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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수필100년
사파이어문고12 (노정희 수필집)
『하얀』
979-11-92613-65-9 / 272쪽 / 147*210 / 2023-08-05 / 15,000원
■ 책 소개 (유튜브 영상 바로보기)
노정희 수필가의 세 번째 수필집 『하얀』. 한국현대수필 100년 사파이어 문고 열두 번째 수필집으로『빨간수필』(2012), 『어글이』(2014) 이후 10년 만에 펴냈다. 여러 지면에 발표한 많은 작품 중 실한 알곡의 작품 쉰 편을 골라 정성껏 엮었다.
그간 갱년기의 좌충우돌, 친정어머니, 친정 자매와의 사별 등 작가 주변의 변화뿐 아니라 시끄러운 사회, 코비드-19 등 세상살이의 부침도 격렬하였다. 작가는 『하얀』에서 이 모든 체험에 관한 자신의 아픈 마음, 기쁜 마음, 고마운 마음을 담담하고 부드럽게 글로 풀어놓는다.
“…어머니를 보냄으로써, 나는 진정 어머니의 딸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와 같이 보냈던 병실에서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고요를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말 없음’으로 막내딸에게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 세상살이는 짧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길지도 않습니다. 미운 마음이 아니라 고운 마음으로 살기에도 부족합니다. 내 것을 나누어준들 무어 그리 큰 손해를 보겠는지요. …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에 자신을 토닥입니다. 그동안 잘 견뎠어, 잘 참았어.” -‘책을 내며’
■ 저자 소개
노정희
경북 상주시 화남면 평온리에서 조부모, 부모, 육 남매가 함께하는 대가족의 막내로 자랐다.
초등학교 때부터 글쓰기 대회에 참가, 중학교 때는 군 대표로 뽑혀 《새싹》 잡지에 시가 실렸다. 2007년 계간 《문장》 수필 등단, 대구신문에 시를 연재했다.
도서관에서 수필교실 강의, 초·중·고등학생 저널리즘 강의, 매일신문 푸드칼럼 <추억의 요리 산책>, 푸드아트테라피·푸드라이터·푸드스토리텔러, 시니어매일 기자, 한의대 약선학과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대구문인협회, 대구·경북작가회의, 대구수필가협회, 문장작가회, 수필과지성아카데미, 글또바기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수필집 『빨간수필』 (2012. 북랜드)
『어글이』 (2014. 북랜드)
『하얀』 (2023. 북랜드)
공공저 『글또바기』 (2022. 북랜드)
푸드에세이 『호박 한 덩이 머리맡에 두고』 (2023. 학이사)
■ 목차
책을 내며│어머니 가신 지 일 년 만에
1 무
하얀 / 무 / 서문동네 / 한겨울밤의 꿈 / 얘야, 가까이 오렴 / 뻥이요 / 부귀영화 / 깜박깜박 / 개복숭아나무 집의 도꾸할매 / 못꼬실나무 / 농마국수
2 겨울 뻐꾸기
반지 / 스님이 우린 차 / 상철이의 배신 / 인간 거미 / 4월은 오고 / 꽃기린 / 겨울 뻐꾸기 / 오발이 / 사람 도서관 / 희움 / 그녀가 남기고 간, 감자 노래
3 기도하는 사마귀
달걀 한 판 / 촉 / 기도하는 사마귀 / 일침一針 / 사육 / 조용한 펀치 / 딱따구리 / 친정 일기 1 - 오천만 원 / 친정 일기 5 - 묵, 묵默 / 울지 마세요, 형부
4 새방골에 뜬 달
눈물로 쌓은 섬, ‘위안부’ / 바람 / 새방골에 뜬 달 / 카메오카 역의 너구리 / 섭섭하이 / 만리포 사랑 / 아지 / 방울 소리 / 내 이름은 ‘랑구’ / 망罔
5 코로나19로 바뀐 세상
회오리바람 / 텃밭에서 만난 꼬마 손님 / 코로나19 전쟁 / 어리석음을 배우다 / 당신의 마스크가 궁금합니다 / 요양원 新풍속도 / 길고 긴 날, 멀고 먼 길 / 돌아가는 길
■ 출판사 서평
표제작 「하얀」은 작가 자신에게도 닥쳐온 ‘하얀 나이’라고 칭하는 여성의 나이 듦에 관한 작품으로, 진지하게. 그러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갱년기’의 일상을 묘사함으로써 모든 여성의 깊은 공감을 부른다. 「깜박깜박」 「개복숭아나무 집의 도꾸할매」 등의 작품에서도 이제 할머니, 엄마가 걸어간 그 길을 걸어가야 하는 ‘나’를 포함하여, “유채색의 여자”에서 “무채색의 여자”로 전환해가는 중·노년 여성이 맞닥뜨리는 안타까운 삶의 모습을 긍정과 새로움으로 승화하였다. 지금 지나가는 바람이 황량해도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꿈을 꾸는 순간만은 지극히 아름답다. 나는 아직도 마술에 걸려있다.”(「뻥이요」)라며 “개복숭아 꽃잎처럼 고운 날”을 소망하는 모든 여성의 마음을 세심하게 그려낸다.
“나는 이미 하얀 길로 들어섰다. 이 길을 초행길이다. 둘러보면 낯설고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울퉁불퉁 자갈길에 발목이 접질리기도 한다. … 폐경에 따른 체온상승과 신경과민, 우울 등의 증상이 철면피처럼 따라온다. …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실루엣에 감춰두었던 유채색의 여자는 점차 색깔을 잃어가고 있다. … 그런데 ‘마음’은 어쩌나. 육신이 비워진 자리만큼 마음도 그만큼씩 비워내야 균형을 맞출 게 아닌가. 육신이 비워진 자리에 행여 석고처럼 욕심이 들어설까 봐,… 나는 지금 하얀 나이를 풀어가는 중이다, 하얀 나이를 먹어가는 중이다.” (「하얀」 중에서)
“사과 맛도 아니고 쓴 술맛도 아닌, 그냥 ‘덤덤한’ ‘무 맛’이 정겨워진다.”(「무」)라며, 특별하지 않은, 덤덤한 사람살이의 순순한 맛을 알아챈 작가의 작품은 읽기에 편안하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사람의 발자국 소리에 내 발자국 하나 보태는 일”(「서문 동네」)이고 “햇살도 나눠서 가지고 빗물도 나눠 마시면서 서로를 은근하게 바라보는 일”(「애야 가까이 오렴」)이며, 행복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환하게 웃는 순간”(「한겨울 밤의 꿈」)임을 아는 작가의 “우리 서로를 다독이자”라는 따뜻한 메시지와 에피소드가 정답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가족을 소재로 한, 신세대 딸들의 생일맞이에 관한 소회(「달걀 한 판」), 부부란 과연 무엇일까? 의 탐색(「촉」, 「바람」「새방골에 뜬 달」, 「일침」, 「조용한 펀치」), 남편이라는 이름은…(「기도하는 사마귀」), 현모양처라는 허명을 돌아보다(「사육」), 반려견 반려묘와의 사랑 나눔(「아지」, 「방울 소리」, 「내 이름은 ‘랑구’」) 등을 다룬 작품이 있다.
“바람은 어디에 숨었을까. 도랑가 졸참나무는 부부 사이에 흐르는 난기류를 칭칭 감아 두고 끼무룩 잠이 들었는지 잠잠하다. 바람 소리, 물소리도 꿀꺽, 삼키는 달밤.”(「바람)」중에서)
「친정일기 1」_오천만 원, 「친정일기 5」_묵, 묵黙은 친정 형제자매와 즐겁고 행복한 한때를, 「울지 마세요, 형부」는 작은언니의 가혹했던 인생길과 아내를 보낸 형부의 슬픔을 절절히 그렸다.- “… 두 사람이 가꾼 사랑나무는 거대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슬픔, 배우자의 병환, 그 모두를 삭혀 거름으로 주었다. 형부에게 배우자를 잃은 슬픔은, 나무는 그대로 두고 나무의 그림자를 반 토막 내는 일이다. 기억을 멈추게 하는 약이 있으면 좋으련만.”
작가는 가까운 가족 혈육과의 희로애락을 통한 애틋한 사랑뿐 아니라 곳곳에서 ‘사람’살이의 온기를 포착하여 작품에 담아내었다. 중국 남경 이제항 위안소 유적진열관에서 만난 위안부 할머니의 마르지 않는 눈물을 닦아주고(「눈물로 쌓은 섬, ‘위안부’」) 캄보디아 여행길에서는 남루한 가난에도 행복할 줄 아는 그들 삶의 자긍심을 헤아린다(「섭섭하이」). 또 태안 만리포의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하면서도 2007년 기름유출 사고 때 전국 각지에서 찾아와 기름 한 덩이라도 건져내려 안간힘을 썼던 수많은 사람의 노고를 되새겨 준다(「만리포 사랑」).
함께 살아가는 세상, 우리가 지녀야 하는 온당한 ‘마음’가짐에 관해 시사하는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지켜야 할 모두의 원칙과 바른 시각을 일상의 친숙한 에피소드에 담고 부드러운 비유와 따뜻한 글솜씨로 설득하고 있다.
물욕에 대한 경계(「반지」, 「스님이 우린 차」), “삶에는 항상 위험이 따르고 우리는 그것에 맞서기 위해 안전조치를 취할 뿐이다, 불안할수록 침착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옆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안전’의 기본이 아니겠는가.”(「상철의 배신」), ‘미투’ ‘위드유’ 운동을 통해 다시 되새겨보는 사회적 약자에 관한 인식(「인간 거미」), 잊혀가는 세월호 사건과 무관심의 문제(「4월은 오고」), “촛불은 왜 출렁일까. 촛불은 움직인 것일까. 바람이 움직여 준 것일까. 촛불을 든 개인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일까. 그곳에는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참된 민주주의의 염원이 타올랐다.”(「꽃기린」), 평창올림픽과 북한의 참가에 관한 시시비비, 진정한 올림픽 정신(「겨울 뻐꾸기」), 「오발이」- 반듯한 정치가가 되고 싶었던 ‘오발이’의 선거 출마와 좌절, 「사람 도서관」- 염무웅 선생과의 일화와 숨은 문학인의 역할,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과 희움 일본군위안부 역사관 건립의 의의(「희움」). 우리 정부의 소극적이고 편협한 ‘위안부’ 문제 해결에 관한 각성 촉구와 진정한 과거 청산과 정의 구현에의 소망(「눈물로 쌓은 섬, ‘위안부’」) 등 “글로써 지구를 지키는” 데 일조하는 문학인으로서 투철한 사명감과 애정이 작품에 속속들이 스며들어 있다.
이 외에도 작가는 공포이기까지 했던 최근 3년여의 코비드-19시대의 풍경을 그린 작품을 통해 “별일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회오리바람」)거나, 숨 고르기를 배운 시간(「텃밭에서 만난 꼬마 손님」), 전염병의 광풍 속에서 더욱 도타워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코로나19 전쟁」) 등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한 강제적 칩거나 펜데믹이 부른 사람들 사이의 배타적 관계를 극복할 희망의 메시지도 작품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다양한 방면으로 다채로운 문학 활동을 해 온 노정희 작가, 속 깊은 마음의 정을 담은 진솔한 삶의 이야기와 위트와 해학을 버무린 능숙한 글솜씨 덕분에 누구나 웃고 울며 공감할 만한 재미와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책 「하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