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8년경 직지사 현황 기록 성산인 여이명(呂以鳴,1650~1737)
> 김천향토사연구회 간행 <금릉승람> p73~79
●能如寺 在黃岳山. 能如韻釋之名, 結社於此故名焉. 其就寂也,呼獻花徒曰, 此山下大伽藍址 汝其識之, 卽頤指其處 今直指寺之基也. 寺之得名以此.
능여사는 황악산에 있다. 능여(能如)는 시승(詩僧)의 이름이다. 이곳에 집을 지었기 때문에 이름으로 하였다. 입적할 때 헌화하는 무리를 불러 이르기를 “이 산 아래에 대가람 터를 너희들은 알 것이다.” 하고 턱으로 그곳을 가리키니 지금의 직지사 터이다. 절이 이름을 얻은 것은 이것이다.
〇畢齋詩曰日 ▶직지사 1482년 김종직에 정리. *점필재집에 미수록 작품임
雲嵐雜草樹(운람잡초수) 구름과 아지랑에 초목과 뒤섞여
縹渺蔚藍天(표묘울람천) 아스라이 쪽빛 하늘에 울창하여라.
水雄舂殘雨(수웅용잔우) 물길이 웅장하여 가랑비에 방아찧고 舂↔春
香盤裊細烟(향반부세연) 향반(香盤)에는 가는 연기 하늘 거리네. 鳧→裊로 고침
鍾鳴僧演法(종명승연법) 종소리 울릴제 스님이 설법하는데
簾捲鳥窺禪(렴권조규선) 주렴을 걷으니 새들이 참선을 엿보네.
誰識蘇夫子(수식소부자) 누가 알리오. 소부자가
長齋繡佛前(장재수불전) 화려한 부처 앞에서 오래도록 재계한 것을.
*장재수불전(長齋繡佛前) : 두보(杜甫)의 시에 “소진은 수놓은 부처 앞에 오래 재계를 하다가도, 취하면 가끔 좌선하다 도망쳐 나오길 좋아했네.[蘇晉長齋繡佛前 醉中往往愛逃禪]”라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2 飮中八仙歌》
●直指寺 在黃岳山下. 法堂後有恭靖大王胎室. 高麗時 能如弟子 必信彗安入衲始刱, 綠(錄)在趙宗著寺碑文. 褸上有曺察訪孝昌說.
직지사는 황악산 아래에 있다. 법당 뒤에 공정대왕의 태실이 있다. 고려 때에 능여의 제자 신필(必信)과 혜안((慧安)이 들어와 처음 창건하였다. 기록이 조정저 지은 사적문(1681년)에 있고 루상에는 찰방 조효창의 글이 있다.
*능여제자 필신 혜안(能如弟子 必信 彗安) : <직지사 사적기> 에는 能如弟子 信弘 慧安等八人繼居之
*조종저(趙宗著,1631~1690)[생1660][문1672] 한양인(漢陽人). 字취숙(聚叔), 號간재(艮齋),남악(南岳). 아버지는 홍문관교리 조중려(趙重呂)이며, 어머니는 지중추부사 신경진(申景珍)의 딸이다. 『남악집(南岳集)』·『간재신사(艮齋新笥)』
1681년 직지사사적비를 지었다.
*조효창(曺孝昌,1623~1680)[진1666][文1678장원] 본관 창녕. 김산출생 한성거주, 공조좌랑 1679년에 어천찰방의 역임.
高麗時林氏庇 撰直指寺大藏堂記. 고려시대에 임비(林庇)가 직지사 대장당기를 찬하였다.
*임비(林庇) : 본관 나주(羅州). 원종 때 장군으로서 세자 왕심(王諶, 훗날의 충렬왕)이 몽고에 입조할 때 호위하였다.
橋曰銀河,門曰紫霞, 新門其內有天皇門, 樓曰萬歲.
다리의 이름은 은하교이고 문의 이름은 자하문이다. 새 문이 그 안에 있는데 천황문이다. 루의 이름은 만세루이다.
凡十房曰僧堂, 禪堂, 詠流堂, 聽雨堂, 清風庵, 明月庵, 東上室, 西上室, 南越. 其餘香積殿, 千佛殿, 十王殿, 西殿, 北庵.
대개 10개의 방을 말하기를 승당, 선당, 영류당, 청우당, 청풍암, 명적암, 명월암, 동상실, 서상실, 남월이다. 그 외에 향적전 천불전 십왕전 서전 북암이다.
山上又有小庵曰明寂, 浮屠, 雲水, 白雲, 兜率, 上草等. 丹碧照耀於左右, 直一大伽藍也.
산상에 또 있는 작은 암자는 명적암, 부도암, 운수암, 백운암, 도솔암, 상초 등이다. 단청이 좌우에서 빛나게 비추는데 하나의 큰 가람이다.
*단벽(丹碧) : 단청. 건물에 여러 가지 색으로 그림이나 무늬를 그림
○曹適庵伸詩日, ▶적암집 1522년 ‘직지사에서 다시 노닐며 감회가 있다’에 정리
直指耽耽一道場, 坐看興替事堪傷. 祖公在時緇徒盛, 恩老辭歸寶殿荒,
松竹斬斷空凡凡, 雲山矗立但蒼蒼. 置此直陪香案史, 細傾彭澤菊花觴.
時與表校理 太守開寧同遊云云. 이 때 표교리 개령현감과 같이 유람했다고 이른다.
*1522년경 개령향교중수시에 중앙관리와 인근의 명사들이 참석하였다.
○止止堂詩日, ▶♥직지사 > 1482년 직지사에서 매계 조위, 해배된 김맹성, 조신이 만나 시문을 기록
*지지당집에 與大虛遊直指寺 寺有鍾。鑄大定年間。으로 수록.
秋風乘款段, 十里到仙區. 寺創高麗日, 鍾成大定秋.
道林今作主, 逸少可同遊. 養拙安心地, 何須外此求. 大定金年號.
直指寺前有僧菊 義王所種也. 義王寄商船渡江溺死,
○畢齋作詩曰, ▶♥직지사 1482년 직지사 유람시문 김종직(金宗直,1431~1492)에 정리
霜餘今蝶度如伶, 為有秋香滿架清. 當日啣根覩鶩子, 江湖風浪幾時平.
師覺塵結草 黃岳山頂 堇容一座, 僻穀飲水三十餘.
승려 각진(覺塵)이 황악산 정상에 초막을 지었는데 겨우 자리 하나 정도 였다. 곡식을 끊고 물만 마신 지 30여 년이다.
○畢齋先生聞其亡 吟詩曰, 필재 선생이 그의 죽음을 듣고 시를 지어 이르기를
黃岳山中支道林(황악산중지도림) 황악산 속에 지도림 있다 하여
我欲捫葛窺禪心(아욕문갈규선심) 칡덩쿨 잡고 올라 선심을 엿보려 했는데
隻屐今聞返天竺(척극금문반천축) 나막신 한 짝으로 천축으로 돌아갔다 하고 隻屐(척극)↔隻履
白雲無跡松森森(백운무적송삼삼) 백운처럼 자취 없고 소나무만 빽빽하네.
*지도림(支道林) : 진(晉)나라 승려 지도림(支道林)이 심공(深公)의 소유인 인산(印山)을 사서 은거지로 삼으려 하자, 심공이 “소부(巢父)와 허유(許由)가 산을 사서 숨어 살았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未聞巢由買山而隱〕”라고 희롱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도림(道林)은 지둔(支遁)의 자(字)이고, 심공은 축도잠(竺道潛)으로, 일명 법심(法深)이라고도 한다. 《世說新語 排調》 백거이(白居易)의 시에 “지금부터 세상만사 떨쳐 버리고, 처자 데리고 산을 사서 살고 싶어라.〔從此萬緣都擺落 欲攜妻子買山居〕”라는 구절이 나온다. 《白樂天詩集 卷16 端居詠懷》 *척극(隻屐) : 옛날에 달마(達磨)가 죽어 중국의 웅이산(熊耳山)에 장사하였는데, 위(魏)나라의 송운(宋雲)이 서역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던 중 총령(蔥嶺)에서 달마를 만났다. 그때 달마가 손에 신 한 짝만 메고 있었으므로 송운이 “대사는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묻자, 대사가 “나는 서역으로 가오.”라고 하였다. 송운이 돌아와서 이 말을 임금에게 상세히 전하자, 임금이 명하여 달마의 묘를 파고 관(棺)을 열어 보니 신발이 한 짝만 있었다 한다. 후대에는 이로 인하여 승려가 먼 길을 떠나거나 죽은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傳燈錄》
按寺跡 則能如及祖恩兩師, 皆曹溪之撰也. 且惟政大師 久接此寺 故今有畵像別藏之一室. 近世有妙演者 煩修淨業. 余少時造其室一間 而寢房 齋所 廚廳 庫藏俱存. 演師燕居其中 殊異凡緇. 未幾示寂 舍利僧徒爲設浮屠. 厥後僧習大變 讀書儒生時或久住山房 則輒以糞水乘夜 汚其衣裳而駈逐士說. 噫, 普濟眾生者 佛之道也. 飯後鳴鍾常云 不美則今此寺風之惡 前古之所未聞. 然豈獨專於釋子 賓子祺之滄浪耳.
사적을 살펴보면, 능여(能如) 와 조은(祖恩) 두 스님은 모두 조계를 갖추었다. 또 유정대사(惟政大師)가 이절에 오래 거처했기에 지금 화상을 한 건물에 별도로 보관한다. 근세에는 묘연(妙演) 승려가 정업을 힘들게 닦았다. 내가 어릴 때 집 한칸을 지었는데, 침방(寢房)과 서재, 부엌 창고를 모두 갖추었다. 묘연은 그 속에서 한가히 지냈는데 보통의 승려와 달랐다. 얼마 후 입적하자 절의 슬려들이 부도를 설치하였다.
그 후에 중들의 배움이 크게 변해 독서하는 유생이 가끔 오래도록 산방에 있으면, 밤을 틈타 갑자기 똥물로 그 옷을 더럽혀 선비를 쫓아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 중생을 널리 구제하는 것이 부처의 도(道)이다. 식사 후에 종을 울리면 항상 이르기를, “아름답지 않다. 지금 이 절의 풍습이 나쁜데 전에는 들어 보지 못했다.”하였다. 어찌 중들에게만 해당하겠는가? 손님이 즐거워 하는 것이 귀에 찰랑거린다.
*연거(燕居) :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집안에 한가하게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