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13. 선봉의 기학 비류신과 학철두는 서로 공격을 하고 서로의 내공으로 중상을 입었던 것이다. 그들의 장력이 마주친 회오리바람 속에서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이때 군호들이 놀란 얼굴로 멍하니 있는 가운데 월광검 소대풍이 천천히 비류신 곁으로 걸어갔다. 그는 비류신의 넘어진 모습을 보며 처량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처럼 강맹하던 젊은이가 이렇게 처참한 꼴이 될 줄 몰랐지. 옛 친구의 제자이니만큼 시체라도 거두어 주어야지.” 이렇게 말하며 허리를 굽히려 할 때 남의소녀가 쌀쌀하게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호… 주책 같으니라고. 자비심을 베푸는 척하지 마시오! 정말 죽은 것으로 아오?” 그녀의 말에 월광검 소대풍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비류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비류신은 그렇게도 초롱초롱하던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빛은 평상시와 다른 점이 없었다. 소대풍은 비류신의 모습을 보자 과연 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속으로 놀라면서도 태연한 투로 또 입을 열었다. “아아니, 이렇게 중상을 입었는데도 어찌 죽지 않았다 하는 거지?” 그는 말을 하면서 암암리에 오른 손에 힘을 모았다. 그리고 비류신의 콧김을 알아보는 척하며 비류신의 코를 꼭 누르려 했다. 그 순간 벽력같은 고함소리가 들렸다. “멈춰라!” 풍운류랑인 고화룡이 소대풍을 향해 고함을 치는 동시에 강맹하게 장력을 내뻗쳤다. 맹렬한 힘이 바람을 일으키며 달려드는 것을 본 소대풍은 냉큼 비류신의 얼굴 위에 있던 손을 움츠렸다. 그리고 그 손을 내저어 몰려오는 힘을 받아 넘겼다. 소대풍은 흔들리는 몸을 바로잡은 다음 자신이 중상을 입은 비류신을 몰래 처치하려던 일을 생각하며 능글맞은 어조로 말했다. “고형, 어째서 별안간 그러시오?” 고화룡은 재빨리 비류신에게 다가들며 날카로운 음성으로 대꾸했다. “왜 그러기는 무엇을 왜 그래? 당신의 마음은 당신이 더 잘 알 것 아니겠어? 비류신이 죽으면 시체는 내가 거둘 것이니 아무도 참견할 필요 없어!” 소대풍은 고화룡의 사나운 기세에 눌려 주춤주춤 물러났다. 고화룡은 비류신의 가슴을 만져 보고 콧김을 쏘여 보았다. 가슴의 고동을 들을 수 있었고,콧김도 약함을 알았다. 강호에서 풍부한 경험을 가진 고화룡은 비류신이 일종의 악독한 내공으로 인해 중상을 당하기는 했으나 목숨이 끊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소양신공에 의해서 중상을 입게 되었다면 얼굴에 홍조가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고화룡은 비류신의 이마를 만져 보고 다소 놀랐다. 이상 하리만큼 차가왔다. 상세가 아주 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류신의 몸을 번쩍 끌어안고 고화룡이 일어섰을 때 슬금슬금 물러섰던 소대풍이 번개처럼 달려들어 비류신의 몸을 낚아채려 했다. 고화룡은 잽싸게 몸을 옆으로 피하고 소대풍을 아래위로 훑어본 다음 냉랭하게 말하였다. “소대풍, 또 다시 그런 짓을 하면 사실을 폭로할 테다! 그러니 알아서 행동하도록 해!” 월광검 소대풍은 비류신의 몸을 낚아채려다가 실패하고, 또 고화룡에게 이런 말을 듣자 공허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하였다. “좋소, 좋소. 고형이 비류신의 시신을 잘 보존 한다면야 나도 더 할 말 없소.” 그들의 언동을 듣고 보던 장중의 군호들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들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또한 월광검 소대풍이 비류신을 죽이려는 생각이 있었다는 것은 짐작하였으나 소대풍이 어째서 비류신을 죽이려는지 알 길이 없었다. 월광검 소대풍이 비류신을 죽이려고 한 목적은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 그는 비류신이 품에 간직하고 있는 잔금섭혼신편(殘金攝魂神鞭)을 탈취할 속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류신을 죽여 그 송장을 거두는 척하며 슬며시 잔금섭혼신편을 빼내려는 것이었다. 소 대풍의 이러한 속셈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풍운류랑인 고화룡과 청풍명사 청룡백호 뿐이었다. 한편 흑룡강 일파의 세 여인은 비류신을 둘러싸고 이런 말이 오가고 있을 때 학철두 곁으로 다가갔다. 백미는 여전히 만면에 웃음을 띠고 팔을 내밀어 식지, 중지, 무명지의 세 손가락으로 학철두의 맥문을 짚어 갔다. 이윽고 그녀는 학철두 앞에서 몸을 일으키고 남의소녀에게 말했다. “소저, 학사형의 상세는 제가 진맥한 결과로 봐서 극히 높은 내공으로 인해 상처를 입었어요. 그러나 어떤 내공에 의한 것인지 알 수 없군요. 아마 소저께서 직접 관찰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말에 남의소녀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나서 말했다. “그 비가라는 사람 정말 흉악하기 이를 데 없군요.… 백살 언니, 학사형의 상세를 치료할 준비를 하세요.”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쌀쌀하게 생긴 백의녀가 남의소녀 앞으로 나섰다. 남의소녀가 두 백의녀에게 말을 건넸다. “학사형은 아주 높은 내공으로 해서 각 경맥이 울려 상한 것이오. 다행히 비가의 내공이 최고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상하기만 했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당장에 죽었을 것이 분명하오.” 백살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소저, 침술로써 막힌 경맥을 풀어 줄까요?” “그러죠. 이 은침(銀針)을 가지고 내가 말하는 대로 혈도를 찌르시오. 그렇게 한 다음 이틀 정도 쉬면 회복될 것이오.” 남의소녀는 이렇게 말하며 반짝이는 은침을 꺼내서 백살에게 주었다. 백살은 은침을 받아 들자 곧 학철두의 곁으로 가서 죽은 듯 누워있는 학철두의 혈도를 찾았다. 남의소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첫째 침은 임맥(任脈)인 맹유혈(盲兪穴)을 찌르고, 둘째는 독맥(督脈)의 음도혈(陰都穴)을, 셋째는 그의 소음신경(小陰神經)을 찌른 다음, 넷째로 태양비경(太陽脾經)인 복결(腹結), 기해(氣海)의 두 혈도를 찌르시오.” 그녀는 단숨에 네 경맥과 다섯 혈도를 불러 댔다. 백살은 또한 남의소녀의 말을 따라 잽싸게 은침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의 빠른 동작으로 정확하게 경맥을 가려내는 데는 모든 고수들이 경탄을 금하지 못하였다. 이때 선우철이 천천히 그녀들 옆으로 걸어 나갔다.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세 아가씨는 과연 이 세상의 선봉(仙鳳) 같습니다. 그러한 기학(奇學)을 지니고 계시다니 정말 부럽기 한이 없습니다.” 이 말에 백미가 몸을 돌려 선우철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생긋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선우철은 그녀의 미소를 보자 그대로 매혹되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순간 그는 아직까지 보지 못하던 매력을 가진 여자라고 느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백살이 또한 눈을 돌려 선우철을 보았다. 그녀와 눈길이 마주치자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그는 속으로 어떻게 저렇게 매서운 여자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던 중 남의소녀는 백살이 건네주는 은침을 받아 넣으며 선우철을 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선우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허리를 약간 굽히고 있었다. “나는 부탁이 하나… …”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미가 말을 가로챘다. “우리 소저에게 비가의 상세를 봐 달라는 말인가요? 그런 부탁이 아니고서야 기세가 흉흉하게 나오던 당신이 그렇게 부드러울 수 없으리라 생각하는 데요.” 선우철은 백미가 심중의 정통을 찌르는 바람에 얼굴을 붉히며 더듬거렸다. “아아… 닙니다. 나는 저… 비형과… 아가씨들이… …” 이때 다시 백살이 끼어들며 말끝을 가로챘다. “당신의 말을 어떤 얼빠진 사람이 믿을 거라고 그러시오?” 선우철은 그녀의 쌀쌀한 대꾸에 더욱 말을 더듬거렸다. “그게… 저… 그게… 너무 오해하지 마시오.” 그러자 남의소녀가 갑자기 은방울 울리는 듯한 웃음을 터뜨리고 나서 말했다. “호호호호, 그게, 그게 하지 말고 빨리 비가를 안고 오시오. 숨만 끊어지지 않았으면 내가 고쳐줄 수 있으니까… …” 그녀의 말투는 자신에 넘쳐 있었다. 마치 천하의 의도(醫道)는 오직 자기만 아는 듯한 말투였다. 선우철은 그녀의 말을 듣고도 웬일인지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다가 큰 소리로 말했다. “고 선배님, 비형을 이리로 안고 오시지요.” 이렇게 소리친 선우철은 조금도 기쁜 안색을 보이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세 여자에게 접근한 목적이 비류신의 상세를 치료하려는데 있는 것이 아닌 까닭이었다. 선우철은 다만 비류신의 상세 치료를 구실삼아 그녀들에게 접근하여 환심을 사려던 것이었다. 그는 비류신이 중상으로 쓰러진 지금 이곳에 모인 여러 고수들이 자기에게 적의를 품고 있으리라고 짐작하였다. 따라서 그 고수들이 자기를 공격하게 되면 세 여인이 편들어 주도록 하자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었다. 선우철은 총명하고 기지가 대단히 놀라웠다. 그렇기 때문에 세 여인이 나타나자 그녀들이 놀랍고도 기민한 비기를 지녔다는 것을 일찍 직감했었다. ‘저 여자들과 가까이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다면 나를 괴롭히는 익공관주 순천진인 등이 조금도 두려울 것 없지.’ 이렇게 생각한 끝에 그는 세 여자에게 접근하여 부드럽게 행동을 취한 것이었다. 그러는 한편으로 아름다운 그녀들에게 색다른 감정을 품고 있는 것도 숨길 수 없었다. 이때 고화룡은 비류신을 안고 서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비류신이 어떤 공력에 의해 중상을 입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선우철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 그는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고개를 쳐들었다. 즉시 선우철에게 응답을 했다. “알았소. 그런데 이렇게 상세가 심한 것을… 어떻게… …” 그는 말끝을 마무리도 못했다. 말을 하다가 언뜻 생각난 일이 있었다. 그것은 비류신을 세 여자가 치료하다가 그의 품에 지니고 있는 잔금섭혼신편을 발견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고화룡이 비류신을 안고 세 여자들에게 가려고 막 걸음을 옮길 때 한쪽 편에 있던 익공관주 순천진인이 음침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으흐흐흐흐… 선우철! 이 못난 자식아! 오늘 저녁에 어째서 그렇게 착한 사람으로 변했어? 보나마나 너는 여자들 틈에 끼어 몸을 숨겨 보자는 속셈이겠지. 그렇지만 내가 네 놈을 그대로 두지는 않을 테다. 꼭 죽여 버리고 말겠다!” 그의 말투는 너무 험악했다. 그의 말을 들은 세 여인은 모두 일시에 노한 기색을 보였다. 남의소녀가 백미와 백살을 향해 말했다. “백살 언니,저 사람 지금 우리를 욕하고 있는 것이에요?” 이 말이 떨어지자 선우철은 기회를 놓칠세라 끼어들었다. 익공관주와 흑룡강의 세 여인 사이에 악감정을 조장하려는 생각이었다. “아가씨, 나로 인해 저 늙은 도사에게 욕을 먹게 해서 미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백살의 얼굴 위에 살기가 스쳤다. 그러지 않아도 매서운 인상의 여인 얼굴에 살기가 나타나자 그녀의 주위에 싸늘한 공기가 도는 듯했다. 그녀는 갑자기 순천진인 쪽으로 걸어갔다. 독살스런 눈길을 잠시도 떼지 않고 순천진인을 쏘아보고 있었다. 순천진인은 살기 서린 백살의 눈길과 마주치는 순간 가슴이 서늘해짐을 금치 못하였다. 그는 눈길을 돌렸으나 그대로 약세를 보일 수 없다고 여겼던지 돌연 고화룡에게 덤벼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허공에서 여자의 웃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조용하던 허공에서 은방울을 옥쟁반에 굴리는 듯한 웃음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러나 그 웃음소리는 어딘지 날카로운 기운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청색 그림자가 눈에 띄었다. 순천진인은 청색녀의 웃음을 듣자 크게 놀라며 얼굴빛이 일변하였다. 그는 재빨리 몸을 공중으로 솟구친 다음 옆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백살이 순천진인을 바짝 따르다가 그가 공중으로 몸을 솟구칠 때 함께 솟구쳐 올라갔었다. 순천진인은 몸을 뒤집어 옆으로 날아가자 청의녀는 오른팔을 들어 백살을 향해 일 초를 쳐냈다. 백살도 청의녀가 공격하는 것을 보자 즉시 팔을 들어 반격을 가했다. 다음 순간 가벼운 폭음과 함께 백살의 몸이 허공에서 한 바퀴 돈 다음 이 장 밖으로 날아가 떨어져버렸다. 청의녀는 유유히 내려섰다. 그녀의 예리한 눈길은 땅에 내려서면서부터 곧바로 고화룡에게 안긴 비류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가 나타나자 장중은 혹한에 얼어붙은 한 겨울의 들판처럼 침묵과 긴장에 휩싸였다. 사람들마다 모두 이상하리만치 엄숙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고화룡은 눈앞에 나타난 여자가 요즘 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청색혈마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나, 예리한 눈동자와 백살을 날려버린 장력으로 보아 무공이 대단히 높다는 것은 짐작했다. 청색혈마가 비류신을 노려보고 있음을 안 고화룡은 마음이 심히 불안해졌다. 그것이 복이 될 것인지 화가 미칠 징조인지 알 수 없는 까닭이었다. 이때 청색혈마가 돌연 비류신을 가리키며 날카롭게 외쳤다. “어떤 사람이 저 사람을 상하게 했소? 빨리 말하시오!” 그녀는 말을 하면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순천진인을 노려보았다. 익공관주 순천진인은 청색혈마의 매서운 눈초리에 흠칫하면서도 코웃음을 치며 되물었다. “청색혈마, 그렇게 무섭게 묻는 말은 나에게 하는 소리요?” “이곳에 있는 사람은 당신과 선우철 놈밖에 없지 않소. 그리고 여러 번 비류신을 상해하려고 하지 않았소? 그러니까 당신들에게 묻는 거요.” 이 말을 듣자 선우철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그는 천천히 걸어 청색혈마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여협, 나를 오해하지 마시오. 선우철의 실력으로 비형을 쓰러뜨리지 못합니다.” “그러면 누가 이 사람을 상하게 했다는 말이오?” 청색혈마가 큰 소리로 다그치는 것을 듣고 신독괴살수는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비록 이름을 떨치는 여협이라 해도 너무나 도도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쌀쌀한 말투로 청색혈마에게 대꾸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귀머거리가 아니니까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들지 마시오!” 청색혈마가 신독괴살수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돌려 보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대담하게 나오는 꼴이 아마 이름난 인물인 듯한데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그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익공관주 순천진인이 재빨리 대답했다. “흥! 그 사람은 나와 같이 무림칠절 중 한 사람이오! 신독괴살수라 하오.” 익공관주 순천진인은 자기 혼자 청색혈마를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여기고 신독괴살수와 손을 잡고자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신독괴살수가 입을 열기 전에 자신이 나서서 대답했다. 순천진인은 신독괴살수와 손을 잡으면 청색혈마에게 당한 참패도 설욕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까지 하고 있었다. 청색혈마는 그의 말을 듣자 더욱 노기 띤 음성으로 쏘아붙였다. “다른 사람들은 당신들 무림칠절을 무서워할지 모르지만, 이 청색혈마는 당신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오.” 신독괴살수는 순천진인의 속셈을 알고 있었고 또한 청색혈마가 너무 도도하게 나오는 바람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차갑게 비꼬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했다. “으흐흐흐… 무림의 칠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두렵게 여길 것으로 생각하오?” 청색혈마는 그의 말이 떨어지자 벌컥 화를 내며 다짜고짜 일장을 내밀었다. 신독괴살수가 음침하게 웃으며 두 손을 약간 들어 허공에서 청색혈마의 장력을 받아넘겼다. 그러나 그의 몸은 한참 흔들리던 끝에 뒤로 한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이를 본 청색혈마가 냉랭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무림칠절의 이름은 과연 허명이 아니로군. 그러나 순천진인이란 늙은이보다 더 강한 사람은 몇 사람 되지 않을 것인즉 당신이 비류신을 저렇게 상해하지 못하였을 거요. 누가 그랬는지 어서 말하시오!” 청색혈마의 눈에서 당장 불이 튀어나올 듯 광채를 발하며 전신을 떨고 있었다. 비류신이 그런 꼴이 된 것이 무한히 비분한 모양이었다. 고화룡이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다가 처량한 음성으로 물었다. “여협은 비류신과 어떤 관계인가요?” 청색혈마는 그의 말이 그녀의 가장 아픈 곳을 건드린 듯 울부짖는 소리로 말했다. “그건 물을 것 없소! 어서 그 사람을 나에게 넘겨주오!” 말소리와 함께 초록빛이 번쩍하자 고화룡의 가슴이 흔들 했다. 다음 순간 비류신의 몸은 이미 청색혈마의 품 안에 있었다. 죽은 듯 움직이지 않는 비류신을 내려다보며 청색혈마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고화룡을 비롯해 어느 누구도 느닷없이 달려든 청색혈마와 비류신이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청색혈마가 큰 소리로 말했다. “비야! 마음 편히 죽어라! 너를 위해 무림의 고수들을 닥치는 대로 죽여서 원수를 갚아줄 테다. 너는 그러나 너무도 가치 없이 죽었어.… …” 청색혈마는 너무도 비통하여 비류신을 찬찬히 보지도 않고 그저 목숨이 끊어진 줄 아는 듯했다. 고화룡은 암연히 탄식하며 그녀에게 일러 주었다. “여협, 비류신은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소.” 청색혈마는 놀라는 기색을 보이더니 즉시 비류신의 가슴에 귀를 대보았다. 곧이어 그녀의 비분하고 당황하던 태도가 일변하였다. 그녀는 고개를 홱 쳐들고 고화룡을 바라보며 물었다. “누가 이렇게 상하게 했지요?” 이때 선우철이 불쑥 나섰다. “여협, 비형은 고화룡 대협을 도와드리기 위해서 저 흑룡강의 날뛰는 젊은이와 싸웠소. 두 사람이 모두 높은 내공을 전개하다가 마침내 쌍방이 동시에 부상당한 것입니다.” 하고 말을 한 선우철은 교살용사쌍수가 부축하고 있는 학철두를 가리켰다. 청색혈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쌀쌀하게 말하였다. “저 사람을 도왔다면 모르지만 만약 당신을 도와주다가 이렇게 부상당했다면 너무나 가치가 없어요!” 선우철은 그녀의 말을 듣자 눈살을 찌푸리며 말은 하지 않았으나 속으로 욕을 하였다. ‘미친년 같으니! 이 선우철의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든단 말인가? 흥, 너도 생긴 꼴은… 비류신의 환심을 사기에는 애당초 글렀다는 거나 알아라.’ 청색혈마는 눈길을 천천히 돌려 흑룡강의 세 여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흑룡강 사람들이오?” 그러자 청색혈마에게 일격을 당한 백살이 앞으로 나서며 날카롭게 대꾸했다. “흑룡강 사람이면 어쩔 테요.” 청색혈마는 백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순간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그러나 내공이 심후한 그녀는 곧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이 사람의 상세가 회복되지 못한다면 당신들 흑룡강 사람의 목숨을 모조리 뺏을 것이오.” 백살이 냉랭히 웃으며 응수했다. “호호호호… 그 사람의 목숨은 귀하고 우리들의 목숨은 천하다는 말이오?” 청색혈마가 다시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소리를 질렀다. “잔소리는 집어치워! 몇 천 명의 무림 고수들 목숨도 이 한 사람 목숨과 비할 바 못 되오. 어떻게 할 것인지 여기서 똑똑히 말을 하오!” 이 말에 백살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본 다음 청색혈마를 잠시 응시하고 나서 천천히 대답을 하였다. “우리 흑룡강 일파는 지금 중원에 돌아다니며 불문의 이대에 걸친 보물을 찾는 것이 임무이기는 하지만, 중원 무림의 인물들과 겨루어 어떤 절기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려던 참이오.” 청색혈마가 같잖다는 듯 크게 웃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디 공격을 해보는 것이 어떻소?” 분위기가 점차 험하게 되어가는 것을 짐작하고 풍운류랑인 고화룡이 성큼성큼 청색혈마에게 다가섰다. “여협, 비류신은 내가 안고 있겠소.” 그는 청색혈마의 손에서 비류신을 받아 안았다. 비류신의 상세가 심해 너무 오래 손을 보지 않으면 다친 경맥이 굳어져 다시는 고칠 수 없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떤 종류의 무공에 의해서 상했는지 몰라도 우선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추궁과혈수법(推宮過穴手法)으로 경맥을 문지르려 했다. 그러자 아름다운 여인의 목소리가 급히 만류하였다. “그 사람이 받은 내상의 치료를 미뤄서는 안됩니다. 그런 식으로 하면 아주 구할 길이 없어지고 맙니다.” 남의소녀가 이른 말이었다. 고화룡은 그녀의 말을 듣자 움찔하며 내밀었던 손을 움츠렸다. 청색혈마가 냉엄한 음성으로 남의소녀에게 말을 건넸다. “그가 어떤 종류의 장력에 의해서 부상당한 것이지 말해주면 나는 구할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어요.” 백살이 얼른 응답했다. “우리도 그가 어떠한 종류의 내력으로 부상을 당했는지 모르지만 상한 사람은 모두 고칠 수 있어요.” 그녀의 말에 청색혈마가 노기를 띠고 눈을 번쩍이며 쏘아 붙였다. “흥! 어떤 종류의 공력에 부상하였는지 모르지만 구할 길이 있다고? 어디 좀 있다가 내가 너를 격상할 테니 어떻게 구해 내는지 좀 보아야겠군!” 이 말을 들은 백살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나는 누구의 손에 죽을지 모르는 법이오! 자 초식을 받으시오!” 그녀는 말을 하면서 몸을 옆으로 돌리자 왼손으로 청색혈마의 가슴을 내쳤다. 청색혈마는 백살이 공격해 오는 것을 보자 극히 부드러운 자세로 석 자 가량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내가 주인이고 당신은 손님격이니 주인으로서 손님에게 삼 초를 양보하는 거요.” 청색혈마의 차분하면서도 비꼬는 투의 말을 듣자 백살은 분노가 치미는 듯 몸을 바르르 떨었다. “나는… 나는 당신에게 반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않을 것이오.” 백살은 날카롭게 말하며 청색혈마가 물러선 만큼 다가서며 강한 기세로 두 주먹을 번개처럼 내쳤다. 그녀의 주먹이 오르내리는 모습은 마치 꽃잎이 떨어지는 듯하면서 연달아 이십사 장을 내쳐왔다. 단숨에 이십사 장을 계속 내치는 동작은 전광석화 같았다. 순간 청색혈마는 뒤로 여섯 걸음이나 물러섰다. 비록 절묘한 무공을 지닌 그녀였지만 그토록 빠르단 말인가? 청색혈마는 백살이 이십사 장을 연달아 공격한 다음에야 숨을 돌리고 비로소 심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반격을 했다. 거대한 한 가닥 힘이 부드럽고도 강하게 백살을 향해 밀려갔다. 그런데 백살은 마치 청색혈마의 기고(奇高)한 공력을 잘 안다는 듯 입가에 방긋이 웃음을 띠었다. 그리고 오른손을 뒤로 쑥 빼고 청색혈마의 강맹한 경풍을 이끌었다. 동시에 그 틈을 타서 왼손으로 개문견일(開門見日)의 일 초로 공격하며 청색혈마의 왼쪽 어깨를 내리눌렀다. 청색혈마는 백살의 거동을 보고 그녀의 장력에 거대한 인력(引力)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 녀는 얼른 공격하던 장력을 분산시켰다. 그녀는 백살의 기묘한 공력을 알게 되자 생각했다. ‘흑룡강 일파의 무공은 정말 기괴하기도 하다.’ 그녀는 공격 방식을 바꾸었다. 그녀는 상대에게 밀어내던 힘을 철회하고 즉시 왼손으로 금색포룡(金索浦龍)의 초식을 전개하였다. 장세를 뒤바꾸어 반대로 백살의 왼팔 맥문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백살의 왼손이 번개처럼 움츠러들고, 어느 틈에 가느다란 그녀의 손가락은 청색혈마의 어깨에 닿았다. 그 찰나 청색혈마의 왼손은 벌써 백살의 왼쪽 팔목을 누르고 있었다. “으흣!” 다음 순간 두 여자는 동시에 이런 소리를 내며 극히 빠른 신법으로 몸을 뒤로 물리고 있었다. 이러한 동작은 눈 깜짝할 사이에 행해진 것이었다. 그들은 서로 상대방의 장세를 피하고 서로 낚아챈 다음 동시에 빠른 신법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일단 몸을 뒤로 물렸던 두 여인은 다시 공격을 시작하였다. 서로 선기를 쟁취하려는 태세였다. 양손이 나는 듯했고 발그림자가 땅에 점을 찍듯이 분주하게 움직였으며 사방에 바람이 윙윙 일었다. 사람의 그림자가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다가 곧 빙글빙글 돌면서 순식간에 십여 합이나 겨루었다. 익공관주 순천진인은 일찍이 청색혈마와 대결한 경험이 있는 터라 그녀의 무공이 얼마나 깊고 내공이 깊으며 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백살이 제아무리 무기 (武技)가 기묘하고 절대적이라도 이십 초를 넘기지 못하리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실제 사정은 크게 달랐다. 두 여자는 더욱 빠른 속도로 결투를 계속했다. 이미 삼십 합에 달하였다. 그들은 서로 신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택하여 혹독하게 장지(掌指)로 습격하고 있었다. 청색혈마도 초식이 거듭되자 몹시 화를 내며 백살을 공격했다. 그녀의 장력은 싸울수록 더 강맹해져서 일 초마다 산을 밀어내고 바다를 쓸 듯한 기세를 보였다. 또한 그녀의 장력의 기묘한 변화는 백살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풍운류랑인 고화룡은 두 여인의 결전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그녀들의 무공은 실로 천하의 일품이라고 생각하였다. 한 여자는 가볍고 재빠르며 악랄하기 그지없는데 반하여, 또 한 여자는 경력이 웅맹하고 견고한 듯하면서도 부드러워 일 초마다 정묘하고 무궁한 변화를 내포하고 있었다. ‘만약 저 두 여인의 극단적인 무공을 유합하여 그 장점만 취한다면 천하무적의 무공을 이룰 수 있으리라.’ 그는 왕년에 소림의 무학대사와 흑룡강의 시공무인(是空無人)이 저술한 속성학(速成學) 기서와 정사무학(正邪武學) 비록에 있는 것들을 배웠더라면 단시일 내에 절정의 고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회상하였다. ‘그러나 나와 연분이 없어서 그 책의 행방을 만화신검 홍부용에게 알려 주고 말았지 않았던가.’ 그가 이런 생각을 하며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청색혈마의 고함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녀는 소리를 지르며 손을 들고 가볍게 삼장을 공격하였다. 그 삼장은 보기만으로는 극히 가볍고 아무런 힘도 없어 보였으나 가장 적절한 때 전개된 초식이었다. 때문에 백살은 몸을 휘청하며 뒤로 세 걸음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순간이었다. 백살은 몸을 가볍게 몇 번 떨다가 입으로 붉은 피를 토하더니 금세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몸을 뒤로 물리기 전에 이미 청색혈마의 장풍에 내상을 입었던 것이다. 남의소녀가 한숨 섞인 말을 했다 “아아, 중원 무림에 저렇게 절묘한 고수가 있을 줄 정말 몰랐어! 백미 언니, 어서 백살 언니를 부축해서 데려오세요.” 백살은 냉철하던 표정이 간데없이 처량한 얼굴로 나직하게 말했다. “소저, 나는 아주 심한 부상을 당했어요.” 그녀는 말을 마치자 다시 한 번 몸을 떨고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그러나 백미가 얼른 그녀의 몸을 부축해서 땅에 넘어지지 않았다. 청색혈마는 여전히 냉랭한 음성으로 말하였다. “그 사람은 이미 나의 빙선일월장을 맞았소.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즉시 피가 엉겨서 얼어 죽을 것이오.” 남의소녀가 쌀쌀하게 응수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살 수 없을 것이오.” 백살은 백미의 몸에 기대서 눈을 감고 있다가 남의소녀의 말을 듣자 눈을 뜨며 다시 처량한 음성으로 물었다. “소저,이 언니는 정말 살아날 수 없나요?” 그녀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모두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백살의 표독했던 표정은 이미 사라졌고 아주 연약한 여자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남의소녀는 백살의 말을 듣고 잠시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뭔가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한 그런 눈빛이었다. 이윽고 그녀는 나직하면서도 힘차게 말했다. “백살 언니, 살아날 수 있어요!” 그녀는 무엇인지 자신이 생긴 듯 이렇게 말하고 나서 백미에게 다시 말했다. “백미 언니, 어서 가십시다.” 백미는 남의소녀의 말을 듣자 떠날 준비를 했다. 부축하고 있던 백살의 팔을 자신의 어깨로 돌렸다. 백살도 아직까지 절망에 빠져 있다가 남의소녀의 말을 듣는 순간부터 활기를 되찾았다. 그런데 이때 신독괴살수가 음침하게 웃으며 세 여자의 가는 길을 막았다. “으흐흐흐! 흑룡강 일원들은 모두 남아 있어야 하오.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떠날 수 있을 줄 알았소?” 남의소녀가 대들 듯이 말했다. “어떻게 할 테요.” 월광검 소대풍이 한바탕 웃음을 웃고 나서 대답을 가로막았다. “오늘 여러 사람이 이 마당에 모인 것은 흑룡강 일파를 섬멸하기 위해서였고, 또 흑룡강 일파의 몇 가지 진산비보(鎭山秘寶)를 구경하기 위해서요.” 그의 말이 끝나자 남의소녀가 소리 없이 웃었다. “당신의 지령보는 야월광명지신도 삼 검 중 어느 분이오?” 그녀의 물음에 소대풍은 몸을 움찔하였다. 그는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망할 년이 그것을 하필 여기서 물을 게 뭐람?’ 그러나 그는 내색을 하지 않고 크게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노부가 바로 월광검 소대풍이오.무슨 말을 하려는 거요?” 남의소녀가 담담하게 받아 넘겼다. “오호! 당신이 바로 가장 무공이 약한 맏이로군요?”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