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구약인용)
마태복음 4장 3-4절『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에크포류오메노) 모든 말씀(레마)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살것이라』 라는 말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율법이 아니라, 율법 속에 감추어진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것이다.
신명기 8장 3절에서『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명기8장을 요약한다면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라고 말할 수 있다.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라는 것이다. 그리할 때 백성들이 살고 번성하고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일은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나 원주민들과의 전쟁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투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행하는데 있었다.
장정만 60만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과 능력과 의지로 가나안을 얻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나안이라는 목적지에 이르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목적에 부합하는 수단과 방법으로 가나안에 이르렀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일이었다.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갑작스런 명령이 아니었다. 이 명령은 출애굽 이후 광야생활 40년동안 한결같이 그들에게 들려온 명령이었다.
40년의 세월을 하루하루 마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40년의 광야생활은 끝이 없는 막연한 나날이 아닐 수 없었다. 끝을 알 수 없었던 광야생활이었기에 그들의 하루와 한해의 삶은 기대에 찼다가도 낙심하고, 가나안을 꿈꾸었다가도 포기하는 흔들림의 반복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만나를 먹고, 의복이 헤어지지 않는 신비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만나에 질려 원망도 하고 하나님을 향해 항명 하다가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흔들리며 축적된 40년이라는 세월을 지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라는 말씀은 낯선 말씀일 수 없었다. 그것은 지난 역사를 통해 철저하게 드러난 그들이 추구해야 할 삶의 가치이며 삶의 방식이었다.
신명기 8장 2절『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하심이라.』그들이 기억해야하는 광야는 외적 조건만을 놓고 보자면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에 가깝다. 광야는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광야는 출애굽 1세대들이 모두 죽임을 당한 죽음의 자리이기도 했다. 위험했던 시간, 죽음의 시간을 기억하라고 하시는 것은 드러난 위험과 죽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위험과 죽음의 이면에 그들을 인도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시던 하나님의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8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듯,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명령이 있다. 가나안을 향하듯이, 하나님 나라를 향한 여정은 온갖 사탄의 시험과 미혹에 실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푯대로 삼아 나아가라는 명령이시다. 그지 않으면, 시험의 올무에 걸리게 된다. 하나님은 두려워 말라라고 말씀하셨다.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보면『두려워 말라』라고 하시는 말도 있고,『두려워 하라』는 말씀도 있다. 시험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시험하지 않는다』는 말씀도 있고, 『시험한다』는 말씀도 있다. 성경을 보면 분간을 할 수 있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체험할 수 있다.
두번째, 율법이 아니라, 율법 속에 감추어진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돌을 히브리어로 에벤이라고 한다. 야곱이 돌베게를 베고 잔 에벤이다. 곧 에벤은 성전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4장에서 말하는『이 돌들』은 율법이 있는 돌판을 말한다. 출애굽기 24장 12절에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떡덩이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이다.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말씀에 해당된다. 고린도후서 3장 7절에서『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그러나 율법으로서는 생명의 말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이 되어야만 하늘의 생명이 된다.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생명의 떡,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율법도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모든 말씀은 아니다. 오늘날도 많은 교회 공동체안에서 율법적으로 생각하게 하고, 행동하게 함으로서 마치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친다.
그런데 사탄이 예수님께 돌덩이(율법)로 떡덩이(생명의 말씀)가 되게 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에 대해서 죽으시고, 완성하셨다. 그래서 예수님께는 율법으로는 생명의 말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율법적으로는 생명의 말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탄은『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라고 말했다. 사탄은 모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도 율법적으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속이려고 시험하는 것이다.
레마(ῥήμα)는 성경에서 기록된 말씀이다. 또한 말씀이신 그리스도(호 로고스)께서 성도에게 주신 그 말씀도 레마이다. 호 로고스는 말씀의 주체를 의미하고, 레마는 말씀의 주체이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다. 에크포류오메노(ἐκπορευομένῳ)는 나온(과거)이라는 의미다.
아모스 8장 11-12절에서『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예수님이 40일간 굶주린 것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하나님 말씀에 굶주린다는 것이다.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지만 모두 굶주리는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맛나가 있었음에도, 먹을 고기가 없다고 불평한 것이다. 예수님이 온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지 않으면, 생명의 양식을 먹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말씀 속에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들어있으며, 그 순종은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하나님 말씀은 율법이 아니라, 율법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말씀(호 로고스)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다. 예수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적으로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