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주인공인 세상
우리들의 월드컵 은천동팀 김수현
벚꽃이 피던 4월, 실습 처를 알아보던 시간이 기억납니다. 실습만큼은 제대로 배우고 싶었습니다. 지역사회와 당사자를 직접 만나는 실무를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실습 처를 고민하던 중, 강감찬관악종합사회복지관에서 실습 했던 친구를 만났습니다. 친구는 복지관을 강력 추천하며 신청해 보라고 제게 권유했습니다.
“강감찬은 낭만이야~ 복지관 선생님들이 좋고 아이들과 활동 하는 내내 즐거웠어.”
친구의 확신 있는 말에 실습을 바로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실습 면접을 준비하던 중 특별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기관 조직도의 상단 주인공이 바로 ‘지역 주민’이었습니다. 보통 종합사회복지기관의 조직도 상단 주인공은 관장님입니다. 제가 경험한 기관들과 다른 조직도에 특별함을 느꼈습니다. 3차 당사자 면접까지 진행한다는 특색에 이끌려 면접과 자기소개를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당사자 면접을 통해 기획단 아이들을 처음 만났습니다. 구암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들이었습니다. 기획단 활동을 처음 하는지 면접을 보러 온 실습생들보다 떨려 보였습니다. 아이들과 어색한 첫 만남을 뒤로 하고 은천동팀 선생님들과 합동 연수에서 사업 기획안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처음 보는 관장님들과 실무 선생님, 여러 실습 동료들 앞에서 사업을 발표할 때 얼마나 떨렸는지 모릅니다. 잘 해내고 싶었습니다. 한 달의 첫 단추를 꿰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업 준비를 마치고 실습 대망의 첫날, 설렘과 긴장감으로 출근했습니다. 합동 연수에서 만난 동료들의 얼굴을 보니 반가웠습니다. 이가영 부장님과 아침마다 복지 요결을 배울 때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과연 내가 복지요결대로 실천할 수 있을까? 한 달의 시간으로 당사자와 둘레 사람들의 관계망이 얼마나 살아날 수 있을까? 내가 열심히 한다고 변화되는 게 있을까?” 회의적인 생각이 많았습니다.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기획단 진행팀 서준, 윤재와 함께했습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나이라서 그런지 아이들의 반응이 퉁명스러웠습니다. 기획단 활동에서 지루하거나 맘에 들지 않는 경우 서준이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나오는 아이들을 보면 막막했습니다. 과업 진행 속도가 느린 것 같아서 답답했습니다.
“그냥 내가 해버릴까?” 했던 마음이 불쑥불쑥 찾아왔지만 참았습니다. 고민하던 중에 민지 선생님의 슈퍼비전을 받았습니다. 아이들과 관계가 형성되었는지 점검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관계가 풀리면 문제는 금방 해결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아직 내가 아이들과 친해지지 않았구나. 아이들과 제대로 놀자!” 결심했습니다. 축구 훈련에서 같이 땀 뻘뻘 흘리며 뛰어놀았습니다. 더위를 피해 음료수를 사러 편의점에 들어갔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말이 없던 윤재가 제게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기획단 아이들의 변화가 보입니다. 처음엔 어색해서 아무 말 없던 영민이가 섭외팀 지영 선생님과 장난을 칩니다. 진운이는 우림 선생님의 껌딱지가 되었습니다. 예건이는 묵묵히 축구를 처음 하는 친구를 도와줍니다. 서준이는 기획단 활동이 재밌는지 학원을 빠져서라도 활동에 참여합니다. 소소하고 확실한 변화가 눈에 보이니 놀라웠습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에 믿었던 저의 신념은 깨지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강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제 안의 변화도 있었습니다. 낯을 많이 가리는 제가 실습 3주 차부터 마음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저는 사실 조용하지도 않고 까불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동료들에게 유치한 장난을 걸기도 하고, 큰 목소리로 웃기도 했습니다. 선생님들의 미소와 배려가 제 마음을 녹였습니다. 때로는 나무를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저는 전체를 보는 성향인데, 훈련 중에 힘들어하는 아이들 한명 한명 컨디션을 세심하게 챙겨주지 못했습니다. 집에 와서 자기 전에 반성했습니다. 한명 한명을 세워주고 격려해 줘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우리들의 월드컵이 지난 토요일에 안전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많은 인원이 온다고 하니 진행팀으로서 떨렸습니다.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모두 안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월드컵은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반짝반짝 빛나는 하루였습니다. 골인을 하면 아들 소원권을 주는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부모님들이 힘껏 공을 찼습니다. 승부욕에 불타서 눈물을 흘리는 준서도 보았습니다. 승패에 상관없이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월드컵이었습니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건 하나의 우주를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제게는 아이들이 우주였습니다. 어느 순간 아이들 사진을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검은 화면에 비춘 저를 보게 되었습니다. ‘정’이 무섭습니다.
아이들 서로 간의 관계, 어머님들과의 관계, 지역 사회에 부탁드리며 맺은 인연들... 관계가 살아났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인 것 같습니다. 서로가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감사 인사 전하고 싶습니다. 따뜻하고 카리스마 있으신 민지 선생님. 선생님의 통찰과 슈퍼 비전이 저를 날로 성장시켰습니다. 사회사업에 대한 열정, 기록하는 습관을 닮고 싶습니다. 함께 한 달 간 애써준 우림, 지영 선생님 감사합니다. 우림 선생님은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넘쳤습니다. 진운이가 선생님을 좋아하게 된 계기도 결국 선생님의 사랑 때문인 것 같습니다. 쉬지 않고 훈련에 참여 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긍정적으로 도와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지영 선생님은 섬세합니다. 아이들의 컨디션을 잘 파악하고 챙겨줍니다. 아이들을 향한 눈빛이 따스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월드컵 디자이너였습니다. 선생님의 아이디어 덕분에 월드컵 공간이 아름답게 꾸며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바라본 세상을 나누고 싶습니다. 은천동 세바시팀은 동물의 숲과 같이 옹기종기 모여 힘을 합쳐 과업을 수행하는 것 같았습니다. 신림동팀은 작은 아씨들과 같이 밝은 에너지를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성현동팀은 스머프 마을처럼 즐겁게 활동하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보라매동팀은 디즈니 엘리멘탈 영화처럼 재치 있고 특별한 우정이 돋보였습니다. 저희 팀은 보노보노 남매 이야기였습니다. 이번 실습은 모두가 주인공인 세상이 존재한다고 말해주는 한 달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끝내주게 재밌었습니다. 한 달간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하며 수료사를 마칩니다.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