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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 장 파멸(破滅) 천하의 이목이 한곳으로 쏠렸다. 그리고 수많은 무림인들이 그곳으로 몰려갔다. 혈궁, 바로 그곳이었다. 오늘은 바로 혈궁의 개파대전일이다. 혈궁의 붉은 대문은 활짝 열렸고 수만 평의 넓은 광장에는 수많은 천막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입구에서 바라보이는 광장의 전면에는 옥으로 만든 열 개의 계단이 있고 계단 위에는 커다란 백호피를 씌운 황금태사의가 놓여있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전체를 황금으로 만든 이 태사의는 값어치만 해도 수십만 냥은 호가할 것으로 보였다. 광장에 맨 처음 나타난 인물들은 소림승(少林僧)들이었다. 소림장문 무무대사를 비롯해서 십팔나한과 사대금강, 그리고 백팔나한들이 먼저 도착했다. 그 뒤를 오백의 소림승들이 따랐다. 그들의 손에는 계도(戒刀)가 들려있었다. 소림의 뒤를 이어 무당장문 현진자와 장로들인 무당칠자, 그리고 이천 팔백 명의 무당파 정예들이 들어섰다. 그리고 계속해서 현 무림의 거물명숙(巨物名宿)들이 속속 도착했다. 화산파 장문인 조양명과 화산칠검을 비롯한 그의 제자들이… 개방의 궁개와 개방오로를 비롯한 개방 제자들이… 한 마디로 천하가 한 자리에 모여들고 있었다. 이밖에도 수많은 무림인들이 혈궁의 개파대전에 참가했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다. 바로 단궁비와 주약란을 위시한 일행들이었다. 구파일방의 정예들과 신비각의 고수들까지 총망라돼 광장 안은 수많은 군웅들이 운집했지만 기침소리 하나없이 중중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들은 서로 눈인사를 나누었다. 모든 군웅들이 자리를 잡고 자리에 앉자 장중한 북소리가 울렸다. 둥-! 둥-! 둥-! 둥-! 네 번의 대고 소리가 울리고 난 뒤 한 인물이 섬전같이 단상 위로 날아올랐다. "본인은 이번 개파대전의 진행을 맡은 육지마(六指魔)다." 그의 어투는 매우 거만하고 안하무인이었다. 이곳, 광장 안에 모인 각파의 지존명숙들이나 내로라 하는 무림의 거물들도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육… 육지마라고?" "이미 팔십 년 전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저 노마가 아직 살아있었단 말이냐?" 육지마는 이미 나이가 백 이십 세를 넘긴 대마두였다. 그의 손가락이 여섯 개라 해서 무림인들은 그를 육지마라 불렀다. 팔십 년 전, 육지마의 악행을 보다 못한 정도의 인물들이 연합을 해 그를 추살하려 했었다. 그러나 육지마는 요행히 회복불능의 부상을 입은 뒤 도주를 했었고 그 이후로 행방을 감추었던 것이다. 장내가 술렁이며 여기저기서 놀라워하는 군웅들의 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런 장내의 상황을 육지마는 거만하고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았다. "이 가운데는 노부를 알고 있는 자들도 있을 것이고, 혹은 나이가 어려 아직 노부를 모르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는 칼 끝같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군웅들을 훑어보았다. "흐흐흐! 모가지는 여벌이 없다. 그래서 노파심으로 다시 한번 말하건대 이곳에 온 이상 이곳의 규칙을 따르라. 그렇지 않을 시에는… 흐흐흐, 노부는 두말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는 것을 뼛골까지 새기고 있도록." 말을 끝낸 육지마는 입술가에 전율스런 미소를 개어 발랐다. 협박, 이것은 완전히 이곳에 모인 모든 군웅들을 무시한 협박이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마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수많은 혈의인들이 광장 전체를 거대한 원진으로 에워쌌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혈의인들은 모두 태양혈이 툭 불거져 나오고 하나같이 예리한 안광을 번뜩였다. 그들에게서 풍겨지는 외기(外氣)로 미루어 보아 개개인 모두가 뛰어난 일류고수들임이 분명했다. "육지마 같은 노물이 기껏 개파대전의 진행을 맡아볼 정도밖에 안된다니…!" 육지마를 지켜본 궁개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그 이상의 신분을 가진 자들은 얼마나 가공할 인물들일까! 군웅들의 가슴이 만 근 납덩이를 달아놓은 듯 무거워졌다. 이때 육지마의 날카로운 음성이 다시금 군웅들의 귓속을 송곳처럼 파고들었다. "무림의 지존이 되실 마야께서 등단하신다. 모두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맞이하도록." 둥-! 둥-! 두 차례 장중한 북소리가 울렸다. 군웅들의 시선이 모두 황금태사의로 향했다. 척-! 그때 황금태사의 뒤쪽 휘장이 들려지면서 마야, 나청군이 등장했다. 화려한 금포(錦袍)를 걸치고 용수(龍繡)가 놓여진 당혜(唐鞋)를 신은 나청군은 광장에 운집한 군웅들을 한 차례 쓸어본 뒤 태산이 움직이듯 태사의에 앉았다. "각 문파의 수장들은 모두 장문영부와 지존령을 바쳐라." 육지마의 입에서 추상 같은 명이 떨어졌다. "늙어 죽지 못한 귀신이 너무 오만방자하게 날뛰는구나." 육지마의 안하무인의 행동에 드디어 노갈을 터트린 청수한 노인, 화산장문인 조양명이다. "크크! 감히 화산파가 이 자리에서 행세를 해 보겠다?" 핑---! 육지마의 손 끝에서 가공무쌍한 지풍이 발출되었다. '허억! 이렇게 빠른 지력이 있었단 말인가!' 그러나 생각이 끝나기도 전 지풍은 벌써 조양명의 면전에 당도하고 있었다. '피하기엔 이미 늦었다.' 조양명의 애검이 찰나지간 이십사수매화검법을 토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충돌하자 승부는 단숨에 가려졌다. 따당! 화산장문인 조양명의 검이 두 동강으로 변한 것이다. "흐흐흐, 오늘은 혈궁 개파대전의 성스러운 날, 피를 보기 싫어 이 정도에서 징계를 마친다." 육지마는 음침한 괴소를 토했다. 광장에 모인 수많은 군웅들의 안색이 순식간에 홱 변했다. "아미타불…! 시주의 언행이 너무 방자하구려." 소림장문 무무대사가 불호를 외웠다. "흐흐흐, 땡초! 만약 그대가 나선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명심해라." "세상 이치는 반드시 뿌린 대로 거두는 법, 그것은 불변의 진리오이다. 그 죄를 어이 다 감당하려 하시오?" "땡초, 나에게 지금 설법을 하려는 것이냐?" 이때 나타나서 지금까지, 단 한 마디 말도 없던 나청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무례하지 말고 물러서라." 작고 무미건조한 음성이었으나 군웅들의 귓속에는 천둥소리로 들렸다. 군웅들 중 일부 무공이 약한 인물들은 안색이 핼쓱하게 변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육지마가 공손한 자세로 한켠으로 물러났다. 마야 나청군의 눈길이 무무대사를 향했다. "무무대사, 본인은 오늘 이 자리를 빌어 무림을 모두 한 식구로 만들려 하오." 그의 음성에는 은근함이 서려있었다. 무무대사가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무림이란 야생마 같은 것, 누가 잡으려해서도 안되고 설사 누가 잡는다 해도 잡힐 무림이 아니오이다." "후후후후! 야생마란 주인을 잘 만나 길들이기 나름 아니겠소?" "아미타불…! 빈승은 시주께서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재고하기를 바라오이다." "장문인의 고언(苦言)은 듣지 않은 것으로 하겠소." 나청군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천하 무림의 동도 여러분. 이몸 백만마종주 나백의 후인으로 천명하오. 지존영부를 바치는 문파는 혈궁과 함께 세세손손(世世孫孫) 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오. 이에 반하는 자는 삼족(三族)을 멸할 것이외다." 군웅들 사이에서 술렁거림이 일기 시작했다. "혈궁에 협조하는 문파는 백만마종주의 무공을 수련할 수 있는 본궁의 비고에 들게 될 것이외다." 나청군의 그 말은 엄청난 폭발력이 있었다. 백만마종주 나백의 진산절학이 소장되어 있다는 그의 말은 엄청난 유혹이었다. 군웅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더니 일부 계단 아래로 나아가는 인물들이 있었다. 귀영부(鬼影斧) 진붕(陣鵬). 귀영문(鬼影門)의 문주인 올해 오십 세의 인물. 산동성의 패주! 그가 첫 번째로 혈궁에 투신했다. 당산양가주(唐山楊家主) 관소(關召). 칠십이로창술(七十二路槍術)로 일가를 이룬 무림명가. 그러나 당산양가는 지난 백여 년 동안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가 진붕의 옆에 오체복지(五體伏地)하며 머리를 땅에 박았다. "신명을 다해 마야를 보필하겠소이다." 그의 뒤를 또 다른 인물이 이었다. "우리 사해마련(四海魔聯)은 부귀영화를 원하오." 사해를 주름잡으며 이백 오십 개의 분타를 거느리고 있는 그도 진붕의 뒤를 따랐다. "우리 목문일가(穆門一家)도 충성을 맹세하겠소." 목문일가의 가주인 홍천문(洪川門)도 그들 옆에 부복했다. "여기 통천방(通天 )도…." "동정십팔채(洞庭十八寨)도 있소이다." 줄줄이 나선 인물들의 숫자는 무려 이백여 명이나 되었다. 그들은 모두 한 지방의 패주나 과거 명성을 날리던 가문의 수장들이 대부분이었다. "저… 저런 쳐죽일 놈들이 있나. 그래 목숨이 아까워 무림인의 혼을 팔아치운단 말이냐? 에라이… 썩어 문드러질 놈들 같으니." 불패괴옹이 그들의 행동을 보다못해 노화를 터트렸다. "노선배님, 흥분하지 마십시오. 저 자는 순수견양(順手牽羊)의 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궁비가 침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기회를 틈타 양을 끌고 간다. 저 자는 우리가 자중지란(自中之亂)을 벌이길 바라고 있는 거예요." 주약란이 단궁비 대신 대답했다. "…!" "성공한다면 우리의 세력이 약화될 것이고 실패한다 해도 저들에게는 손해 보는 일이 아니니까요." 단궁비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끝내 고집을 부리겠단 말이군." 나청군은 더 이상 이탈하는 인물들이 없자 군웅들을 휘익 둘러본 뒤 중얼거렸다. 마야 나청군의 한 손이 허공으로 들려졌다. 그것을 신호로 계단 아래에 오체복지하고 있던 인물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그대들의 충성심을 시험해 보겠다. 저들을 죽이고 그들의 지존영부를 뺏어라." 마야 나청군의 입에서 뼛골 얼리는 싸늘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귀영부 진붕 등 나청군에게 충복되기를 자처한 그들은 한순간 낯빛이 변색되었다. 설마 나청군이 자신들에게 이런 특살령(特殺令)을 내릴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차피 이곳에 모인 군웅들과 등을 돌렸으니 이제는 서로 원수지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어느 한쪽은 필히 죽어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윽고 그들은 자신의 애병(愛兵)을 뽑아들고 군웅들을 향해 신형을 분분히 날렸다. "막아라!" 단궁비의 입에서 짧은 명이 떨어졌다. 휘휘휙-! 그와 동시에 신비각의 칠십이천강검수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만금장이 급습 당할 당시에 이십여 명의 희생이 있었지만 다시 충원이 된 칠십이천강검수. 그들 개개인의 무공은 일파의 수장들과 필적할 만한 수준이다. 그들의 장검이 일제히 빛을 뿌렸다. 검날이 난무하고 검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일시에 수십 개의 수급이 동체에서 떨어져 나가며 허공에서 피춤을 추었다. 기세 등등하던 진붕과 그의 수하들, 그리고 그들과 한편이 되어 군웅들을 향해 공세를 취하던 나머지 인물들이 일순 흠칫했다. 번쩍-! 수하들의 목이 댕겅댕겅 잘려 나가는 것을 쳐다보며 분통이 터진 관소의 강련연색창(鋼練軟塞槍)이 맹렬히 천강검수들을 찔러갔다. 자신의 절기인 칠십이로창술을 최대로 펼친 것이다. 동시에 칠십이(七十二) 개의 환창(幻槍)이 일제히 공세를 발동했다. 허상과 실상이 분간이 되지 않은 채 창 끝에선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섬뜩하게 일었다. 여기저기서 처절한 비명이 터지며 드디어 대혈전의 서막(序幕)이 올랐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글자 그대로 서막일 뿐이었다. 양 진영의 주력은 꼼짝도 않은 채 서로의 전력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마야 나청군은 단궁비를 뚜렷이 노려보고 있었다. 자신과 피할 수 없는 일전을 벌여야 될 일생일대의 숙적. 이제 그 때가 다가왔다. 천하무림인들이 모두 지켜보는 이곳에서 신군의 후계자인 단궁비는 자신에게 죽을 것이고 천하는 또 한번 그를 경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천하패권을 움켜쥐게 된다. 얼마나 놀라운 발상인가? 자신의 위상도 드높일 수 있고 단궁비를 믿고 있는 구파일방도 굴복시킬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 '그래, 고맙다. 네가 강해질수록 본좌가 더욱 즐거워진다는 것을 아느냐?' * * * 칠십이천강검수의 전멸. 그들은 장렬하게 전사했다. 그들과 접전을 벌이던 무림의 배신자들 역시 전멸했다. 이제는 누가 살아남느냐 하는 가장 절박한 문제만이 남았다. 시체는 산을 이루고 흘러내린 핏물은 내를 만들었다. "십팔나한진(十八羅漢陣)을 펼쳐라." 소림장문 무무대사가 십팔나한에게 명을 내렸다. 휘휘휙… 휙… 휙-! 소림장문 무무대사의 일성(一聲)에 십팔나한들이 일정 방위를 점하며 진세를 형성했다. 소림절학 중 소림이 자랑하는 절진 중 하나인 십팔나한진(十八羅漢陣)이 펼쳐진 것이다. "이야합!" 장내는 일순 십팔나한들이 터트리는 웅혼한 기합성으로 공기의 파동을 일으켰다. "혈궁대(血宮隊)!소림을 피로 씻어라!" 마야의 명령에 혈포를 걸친 일단의 무리들이 유령처럼 등장했다. 그 순간 십팔나한이 쫙 퍼져 혈영대를 포위했다. 곧 십팔나한과 혈영대 간의 치열한 접전이 시작되었다. 십팔나한의 손에서 계도(戒刀)가 번쩍거렸다. 천년무맥(千年武脈)을 이어온 소림의 힘은 역시 대단했다. 십팔나한진의 공세로 진법이 한 번씩 변화를 보일 때마다 그 안에 갇힌 혈의인들이 죽어나갔다. 그들이 아무리 용을 쓰고 진을 빠져 나오려 해도 흡사 철벽에 갇힌 듯 빠져 나올 길이 없었다. 싸가각-! 차가운 절단음이 한 번씩 들릴 때마다 혈의인들의 혼백이 뇌리를 빠져나갔다.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그렇게 죽어갔다. "돌중들은 우리가 상대해주마." 이때였다. 앙칼진 음성과 함께 매미 날개 같은 얇은 망사의(網紗衣)를 걸친 여인들이 속속 허공에서 날아 내렸다. 바로 염후와 환희마궁의 여인들이었다. 그들은 십팔나한진을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다가들었다. 그것은 귀신도 벌떡 일어서게 만든다는 환희열락무(歡喜悅樂舞)였다. 순식간에 장내는 여인들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육향과 그들이 발하는 기음(奇音)으로 기경을 연출했다. 염후와 환희마궁의 여인들이 가세를 하자 전세는 갑자기 바뀌었다. 환희마궁의 여인들이 펼치는 환희열락무는 지독한 색감을 불러 일으켰다. 허공 중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는 여인들의 나신은 얇은 망사의외에는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도발적으로 솟아오른 가슴의 검붉은 돌기와, 거뭇거뭇한 둔덕의 불거웃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던 것이다. "홋-홋-홋-홋! 깔-깔-깔-깔!" 혼백을 일시에 빼버릴것만 같은 요악(妖惡)한 웃음소리가 십팔나한의 귓속으로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그들은 진력을 끌어올려 웃음소리에 대항했다. 그러나 마음 뿐, 나녀들의 웃음소리는 십팔나한의 뇌리까지 깊숙이 파고들었다. "호호호! 땡중, 이곳이 너희들의 무덤이다." 때를 맞춰 염후는 전율스러운 요음을 발하며 날카로운 손속을 떨쳐내었다. 십팔나한의 진세가 한순간 흔들림을 보였다. "환희마장(歡喜魔掌)… 뒈져랏!" 그 작은 틈새를 놓칠 염후가 아니었다. 염후는 강맹한 일장을 쳐냈다. 뒤를 이어 나녀들도 돌변한 태도를 보이며 강맹한 장경(掌勁)을 발출해내었다. "나한득도(羅漢得道)!" 비록 약간의 틈새를 보였다곤 하나 역시 소림의 정예들이었다. 염후와 나녀들의 장경이 덮쳐오자 때를 같이해, 십팔나한이 우렁찬 외침과 함께 동수(同手)로 쌍권을 쭉 뻗어내었다. 바로 소림나한권(少林羅漢拳)이었다. 집채만한 바위도 일권(一拳)에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는 절대권공(絶對拳功)이 동시에 펼쳐진 것이다. 콰쾅쾅-! 철벽과 철벽이 서로 마주치는 듯한 엄청난 굉음이 일었다. "으으윽!" 그러나 역시 진력이 흐트러진 때문일까! 십팔나한 중 서넛이 입술 사이로 핏물을 흘리며 서너걸음씩 뒤쪽으로 물러났다. 그때를 놓칠 염후가 아니었다. "열락멸살강(悅樂滅殺 )!" 염후의 입에서 뾰족한 일성이 터졌다. 그것을 신호로 나녀들이 일제히 쌍장을 펼쳐내었다. 십팔나한이 미처 전열을 재정비하기도 전에 염후와 나녀들의 공세가 이어진 것이다. 십팔나한은 재빨리 진력을 모아 쌍권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들의 권공은 미처 진력을 다 끌어 모으지 못한 상태에서 펼친 것이라 위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복호항룡(伏虎降龍)!" 권공과 장경이 마주치며 통렬한 굉음이 터졌다. "크어-억!" "으-아악!" 십팔나한의 신형이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갔다. 그것은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십팔나한은 모두가 절명해버렸다. "아미타불… 빈승이 살계를 열지 않을 수 없구나. 너희들을 일벌백계(一罰百戒)로 다스리리라." 노기를 띤 무무대사가 가사를 펄럭이며 염후와 나녀들을 덮쳐갔다. "관음청강수(觀音靑剛手)!" 푸른 장영이 무무대사의 손 끝에서 발출되었다. 바로 소림 칠십이 절예중 가장 강한 무공 중 하나라는 수공(手功)이었다. 파바바방-! "아아악!… 아악!" 관음청강수에 격중당한 나녀들이 벼메뚜기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바닥에 곤두박질친 나녀들은 심맥이 파열된 채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무무… 땡초 늙은이… 죽여버리겠다." 염후가 두 눈에서 독광(毒光)을 뿜어내며 살수를 펼쳐내었다. "아직 그 나이가 되도록 정신을 못 차렸다니… 참으로 불쌍한 중생이로다! 아미타불!" 무무대사는 염후의 공세를 슬쩍 피하며 꾸짖는 투로 말했다. "땡초… 시건방 떨지 마라." 염후는 잔뜩 독이 오른 살모사처럼 두 눈에 표독스러운 광망을 담은 채 계속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업보로다. 업보… 부디 지옥에서나마 선행을 베풀기를…!" 무무대사의 손바닥이 팔목과 직각을 이루었다. 그 순간 하나의 백옥빛 장인(掌印)이 환영처럼 비쾌하게 발출되었다. "사자모니인(獅子牟尼印)!" 콰아아아아-! 우렁찬 사자의 포효성 같은 파공음이 들리며 장인은 염후의 인당혈을 사정없이 가격해갔다. "무무… 네놈이 절전된 사자모니인을…!" 염후가 경악성을 토하며 황급히 쌍장을 마주쳐냈다. 사자모니인은 이미 소림에서도 오래 전에 실전된 절학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무무대사가 그 실전된 그 절공을 익힌 것이다. 강철(鋼鐵)벽에도 세 치 두께의 장인을 남긴다는 패도지학(覇道之學)이었다. 무무대사의 사자모니인이 염후의 장력을 갈라내며 인당혈을 가격해 버렸다. "아아악!" 염후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입으로는 피분수가 뿜어졌다. 그녀의 몸은 삼 장 밖으로 날아가 볼썽 사납게 나뒹굴고 말았다. 일대여마두의 죽음이었다. 나청군의 두 눈에서 섬뜩한 살기가 일었다. 쿠우우우웅-! 나청군의 신형이 태사의에 좌정한 채로 격전장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날아가던 자세 그대로 무한한 패력(覇力)이 담긴 절공이 그의 손에서 쏟아져 나왔다. 가공할 패력(覇力)에 부딪치는 자들은 모두 피떡이 되어 사방으로 퉁겨져 날아갔다. "마마혈천공!" 그의 두 눈이 시퍼런 녹광을 쏘아내며 두 손을 어지럽게 움직였다. 콰과과과광-! "크아아악!" "아아악!" 수십 명이 나청군의 일수(一手)에 어육(魚肉)으로 변해 저만치 나가 떨어졌다. 허공을 빙글빙글 선회하면서, 그의 마공(魔功)이 한 번 펼쳐질 때마다 정도의 고수들이 피를 뿌렸다. 나청군의 무공은 가공, 그 자체였다. 파앗-! 순간 단궁비의 신형이 나청군을 향해 폭사되었다. 군웅들의 희생이 커지고 있자 자신이 그를 막고 나선 것이다. 어차피 이 싸움은 그와 단궁비 자신의 싸움이었다. "경천대력공!" 단궁비는 낭랑일성을 토하며 나청군을 향해 십 이 장을 쏟아 부었다. "네놈이 나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청군도 노갈을 내지르며 쌍장을 마주 쳐냈다. 패웅(覇雄)과 영웅(英雄). 한 사람은 천하를 움켜쥐려는 패웅, 한 사람은 그 패웅으로부터 천하를 지키려는 영웅. 꽈르르르릉-! 천둥벼락이 내리쳤다. 공전절후(空前絶後)의 절대마공(絶對魔功)과 광고절금의 신공절학(神功絶學)이 마주친 미증유의 거력(巨力) 앞에, 주위의 건물 지붕이 주저앉고 천막들이 날아가 버렸다. "놈, 그 사이에 약간의 잔재주가 더 늘었구나. 이제야 제대로 싸워볼 맛이 나는군." 나청군의 황금태사의가 허공에서 빙글 선회를 했다. 그는 그 자세를 유지한 채 우뚝 멈추었다. 그리고 섬뜩한 녹광(綠光)이 뿜어지는 눈으로 단궁비를 쏘아보았다. "크크크, 이제 너와 나 사이의 은원을 정리해야 되겠지." "피차 원하던 바." "네가 삼봉쌍령금상지체임을 본좌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너는 나를 꺾을 수 없다. 영원히!" "당신은 싸움을 입으로 할 모양이군." "크하하하핫! 여전하구나, 그 오만함은. 본좌가 너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 오만함이다. 그러나 그것도 오늘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슈우우우웅-! 태사의가 그대로 단궁비를 향해 짓쳐들었다. 태사의 삼 장 밖 주위로는 가공할 강기막이 펼쳐져 있었다. 강기막은 단궁비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그를 압살시킬 듯 압력을 가했다. 단궁비의 한 손이 은은한 자색을 띠었다. 그리곤 나청군을 향해 맹렬히 손목을 떨쳐내었다. "기운의 조화와 소리의 조화는 사람의 조화이니! 자-하-천-강!" 자색기류는 쾌속절륜하게 나청군을 향해 뻗어나갔다. 바로 무자천서에서 얻은 영감으로 신군 천무공의 무공을 변환시킨 것이다. 나청군도 단궁비의 공세가 심상치 않았던지 굳은 표정을 지으며 오른손을 마주 쳐냈다. "마마혈천수!" 이번에는 마마혈천공을 수공으로 변환시켜 단궁비의 공세를 맞이해갔다. 두 개의 기운이 맞부딪치며 통렬한 폭발음이 천지를 떨어울렸다. 콰콰쾅-! 나청군의 황금태사의가 산산조각이 나며 황금덩어리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밝은 햇살을 받으며 떨어져 내리는 황금덩이들은 찬란한 광채를 뿜었다. 나청군은 재빨리 몸을 날려 바닥에 착지했다. "후후후, 놀라운 일이군. 불과 얼마되지 않은 기간 동안에 본좌와 동수를 이룰 정도로 발전하다니…!" 나청군은 진심으로 경탄을 발했다. "그것이 무슨 무공이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겠느냐?" "천외천(天外天)의 무공인… 자하천강이네." "자하천강! 좋아. 천외천의 무공임을 인정하마." 단궁비가 싱긋 웃었다. "당신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소. 왠지 아시오?" 나청군이 검미를 찡그렸다. "이유는?" "그런 말은 절대자(絶對者)만이 할 수 있는 말이오. 그러니 당신은 해당이 되지 않소." 나청군의 얼굴 근육이 한 차례 꿈틀거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신형이 순간적인 도약을 이루었다. "광오하구나! 단궁비, 네 너를 징계하겠노라." 착 가라앉은 저음, 그리고 그에게서 폭사되는 가공할 기도! 고오오오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공격이 질풍노도처럼 단궁비에게 다가들었다. 단궁비의 손목어림에서 자광(紫光)이 번뜩였다. 휘휘휘… 휙-! 자광은 나청군이 펼쳐낸 장경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천지혼돈(天地混沌)의 폭발음이 혈궁 전체를 싸잡아 뒤흔들었다. 두 사람의 접전은 하늘이 놀라고 땅이 뒤집어질 정도로 대단했다. 주위 수십 장은 이미 초토화가 된 지 오래고 싸움을 하던 양쪽의 인물들은 모두 물러난 뒤 이들의 결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중 그 누구도 우세를 점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 * * '이놈이 이토록 강해졌단 말인가!' 시간이 지날수록 나청군은 마음이 초조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일장(一掌)조차 감당치 못하던 단궁비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자신보다 더 여유를 보이고 있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하다. 끝장을 내자!' 그의 녹광이 번들거리는 두 눈이 더욱 더 섬랄한 살기를 뿌렸다. 마마혈천공을 초극단계로 끌어올린 현상이었다. "천-극-마-류(闡極魔流)!" "!" 혈강(血 )의 바다였다. 혈강(血 )이 폭죽 터지듯 잘게 부서지며 유성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 혈강 하나하나는 수만 근의 파괴력을 담고 있었다. 나청군의 혈강이 가까이 다가오건만 단궁비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득도한 고승의 심오함을 담은 눈빛은 보는 사람이 불안할 정도로 잔잔했다. 그의 쌍수가 느리게 움직였다. "비어 있는 듯하나… 두루 꽉 차 있어서 있지 않은 곳이 없으며…!" 바로 무자천서의 깨달음으로 얻은 무초무식의 무공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의 전신에서 광휘로운 서기(瑞氣)가 뻗어 나왔다. 그것은 득도(得道)의 경지에서나 볼 수 있는 서기였다. 그 서기는 단궁비의 전신 일장(一丈) 앞에서 휘돌며 강막( 幕)을 형성했다. 그리고 대 우주의 엄청난 기운(氣運)이 그의 장심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 기운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며 또한 막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초(招)도 없고 식(式)도 없다. "무-무-대-천-공(無無大天功)!" 단궁비의 입에서 천지를 떨어 울리는 쩌렁한 일성이 터져 나왔다. 무무대천공이란 단궁비가 지은 무공의 이름이었다. 꾸꽈꽈꽝-! 천지번복(天地飜覆)의 대폭발이 일어났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