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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그러나 오란은 곧 죽지는 않았다. 이제 겨우 인생의 중년을 넘어서는 그녀의 생명은 그녀의 몸에서 쉽게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몇 달이나 반사 상태로 침대에 누워 생명을 유지해 나갔다. 긴 겨울 동안 오란이 병상에 눕고 보니 왕룽과 아이들은 처음으로 그녀가 가정에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느꼈다. 모두가 얼마나 그녀의 힘을 입고 살았는가를 그때까지 그들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지내왔던 것이다. 부엌에 불을 지필 때도 어떻게 해야 마른 풀이 잘 타는지 또 고기 하나를 구워도 어떻게 해야 태우지 않고 잘 되는지, 야채 요리를 할 때도 참기름을 쓰는지 콩기름을 쓰는지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식탁 밑에 먼지라든가 음식 찌꺼기가 떨어져도 아무도 그것을 보고 청소하는 사람이 없었다. 너무 오래돼서 냄새가 나면 어쩔 수 없이 개를 불러 먹이거나 막내 딸을 시켜서 쓸게 했다. 막내딸은 어머니 대신에 할아버지 시중도 들었다. 늙은이는 나이가 많아서 아무 것도 분별하지 못했다. 시중을 들던 며느리가 병이 들어 누웠다고 말해도 이해하지를 못했다. 며느리가 찬물이든 더운물이든 가져오지 않고 또 일어날 때 부축해 주지 않는 것에 대해 깊이 불평을 하며 몇 번이고 며느리를 부르다간 마침내 화가 나서 찻잔을 방바닥에 내동댕이치곤 했다. 왕룽은 보다 못해서 그의 아버지를 아내의 병상 곁으로 모시고 가서 누워 있는 모양을 보여 주었다. 늙은이는 눈이 몽롱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오란을 찬찬히 쳐다보고는 어떤 사정을 짐작한 듯 뜻도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면서 눈물을 흘렸다. 천치 딸만은 끝내 아무 눈치도 채지 못했다. 그녀는 변함 없이 색동 조각을 만지작거리면서 한가로이 놀기만 했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녀의 치다꺼리를 해야만 했다. 밤이 되면 재워 주고 밥을 먹일 때면 먹여 주어야 하고 낮이면 양지쪽에 앉혀 줘야 하며 비가 오면 방안까지 데리고 들어와야 했다. 이 정도의 일은 누구든 가족 중의 한 사람이 알아서 해 주어야 했는데 왕룽 자신도 가끔은 깜빡 잊는 것이다. 언젠가 하룻밤 내내 그녀를 집 밖에 내버려둔 채 잊은 일이 있었다. 이튿날 새벽녘 그녀가 추위를 못 이겨 울음을 터뜨린 후에야 비로소 그는 그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왕룽은 화를 내며 아이들에게 불쌍한 천치 누이를 챙기지 않았다고 야단쳤으나 역시 아이가 어머니의 일을 대신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왕룽은 그 후부터는 천치 딸의 뒷바라지를 자기 손으로 손수 하기로 했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이나 차가운 바람이 부는 날엔 부엌 가마솥 앞에 데려다 앉히곤 했다. 온 겨울 동안 오란이 앓아 누워 왕룽은 통 밭일을 돌보지 못했다. 겨울 동안의 여러 가지 농사일이라든가 머슴을 부리는 모든 일을 칭 서방에게 모두 맡겨 버렸다. 칭 서방은 충실하게 모든 것을 잘 처리했다. 그리고 아침 저녁 두 차례씩 병세를 묻는 것이었다. 이럴 때면 왕룽은 언제나 오늘은 닭국물을 좀 마셨다든가, 오늘은 미음을 조금 먹었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런 말도 하기가 귀찮아졌다. 그래서 칭 서방에게 이제는 더 문안을 오지 않아도 좋으니 농사일이나 잘해 달라고 부탁했다. 춥고 어두운 겨울 동안 왕룽은 줄곧 병자 곁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아내가 추울 것이라고 생각되면 화로에 숯을 달게 지펴서 침상 곁에 놓고 방안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맥없이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공연히 숯을 많이 피우게 해서요."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또 이런 말을 하자 왕룽은 버럭 화를 내었다. "그런 말 말아. 당신 병을 고칠 수 있다면 땅이든 무엇이든 다 팔아도 아깝지 않아." 오란이 이 말을 듣자 흐뭇하게 웃더니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작게 속삭였다. "그건 안돼요. 나는 언제 죽어도 한 번은 죽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땅은 내가 죽어도 언제까지나 남아 있는 것 아녜요." 왕룽은 아내가 죽는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으니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러나 그도 오란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어느 날 성안에 있는 장의사에 들러 거기에 진열되고 있는 관을 하나하나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중에 가장 단단한 나무로 만든 검은 칠을 한 좋은 관을 골랐다. 그가 관을 고르는 것을 보던 가게 주인은 눈치 빠르게 말했다. "두 개를 함께 사시면 3할을 감해 드리죠. 손님 것도 미리 마련해 두시면 뒤에 걱정없이 안심될 텐데요." "내 것이야 자식들이 해 줄 일이지." 왕룽은 이렇게 대답했으나 곧 아직 그의 아버지의 관을 마련해 두지 않은 것을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 많은 아버지가 계시오. 걸음도 잘 못 걷고 귀도 먹고 눈도 어두우시니 얼마 안 가 돌아가실 게요. 그러니 두 개를 사기로 하겠소." 가게 주인은 두 개의 관에 다시 한 번 칠을 잘해서 집까지 보내 줄 것을 약속했다. 집에 돌아온 왕룽은 오란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오란은 남편의 무한한 정성에 감격하며 죽은 후의 모든 일을 안심한 듯 기뻐했다. 이렇게 왕룽은 매일같이 몇 시간이고 아내 곁에 앉아 병간호를 했다. 오란은 날이 갈수록 쇠약해져 갔으며 거의 입을 여는 일이 없었다. 몸이 성할 때도 그들 사이에는 말이 없었지만 지금은 더욱 긴 침묵에 계속되었다. 그가 이렇게 조용히 앉아 있으면 오란은 지금 자기 몸이 어디 있는지조차 잊어버릴 만큼 정신이 몽롱한 상태인 것 같았다. 이따금 지나간 어릴 때의 일을 꿈결같이 중얼거렸다. 왕룽은 처음으로 아내의 마음속까지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가 중얼거리는 말은 극히 단편적인 것들이었다. "저는 음식을 문턱까지만 가져가겠어요. 전 못나서 영감님 앞에 나갈 수 없어요." 그리고 숨을 헐떡이며 이런 말도 했다. "때리지 마세요. 다시는 쟁반에 있는 것을 집어먹지 않겠어요." 그리고 되풀이해서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또 이런 말도 했다. "난 못생겨서 귀염받지 못할 걸 잘 알아요." 오란이 이런 말을 할 때면 왕룽은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죽어 버린 사람같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내의 손을 어루만졌다. 아내의 말은 진실이었다. 그는 그의 애틋한 감정을 아내에게 전하려고 진심으로 그녀의 손을 쓸어 주었으나 아무래도 렌화가 입을 비죽거릴 때보다는 애정이며 감동이 솟아오르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그는 이런 이상한 마음이 부끄러웠다. 그녀의 진실한 말이 그를 뉘우치게는 했으나 뼈만 남은 그녀의 손에선 애정이 우러날 수 없었다. 애처로운 생각이 들면서도 그것을 반발하는 그 무엇이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래서 왕룽은 더한층 아내에게 정성을 다했다. 특별한 음식을 사오기도 하고 은어와 배추속으로 만든 맛있는 국물을 먹이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간호하는 온갖 괴로움을 잊어버리려고 렌화의 방에 갔으나 조금도 유쾌하지 않았다. 아내에 대한 근심이 머리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렌화를 껴안고 있다가도 아내 생각이 되살아나면 그만 팔이 풀려지는 것이었다. 오란은 때때로 정신이 맑아져 주위의 일을 분간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한번 그녀는 뚜챈을 불렀다. 왕룽이 깜짝 놀라서 데려오니 오란은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상반신을 일으키고 아주 야무진 어조로 말했다. "이봐, 자네는 황 영감 몸종으로 있을 때 예쁘다고 세도가 대단했지. 이제 나는 남의 아내가 되고 아들을 낳았지만 자네는 지금껏 종노릇을 못 면했구먼." 뚜챈은 발끈 성을 내면서 말대꾸를 하려 했으나 왕룽은 재빨리 그녀를 가로막고 데리고 나가 타일렀다. "정신 없이 앓는 사람의 말이니 마음에 두지 말게......" 왕룽이 다시 방에 돌아오니 오란은 아직도 그대로 앉아 있다가 말했다. "내가 죽고 난 뒤에도 저 여자나 저 여자의 주인을 이 방에 들어오게 해서는 안돼요. 내가 가졌던 옷이나 물건에 손을 대게 해서는 안돼요. 내 말대로 안 하시면 나는 귀신이 되어 원수를 갚겠어요." 그리고 오란은 다시 혼수 상태에 빠져 머리를 베개에 떨어뜨렸다. 설 명절이 가까워진 어느 날, 오란은 병세가 갑자기 좋아졌다. 촛불이 꺼지기 전에 잠시 환하게 밝아지듯 의식이 뚜렷해지고 침상에 일어나 앉아서 손수 머리를 빗고 차를 마시고 싶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왕룽이 들어오자, 그녀는 말했다. "설 명절이 얼마 안 남았는데 아무 음식도 준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부엌에 뚜챈을 들여보내는 것은 내키지 않아요. 약혼해 둔 큰며느리를 불러 주세요. 아직 본 일은 없지만 만약 그 애가 와 준다면 여러 가지 일을 가르쳐 주겠어요." 왕룽은 설 명절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으나 그렇게 기운을 차린 것이 좋아서 곧 뚜챈을 유씨에게 보내 그런 사정을 전했다. 유씨댁에서는 약간 주저하긴 했으나 안사돈 될 사람이 봄까지 살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듣고, 또 딸의 나이도 열 여섯이나 되었으며, 그보다 더 어려도 시집 가는 일이 있으므로 쾌히 승낙했다. 그러나 그녀의 시어머니 되는 사람이 병석에 있기 때문에 약혼한 새색시가 오는 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다. 새색시는 가마를 타고 그의 어머니와 늙은 몸종과 함께 왔다. 그의 어머니는 딸을 사돈에게 맡기고 몸종만이 남았다. 왕룽은 아이들을 다른 방으로 옮기게 하고 그 방을 새 며느리의 방으로 예쁘게 꾸며 주었다. 모든 일이 순조로왔다. 왕룽은 예절에 따라 며느리가 인사할 때만 점잖게 머리를 숙일 뿐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며느리는 자신이 해야 할 도리를 잘 알고 있었다. 집안을 거닐 때도 눈을 내리깔고 정숙한 태도를 버리지 않았으므로 왕룽은 마음이 흡족했다. 얌전하고 예쁘면서도 교만한 티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왕룽을 더욱 기쁘게 했다. 그녀의 조심스런 모든 동작은 조금도 흠 잡을 것이 없었다. 그리고 정성껏 시어머니를 간호하는 것이 왕룽을 더욱 안심시켜 주었다. 또한 오란도 며느리의 정성어린 간호에 지극히 만족한 표정이었다. 오란은 며칠 동안 만족스럽게 지냈으나 곧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아침에 남편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말했다. "마음놓고 죽기 전에 부탁이 한 가지 더 있어요." 왕룽은 왈칵 역정을 내며 말했다. "제발 좀 죽는단 말은 하지 말아." 오란은 조용히 웃음을 띠었으나 곧 거두면서 침착한 아조로 말했다. "나는 죽어요. 몸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요. 그렇지만 큰아이가 와서 이 며느리와 혼사를 치를 때까지는 못 죽겠어요. 정말 좋은 며느리예요. 나에게도 참 잘해 줘요. 더운 물을 담은 대야를 들 때도 힘차 보이고 내가 괴로워서 땀을 흘리면 얼굴도 깨끗하게 잘 닦아줘요...... 아무튼 나는 죽을 것이니 그 전에 큰아이를 불러 혼사를 치르게 해 주세요. 당신에게는 손자, 아버님께는 증손자를 보게 해야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몸이 건강할 때도 그녀는 이렇게 긴 말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왕룽은 그녀의 음성과 태도에 병이 회복되는 기미가 보이자 절로 힘이 솟아났다. 그는 장남의 결혼식은 좀 뒤로 미루고 싶었다. 성대하게 혼사를 치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내의 마음을 거스르고 싶지 않아 동의하는 어조로 분명히 말했다. "좋아, 당신이 원한다면 그렇게 하지. 오늘이라도 남방에 사람을 보내서 큰아이를 불러오지. 그 대신 임자도 힘을 내야 해. 그놈의 죽는다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꼭 나아야 돼. 임자가 누워 있으니까 집안 꼴이 돼지 우리 같다구." 그는 아내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고 싶었다. 오란은 만족한 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흐뭇한 웃음을 띠면서 스르르 눈을 감고 자리에 누웠다. 왕룽은 곧 맏아들에게 사람을 보냈다. "도련님한테 이렇게 전해라. 어머님의 병환이 위중하여 네 얼굴을 보고 결혼하는 것을 보기 전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으신다고. 부모님과 집을 생각하거든 곧 돌아오라고 해라. 오늘부터 사흘 후에 잔치를 열려고 여러 손님을 청해 두었으니까 그 전에 와야 한다고 단단히 전해라." 왕룽은 잔치 준비를 시작했다. 그는 뚜챈을 시켜서 성대한 잔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성안 찻집에서 음식을 장만할 사람을 불러오게 했다. 그는 뚜챈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말했다. "황부잣집에서 하던 것처럼 한번 잘 치뤄 봐.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까."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아는 대로 모두 청했다. 성안에 가서 그가 드나들던 찻집이나 곡물 거래로 알게 된 사람도 하나도 빠짐없이 청했다. 물론 숙부님에게도 말해 두었다. "큰놈의 잔치에는 아저씨의 친구분도 사촌의 친구도 모두 청하세요." 왕룽은 삼촌의 신분을 언제나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조심스럽게 손님처럼 대했다. 혼례식 전날 밤에 아들이 돌아왔다. 아들이 늠름하게 방안으로 들어오자 왕룽은 지난날의 불쾌한 생각은 깨끗이 잊어버렸다. 이 아들이 집을 떠난 지 벌써 두 해가 넘는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돌아 온 아들은 이미 소년이 아니었다. 키가 크고 혈색도 좋고 체격도 당당한 훌륭한 어른이었다. 머리는 짧게 깎아 기름이 번지르르하고 남방 신사들이 입는 검붉은 공단 두루마기에 짧은 우단조끼를 입고 있었다. 헌칠하고 늠름한 아들의 모습을 본 왕룽은 가슴이 부풀었다. 이것이 내 아들이란 생각 이외는 모든 것을 잊고 아내의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침대 곁에 앉아 어머니의 앙상한 모양을 지켜본 아들은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러나 명랑하게 이렇게 말했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사람들 말보다는 갑절이나 기운이 있어 보입니다. 돌아가시다니 어림도 없어요." 그러나 오란은 힘없이 간단하게 말했다. "네 혼사 치르는 걸 보고야 죽을테다." 신부될 사람은 혼례식 전에 신랑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는 것이 예절이었으므로 렌화는 색시를 자기 방에 데려다 놓고 예쁘게 치장해 주었다. 렌화와 뚜챈과 숙모는 이런 일에 아주 익숙해 있었다. 이 세 사람은 혼례식을 올리는 날 아침이 되자 색시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깨끗하게 씻어 주고 전족한 발에 버선까지 새 것으로 신기고 또 렌화가 아끼는 향기 좋은 편도유까지 발라 주었다. 그리고 색시 집에서 가져온 새 옷을 맵시나게 정성껏 입혔다. 제일 먼저 흰 꽃무늬를 수놓은 비단으로 만든 속옷을 입히고 그 위에 부드러운 양털로 짠 치마저고리를 입혔다. 또 그 위에는 혼례식 때 입는 붉은 공단 예복을 입혔다. 이마에 물분을 바르고 풀먹인 명주실로 잔털을 뽑고 머리를 매만져 이마를 네모나고 넓게 보이도록 했다. 이것은 대갓집 부인답게 보이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분을 바르고 연지를 찍고 붓으로 눈썹을 길고도 가늘게 그렸다. 머리에는 신부의 족두리와 구슬이 드리워져 있는 베일을 씌우고 전족한 발에는 예쁜 수가 놓여진 신발을 신기고 손톱에 물을 들이고 손에는 향기로운 값비싼 향수를 뿌렸다. 이렇게 해서 신부 단장이 빠짐없이 끝났다. 신부는 다소곳하게 세 사람이 시키는 대로 몸을 맡겨 두고 있었으나 매우 수줍어서 마음이 내키지 않는 듯했다. 왕룽과 그의 아버지, 삼촌, 그리고 손님들은 대청에서 기다렸다. 신부는 친정에서 데려온 늙은 몸종과 숙모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왔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작은 발로 간신히 걸었다. 누구에게 부축을 받지 않고는 혼례식장 같은 데엔 도저히 나올 것 같지 못할 걸음걸이였다. 그것은 그녀의 정숙함을 나타내는 것이었고 따라서 왕룽은 훌륭한 며느리감이라고 기뻐했다. 그 뒤로 신랑이 들어왔다. 그는 붉은 두루마기에 검은 조끼를 입고 들어왔다. 머리를 빗어넘기고 얼굴은 깔끔하게 면도했다. 그 뒤로 두 동생이 따라 들어왔다. 왕룽은 그들의 늠름한 자태를 보자 새삼스럽게 기쁜 마음이 가슴에 끓어올랐다. 아주 귀가 절벽이 된 아버지는 지금껏 무슨 일로 이 자리에 나온 것인지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납득이 간 듯 쉰소리로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몇 번이고 피리소리 같은 목소리로 되풀이했다. "혼례로구나. 아, 혼례라. 아이들이 또 생기고 손주들이 생기고, 하하하하......" 늙은이가 이렇게 좋아하고 웃음을 터뜨리자 여러 사람들도 따라서 크게 웃었다. 왕룽은 아내가 저렇게 병석에 누워 있지 않고 여기에 함께 참여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왕룽은 아들이 신부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가, 예리하게 살펴보았다. 아들은 단 한번 신부를 곁눈질 해 보았으나 매우 흡족한 표정이었다. 왕룽은 마음속으로 정말 다행스런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떠냐! 내가 고른 며느리가 너도 마음에 들지." 신랑과 신부는 왕룽과 조부에게 큰절을 하고 나서, 오란이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오란은 고급 검은 두루마기로 갈아입고 아들과 며느리가 들어오자 일어나 앉았다. 양쪽 뺨이 타는 듯이 붉어져서 왕룽은 오란의 몸이 회복되는 줄 알고 어린아이처럼 큰 소리로, "야, 이제 병도 낫겠구려." 하고 소리칠 정도였다. 두 젊은이가 가까이 와서 절하는 것을 받은 오란은 침상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자, 이리로 와서 앉아라. 여기 앉아서 혼례 술도 마시고 밥도 먹어라. 난 그 모습이 제일 보고 싶다. 나는 곧 죽을 게고 내가 죽은 뒤로는 여기가 너희들의 혼례 침상이 될 것이다." 이 말에 아무도 뭐라고 대꾸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부끄러운 듯 말없이 나란히 앉았다. 뚱뚱한 왕룽의 숙모가 점잔을 빼면서 더운 술을 두 잔 따라 신랑 신부에게 한 잔씩 나누어 주었다. 두 사람은 잔에 입만 대었다가 다시 그 술을 한잔에 섞어 나누어 마셨다. 두 사람이 한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예식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각기 밥을 먹다가 다시 서로 섞어 먹었다. 두 사람의 생명이 이로써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백 년을 맹세하는 혼례식은 모두 끝난 것이다. 신랑 신부는 오란과 왕룽에게 조심스레 절을 하고 물러나와 마당에 모여 있는 여러 손님들에게 큰절로 답례를 했다. 그런 다음 피로연이 시작되었다. 방에도 뜰에도 많은 음식상이 놓였고 구수한 음식 냄새와 웃는 소리가 온 집안에 들끓었다. 초대된 손님들은 아주 많았다. 친한 사람 뿐만 아니라 낯모르는 사람들까지 모였다. 잔칫집이 부잣집이기 때문에 이런 때는 누구에게나 인색하지 않게 잘 대접할 것을 알고 부르지 않은 사람도 많이 왔다. 뚜챈이 성안에 가서 일부러 음식 만드는 사람을 불러왔기 때문에 농가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음식들도 많이 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또 농가의 부엌에서는 장만할 수 없는 음식을 성안에서 만들어 큰 광주리에 담아 가지고 왔다. 이미 요리가 되어 있어 데우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요리 솜씨를 자랑하려고 기름이 묻은 앞치마를 두르고 사방으로 돌아다녔다. 모든 사람들은 마음껏 먹고 마시며 기분 좋게 떠들어 댔다. 오란은 이렇게 떠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음식 냄새도 맡을 수 있도록 창문과 휘장을 모두 젖혀 놓게 했다. 그러고는 자주 가까이 오는 남편에게 몇 번이고 물었다. "술은 모자라지 않아요? 상 가운데에 놓인 팔보채는 더운가요? 기름과 설탕과 여덟 가지 과일이 제대로 들어 있나요? 그리고 식지는 않았나요?" 왕룽은 무엇이든 다 잘 되어 있다고 오란의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오란은 지극히 만족한 웃음을 띠며 웅성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잔치가 끝나고 손님들도 모두 돌아가고 밤이 깊었다. 웅성거리던 소리가 끊어지고 집안이 조용해지자 오란은 지쳐서인지 갑자기 맥박이 약해졌다. 오란은 아들과 며느리를 곁에 불러 놓고 말했다. "이제 나는 죽어도 한이 없다. 너는 부디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잘 섬기도록 해라. 그리고 며느리, 너는 네 남편과 시아버지와 시할아버지를 잘 섬겨야 한다. 또 천치 시누이도 잘 돌봐 주면 고맙겠구나. 그 밖에 네가 섬길 사람은 이 집안에 아무도 없다." 끝말은 지금까지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던 렌화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두 사람은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오란은 혼수 상태에 빠진 듯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는 그들이 그곳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듯했다. 오란은 맥없이 눈을 감고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나는 못생겼어. 그래도 나는 아들을 낳았어. 나...... 나는 남의 종이었어. 그러나 지금 내 집에는 훌륭한 자식이 있어." 그리고 한동안 있다가 또 중얼거렸다. "저 계집이 나처럼 남편을 섬길 수 있을까? 예쁘다는 것만으로는 아이를 낳지는 못해." 그녀는 사람이 있는 것도 모르고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한동안 중얼거렸다. 왕룽은 아들과 며느리를 밖으로 나가라고 눈짓하고 아내의 침대 곁에 앉았다. 오란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듯했다. 이따금 눈을 떴다가는 이내 다시 감곤 했다. 왕룽은 아내가 빈사 상태에 빠져 죽어 가는 순간에도 그녀의 자줏빛 큰 입술에 이빨이 나와 있는 것을 추하다고 느끼는 자신이 미웠다. 갑자기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과 슬픈 생각이 가슴에 치밀었다. 오란은 다시 한 번 눈을 크게 떴으나 눈앞에 이상한 안개라도 ㄷ여있는 듯이 왕룽이 누군지 분간 못하는 듯이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갑자기 베개 위로 머리를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몸을 떨었다. 그것이 오란의 마지막이었다. 아내가 죽고 나니 왕룽은 아무래도 오란의 곁에 가기 싫었다. 그래서 숙모를 불러서 시체를 씻게 했으나 두 번 다시 곁에 갈 생각이 없었다. 그가 사 두었던 관 속에 옮기는 일도 숙모와 아들 내외를 시켰다. 그러면서도 언뜻 미안한 생각이 들어 성안에 가서 일꾼을 사서 관습대로 관을 밀봉하게 하고, 또 점쟁이에게 장례에 좋은 날을 물어 보기도 했다. 점쟁이가 점친 날은 석 달 후였다. 그 전에는 좋은 날이 없다는 것이었다. 왕룽은 점쟁이에게 사례금을 주고 절로 갔다. 절의 주지와 의논 끝에 장례일까지 아내의 관을 그곳에 모셔 두기로 했다. 그 관을 집안에 둔다면 매일 눈에 보이므로 왕룽은 못 견딜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인을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일은 모두 정성껏 했다. 그리고 자기도 아들도 모두 상복을 입었다. 상을 나타내는 빛인 흰 무명천으로 만든 신발을 신고, 흰 각반을 두르고 여자들은 모두 흰 천으로 머리를 묶게 했다. 그 후 왕룽은 아내가 있던 방에 있기가 싫어져서 자기가 쓰던 것을 챙겨 렌화의 방으로 옮기고는 큰아들에게 말했다. "이 방은 너희들이 쓰도록 해라. 네 어머니가 이 방에서 너를 낳았으니 너도 이 방에서 자식을 낳는 게 좋아." 아들 내외는 그 말에 순종했다. 한번 죽음이 집안에 찾아들면 쉽사리 물러가지 않는 모양이다. 왕룽의 아버지는 그의 며느리가 죽어서 입관하는 것을 보자 정신이 이상해지더니 어느 날 아침에 둘째 딸이 차를 가지고 들어가 보니 듬성듬성 난 수염을 위로 하고 침대에 반듯이 누운 채 죽어 있었다. 둘째 딸은 그것을 보자 질겁을 하고 울면서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왕룽이 놀라 쫓아가 보니 늙은이는 벌써 숨이 끊어져 있었다. 극도로 쇠약한 몸은 한줌밖에 안될 만큼 가볍고 울퉁불퉁한 소나무처럼 굳어 있었다. 아마 침대에 눕자마자 곧 숨을 거두었는지 시간이 꽤 오래 지난 것 같았다. 왕룽은 손수 아버지의 시체를 더운물에 씻고 미리 사다 둔 관에 고이 눕히고 밀봉을 하였다. "오란과 같은 날에 매장하기로 하자. 묘지는 내 땅 가운데 언덕진 좋은 장소를 골라서 함께 매장하자. 나도 죽으면 그곳에 함께 묻어 달래야지." 그는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하고 또 그 말대로 실행했다. 그는 아버지 시체를 넣은 관을 가운뎃방에다 걸상을 두 개 나란히 놓고 그 위에 안치하고서는 정해진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돌아간 아버지의 영혼도 그곳에 있고 싶어할 것이고 왕룽 자신도 그 주검 옆에 있고 싶었다. 왕룽은 아버지의 죽음을 그리 애통해 하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나이가 많은 만큼 천명을 누렸고 또 요 몇 해 동안은 반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점쟁이가 정한 장삿날은 한창 좋은 봄날이었다. 왕룽은 도교(道敎)의 절에서 많은 도사를 불렀다. 그들은 긴 머리를 틀어 올리고 노란 도복을 입고 왔다. 왕룽은 절에서 중을 여러 사람 불러왔다. 중들은 회색 장삼을 입고 머리를 깎았으며 목에 염주를 드리웠다. 도사와 중들은 두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해 밤새도록 북을 치며 경문을 읽었다. 독경하는 소리가 꺼질 듯하면 왕룽은 그때마다 그들의 손에 은전을 쥐어 주었다. 그러면 그들은 숨을 돌리고 소리를 다시 높였으므로 독경하는 소리는 새벽까지 그칠 줄을 몰랐다. 왕룽은 대추나무가 서 있는 언덕 땅을 묘지로 택했다. 칭 서방은 미리 일꾼들을 시켜 커다란 구멍을 파게 하고 그 주위에 흙으로 담까지 쌓게 했다. 그 담안은 왕룽 뿐 아니라 그의 아들들과 며느리들까지, 또 손자들까지 묻을 수 있을 만큼 넓었다. 이 땅은 지대가 높아서 밀이 잘 되는 땅이었지만 왕룽은 조금도 아깝게 생각하지 않았다. 죽은 다음에도 자기 땅에 뿌리를 박는다는 것은 여간 기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장례식날 스님들의 밤 독경이 끝나자 왕룽은 흰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삼촌도 사촌도 아들들도 며느리에게도 상복을 입혔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이나 보통 농부들처럼 묘지까지 걷는다는 것은 체면이 걸리는 문제이므로 성안에서 가마를 여러 채 불러 모두 타기로 했다. 왕룽은 평생 처음으로 가마를 타고 오란의 상여 뒤를 따랐다. 아버지 상여 뒤에는 삼촌이 역시 가마를 타고 따랐다. 오란이 살아 있을 때는 기를 펴지 못하던 렌화도 오란이 죽은 지금엔 큰 부인에게 충실했다는 것을 남에게 보이기 위해 가마를 타고 행렬에 끼였다. 왕룽은 숙모와 사촌에게도 가마를 내어 주고 상복을 입게 했다. 천치 딸에게도 상복을 입히고 가마에 태웠는데 그녀는 아무 분간 없이 허우적거릴 뿐만 아니라 곡을 해야 할 경우에도 높은 소리로 방긋방긋 웃기만 했다. 장례 행렬은 곡소리와 함께 장지로 향했다. 머슴들과 칭 서방은 흰 신발을 신고 걸으면서 그 뒤를 따랐다. 이윽고 왕룽은 두 개의 묘 옆에 섰다. 아버지의 관이 먼저 내려졌다. 절에서 운반된 오란의 관은 아버지의 관이 묻힐 때까지 땅에 놓여 있었다. 왕룽은 그 광경을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슬픔은 눈물이 마를 정도로 깊었지만 다른 사람처럼 소리를 내어 울지는 않았다. 당연히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뿐이고 누구나 그 이상은 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관을 묻고 흙을 덮어 봉분을 하자 그는 가마를 먼저 돌려보내고 묵묵히 혼자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가슴이 메이는 듯한 슬픔 속에 이상하게도 뚜렷한 하나의 생각이 떠올라 그의 마음을 괴롭혔다. 그것은 어느 날 오란이 못가에서 빨래를 할 때, 그녀가 가졌던 진주 두 개를 억지로 빼앗은 일이었다. 그 진주는 렌화의 귀고리가 되고 말았으나 그 귀고리를 다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런 무거운 생각에 얽매인 채 그는 홀로 걸으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그 무덤에 내 반평생을 묻고 오는 셈이다. 나도 절반은 그 속에 묻힌 것이다. 앞으로 내 인생도 달라질 것이다......" 갑자기 왕룽은 눈물을 흘렸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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