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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애가 묻어나는 아이
우리 사회는 수많은 가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성의 기본은 바로 가정 교육이지요. 아이의 사회성을 키워주고 싶다면 양육자의 따뜻한 사랑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선생님 우리 아이는요. 저도 손을 뗐어요. 어릴 때부터 어찌나 말을 안 듣는지요. 안아주려고 해도 버티기만 하고 제가 정말 힘들게 키웠어요. 선생님도 저처럼 많이 힘드실지 몰라요. 정말 지독한 개구쟁이이거든요. 제 아들은 기질이 워낙 특이해서 그런지 정말 제가 손을 쓸 수가 없어요. 고생스러우시겠지만 우리 아이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 ”
당황스럽게도 입학식 날 첫 대면에 이런 인사를 건네는 학부모도 있습니다. 이 학부모는 입학식에 제대로 집중하지 않은 자신의 아이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고 짜증 나 있었습니다. 아이는 엄마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빈 교실을 빙글빙글 계속해서 돌고 있었지요. 교실에서 뛰어다니면 위험하니 가만히 있으라는 제 말에도 아이는 도끼 같은 눈으로 저를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학부모의 말과 아이의 눈빛이나 행동에서 이 학부모가 아이를 양육하며 그동안 겪었을 고통이 느껴졌습니다. 30분 남짓 보았을 뿐인데, 제 눈에도 아이는 상당한 개구장이로 보였기 때문이지요. 이 학부모가 왜 이런 말을 첫날부터 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 학부모의 말 중 어떤 부분은 틀렸습니다. 이 아이의 기질이 특이한 것은 맞는 말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엄마가 손을 쓸 수 없다는 부분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질이 있습니다. 아이들도 각자 고유의 기질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아이가 가진 기질은 엄마가 마음대로 바꿀 수 없지만 아이의 인성만큼은 후천적으로 충분히 교육할 수 있습니다. 인성은 결코 아이의 기질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천방지축으로 날뛰거나 모나고 다듬어지지 않는 아이의 인성은 그 아이의 천성이 아닙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가정에서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인성을 결정짓는 것은 절반 이상이 양육자의 사랑입니다.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를 관찰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한 육아 전문 프로그램에서 우리는 문제 아이의 주된 원인이 다름 아닌 부모였다는 것을 많이 봐왔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아니 그 이후로도 자녀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주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양육자의 역할입니다.
♣ 아빠는 아이의 사회성에 영향을 미친다.
MBC에서 방영되었던 <아빠 어디가?>를 필두로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 요즘 심심치 않게 아빠 육아를 화두로 삼은 프로그램이 많아졌습니다. 엄마 없이 아이와 아빠 단둘이서 외딴 마을로 여행을 가거나 식사를 준비해서 밥을 먹지요. 평상시 엄마가 했던 목욕을 시키고 재우는 일들까지 아빠 혼자서 해결하며 생기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습니다.
태어나서 한시도 엄마와 떨어져 자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라 서운하거나 불안할 법도 한데 아이들은 아빠와의 시간을 너무나 행복한 모습으로 즐깁니다. 아이가 다치거나 아플까 봐 엄마는 절대 하지 못하게 했던 것들을 아빠는 허용해 주고요. 그러다 보니 예상치 못한 위기도 생기지만 아빠와 함께 이를 극복해 나가는 모습이 참으로 대견하지요. 이렇듯 아빠는 거침없는 도전의식과 모범심을 가르치기에 탁월합니다.
프로그램을 보면 처음에는 바쁘기만 했던 아빠와 서먹하고 어색하기만 했는데 어느새 아이들의 입에서 “아빠 사랑해요, 아빠 고마워요”라는 말이 흘러나옵니다. 이렇게 아빠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란 아이들은 아빠와의 대화가 자연스러워져서 훗날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이와도 평탄하게 지날 수 있습니다. “흥! 아빠가 언제 내 이야기를 들어준 적이 있어요”라는 가시돋친 말이 아이의 입에서 나올 리가 없으니까요.
아빠의 육아 참여는 아이가 학교에서 적당한 사회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입니다. 아빠가 지나치게 권위적이거나 칭찬보다 훈육을 많이 했다면 그 아이는 성인 남자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 남자 담임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 아이는 학교생활에서 편안함 내신 두려움을 느낍니다. 수학 문제가 어려워 선생님께 손을 들고 질문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권위적인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쉽게 남자 담임선생님께 질문하지 못합니다. 선생님에게 도움이 필요한 긴박한 상황임에도 쉽게 입을 떼지 못하지요. 담임선생님에게서 아빠의 권위적인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아빠가 아이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자주 표현하고 놀아주는 시간이 많았던 아이는 전반적인 학교생활에 자신감을 보입니다. 아빠와의 추억이 많은 아이들은 위기 극복 능력도 탁월합니다. 거침없이 벌레를 잡는 모습이나 전구를 갈아 끼워주는 모습, 엄마는 하지 못하는 못질을 척척 해내는 듬직한 아빠의 모습이 잠재적으로 아이의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주는 셈이지요.
특히 남자 어린이들은 확연히 아빠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수업시간에 거친 욕을 내뱉은 어린이에게 욕을 쓰지 말고 이야기하라고 지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우리 민수 부모님은 민수가 이런 말을 쓰는 걸 원하지 않으실 거야”라고 말했는데 아이에게 돌아온 답변은 놀라웠습니다. “저희 아빠도 욕 잘 써요. 남자는 욕도 좀 할 수 있어야 한 대요!”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를 우선적으로 잘 가르치는 것이 양육자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초등학교 입학 준비는 주로 엄마가 전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빠도 아이와 함께 초등학교 입학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는 무엇보다 든든한 자신감을 얻게 됩니다. 특히 환경 변화에 낯설어하고 적응 기간이 오래 걸리는 아이들일수록 아빠의 도움이 더욱 필요합니다. 아빠에게서 얻은 자신감은 학교 생활에서 유연한 사회성을 발휘할 수 있는 원천이 될 것입니다.
♣ 형제 자매와 사이 좋은 아이는 사회성이 남다르다
과제를 해결한 아이들에게 칭찬의 의미로 사탕을 나눠주는 일은 교실에서 흔합니다. 사탕을 나눠주면 신기하게도 받는 아이들마다 그 반응이 제각각이지요.
“ 선생님 저 이 사탕 싫어해요. 포도맛으로 바꿔주세요.”
“ 이거 싫어요. 왜 쟤는 포도맛 주고 저는 딸기 맛 줘요?”
“ 선생님 선생님이 주신 이 사탕이요. 제가 안 먹고 집에 가져가서 우리 동생한테 줄 거예요. 제 동생이 이 사탕 무지 좋아하거든요.”
뾰로통하게 불평하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동생에게 주겠다고 주머니 깊숙이 집어넣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아마도 후자는 가정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임이 틀림없습니다. 사랑을 받아본 아이가 사랑을 베풀 줄도 아는 법이니까요. 후자의 마음이 전자의 마음보다 예뻐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것입니다. 가정에서 형제자매와 사이좋게 지내는 아이들 대부분은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냅니다.
가정에서 형, 누나, 오빠, 언니, 동생들과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며 놀이를 하면서 갈등 상황도 대면해보고, 또 이를 해결해보기도 하면서 친구들을 기분 좋게 대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자연스럽게 배우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배운 관계 맺기의 중요성은 학교에서 사회성의 이름으로 그대로 발휘됩니다. 가정에서 나 혼자 텔레비전 채널을 독점하여 볼 수 없듯이, 교실 안에 있는 물건은 나만 쓰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눠 써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해서 그 말을 모두 내뱉으면 친구들이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고 있지요.
외동아이라고 해서 모두 그릇된 사회성을 발휘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입니다. 외동이기 때문에 더욱더 양보와 배려를 강조해서 가르쳤다는 학부모들도 많습니다. 이 경우에는 오히려 넓은 마음을 가진 아이의 모습으로 학교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외동인 자녀를 둔 부모는 아이에게 바람직한 친구관계를 맺는 방법을 조금 더 세심히 지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문제집 한 장, 영어 한 단계 레벨업보다 학교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관계 맺기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만약 문제집 한 장, 영어 한 단계 레벨업이 더 중요한 가치라면 우리나라의 학원의 존재 가치는 있어도 학교의 존재 가치는 없을 테지요. 우리의 소중한 자녀를 왜 굳이 학교에 보내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곳도 학습만 하는 곳도, 지식만을 습득하는 곳도 아닙니다. 상호작용을 배울 수 있는 곳입니다. 함께 공유하고 사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이 바로 학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