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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 二十六 章 사마군의 도움 휘이이이잉! 웅장한 산기슭에 광풍폭설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의 숲 속 나무들은 앙상하게 가지만 남기고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남궁진성이 묵고 있던 모옥도 이미 잿더미가 되어 잔재만 남아 있었다. 그곳에 한 사나이가 서 있었다. 후아아아앙! 무섭게 휘몰아치는 광풍폭설을 맞으며 장승처럼 서 있던 위지강이 허물어지듯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는 잔재를 으스러지게 움켜쥔 채 자신을 질타했다. '나를, 나를 절대로 용서치 말아다오, 아들아!' 휘이이이잉! 위지강의 등줄기를 광풍폭설이 더욱 매섭게 훑고 지나갔다. 그는 참담한 심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무적검맹. 만장절벽을 연결하는 나무다리 뒤쪽의 산기슭 중턱에 거대한 성채 가 자리해 있었다. 중천에 떠 있는 둥근 만월은 휘황찬란하게 대지를 내리비추고 어둠에 잠긴 무적검맹의 성채는 철옹성처럼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성문 위에는 무적검맹, 흑수림(黑水林), 대도맹(大刀盟), 구검방(九劍 ) 등 무적검맹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산하 문파들의 깃발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담 근처의 울창한 수목 위에 만월은 둥실 떠 있었다. 이때 누군가 술에 잔뜩 취한 목소리로 커다랗게 부르는 노랫소리가 주위를 울렸다. ― 등불은 밝고 머릿속은 거울 같은데……. 호위무사의 부축을 받으며 엉망으로 취한 모습으로 대전의 뜨락을 걸어오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남궁사였다. 그는 곧 쓰러질 듯 비틀거리면서도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 달빛을 희롱하여 그림자 드리운다. 남궁사는 만취해 있었으나 기분이 매우 좋은 듯했다. ― 밝은 달빛 아래 부용꽃을 보니 얼굴을 찡그리는가……. "핫하하하하!" 수하의 부축을 받으며 대전의 계단을 올라서던 남궁사가 방문 앞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방문 앞에 뇌광이 서 있었던 것이다. "이게 누구야? 이 남궁사의 둘도 없는 심복 뇌광이 아닌가?" 그는 뇌광의 어깨를 잡고는 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하! 마침 잘왔네. 오늘은 자네와 나, 둘 중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 마시는 거다." 뇌광이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손님이 와 계십니다." "손님? 흐흥, 내가 적적할까봐 어여쁜 계집이라도 하나 데려온 모양이군그래." 남궁사는 몸을 흔들거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성의는 고맙지만 사양하겠네." 그는 손으로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해보였다. "자네 내 아내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몰라서 그러는데, 괜히 한눈 팔다가 들키기라도 하는 날이면 난 영락없이 이거란 말이야, 알겠나?" 남궁사는 방문을 냅다 걷어차며 안을 향해 꽥 소리를 질렀다. "안 그런가? 연해월!" 그러나 방안에는 팔비신검 궁모백과 두 명의 수하가 있었다. 남궁사는 한 손으로 방문을 짚은 채 취기 어린 표정으로 빈정거렸다. "호오, 천자보다 뵙기 어렵다는 무적검맹의 맹주께서 이런 누추한 곳을 다 찾아주시고… 이런 광영이……." 궁모백이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본성을 군산(君山)으로 옮기려는 계획을 추진중이라고 들었네만." 남궁사는 비틀거리며 침상 쪽으로 향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소……. 이놈의 사천 땅은 너무 춥고 삭막해서 말이오." 남궁사는 그대로 퍽 엎어졌다. 그는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싸구려 술……. 동전 몇 푼에 몸을 파는 비천한 계집들……. 아무리 봐도 이놈의 땅은 쥐새끼 소굴이지 사람 사는 곳이 아닌 것 같아서……." 모멸 찬 언사에 천하의 궁모백도 냉랭하게 얼굴을 굳혔다. "쥐새끼 소굴이라니……!" 그의 곁에 있던 수하들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기세등등하게 달려들 자세를 취했다. "아무리 취중이라고 하나 어찌 그런 말을!" 이때 궁모백이 조용히 손을 들어 수하들을 제지했다. 그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가자!" 문밖으로 따라나가면서 수하들은 침상에 엎어져 있는 남궁사를 못마땅한 눈으로 쏘아보았다. 수하 중 하나가 뜨락을 걸어나오면서 분갈을 터트렸다. "날이 갈수록 안하무인입니다." 옆에 있는 다른 수하도 맞장구를 쳤다. "도대체 저런 꼬락서니를 언제까지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합니까?" 허나, 궁모백의 얼굴에는 야릇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담담하게 힘주어 말했다. "두 개의 천하가 하나로 될 때까지!" 그의 어투에는 강인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 천하가 이 팔비신검 궁모백의 손아귀에 떨어질 때까지!" 궁모백 일행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흐르는 물은 앞뒤를 다투지 않고, 고인 물은 언제고 썩기 마련이니까……!" 방안에는, 흐트러진 차림새의 남궁사가 홀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의 뇌리로 남궁진성과 더불어 장난치며 웃고 즐기던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뒤이어 연해월의 화사한 모습을 떠올린 남궁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이마를 타고 내렸다. '종내 잊을 수 없는 내 사랑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덩그러니 퍼져 있는 남궁사의 전신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잃은 처참한 사람의 고독이 배어 나왔다. '빌어먹을 청춘이여…….' *** 음산(陰山).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자욱한 운무 속에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칼끝처럼 솟아나 있었다. 운무가 자욱한 계곡의 봉우리에는 둥근 달이 걸려 있었다. 이때 달빛 속에 몇 개의 점이 나타났다. 점은 점점 확대되더니 이내 화려한 가마를 메고 있는 여인들로 둔갑했다. 가마를 메고 있는 여인들은 여덟 명, 모두 눈보다 흰 백의 차림이었다. 슈슈슈슈슈! 무거운 가마를 메고 있건만 여인들은 무서운 속도로 날아왔다. 놀라울 정도의 초상승 경공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녀들은 운무로 뒤덮인 계곡을 지나 전면에 보이는 특이한 형태의 거대한 봉우리를 향해 날아갔다. 슈슈슈슈슈! 마침내 봉우리에 당도한 여인들은 지상으로 하강했다. 처처처척! 백의여인들은 가볍게 내려선 뒤 조심스럽게 가마를 내려놓았다. 가마의 문이 열리고 먼저 나온 것은 화려한 꽃신이었다. 꽃신의 임자는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가마 밖으로 나온 여인은 뜻밖에도 화려한 복장을 한 염서시이었다. 그녀는 백의여인들의 공손한 인사를 받으며 가마 위에서 내렸다. 염서시가 전면의 울퉁불퉁한 암벽 가까이에 다가갔을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룡(潛龍)은 번개를 무서워하지 않고!" 아마 확인 절차로 쓰이는 암호인 모양이다. 염서시가 무표정하게 그 뒤를 이었다. "와호(臥虎)는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녀의 말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전면 암벽이 좌우로 갈라졌다. 쿠르르르르! 활짝 열려진 암벽의 안쪽으로 그녀와 일행이 걸어 들어갔다. 통로에는 흑의무사들이 양쪽으로 도열해 있었다. 그들은 염서시를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꺾었다. "삼가 대소저님을 뵈옵니다!" 염서시의 수행하던 여인들이 막 통로 안으로 들어섰을 때, 무사들이 장검을 교차시키며 백의여인들의 진입을 막았다. 몇 발자국을 앞서가던 염서시가 눈살을 찌푸리며 냉랭하게 소리쳤다. "무슨 짓이냐?" "대소저 한 분만 들여보내시라는 노천주님의 분부가 계셨습니다."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냉랭한 표정으로 변한 염서시가 홀로 통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봐도 놀란다더니 이젠 담까지 약해지신 모양이군!" 통로 중간중간에는 무사들이 횃불을 밝혀든 채 그녀를 향해 공손히 인사를 했다. 화롯불을 밝혀놓은 거대한 석문 앞에 그녀가 도착하자 무사들은 그녀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열어라." 염서시는 짧게 명령했다. "알겠습니다." 무사 하나가 대답하며 벽에 붙어 있는 기관장치를 손으로 눌렀다. 쿠르르르릉! 굉음을 토하며 석문이 육중하게 좌우로 갈라졌다. 염서시는 석문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그녀가 석문 안으로 들어섬과 동시에 석문은 재차 굉음을 토하며 닫혀버렸다. 석문 안은 어마어마하게 넓은 대전이었다. 대전 안은 흡사 악마의 대전을 연상시키듯 음산한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좌우에는 수십 개의 계단이 있었고 계단 위에 마련된 제단 위에는 거대한 아수라악마상이 공포스럽게 세워져 있었다. 석문을 등진 채 악마상을 올려다보는 염서시의 안색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아수라악마상 바로 앞, 웅후한 태사의에는 개벽신수 철륭이 앉아 있었다. 염서시는 냉랭한 낯빛을 싹 거두며 이내 특유의 요염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는 철륭을 향해 날아갈 듯이 대례를 올렸다. "소첩이 삼가 문안인사 여쭈옵니다." 개벽신수는 묵묵히 그녀를 향해 손을 쓱 내뻗었다. 우우우웅! 그의 손에서 막강한 흡입력이 뿜어져 나왔다. 염서시는 철륭의 손에서 뿜어지는 안개 같은 흡입력에 휩싸여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염서시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녀의 몸은 점차 높게 떠올랐다. 철륭은 뻗어낸 손을 자신 앞으로 쓰윽 끌어당겼다. 거의 제단 높이로 떠올라 있던 염서시가 자석에 이끌리듯 그대로 철륭에게 빨려 들어왔다. 이윽고 염서시는 철륭의 무릎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염서시는 까마득한 계단 아래쪽 자신이 서 있던 곳을 쳐다보며 기가 질린 표정이 되었다. "저렇게 먼 거리에 있던 나를 백지장 다루듯 하는 어마어마한 공력이란 도대체가……." 그녀는 무표정한 철륭을 향해 반색을 했다. "그럼 드디어 월영천혈기(月影千血氣)를 극성까지 성취해 버리신 거예요?" 철륭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염서시는 간드러진 웃음을 터트렸다. "깔깔깔, 잘됐군요! 정말 축하해요!" 그녀는 백사 같은 팔로 철륭의 목을 끌어안았다. "안방을 엉뚱한 자들에게 내준 건 아깝지만 그 대신 꿈에 그리던 대공(大功)을 이루셨으니 이거야말로 전화위복이 아니고 뭐예요, 안 그래요?" 순간 철륭의 손이 염서시의 목을 콱 움켜쥐었다. 그 바람에 그녀는 숨막힌 비명을 토하며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컥!" 철륭은 무섭게 굳은 표정으로 염서시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녀는 충격과 경악으로 공포스런 표정이 되었다. "왜, 왜 이러시는 거예요?" 철륭은 잡아먹을 듯이 살벌한 눈빛을 뿜어내었다. "언제부터 내가 다섯 번이나 연락을 해야 나타나는 귀한 몸이 되었더냐?" 그 말을 들은 염서시는 비로소 안심이 되는지 부드러운 표정으로 짐짓 눈을 흘겼다. "난 또 뭐라고……." 철륭은 그래도 손을 놓지 않은 채 차갑게 말했다. "말해라. 어디서 무슨 짓을 하다가 이제 온 것이냐?" 염서시는 고통스런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 알았어요……. 하나도 빠짐없이 다 말씀드릴 테니까 이 손 좀……." 철륭은 그제야 비로소 염서시의 목을 놓아주었다. "한마디라도 허튼소리를 했다간 지옥의 고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염서시는 철륭의 무릎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서 손짓발짓을 해가며 수다를 떨었다. "허튼소리 하고 말 게 어딨어요? 제가 중원천지에 벌여놓은 사업이 어디 한두 개예요?" 그녀는 열심히 손가락을 꼽아 보였다. "주루가 세 개에 객잔이 여섯, 여덟 개의 도박장과 열다섯 개의 마장(馬場), 거기다 포목상, 골동품가게……." 그녀는 철륭에게 따지듯이 대들었다. "알아요? 자그마치 서른 개가 넘는다구요! 이걸 하루아침에 전부 처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조목조목 따지고 들자 철륭은 약간 누그러진 표정이 되었다. "그러니까 그것들을 전부 정리하느라 늦었단 말이냐?" 염서시는 기회를 잡았다는 듯 빠른 어투로 차갑게 소리쳤다. "그럼 그 아까운 것들을 전부 남 주고 왔어야 속이 시원하겠어요?" 철륭은 그녀가 조목조목 따지자 할말이 없어졌다. 조금 전 염서시를 윽박지르던 모습과는 극명하게 대조적인 자세다. "당신 성격에 이대로 주저앉을 리는 만무하고 틀림없이 권토중래를 꿈꾸며 와신상담하고 있을 텐데 그러자면 무엇보다 돈이 있어야 꿈을 꾸든 죽을 쑤든 할 게 아니냐구요!" 그녀는 짐짓 토라진 척 돌아앉았다. "기껏 죽을 고생해 가며 생각해 주니까 괜히 난리야, 남의 속도 모르고!" 비로소 철륭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대소를 터트렸다. "껄껄! 거기까지 생각해 주는 걸 보니 과연 너는 내 사람이로구나!" 염서시는 비로소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웃음을 멈춘 철륭은 곧 손을 뻗어 늘씬한 염서시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어멋!" 염서시는 짐짓 놀라는 척하며 교태를 부렸다. 철륭은 얼굴을 바싹 들이대며 말했다. "본좌에 대한 너의 애정과 정성이 그토록 지극하거늘 내 어찌 보답이 없을 것이냐?" 그가 앉은 의자가 아수라악마상을 향해 빙글 돌아갔다. 철륭은 이어 아수라악마상을 마주보며 한 손을 척 치켜들었다. 그는 쳐든 손에서 사이한 기운을 뭉클뭉클 뿜어내며 큰소리로 외쳤다. "열려라, 새 하늘과 새 땅이여!" 쩌쩌쩌정! 아수라악마상이 정확하게 반으로 갈라졌다. 쿠쿠쿠쿠쿠! 완전히 갈라진 그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염서시는 미소를 머금고 있는 철륭의 품에서 눈이 부신 듯 얼굴을 가렸다. "어디서 이런 빛이……." 그러다 그녀의 눈이 있는 대로 흡떠지며 휘둥그래졌다. 병풍처럼 죽 늘어선 절벽, 그 아래 펼쳐진 드넓은 초원 저쪽에서 어마어마한 거궁(巨宮)의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염서시는 망연자실했다. '맙소사!' 뚝딱뚝딱! 꽝꽝꽝! 망치질 소리와 삽질하는 소리, 대패질 소리 등과 어우러져 들려오고, 피골이 상접한 수많은 인부들이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눈을 번뜩이며 그들을 감시하는 흑의무사들의 채찍을 든 모습도 곳곳에서 보였다. "요령 피우지 말고 빨리빨리 움직여!" "거기 일 안하고 잡담하는 놈이 누구야?" 노역수들을 향해 무사 하나가 위압적으로 외쳤다. "이것들은 보리죽도 한 그릇 못 처먹었나? 그까짓 나무 하나에 몇 놈이 매달린 거야" 노역수들은 거대한 원목을 운반하고 있었다. 이때 원목을 운반하던 노역수 중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어이쿠!" "어렵쇼? 저건 또 뭐 하는 수작이야?" "허헉! 조, 조금만 쉬게 해주십쇼, 나리! 도저히 힘이 부쳐서……." 늙은 노역수는 두 손을 모아 애원하였다. 그러나 흑의무사의 표정에선 한푼의 인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때되면 밥은 꼬박꼬박 챙겨먹은 주제에 쉬고 싶단 말이지?" "잠시만 쉬게 해주시면……." 흑의무사는 망설임 없이 옆구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그에게 늙은 노역수의 말에 귀 기울일 리 만무했던 것이다. 흑의무사는 음침하게 말했다. "잠시가 아니라 영원히 쉬게 해주지." 늙은 노역수는 기겁을 했다. "자, 잘못했습니다, 나리! 모, 목숨만!" 흑의무사의 칼날에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늦었어!" 쉬이익! 막 그의 칼날이 늙은 노역수를 난자하려는 순간, 누군가 무사의 손목을 재빠른 솜씨로 낚아챘다. 무사는 험악한 인상을 쓰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떤 놈이 감히!" 순간 그는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자신의 손목을 움켜쥔 자는 봉두난발에 얼굴은 온통 화상으로 뒤덮여 흉측한 몰골을 한 사내였다. 뿐만 아니라 손목을 낚아챈 사내는 이미 그것만으로 흑의무사를 제압하고 있었다. 노역수들도 잠시 일손을 놓은 채 두 사람을 흥미진진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눈, 코, 입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화상을 입은 사내, 그의 내력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화상의 사내가 무사에게 무거운 음성으로 부탁했다. "잠시만 쉬게 해주시오. 저 노인의 몫은 내가 대신 해주겠소." 무사는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 그건 규칙상……." 화상의 사내는 손목을 잡은 손에 꾸욱 힘을 실었다. 무사는 급살을 맞은 듯 두 눈이 확 불거지면서 내심 숨막힌 비명을 토했다. '커헉!' "허락해 주시오. 오래 걸리진 않을 거요." 무사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마지못해 응낙했다. "조, 좋아! 자네를 봐서 이번 한번만 눈감아주지! 그 대신 요령 피우면 곤란해." 화상의 사내는 씨익 웃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지독하게 공포스러운 모습이었다. 가뜩이나 쭈그러진 얼굴이 더욱 더 처참하게 일그러졌던 것이다. "고맙소, 나리!" 그는 무사의 손목을 놓아주며 늙은 노역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염려 마시고 저쪽 그늘에 가서 좀 쉬십시오." 늙은 노역수는 너무나 고마운 나머지 두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번번이 신세를 지는구먼…….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네." 화상의 사내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원목 더미를 향해 걸어갔다. 멍이 들어 시퍼렇게 변해버린 손목을 움켜잡은 무사는 여전히 잔뜩 얼굴을 찡그린 채 그를 노려보았다. '저 새끼를 그냥…….' 원목 더미에 다가간 화상 사내는 커다란 원목 하나를 번쩍 들어 어깨에 척 걸쳤다. 그리고는 공사판 저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내력을 알 수 없는 사내! 지독한 화상으로 인해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는 사내! 그 사내는 바로 제중인이었다. 그런 제중인을 멀찌감치에서 지켜보며 두 명의 무사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수군거렸다. "저놈 저거 생긴 건 저래도 힘 하나는 항우 뺨친다니깐!" "부지런한 건 또 어떻고?" 제중인은 거대한 원목을 짊어진 채 높다란 공사장 계단을 늠름하게 올라갔다. 그의 뒤쪽에서는 여러 사람이 원목 하나를 끙끙거리며 나르고 있었다. "닥치는 대로 붙잡아 올 때도 군소리 한마디 안하고 따라오더니 지금까지도 불평 한마디 늘어놓는 걸 본 적이 없단 말이야." "완전히 체질이야, 체질! 나중에 저 계통으로 나가면 크게 성공할 놈이라고!" 이때 멀찌감치 떨어진 구릉 위에 개벽신수 철륭과 염서시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맙소사, 노천주님과 대소저께서……?' 도처의 무사들이 갑자기 바삐 움직이며 노역수들을 향해 고래고래 악을 쓰기 시작했다.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빨리 움직여!" "거기 대머리! 아까부터 왜 자꾸 한눈질이야? 젊은 나이에 고인(故人)이 되고 싶나?" 염서시는 거대한 공사장을 바라보면서 매우 감탄했다. "정말 굉장하군요. 저 정도 규모라면 과거의 본성보다 크면 컸지 절대로 작지는 않을 거예요." 철륭은 흐뭇하게 웃으며 짧게 말했다. "신주제일청(神州第一廳)!" "신주제일청이라면 신(神)의 땅을 주관하는 절대유일의 집행부라는 뜻! 멋있군요, 정말 멋있어요." 철륭은 염서시의 찬사에 안면 가득 회심의 미소를 떠올렸다. "남들은 끝났다고 말하지만 본좌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의 눈은 광기로 번들거리며 강렬한 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오합지졸들만 득실거렸던 남극벌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절대의 힘과 무상의 권위로 천하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염서시가 그의 광오한 말에 흠칫했다. "어차피 천하제일위(天下第一位)는 힘있는 자가 차지하기 마련이고 천하의 민심 또한 강자에게 기우는 것이 인지상정의 법칙!" 쿠우우우우! 철륭은 전신으로 장중한 기운을 뿜어내며 하늘을 향해 미친 듯이 포효했다. "두고 보라! 머지않아 이 땅에 신주제일청의 이름으로 새로운 신화가 탄생할지니, 그 날이 오면 아홉 개의 하늘[九天]과 열 개의 땅덩어리[十地]가 오직 내 이름 하나만을 숭배하고 찬양하게 되리라!" 철륭의 입에서 앙천광소가 터져 나왔다. "와하하하하!" 쩌렁쩌렁 울리는 광소에 무사들과 노역수들이 놀란 얼굴로 구릉 위를 쳐다보았다. 제중인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노역수들의 뒤쪽에서 묵묵히 원목을 나르고 있었다. *** 쪽빛의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언덕 위에 한 채의 장원이 그림같이 자리잡고 있었다. 무적검맹 난주지부(蘭州支府). 때는 태양이 천공의 정중앙에 걸린 정오 무렵. 봄기운이 완연한 후원 연못가에는 아담한 팔각정이 세워져 있었다. 팔각정 안 탁자에는 좌수경과 잠송이 마주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신월회(新月會)라고 하셨소?" 잠송은 술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좌수경은 잠송의 술잔에 술을 따르며 대답했다. "이미 강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신흥 살수조직이오." 잠송이 술병을 들어 좌수경의 술잔을 채웠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일전에 상관청을 살해한 무희를 납치해간 자가 바로 신월회의 회주라는 거요." 잠송은 술잔을 들어 술로 입 안을 적셨다. "덕분에 만검산장을 손쉽게 밟았으니 나중에 만나면 술이라도 한잔 대접해 주시구려." 좌수경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잠송을 쳐다보며 말의 여운을 남겼다. "그 술, 잠형이 대접해 주시면 안되겠소?" 술을 마시던 잠송은 흠칫했다. 그로서는 좌수경의 제안이 무척 뜻밖이었던 것이다. 그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런 일이라면 나보다 좌수형이 훨씬 제격일 것 같소만." 좌수경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잠형은 남극벌의 비봉당에 모셔두었던 잠형의 형수님과 상관청을 살해한 무희가 동일인이라면 믿을 수 있겠소?" 잠송은 순간 충격을 받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럴 리가……." 좌수경은 여전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잠형이 가시겠소? 아니면 내가 가리까?" 잠송이 자리를 박차며 벌떡 일어섰다. "집안 일을 남에게 맡긴 데서야……." 쉬이익! 이때 문득 어디선가 들려오는 파공음에 좌수경과 잠송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힐끗 돌렸다. 연못 저쪽에서 수홍장이 일직선으로 날아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팔각정 근처에 이르러 한차례 몸을 뒤집더니 연못의 수면을 박차고 몸을 휘돌리며 그대로 안으로 날아들었다. 좌수경은 가볍게 바닥에 내려서는 수홍장을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어지간히 심심했던 모양이구나. 아니면 술 냄새에 회가 동했거나." "농담은 나중에 하시고 이것부터 보십시오." 수홍장은 좌수경에게 한 통의 서찰을 척 내밀었다. "또 그 서찰이로군!" 좌수경은 서찰을 받아들고 펼쳐들었다. 이윽고 내용을 다 읽고 난 그는 피식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그 내용이군!" 그는 서찰을 잠송에게 내밀었다. "잠형도 한번 보시겠소?" "어떤 미친놈이 장난질이라도 하는 모양이군요." 좌수경은 수홍장에게 술잔을 밀어주며 질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난 반년 사이에 거의 한 달 간격으로 한 통씩 본영으로 날아온 괴서찰이오." 그는 수홍장이 집어든 술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 같아서 잠형께는 보여주지 않았으니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그러나 이때 서찰을 펼쳐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잠송은 좌수경의 말을 귓전으로 흘리며 두 눈을 부릅떴다. 서찰을 쥐고 있는 그의 손이 학질에 걸린 듯 덜덜덜 떨렸다. 서찰의 내용은 이러했다. <어쩌면 이 글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소. 공사 진척이 더욱 빨라지고 있소. 공사가 끝나는 날 개벽신수 철륭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힘과 세력을 이끌고 중원 침공을 개시할 것이오. 장소는 음산(陰山) 불귀곡(不歸谷)이오. 서둘러 주시오. 귀군의 승전을 앙망하겠소.> 내용의 끝에는 보낸 사람의 서명 대신 번갯불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좌수경은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짐짓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경 쓸 거 없소. 미친놈의 소행이 아니면 우리를 함정에 빠트리려는 역정보가 틀림……." 좌수경은 말끝을 흐리며 눈에 이채를 담았다. 그제야 서찰을 움켜쥔 채 덜덜덜 떨고 있는 잠송을 본 것이다. 그는 의아한 얼굴로 술잔을 탁자에 놓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러시오, 잠형?" 잠송의 눈에서 격정의 눈물이 확 솟구쳐 올랐다. 좀체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에게서 매우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이건 미친놈의 소행도 아니고 역정보도 아니오." 굵은 눈물이 서찰 위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이 정보는 믿을 수 있소! 혈랑팔겁이 목숨을 걸고 장담하겠소." 잠송은 서명 대신 그려진 번개 모양이 바로 전광(電光)을 뜻하고 이는 여섯째 아우인 전광쾌도(電光快刀) 제중인의 별호를 상징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잠송의 말에 좌수경과 수홍장은 뜻밖이라는 듯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잠송의 눈에선 눈물이 고이고 서찰을 콰악 움켜쥐었다.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살아 있어 주었구나……!" 고여 있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아우야!" *** 넓은 강줄기를 앞에 두고 뒤쪽으로는 병풍 같은 산기슭으로 둘러 쌓인 전형적인 촌락이다. 작은 촌락을 가로지르는 거리의 양옆으로는 다루와 객잔, 철공소 등 웬만한 생활 터전을 골고루 갖추고 있었다. 한가롭게 행인들이 오가는 거리 중앙에 다(茶)라는 깃발이 걸려 있는 이층 찻집. 창문이 활짝 열린 이층 창가의 탁자에는 혼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 사내는 사마군이었다. 그의 뒤에 회의를 입은 죽립인이 공손한 자세로 서 있었다. 무거운 표정의 사마군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도합 열두 명이란 말이지?" "팔관(八關)을 통과할 때까지만 해도 스물다섯 명이었지만 마지막 십관(十關)에서 대거 탈락하는 바람에……." 회의죽립인은 면목이 없는 듯 말끝을 흐렸다. 사마군은 희미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래도 이번 기(期) 자원이 가장 우수한 편이군!" 그의 말에 힘을 얻은 듯 죽립인은 힘있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저희 신월회의 살수수업을 전관(全關) 통과해서 한번에 열 명 이상 살아남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마군은 천천히 일어나 뒷짐을 쥔 채 창 밖을 응시했다. "좋다, 각자에게 수련성적에 따라 약속한 수당과 장비를 지급하고 본회의 규칙을 철저히 숙지시키도록." 죽립객은 공손히 허리를 접었다. "알겠습니다." 사마군은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연해월은 지금 어디 있나?" ***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방안의 한쪽 벽면에는 서가와 침상 그리고 중앙에는 서탁 하나가 놓여져 검소하게 꾸며져 있었다. 연해월은 붓을 쥔 채 화선지 위에 십여 세 가량 된 남궁진성의 초상화를 그려나가고 있었다. 마침내 초상화를 다 완성한 연해월, 벼루에 붓을 내려놓았다. 그리움이 가득 찬 얼굴로 그림을 바라보는 그녀. '얼마큼 자랐을까?' 그녀의 눈시울이 이내 축축이 젖어들었다. 아득한 기억을 더듬고 이제는 더욱 성장했을 아들의 모습을 대충 짐작으로 그려본 것이었다. 헌데, 그 얼굴이 누군가를 쏙 빼어 닮아 있었다. '아냐……. 어쩌면 이보다 훨씬 더 자랐을지도 몰라!' 연해월은 우울한 시선을 들어 창문 밖 하늘을 응시했다. "불쌍한 녀석. 살아 있기만 한다면 오죽 좋으련만……." "살아 있을 거다." 이때 불쑥 들려온 사마군의 음성에 연해월이 고개를 돌렸다. 사마군의 얼굴에는 엷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한(恨)이 많은 놈은 목숨도 모진 법이야." 사마군의 위로는 언제나 그녀의 마음을 푸근하게 했다. 연해월은 한결 마음이 놓이며 가슴 한구석으로 강렬한 희망이 생겨났다. "그래요, 그 아이는 어딘가에 틀림없이 살아 있을 거예요." 그녀의 말은 자신에게 그렇게 믿도록 만들고 싶은 희망이기도 했다. 사마군은 탁자로 다가와 남궁진성의 초상화를 집어들었다. 그리곤 싱긋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자식, 조카 놈이라서가 아니라 인물 하나는 정말 그럴 듯하거든! 나중에 계집들 꽤나 울리겠어." 연해월은 웃으며 곱게 눈을 흘겼다. "원 오라버니도……." 사마군은 초상화를 다시 탁자 위에 놓았다. "백방으로 손을 써 두었으니 조만간 무슨 연락이 있을 거다. 너무 마음졸이지 말고 느긋하게 기다려봐. 지난번처럼 또 엉뚱한 사고나 치지 말고." 연해월은 고개를 떨구었다. "오라버니께는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어요." 사마군은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그의 입에서 무거운 음성이 새어 나왔다. "네 남편 찾아갈 계획은 아직도 없는 거냐?" 연해월의 표정이 우울하게 변했다. "……. 아직은요!" 사마군은 뒤돌아보며 본 뜻을 재차 물었다. "아직 만나고 싶지 않은 거냐, 아니면 영원히 만나지 않겠다는 거냐?" "그런 얘기 이젠 그만해요." 그녀는 문득 생각난 듯 주방 쪽으로 돌아섰다. "참, 내 정신 좀 봐, 차라도 한잔 준비한다는 게 그만……." 사마군은 씁쓸한 고소를 머금었다. "아무리 미인박복이라지만 무슨 놈의 팔자가……." 이때 사마군은 어떤 낌새를 느낀 듯 약간 고개를 들어 허공을 향해 입을 열었다. "수혼(水魂)인가?" "방해가 되었다면 용서를…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는지라……." 수하 수혼의 음성은 허공에서 들려왔다. "대체 어떤 손님이란 말이냐?" "백우선(白羽扇) 잠송이란 친구입니다." 그것은 매우 뜻밖의 일이었다. "백우선 잠송이라면 혈랑팔겁의……?" "고명하신 신월회의 회주님을 뵙게 되어 영광이외다." 잠송은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앉게." 사마군은 맞은편 자리를 권했다. 그의 뒤에는 두 명의 회의죽립객이 시립해 있었다. "고맙소." 잠송은 그가 권하는 대로 의자에 앉았다. 사마군은 잠송이 찾아온 목적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얼굴에는 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날 사러 왔나?" 잠송이 빙그레 웃으며 반문했다. "안 되는 거요?" 사마군은 스윽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안 될 거야 없지." 그는 뒷짐을 진 채 잠송의 주위를 거닐었다. "어차피 조건만 맞으면 누구에게도 재주를 팔아먹고 사는 게 우리네 직업이니까." 그는 잠송을 등진 채 우뚝 멈추어 섰다. "문제는 꽤 똑똑한 체하는 자네들이 한가지 중대한 과오를 범했다는 거야." 잠송은 여전히 미소를 띤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어떤 과오를……." 그의 말은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싸늘한 검날이 자신의 목에 와 닿은 것을 느꼈다. 잠송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사마군은 그런 잠송을 바라보며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네놈들 혈랑팔겁에 짓밟힌 북파무림맹 사마가의 후예인 사마군이다. 지금은 비록 살수 조직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자네가 나라면 살부지수(殺父之讐)의 개가 될 수 있겠나?" 방금 신월회주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은 잠송에게 적지 않은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신월회주가 자신들과 원수지간이 된 전(前)북파무림맹의 소맹주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잠송은 바위처럼 굳은 얼굴로 사마군을 바라보았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