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11. 값) 별 고을을 찾아서, 나를 찾아서
곽선희
봄이 오려니 무슨 심술인가 바람이 몹시 불어댄다. 파마에 이어 염색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예닐곱 살때 살던 성주 월항이라는 곳을 향했다. 월항초등학교가 보여 속으로 '아!' 라고 탄성을 질렀다. 서울이 고향인 엄마 아버지를 따라 이 시골로 이사를 온 건 어쩌면 너댓살 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처럼 바람이 부는 날 언덕을 올라 학교 갈 적에 유난히 세게 부는 바람으로 날아 갈 뻔 했던 기억이 있다. 논두렁에선 거랑에서 올라 온 수달인지 무엇인지 눈만 빼꼼이 뜨고 작은 짐승이다. 만약 큰 짐승이고 사나운 눈으로 쳐다보았다면 기절을 했을 것이다. 예순 중반을 맞아 이곳을 밟게 되다니 새록새록 그때 일들이 되살아난다.별 고을[星州]을 만나고, 나를 만나러한다.
그동안 나는 허송세월을 보냈나? 뒤돌아보면 온전히 나를 위한 삶은 없는 듯하다. 자라며 형제와 우애 있게 지내려 했고, 부모의 눈에 안 벗어나려 조심하고 나가서 주변을 먼저 생각하였다. 결혼해선 더군다나 온통 집안 식구들을 챙기느라 어느 듯 이렇게 할머니가 되었다. 나 자신은 없었던 세월이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저마다 삶의 테두리에서 살다 머리카락이 센다.
아프다는 핑계로 같이 그곳으로 가려던 그녀는 주문한 초상화도 다 그려졌는데 화가 A씨와의 약속 펑크를 내었다 하였다. 또 정신건강을 상담해준 B씨에게도 약속 펑크를 내어 좋은곳을 안내해 바람을 쏘여 주겠다고 하여 나를 아주 곤란하게 만들어 버렸다. 하기사 마음을 먹어도 가고 싶다고 다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야 가는 것이고, 때론 일이 수가 틀릴 수도 왕왕 있는 것이 인생사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녀를 위한 배려였는데 쉽게도 취소해 버리는 그녀를 생각하니 이건 예의가 아니다 싶었다. 누구를 돌보는 일은 밑도 끝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처음부터 거절하고 끼리끼리만 어울리는 행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등단지(登壇誌)가 같은 ''할미꽃 편지'' 라 부르는 그 시인에게 ''성주에 다다랐고 한개마을을 돌아보고 있으며, 점심식사 후에 전화를 하겠다.'' 고 하였다. '' 약속장소인 성밖숲에서 그럼 만납시다.'' 하고 전화를 놓았다. 그녀는 그 단체카톡에서 고향 성주 얘기를 자주 했다. 그럴 때마다 단체카톡 사람들에게 밝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반가운 척 ''나의 고향입니다.'' 라고만 했을 때 무척 반가워하였고, 꼭 놀러 오라고 신신당부 했다.
친척도 연고도 없는 이곳이다. 그래도 옛날이 생각나서 한개마을 고샅길을 따라 걸으니 마음이 평온해져 왔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돌담에 초가지붕과 기와지붕이 오손도손 잘 어울려 옛모습을 잘 간직한 아름다운 곳이었다. 큰 나루 또는 개울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한'은 크다, '개'는 개울이나 나루를 의미하는 순우리말이다. 성산이씨집의 집성촌으로, 성산이씨가 처음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 세종 때 진주목사를 지낸 이우의 입향(入鄕)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17세기부터 과거 합격자를 많이 배출하였으며 응와 이원조. 한주 이진상등의 큰 유학자와 독립운동에 헌신한 다계 이승희 등의 인물을 배출하였다 한다. 또한 마을의 전통 한옥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토석담이 잘 어우러져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은 마을이었다.
이어 세종대왕자태실(世宗大王子胎室)을 방문하였다. 잘 포장된 길을 내달렸다. 옛 모습은 아랑곳 없었다. 계단을 오르며 우람한 나무들 쌓아놓은 돌무더기, 청솔모인지 다람쥐인지 언뜻언뜻 비치던 모습이다. 그 옛날의 향취가 문득문득 바람 따라 흘러내렸다. 묵묵히 걸으며 간간히 들려오는 얘기를 들으니 모두가 외지인들 같았다. 일요일인데 오면서 느낀점은 거리에 사람들이 너무 없다. 식당문이 굳게 잠기었고, 한산한 풍경에 길을 물어도 모른다고만 하였다. 혹은 '' 이곳 사람이 아니다.'' 라는 대답만 돌아오니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을 안겨 주었다. 그나마 왕자들의 태( 胎)가 모셔진 곳 길지의 기운으로 무병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이곳일 뿐이다.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하면 태를 봉안하는 곳으로 성주의 세 곳에 있다. 월항면 인촌리의 세종대왕자태실과 가야산 북쪽 자락인 가천면 법림산의 단종대왕태실 그리고 용암면 봉산의 태종대왕태실 중에 월항을 찾으니 무조건 좋았다. 예로부터 태는 태아에게 생명력을 부여한 것이라 여겨 소중히 다루었는데 왕족의 경우에는 국운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여겨 항아리에 담아 전국의 명당에 안치시키는 방법으로 처리하였다. 태실이 군집을 이룬 전국 최대의 태실 문화유산인 이곳을 방문해 그 역사를 공부하며 태어날 후손을 위해 기도하니 뿌듯하였다.
이곳에서는 안내자가 없고 여행자를 위한 화장실이 주변에 갖추어 진 곳도없어 못내 아쉬웠다. 마시는 차와 엿을 파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소변 보는곳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지 않아 빚어진 결과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제가 안내소에 여행 안내지를 가지러 가는 사이 안내를 잘못하여 이런 불상사가 벌어졌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하고 깊은 사죄를 하고서야 겨우 소란이 멈추었다. 태를 항아리에 담아 안치한 명당인 이곳에서 방문객을 배려한 시설을 갖추어야 함이 당연할 것이다. 친절히 안내하고, 배려했다면 큰소리치지 않고도 충분히 넘어 갈 일이다. 이곳에 머물며 아름다운 유산을 물려주는 그들은 조용한데 세속에 사는 사람들은 세상 끝 날 때까지 아직도 시끄러울 것인가?
이제는 성밖숲으로 향했다. 그녀는 손자국이 난 송편과 음료수를 차에 먼저 실어주며 500년 넘은 고사 직전인 왕버들 노거수를 소개했다. 기념촬영을 하고 이제는 흔적이 없는 그 앞을 흘렀던 강을 서로 미미강이라 불렀다. 비가 많이 내려 강물이 불었지만 학교에 결석하기 싫어 강물을 건너려 하니 동네 두 오빠야가 손잡고 건네주었다. 끝내 손을 놓았으나 무서워서 물살에 떠내려갔다. 혹시나 하고 뒤돌아 본 그 오빠야는 나라를 위해 많은 업적을 남긴 대구시장까지도 지낸 그분이다. 건져주어 끈질긴 이 목숨을 여태 이어가고 있다 했다. ''잘 살아줘서 고맙다. 그때 죽었으면 얼마나 죄책감에 시달렸겠는가.'' 하고, ''늘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는 눈물겨운 이야기를 들었다. 상대를 생각하는 어린 학생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또 생명을 살리는 일들은 늘 두고두고 회자된다. 그 이야기 이야기들을 시로써 또 도움을 받아 노래가사에 실어 풀어가는 그녀의 황혼이 아름다워 보인다. 저마다 맡겨진 일상속에서 시간을 내어 역사를 돌아보는 이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활력을 넣어주는 시간이 되었다.
성밖숲 그 자리에 서면 어릴 적 소풍가서 부모님이 싸주신 귀한 김밥과 삶은 계란을 서로 나누어 먹고 희안한 사이다도 맛있게 먹던 일 모래사장에 둥글게 앉아 수건 돌리기 하고 보물찿기 하던 일. 교련복 입고 훈련 가던 일.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너 때문이야.'' 고성방가 우리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그것은 고목처럼 메말랐던 나의 마음에 생명의 새싹을 움트게 했다.
어릴때는 몰랐던 유적지가 있는 나의 고향. 성주 월항초등학교. 그곳은 나의 아련한 인생 시작에서 배웠던 곳이다. 성주 ''한개마을'' 의 그곳은 너무나 초연하고 포근하였다. 아직도 ''북비고택'' 이 그 이름값을 한다. ''세종대왕자태실'' 외에도 세 군데나 태를 묻은 길지를 지키는 것이 성주의 이름값이다. ''성밖숲'' 이라는 특이한 이름으로 그 시인의 생명을 연장한 사연은 헛되지 않고, 시인이 되었다. 나 또한 어린 날 이곳 별 것이 많은 별 고을 [ 星州 ] 를 찾은 것은 내 인생에서 오늘 나들이 한것으로 마치 나의 버킷리스트처럼 생경스럽다.
(20230221)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청림숲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