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서산동문동 성당 (순례지/성지)
간략설명:해미 순교자에 대한 신심으로 가득 찬 유서 깊은 성당
도로주소:충청남도 서산시 서령로 53
대전교구 소속 본당. 충남 서산시 동문동 665-3 소재. 1908년 5월 9일 합덕 본당에서 분리되어 충남 결성군(현 홍성군) 구항면 공리에 설립된 수곡 본당이 전신. 주보는 수호천사.
설립과 변모 : 서산 지역 신앙 공동체는 충청도 지역 최초의 본당인 합덕 본당 산하 공소로 출발하였다. 1908년 이 지역을 이관 받은 폴리(D. Polly, 沈應榮) 데시데리오 신부가 서산 지구 본당을 홍성군 구항면 공리에 설립 · 운영하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본국 프랑스로 돌아가게 되자, 다시 합덕 본당으로 합병되었다.
1917년 안학만(安學滿) 루카 신부가 서산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여 본당을 팔봉면 금학리로 옮겼다가 제1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본당에 복귀한 폴리 신부가 다시 주임으로 부임, 1919년 10월경 현재의 상홍리 공소 자리에 강당 및 사제관을 신축하였으나 얼마 후 서산 군 소재지에 가까운 음암면으로 옮겼다.
금학리, 상홍리 등 두 차례에 걸친 본당 이전 후 1932년 6월 13일 바로(P. Barraux, 范, 1903-1946년) 신부는 현 본당 부지를 매입하여 1937년 10월 5일 성당을 신축 · 완공하였다. 1943년 일제(日帝)의 도시 인구 소개(疏開) 방침의 일환으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 경영하던 인천 보육원 아동 중 24명이 서산 본당에 수용되자 이들을 돌보기 위해 수녀원 분원이 설치되었다.
1946년 시약소 개설과 1947년 4월 10일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순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인 천사 유치원의 개원은 전교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6 · 25 동란이 발발하여 콜랭(J. Colin, 高一郞) 요한 주임 신부가 성당을 지키다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9월 21일 대전으로 압송 도중 폭격을 당해 행방불명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전쟁과 9 · 28 서울 수복, 1 · 4 후퇴 등 혼란기를 거친 서산 본당은 1950년대 들어 미군의 구호물자 등을 균등 분배하며 전교에 힘쓰기 시작하였고, 성당 · 사제관 · 유치원 등을 증축하였으며, 1961년에는 수녀원을 개축하는 등 본당 부대시설 및 주위 환경을 정비하였다.
성장과 변모: 기존의 공소 외에 많은 공소를 개설한 서산 본당은 1964년과 1965년에 30평 규모의 금학리 공소와 명천리 공소 강당을 각각 신축하였고, 1966년에는 60평 규모의 운산 공소 강당을 신축하였으며, 1966년에는 60평 규모의 운산 공소 강당을 신축하였으며, 1967년에는 대산 공소를 설립하였다. 이외에도 해미 공소 강당을 개축하고, 양대리 공소 강당을 신축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