다고 생각해.
이수혁: 우리 현실에서도 대기업이 생산한 유해한 제품 때문에 억울한 피해자들이 생겨나는 경우가 있잖아.
최유정: 맞아.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떠올랐어. 이 사건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손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거나 질환을 갖게 된 사건이야. 이후에 대책도 베딘과 비슷해. 살균제를 생산한 기업에 대한 제재는커녕 피해자 구제 대책도 마련되지 않아서 피해자들이 직접 제조한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어.
신예은: 이 두 기업이 할 수 있었던 최선은 무엇이었을까?
이수혁: 먼저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나중에 조치를 취해서 안정화시키는 게 좋지 않을까.
한정우: 시중에 내려왔던 상품들을 걷은 후에 몽땅 폐기하고 이미 피해를 본 사람들한테는 치료를 도울 수 있는 복지를 제공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신예은: 나는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신기술 제품들이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대처 방안이나 법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
베딘과 이미정의 법정 공방은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다. 이러한 사건에서 피해자는 늘 소외되어 왔다. 그들은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또는 복수하기 위해 어떤 이유로든지 기업과 맞서 싸웠다. 소설 속 사건과 현실의 사건 모두를 이야기해보면서 우리는 기업의 사과와 대책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피해자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게 같은 일이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게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만드는 선택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B(birth)와 D(death) 사이에는 C(choices)가 있다.’라는 말처럼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진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여러 선택을 한다. 이러한 선택들은 책의 내용을 바꾸고 인물들이 겪을 미래를 바꾼다.
이수혁: 나는 이미정이 기업과 싸운 것을 결정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하는데 만약 이미정이 죄책감을 덜고 조금이나마 더 자유롭게 살았다면 스트레스나 우울증 없이 편하게 살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했어.
한정우: 난 이은하가 전쟁 중인 스발바르에 취재하러 갔을 때 자신이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총을 쏘지 않은 것이 결정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해. 이 선택이 비파가 이은하를 자신의 임무에 대한 해답으로 고른 이유인데 만약 이때 이은하가 상대방을 쐈다면 비파는 이은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자기 혼자 임무를 해결하거나 다른 사람을 찾았을 것 같아.
신예은: 나는 양세진에게서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보고 도와주는 것이 결정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이미정이 양세진에게 네트워킹 렌즈를 선물했고 양세진은 그 렌즈 때문에 죽은 거잖아. 만약 이미정이 렌즈를 선물하지 않았다면 둘은 서로 의지하고 더욱 행복하게 살게 되어서 소설의 분위기가 아예 바뀔 것 같아.
최유정: 나는 비파가 백업을 가두고 나서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에 백업을 풀어주지 않은 것이 중요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 만약 백업을 가두지 않거나 빠른 시일 내로 풀어주었다면 비파는 중앙 세계와 행성 세계를 오가면서 순조롭게 일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책의 결말은 바뀌지 않을 것 같아. 비파가 리셋되는 결말은. 왜냐하면 사람을 중앙에서 쫓아내라는 임무는 중앙세계와 현실 세계를 오가며 수행할 수 없으니까.
이미정이 총을 쏘지 않은 것, 렌즈를 선물한 것, 베딘과의 싸움을 이어나가기로 결정한 것은 결국 미래의 이미정을 만들어냈다. 해마가 자신의 백업을 가둬놓은 것도 리셋되는 결과를 일으켰다. 소설 속 인물의 선택은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다양한 선택들을 오직 비파의 눈을 통해서만 바라보았다. 비파의 관점으로 선택들을 해석했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가 이 소설을 비파의 눈이 아닌 다른 인물의 눈을 통해 바라보았다면 어떨까?
이수혁: 나는 ‘주인공인 비파가 인간이고 이미정이 해마다’라고 가정해봤어. 이런 가정에서 어떻게 보면 초반에 인간이 해마를 구한 거잖아. 보통 행성 세계에서는 해마가 인간을 구하는 게 일반적인데 말이야. 그랬을 때 나는 비파라는 인간이 이미정을 바라봤을 때 신기할 것 같아.
최유정: 궁금한 게 있는데 이미정이 해마가 되고 비파가 인간이 된다고 했잖아. 그러면 둘의 성격은 그대로 가는 거야?
이수혁: 만약 둘의 정체가 바뀐다면 비파는 좀 더 인간처럼 감정을 많이 가지게 되고 이미정은 해마지만 인간성을 더 띠는 해마로 바뀔 것 같아. 기본적인 성격 설정은 같지만 원래의 스토리의 영향을 받는 거지.
한정우: 그렇구나. 예은이는?
신예은: 나는 주인공이 양세진으로 바뀐다면 이미정과는 또 다른 지금까지 살아왔던 힘들었던 삶들 그리고 3천원을 주인 몰래 숨기기까지의 심정과 양세진에게 이미정이라는 사람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할 것 같아. 또 삶을 마감하기까지의 양세진의 일생이 그려질 거야. 그래서 분위기는 양세진의 생처럼 무거운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
주인공이 바뀐다면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이는 우리 개개인의 삶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같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은 인물마다 모두 달랐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지만 생각, 가치관, 성격 등이 모두 다르다. 우리는 자신과 아주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들과 어울리며 선택하고 기대하고 좌절한다.
<유령해마>를 읽으면서 발전된 미래도시의 모습을 약간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게 될 미래를 미리 체험해 보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현재 우리의 삶에 대한 철학도 얻을 수 있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 끊임없이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등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이 들어 있었다. 각자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며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또, 곧 맞이하게 될 미래를 대비하여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알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