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터너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영국, 1775~1851
눈보라 항구 어귀에서 멀어진 증기선
Snow Storm-Steamboat
of a Harbour's Mouth.. 런던 테이트갤러리
자연을 가장 낭만적으로 해석하고 빛의 묘사에 뛰어났던 영국의 거장 윌리엄 터너를 만나보자 그는 온몸을 던저 작업에 몰두했던 화가였다. 부서지는 파도, 거친 포말을 향해 터너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단다. 이윽고 돛대에 자신을 묶은 터너는 몇 시간 동안 직접 폭풍을 관찰했단다. 자신이 직접 체험한 자연을 생생하게 그렸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수 있었지
예술에 대한 집념이 대단하지 않느냐? 터너에 대한 평가는 당대에도 남달랐던 것 같구나.
영국의 시인이자 예술평론가였던 존 리스킨(John Ruskan)이 이렇게 말했을 정도였지. "터너의 작품은 우리에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알려준다!"
터너는 보는 그림이 아니라 체험하는 그림을 그렸단다. 색과 빛, 분위기를 캔버스 위에서 용해시켰지. 터너에 의해 유화의 기법은 혁명적으로 바뀌었단다. 그는 순간에 포착한 빛의 명암, 타는 듯한 선명함을 한곳에 아우르며 묘사했던 거란다. 뿐만 아니라 영국 풍경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단다. 터너는 영국의 낭만과 화가로서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과 함께 당대 최고봉에 올랐어.
터너의 아버지는 이발사였는데 일찍 아들의 재능을 알아챘지. 덕분에 터너는 10대 초반까지만 학교 교육을 받고 곧장 그림 수업을 받으며 직업을 정했단다. 13세 때부터 전시회를 열정도였고, 15세에는 로얄 아카데미에서 전시하는 영광을 얻었지. 자신의 단독 화실을 얻은 것이 18세의 일이었구나. 그리고 1802년, 27세의 나이로 로얄 아카데미의 정회원이 될 정도로 빠른 성장을 보여주었단다.
터너는 약간 괴짜여서 친구도 많지 않았던 모양이야. 다른 사람에게 작업하는 모습은 거의 보여주지 않았다는구나.
그럼 터너의 붓이 지나온 폭풍을 쫓아가 볼까? 이 눈보라 속에서 1초 뒤에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바다의 폭풍을 직접 경험하고 그린 작품에 대해 궁
시 평론가들은 혹평을 했단다. "비누거품과 석회수 바누죽 같다"는 식이었지. 돛에 몸을 매달고 관찰한 생생한 장면이 이런 악평을 받다니 안타까운 일이구나. 기우뚱거리는 돛은 실험정신이 강한 터너가 자신의 몸을 묶었던 그곳일지도 모르겠구나
무엇보다 터너가 자연의 역동적 모습을 그대로 담
으려던 열정이 부럽구나.
터너의 폭풍 앞에서 우리는 파도와 회오리바람 한
가운데로 짤려 들어간단다. 넘실대는 파도,쏟아져 내리는 눈과 흩날리는 파도의 포말들이 뒤엉켜 현기증을 느낄 정도구나. 미친 듯 튀는 물살과 빛의 뒤섞임이 환상적 상황을 만들고 있지 않으냐. 이 중에도 터너는 자신의 관찰했던 사실들을 기억해 담았단다
눈보라 커튼 사이로 불이 붙은 아래쪽 갑판, 이 엷은 레몬색의 채색이 당시의 상황을 말해주는구나. 터너는 자연의 재앙 아래 인간이 얼마나 왜소한 존재인지 보여주는 것 같구나 색과 빛으로 폭풍의 소용돌이와 일촉즉발의 순간을 담아낸 터너, 폭풍 속에서 쏟아지는 눈보라를 견디는 장엄의 찰나, 그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던 거란다.
터너의 붓질이 만드는 이 순간 자연에 압도되는 숭
고함을 느낄 수 있겠느냐?
*할아버지가 꼭 보여주고 싶은 서양 명화 101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