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곱슬머리
곱슬머리 소년
신근식
옹성마당에서
골목길 쭉 접어들면
마당 넓은 집이 있었다.
그 집의 장남으로
똘똘하던 소년
초록빛 꿈을 꾸던 가당찬 의지
아버지는 성내 이장님
고운 얼굴 어머니
따사롭게 이어지는
그 정 속에서
소년은 점점 성장해 갔다.
수개월 지난 후
다시 만난 그 소년은
미더운 중년 신사가
되어져 있었다.
위의 글은 초등학교 친구가 6학년 4반까지 전체 240명(한 반에 60명) 모두 저마다 개성을 담아 "‘영산(靈山) 아이들 회상(回想) 노래"’라는 시집에서 가져온 글이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앞에는 남산이 있고 뒤로는 영축산이 있으며, 동쪽에는 함박산이 자리 잡고 있는 아늑하고 엄마 품 같은 곳이다. 연대(年代)를 알 수 없는 석빙고와 향교, 함박약수터 등 고만고만한 고적이 많은 마을이다. 성내(城內)에 있는 옹성마당 골목에 내 어릴 때 살던 집이 있었다. 아버지는 성내리 이장이다. 영산면에는 네 개의 리(里)가 있다. 성내리, 서리, 동리, 구계리다. 부모님은 열심히 사셨다. 아버지는 이장을 하면서 몇 번을 연임 했다. 살아 계실 당시도 이장이었다. 정말 이장을 잘하여 인기가 좋았다. 아버지는 이때 살림이불었다고 한다.
그 뒤로 방앗간 (정미소 )을 인수하여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덕택에 우리 사 형제는 별 어려움 없이 모두 대학까지 나왔으나 아버지가 바라는 그런 뛰어난 인재는 되지 못 하였다. 아버지는 ‘집안의 내력이 대기만성형'’이라고 말씀하면서 속정은 있는데 애정표현은 잘 하지 않아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여 지금 말로하면 꼰대다.
사 남매를 학교만 보냈지 열심히 사시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가족끼리 여행 한 번 못갔다. 그런 아버지는 지독한 곱슬머리고 어머니는 직모다. 아버지는 '집안의 내력이 곱슬머리로 불평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어릴 적에 들었다. 맞선 볼 때면 당신의 바라는 성향이 맞지 않아 수차례 선 보고도 짝을 찾지 못하여 결국 신상명세만 보고 얼굴도 보지 않고 결혼 했는데 바로 나의 어머니다.
곱슬머리는 유전인가 보다. 아버지가 곱슬머리, 나도 곱슬머리, 큰딸도 곱슬머리, 외손자도 곱슬머리다. 우리 가족 중에 곱슬매가 많다. 내가 곱슬머리 싫어했듯이 큰 딸도 곱슬머리를 싫어했다. 여자머리가 기다랗게 찰랑 찰랑 거리는 모습을 어릴 때부터 동경해 왔으리라. 그러나 언젠가는 고민하는 모습도 본적이 있다. 직장 다니고, 결혼하고, 어른이 되어도 머리 고민은 끊임없이 있었을 것이다.
부선망독자(아버지가 없는 외동아들)로 6개월 방위로 일찍 군대생활을 끝냈다. 중학교 때 주민등록등본을 발급 받으러 면사무소에 갔다. 아무리 정확한 주소를 이야기해도 우리 가족 등본에는 없었다. 이상하다고 아버지에게 물었는데 사실 "큰집에 양자를 갔으니 그 주소에는 없고, 큰집 주소로 되어 있다"고 했다. "그 대신 군 혜택을 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때는 잘 몰라서 "나를 우리 집에서 버렸다"고 울고불고 했던 때가 기억난다. 그 때는 젊어서 군복무기간을 단축하게 한 고마움을 몰랐던 것이다.
1980년 시월 십일 대학도서관에 취직 하게 되었다. 입사 첫날 교직원 예배시간에 인사 하게 되었는데 빡빡머리에 양복 입은 모습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에게 꽤 우스꽝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그 뒤 직장생활 하는데 지장이 있을까 봐 가발을 샀는데 직모라서 덮어쓰니까 얼굴이 본래 모습보다 달라졌다. 어릴 때 동경하던 머리가 되어 있어서 내가 보기에도 잘 생긴 총각이 되어 있다. 이렇듯 머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작용했다. 그렇다고 계속 쓸 수는 없었다. 가발 관리가 꽤나 어려웠다. 비가 와서 젖거나, 더워서 땀이 흐르면 머리가 쭈뼛쭈뼛 서는데 정말 거추장스러웠다. 할 수 없이 가발을 안쓰니 본래의 모습으로 자연히 돌아갔다.
데이트할 때 머리를 만지니까 곱슬머리가 보기 싫어 이발소에 가서 드라이로 하여 머리카락을 펴서 자주 나가곤 했는데 매번 드라이비용도 들고, 머리에 열을 가하니까 머리카락이 힘이 없어서 갈수록 머리는 딱 붙었다. 신경이 많이 쓰였지만 지나고 보니 곱슬머리가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이 든다..
고종사촌을 볼 때 너무 직모라서 머리카락이 쭉쭉 뻗어 고슴도치 모양으로 빗질로 정돈이 잘 되지 않고, 조금만 머리가 길면 보기가 싫어서 자주 이발 해야 되는 불편을 호소한 적이 있었다. 곱슬머리는 빗질이 가는대로 빚으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 진다. 하루하루가 쌓여서 오늘날 내가 되는 것처럼 오늘도 거울 보며 빗질하여 단정하게 만드는 내 모습도 어느덧 세월이 흘러 곱슬머리 소년에서 장년이 되어있다. 우리네 인생도 빗질하는 대로 풀리면 좋겠다. (2022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