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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8.13.주일오전 예배설교
설교본문/ 창세기 43:16~34(구약69쪽)
설교제목/ <어색한 만남이 감동적인 만남으로>
서론/
오늘 주일오전 예배말씀은 <어색한 만남이 감동적인 만남으로>란 제목으로 전하고자 합니다. 다같이 설교제목을 두번 읽겠습니다.
<어색한 만남이 감동적인 만남으로.*2회.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 만남과 이별의 과정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만남이 잠깐 스쳐지나가는 만남도 있고, 어느 정도 유지되다가 헤어지는 만남도 있고, 평생토록 유지되는 만남도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엔 어색하고 서먹 서먹한 만남이었는데, 좋은 만남으로 이어져서 고와 낙을 함께 하는 만남이 되는 경우도 있고, 처음엔 좋고 기대되는 만남이었는데, 어색하고 보기조차 싫은 만남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만남은 주변에서, 가까이에서, 심지어는 가족속에서도 일어나는 만남의 형태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좋은 만남, 감동적인 만남, 위대한 만남, 고와 낙을 함께 하는 만남, 평생 잊지 못할 만남을 만들어가야 하고, 지켜갈 수 있는 믿음과 지혜와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흔히 우리 인생에서 세가지 중요한 만남을 말하는데, 부모님과의 만남, 스승과의 만남, 배우자와의 만남입니다. 왜냐하면 이들과의 만남은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잘 만나면, 엄청나게 유리한 조건을 갖출 수도 있고, 선생님을 잘 만나면 시야를 넓힐 수 있고, 아내를 잘 만나고 남편을 잘 만나면 인생이 크게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세 가지 만남보다 더 중요한 만남이 하나님과의 만남이요, 예수님과의 만남이요, 성령님과의 만남이요, 교회 식구들과의 만남이라고 봅니다. 정말 수많은 만남들이 있지만, 최고의 만남, 위대한 만남, 가장 행복한 만남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은 요셉과 요셉의 동생, 그리고 요셉의 형들의 감동적인 만남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만남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안에서 믿음의 한 형제가 만들어낸 것인데, 우리도 잘 배워서 우리 가정에서, 우리 교회에서 이런 감동적인 만남들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면서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길 바랍니다.
본론/
1.어색한 만남을 감동적인 만남으로 준비하는 요셉
먼저 요셉은 아주 어색한 만남을 감동적인 만남으로 준비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37장부터 요셉과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고 있는데, 오늘 내용이 클라이 막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요셉과 10명의 형들의 만남은 처음엔 아주 어색한 만남이었습니다. 이런 어색한 만남이 몇 개월 시간차를 두고 진행되었습니다. 요셉이 애굽나라의 총리로 있을 때, 심한 기근으로 애굽나라에 양식을 사러왔을 때부터 이들의 만남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은헤와 섭리가운데 애굽 나라의 실세 총리로 발탁되어 7년 풍년과 7년 흉년을 총괄하며 높은 자리에서 애굽 나라 살림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요셉의 자리는 바로왕의 다음 자리로, 모든 권한을 위임받았기에 왕와 같은 권세를 떨치고 있었습니다.
흉년 5년차 어느날에 어디서 많이 보았던 10명의 형들이 양식을 사러온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열명의 형들이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 자기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는 것을 보고, 20년전에 꿈이 이루어진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요셉은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형제들의 죄악된 삶을 회개하도록, 가족들을 굶주림에서 살리기 위해서, 가족구원을 위해서 , 감동적인 만남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셉이 자신을 은20에 팔아버린 형들을 애굽총리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너무나 어색한 만남이 아닙니까? 미움과 증오와 불쌍한 마음이 오락가락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요셉은 아주 침착하게 자신이 요셉인 것을 철저히 감추고 감동적인 만남을 준비해나간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과의 어색한 만남을 감동적인 만남이 되기 위해서 준비한 것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막내 아우를 데리고 오라는 것이고, 둘째는 형들의 곡식 자루에 곡식값을 도로 넣어준 것이고, 셋째는 형들이 과거의 죄악을 생각나게 하여 죄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요셉의 의도된 계획은 드디어 성공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형들은 자신의 숨겨진 죄를 하나님이 알게 해주셨다고 하였고, 무엇보다도 형들이 막내 아우지자 자신의 친동생을 데리고 온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러 어색한 만남들을 감동적인 만남으로 만들어갈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만남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그러지 못하고 오히려 좋은 만남을 해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요셉처럼 아무리 어색한 만남이라도 감동적인 만남을 위해서 좋은 역할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족가운데서나 동네에서나 교회에서도 어색하고, 서먹 서먹하고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좋은 관계로 회복되어 감동적인 만남속에 있도록 노력하는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금일소망교회는 큰 어려움이 없이 좋은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분들이 있어서 금일지역에서 좋은교회로 소문이 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여전히 어색한 만남들, 약간이라도 서먹한 만남이 있습니다.
이런 어색한 만남을 감동적인 만남으로 준비하는 요셉과 같은 분이 필요합니다. 누군가 하겠지 생각하기 보다 내라도 해보아야 겠다고 나설 수 있길 바랍니다.
2.두려워하는 형들을 안심시킨 요셉
두번째로 요셉은 어색한 만남을 감동적인 만남으로 이끌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안심을 시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을 간신히 설득해서 베냐민을 데리고 와서 애굽 총리 요셉 앞에 선 요셉의 형들은 애굽 총리가 총리 관저로 데리고가자 두려움이 밀려 왔습니다.
다같이 1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하고>.
요셉의 형들은 아직 애굽총리가 자기들의 동생 요셉인 줄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요셉의 관저로 인도되어 가게 되었는데, 겁이 덜커덕 난 것입니다. 전번에 양식을 사가지고 갔는데, 곡식 값이 도로 곡식 자루에 들어 있던 일 때문에 억류시키고, 노예로 삼고 나귀도 빼앗으려고 한다고, 생각하고 두려워하게 된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애굽 총리를 내 주여 라고 부르면서 계속해서 자신들의 진실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변명을 합니다. 그리고 전번에 곡식값 전액을 가지고 왔고, 이번에 양식 살 돈도 가지고 왔다고 까지 말합니다.
여러분
요셉의 형들은 애굽 총리의 관저로 인도되었을 때 이젠 끝장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젠 집에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신들을 종으로 삼고 중요한 집 재산인 나귀까지 빼앗아버린 것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이제 자신들의 인생은 끝장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때 요셉은 열명의 형들과 베냐민을 안심시키는 결정적인 말을 합니다. 무슨 말을 해주었죠? 23절을 다같이 읽어봅니다. < 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내고>.
사랑하는 여러분
요셉이 열명의 형들에게 한 말은 엄청난 말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입니다. 세상에 애굽 총리의 입에서 귀가 의심스러운 정도로 놀라운 말을 듣게 된 것입니다.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다,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요셉은 인생끝났다고 두려워하고 있는 형들을 안심시키면서, 그들의 하나님, 그들 아버지의 하나님을 소개해준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 자루에 돈을 넣은 것은 자신이 넣게 하였지만, 하나님의 감동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어덯게 두려움을 몰아내고 안심할 수 있을까요? 어떤 만남이 기쁘고 즐겁고 감동적인 만남이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하신 일인 것을 인정할 때 입니다.
우리는 요셉의 훌륭한 점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요셉의 신앙과 마음과 삶이 참 지혜롭고 탁월한 것은 요셉 자체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고, 감동을 주셨고, 지혜와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 속에 여러가지 염려와 두려움과 불안들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걱정하지 말라해도 걱정하게 되고, 아무리 두려워하지 말라해도 두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의 한계입니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래를 두려워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의 종,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라고 부르시면서,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만나야 감동적인 만남이 될 수 있습니다. 만일 요셉과 요셉의 형들이 하나님 안에 만나지 못했다면, 아무리 풍족한 양식을 주고, 진수성찬을 먹는 다해도 감동적인 만남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과의 만남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온갖 지혜와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예배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식탁교제나 목장예배나 회식이나 잔치나 행사나 모든 만남들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질 때 은혜가 넘치고 감동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아멘.
3.혈육의 정을 극대화시킨 요셉의 만찬
마지막으로 혈육의 정을 극대화시킨 요셉의 만찬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요셉은 여전히 자신이 요셉인 것을 감추고, 애굽 나라의 총리로서 형들을 대하면서, 특별한 만찬을 준비하게 합니다.
먼저 물을 주어 발을 씻게 하고, 그들의 나귀에게 먹이를 주게 하고, 함께 음식을 먹겠다고 말해놓고 점심 때까지 기다리게 합니다. 이때 요셉의 형들은 가나안 땅에서 가져온 예물을 정리해서 준비하고 애굽 총리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요셉이 들어오자, 만찬석상으로 들어가며 예물을 드리고 땅에 엎드려 큰 절을 합니다.
27절부터 30절은 애굽 총리 요셉과 그의 형들이 만찬 석상에서 나눈 간단한 대화와 분위기인데, 요셉의 가슴 속에 간절한 혈육의 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먼저 요셉이 안부의 말을 합니다. <너희 아버지 너희가 말하던 그 노인이 안녕하시냐 아직도 생존해 계시느냐>.
형들이 대답을 합니다.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평안하고 지금까지 생존하였나이다>하고 머리 숙여 절을 합니다.
이어서 요셉이 눈을 들어 자기 어머니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면서 말합니다. <너희가 내게 말하던 너희 작은 동생이 이 아이냐,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요셉은 이 말을 하고 울음보가 터져버렸습니다. 20년만에 친 동생 베냐민을 보고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음을 터트린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이 동생 베냐민을 보고 이렇게 울음보가 터진 것은 무엇때문이었을까요? 친동생이기 때문이었을까요? 어머니 라헬을 동생을 낳다가 돌아가셔서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였을까요? 형으로서 돌봐주지 못해서 이렇게 울었을까요? 30절 말씀에서는 요셉이 아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서 울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요셉의 마음속에는 하나님 안에서 뜨거운 형제애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나 형제 사이에는 형제애가 있습니다. 혈육의 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뜨거운 형제애는 하나님 안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 가족을 우리 교회 식구들은 뜨겁게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정말 우리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면, 우리 마음에는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사랑이 식어진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덥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뜨겁게 덥혀져야 합니다.
요셉은 종들에게 특별한 만찬을 세 군데에 차리게 합니다. 자신을 위하여 따로 차리고, 형제들을 위해 따로 차리고, 함께 먹는 애굽 사람을 위해 따로 차리게 합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로서 게속하여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형들을 나이에 따라 앉히니까 그들이 이상히 여겼으나 전혀 눈치를 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애굽총리가 먹는 특별 만찬을 형제들에게 주면서,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다섯 배나 주며 마음껏 먹고 마시게 하니, 즐겁고 감동적인 만찬을 먹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막내 베냐민을 걱정했는데, 얼마나 안심이 되었겠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요셉이 형들과 동생 베냐민을 위해서 준비하게 한 만찬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애굽총리까지 올라 성공해서 형제들을 위해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렸을까? 메뉴는 무엇이었을까? 얼마나 맛이 있었을까?
궁금한 점이 많으실 것이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요셉이 지금은 자신이 요셉이라고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이복형제들과 친동생 베냐민을 위해서 특별 만찬을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을 상인들에게 종으로 팔아버린 형들을 증오할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가운데 바라보며, 형들이 과거의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 안에서 새사람되기를 바라면서 지금까지 도와왔고, 형들과 동생 베냐민을 위해서 총리관저에서 특별만찬을 베푼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약성경 복음서에 기록된 우리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잔치에 가서 함께 식사하시고, 그곳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나혼인 잔치에 가셨고, 세리 마태가 초청한 잔치에 가셨고, 삭개오가 초청한 잔치에도 가셨고, 마리아 마르다가 초청한 잔치에도 가셨고, 또 제자들과 유월절 잔치를 먹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세례요한의 세례를 거절하고 자신을 비난하는 것에 대하여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서 당시에 낙인 찍힌 세리들과 식사를 하며 어울리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형제를 위해서, 가족들을 위해서, 믿음의 가족들을 위해서, 만찬을 베풀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감동을 하게 되는 것이 여러가지가 있지만, 함께 음식을 먹을 때 제일 기쁘고 감동을 먹습니다. 어색한 만남을 풀고 감동적인 만남으로 만드는 길은 함께 만찬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식사라도 합시다. 차 한잔 합시다는 말을 자주하게 되는데, 친한 사람들끼리만 하지 말고, 어색하고 좀 서먹서막한 사람들과도 만찬과 찬을 나누며 감동적인 만남을 만들어가는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아멘.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일 오전에 우리는 <어색한 만남을 감동적인 만남으로>는 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요셉은 형들과의 어색한 만남을 감동적인 만남으로 준비하였고, 형들과의 만남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도왔고, 혈육의 정을 극대화하기 위해 특별 만찬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마땅히 친밀한 만남이 되고 감동적인 만남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어색하고 서먹 서먹한 만남을 유지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가족 관계에서도 그럴 수 있고,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교회 식구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만남이 감동적인 만남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감동적인 만남을 이루는 핵심적인 방법은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누구든 대할 수 있어야 하고, 작은 어색함을 풀 수 있는 길 중에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는 것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금일소망교회 성도님들은 요셉 처럼 어떤 어색한 만남도 감동적인 만남으로 바꾸는데 귀하게 쓰임받는 사람들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본인도 아름답고 복된 삶을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공동기도> 다같이 따라서 하겠습니다.
1)하나님 아버지, 어색하고 피하고 싶은 만남도 감동적인 만남으로 바꾸는데 쓰임받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