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카드/신미균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가득 안은 플래카드가
그 바람을 다 감당하지 못해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버티다가는
갈기갈기 찢겨져
날아가 버릴 것 같은데
어떤 사람이
사다리차를 타고 올라가
커다란 구멍을 뻥, 뻥,
뚫어주었습니다
보낼 건 보내고
버릴 건 버리고
감당하지 못할 바엔
가슴에 구멍 몇 개 뚫는 것도
나쁘진 않습니다
거리에 여기저기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건 그만큼 할 말이 많다는 것이다. 그걸 보며 그게 누군가의 가슴처럼 답답함을 안고 있다고 생각한 이 몇이나 될까. 그곳에 적힌 문자의 뜻을 떠나 플래카드는 바람이 오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다. 그러던 어느 날 조금 더 거센 바람 불고 간 뒤 거리의 여기저기 널려 있는 플래카드 찢어진 흔적을 본다. 그리곤 모두들 생각할 것이다. 그것은 다만 바람을 참지 못해 찢겨져 있다고.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은 찢겨지기 전까지 거기 적힌 내용을 온몸으로 소리쳐 펄럭대고 있었을 것이니. 바람이 조금만 덜 거세었다면 그건 안전했을까. 그런데 그 바람을 견디고 건재한 몇 개 플래카드는 있느니. 그건 바람을 여유로 감싸 안고 허공에 당겨져 팽팽히 글자를 빛내고 있으니. 웬일일까 살펴보면 그 플래카드 몇 군데 뻥, 뻥 구멍이 뚫려 있다는 것을. 그 몇 개의 숨구멍이 플래카드 전체를 온전히 지키고 있었던 것을. 그렇다. 우리 사회 우리 삶도 그렇다. 나라 일도 그렇겠지. 너와 나의 시원한 소통, 대통. 그게 중요한 것. 이제 3월 오면 우리 사회 새로운 발길로 넘치리. 진정 새로운 걸음은 막힌 곳 뚫어 작은 구멍 내는 노력으로 이어지는 것. 시인·한남대 문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