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탄생"관련성지
24. 순위도 ~ 좌포도청
1846년 5월14일. 김대건 신부는 서해 해로를 통한 선교자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해 주 교의 지시를 받고 교우들과 함께 마포를 출발
황해도 옹진군 옹진반도 남단에 있는 섬으로 성인 김대건(金大建) 신부가 체포된 곳. 김대건 신부는 폐레올(Ferreol, 高) 주교로부터 서해(西海)를 통한 성직자영입로를 개척하라는 명을 받아 1846년 5월 14일 7명의 교우와 함께 마포(麻浦)를 떠나 인천을 거쳐 백령도까지 갔고, 그 곳에서 중국 어부들과 접촉하여 6통의 편지와 2통의 지도를 중국 교회에 전달케 하고 귀한 도중 순위도에 정박했다가 6월 5일 체포되어 등산진(登山鎭), 해주(海州) 감영을 거쳐 서울로 압송되어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1846년.6월 5일. 체포됨
한편 청나라에서는 아직 입국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대기하고 있 는 메스트로 이 신부와 최양업 부제가 본국에서 오는 연락을 초조하게 고대하고 있었다. 고 주교의 밀명을 받은 김대건 신부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마포 나루를 떠났다.
1846년 4월, 교우 임성룡의 배를 타고 연평도 앞바다를 지나 등산곶에 이르렀다. 마침내 백령도 부근에서 그물을 치고 조기잡이하는 중국어선을 만나 중국말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눈치를 보았다.
그들이 믿을 만한 사람임을 확인하고 준비해 간 편지와 지도를 요동반도와 마카오의 연락장소로 전해 주도록 부탁했다. 김대건 신부는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매우 기뻐하면서 배를 돌려 돌아가자고 했다. 그런데 천만뜻밖에 등산곶 일대를 감시하는 군교들이 중국어선을 몰아내기 위해 배를 빌려 달라고 쫓아 왔다. 당시의 국법으로 양반 소유물을 정부에서 징발할 수 없게 되어 있었으므로 김대건 신부는 자기 배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거절했다.
여기서 시비가 벌어져 김대건 신부는 폭행을 당하고 옹진 감옥으로 연행돼 갔다. 1846년 음력 5월 12일 밤의 일이었다. 최양업 부제와 이 메스트로 신부 영입을 위해 위험으 무릅쓰고 연평도 조기잡이 배에 접근해 편지와 지도를 전하고 기뻐하던 김대건 신부는 체포됐다.
순위도의 부산진으로 연행된 김대건 신부는 옹진, 해주 감옥을 거쳐 마침내 서울로 압송되었다.
1846년 6월9일. 해주 감영으로 압송 .
1846년6.21일. 서울 포도청으로 이송 .
좌포도청
포도청의 기능은 좌포도청과 우포도청이 독립적으로 편제되면서 각각 한양의 동·남·중부의 좌변과 서·북부의 우변으로 나누어 포도 등 치안에 관한 일을 관장했다. 포도청은 조선 중기·후기에 도성의 치안·경찰에 관한 업무를 관장했는데, 포도대장을 집정자의 심복으로 임명하면서 체제와 권력을 유지하는 토대가 되었다. 1894년(고종 31) 근대식 관제개혁에 따라 경무청으로 개편되면서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