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장: 시작하며 — 하나님께서 주신 깨달음
오늘부터 마태복음 4장 23~25절 말씀을 근거로, 산상수훈에 담긴 구원의 비밀을 주제로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본격적인 산상수훈 강해를 시작하는 자리인 만큼, 먼저 지난 한 주간 제게 있었던 일을 나누며 문을 열고자 합니다.
지난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잠자리에 들기 전 갑자기 시편 101편 3절 말씀이 제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시 101:3, 개정) 나는 비천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이 구절을 평소 잘 알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문득 떠오르기에, '비천하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궁금해 컴퓨터를 열어 뜻을 찾아보았습니다.
시편 101:3에서 "비천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문은 벨리야알(beliyyaʿal)이며, 본래 의미는 "가치가 없다, 유익이 없다"입니다.
어원과 의미
구성: 벨리(없이) + 야알(유익/가치)이 합쳐진 말로, 문자 그대로 "유익이 없는 것"을 뜻합니다.
확장: 그 뜻이 넓어 도덕적으로 무가치한 것,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 해로운 것까지 포괄하게 되었습니다.
번역: 한글 성경은 이를 "비천하다" 또는 "비루하다"로 옮겼는데, 이는 원래의 "무가치함·무익함"에서 나아가 "천하고 더러우며 도덕적으로 타락한 모습"을 나타낸 표현입니다.
후대에 이 단어는 악의 상징인 "벨리알"로도 쓰이게 되지만, 본절에서는 근본 뜻인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 없고 유익하지 않은 것"을 피하겠다는 결의를 담고 있습니다.
쉽게 풀어 설명하자면 비천한 것은 '무익한 것', '무가치한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즉 이 말씀은 "나는 내 눈앞에 무익한 것을 두지 않겠다, 무가치한 삶을 살지 않겠다,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 없고 유익하지 않은 것을 피하겠다 "는 고백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받고 제 스스로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래, 나는 무익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되지,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되지'라고 다짐했지만, 정작 그 다음 날부터 또 시간을 낭비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완전히 끊어낸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싸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결단하고 또 넘어지고, 일어서고 다시 넘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문득 친구 목사님의 수양관에서의 생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분께서는 일에 너무 몰두하기보다 적절히 쉼을 주시며 사시되, 삶의 중심은 언제나 하나님께 두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도 때로는 신경을 끊고 쉬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결코 하나님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한 쉼임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래야 합니다. 먹고 마시고 무엇을 하든지, 그 동기와 중심이 오직 하나님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무가치한 것을 내 눈앞에 두지 않겠다"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삶, 영적인 가치 없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0장 31절과 로마서 14장 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 10:31, 개정)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롬 14:8, 개정)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찬송가 가사처럼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고 우리가 진정으로 고백한다면,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가장 중심에 자리하셔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처럼 예수님을 밀어내고 자기 마음대로 살다 보면, 주님께서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시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그분과 함께 사는 삶, 그것이 정상적인 신자의 삶입니다.
2장: 산상수훈의 구조 — 샌드위치 속에 담긴 복음
이제 본격적으로 산상수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의도와 구조로 쓰여 있는지를 먼저 아셔야 합니다.
마태복음 4장 23절과 9장 35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4장 23절: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9장 35절: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거의 동일한 내용이 예수님의 사역을 요약하며 두 차례 나옵니다. 즉 '가르치심 → 천국 복음 전파 → 병 고치심'이 세 가지가 예수님 사역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구절 사이에 바로 산상수훈(5~7장)과 기적 사역(8~9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것을 인클루지오, 즉 샌드위치 구조라고 합니다. 시작과 끝이 같은 말로 묶여, 그 사이에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고대의 저술 방식입니다.
쉬운 예로 시편 8편을 보면, 1절과 9절이 똑같이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로 끝나고, 그 사이 2~8절에서의 내용은 “하나님의 위엄과 인간에게 주신 지위 및 만물의 통치권”에 대한 내용이지만 이 내용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마태복음에 적용하면 이렇습니다.
4장 23절— 예수님의 사역 요약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시고)
5~7장—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 전파하신 내용의 핵심 = 산상수훈
8~9장—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는 기적과 표적 사역
9장 35절— 다시 예수님의 사역 요약
즉 산상수훈 5~7장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신 그 핵심 내용 그 자체라는 뜻입니다. 단순한 윤리나 훈계가 아니라,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 중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이 바로 이 산상수훈이라는 것입니다.
학자들도 이 점을 분명히 합니다.
스캇 맥나이트는 "4장 23절과 9장 35절의 동일한 구절은 마태의 의도적인 인클루지오 구조"라며, "마태는 산상설교가 메시아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 사역 중 가르침 사역의 핵심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합니다. 나아가 "5~7장의 가르침과 8~9장의 행동은 결합하여 메시아 사역을 완성하며, 예수님은 청중에게 자신을 따를 것인가를 촉구하신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헤르만 니델보스는 "산상수훈은 4장 17절·23절에 묘사된 예수님의 초기 사역, 즉 '천국이 가까웠다'는 선포와 그에 따른 회개 요청이 가장 구체적이고 요구적으로 나타난 천국 복음의 핵심"이라고 밝힙니다.
참고) *** 인클루지오 구조(Inclusio / 수미상응 구조)에 대하여
인클루지오 구조(Inclusio / 수미상응 구조)는 문학이나 수사학, 특히 성경 본문 해석에서 자주 등장하는 문학적 기법입니다. 특정 단락이나 수확 단위의 시작(A)과 끝(A')에 동일하거나 유사한 단어, 문장, 핵심 주제를 배치하여 중앙의 내용을 감싸는 형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샌드위치처럼 양 끝을 동일한 틀로 감싸 안는 구조입니다.
1. 주요 특징 및 목적
단락의 경계 구분: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하나의 완결된 주제 영역인지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주제 강조:양 끝에서 강조된 언어가 전체 본문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임을 상기시킵니다.
중앙 강조(Chiasmus와의 연계):양 끝을 감싸서 독자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가운데(중심 내용)로 모으는 역할을 합니다.
3장: 산상수훈은 윤리가 아니라 구원론이다
그렇다면 산상수훈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흔히 사람들은 "산상수훈은 훌륭한 윤리 가르침이다", "이대로 살면 좋은 삶이다", "모범적인 삶의 이상이다" 라고 이해합니다. 심지어 저도 과거에 산상수훈을 그렇게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산상수훈을 오해하는 가장 큰 시작점입니다. 많은 깊이 있는 학자들이 명확히 경고합니다. "산상수훈은 단순한 윤리 훈계가 아니다. 구원론이다." "이렇게 살아라"가 아니라 "이렇게 살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구원의 기준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보십시오.
(마 5:20, 개정)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더 나으면 상을 받는다"가 아니라 "낮으면 절대 들어가지 못한다"는 경고입니다. 또한 7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7:21, 개정)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
심지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선지자 노릇을 했어도" 행하지 않은 자는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집 짓는 비유에서,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짓고,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지어 재난이 오면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고 하십니다.
이 모든 말씀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살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이 하나같이 말합니다. 산상수훈은 '더 나은 삶을 살자'는 윤리 제안이 아니라, '구원받을 삶의 기준'을 제시하신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4장: 구원은 세 단계 — 과거·현재·미래
많은 목회자와 신자들이 '오직 믿음(Sola Fide)'과 '한 번 얻은 구원의 영원성'이라는 교리적 프레임에 갇혀, 구원을 단지 '칭의(Justification)'나 '중생(Regeneration)'이라는 협의의 개념으로만 제한합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면서 행함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이런 질문은 구원을 한 번의 사건으로만 이해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의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① 과거의 구원 — 칭의
에베소서 2장 8절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선물이라."
과거 시제로 쓰여 있습니다. 이미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칭의의 구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음으로 받습니다. 행위로 받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② 현재의 구원 — 성화
빌립보서 2장 12절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이루라'는 것은 계속 진행하는 행위입니다. 즉 이미 구원받았지만, 이제 그 구원을 실제 삶 속에서 이루어가는 단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현재의 구원, 성화의 구원입니다.
③ 미래의 구원 — 영화
디모데후서 4장 18절입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아직 천국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장차 주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구원하시고 천국에 들여보내주실, 그 미래의 구원, 영화의 구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구원은 칭의(과거) → 성화(현재) → 영화(미래)의 세 단계로 이어집니다. 한 번 믿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은 이후에 그 구원을 삶 속에서 이루어가야 비로소 최종적으로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5장: 산상수훈에 드러난 세 단계의 구원
바로 이 세 단계의 구원이 산상수훈 5~7장 전체에 걸쳐서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 서론 — 칭의와 중생 (5:3~16)
팔복과 소금·빛의 비유를 통해, 천국에 속한 자의 근본적인 신분과 본질을 설명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칭의의 자리입니다.
🔹 본론 — 성화의 삶 (5:17~7:12)
율법의 완성, 마음의 정결, 보응과 복종, 율법의 핵심인 사랑, 기도와 금식, 재물과 걱정, 이웃 대하기 등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 이루어가야 하는 구원, 성화의 삶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주목하십시오. 현재의 구원을 이루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예수님께서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시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지 못하고 밖에 서 계십니다. 구원의 자리에서 이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 결론 — 영화와 최종 심판 (7:13~27)
좁은 문, 거짓 선지자, 열매로 알 것, 반석 위에 집 짓는 비유로 마무리하십니다. 이것은 장차 있을 최종 심판과 천국에 들어가는 최종적인 구원, 영화의 완성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산상수훈 전체가 "칭의 받은 자가 성화의 길을 걸어 영화에 이르라"는 한 줄기 복음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이 하나같이 "산상수훈은 구원론이다"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산상수훈은 하늘로부터 오신 성자께서 천국 가는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 길 이외에 다른 길은 없으며, 다른 길은 모두 멸망으로 인도할 뿐입니다."
세계적인 신학자 김세윤 박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바울이 말한 칭의는 죄인이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종말까지 하나님 나라의 법인 산상수훈을 지키며 사는 것을 포함한다. 산상수훈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이중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6장: 산상수훈은 영적인 거울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산상수훈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첫째, 산상수훈은 영적인 거울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눈으로 자기 모습을 보듯이, 산상수훈을 통해서 우리의 영적인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거울이므로,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에 비로소 내 영혼의 참 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스캇 맥나이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백성을 윤리적 관점에서 묘사한 초상화다. 그러나 이 초상화가 실제 교회의 모습과 일치하지 않을 때, 이 설교는 은혜로운 교훈이 아니라 신랄한 고발로 바뀐다."
디모데후서 3장 16~17절도 성경의 목적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를 변화시켜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산상수훈은 단순히 보고 마는 거울이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비추는 거울이라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9~10절, 갈라디아서 5장 19~21절,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는 "이런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산상수훈은 그 모든 구절보다 훨씬 더 자세하고 명확하게,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기준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고전 6:9, 개정)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고전 6:10, 개정)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갈 5:19, 개정)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갈 5:20, 개정)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갈 5:21, 개정)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계 21:8, 개정)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예배의 태도, 마음의 정결, 기도와 금식, 재물과 이웃 사랑... 이 모든 것을 낱낱이 비추어, "과연 내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진짜 신자인가, 아니면 멸망으로 인도될 가짜 신자인가"를 스스로 확인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7장: 당부와 마무리 — 직접 읽고 스스로를 비추라
이제 산상수훈 시리즈를 시작하는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세 가지 간절한 부탁을 드립니다.
✅ 첫째, 집에 가서 마태복음 5~7장을 직접 펼쳐보십시오
예전에 저도 그랬듯이, "이것을 어떻게 살 수 있나?" 하고 그저 넘겨버리지 마십시오. "이것은 이상적인 삶의 모습일 뿐이지" 하고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이것은 이상이 아니라 구원의 기준입니다. 부족하다고 느껴지더라도, 괴롭다고 느껴지더라도 그 말씀 앞에 그대로 서서 "주님, 이것이 기준이라면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라고 자문하십시오.
✅ 둘째, 이 말씀을 내 뜻대로 해석하지 마십시오
지금부터 한 구절 한 구절 풀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단어의 뜻, 구절의 참 의미를 정확히 밝혀드릴 것입니다. 그러면 "아, 그런 뜻이셨구나" 하고 이해하게 되고, "이것은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능히 이루어갈 수 있는 삶이구나" 라고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 셋째, 빠지지 말고 꾸준히 들으시고, 매일 기도할 때 기억하십시오
산상수훈을 영적인 거울로 삼아, 매일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십시오. "나는 오늘 주님 앞에서 어떤 모습인가?" 하고 스스로를 살피십시오.
이 설교를 듣는 동안 여러분의 마음이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압니다. "아, 나는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었구나. 이제부터는 달라져야겠다" 하고 마음먹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말씀이 여러분에게 역사하시는 증거입니다.
산상수훈을 통하여 여러분 모두가 변화되시기를 기대합니다. 이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구원의 길이며,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산상수훈의 서론 말씀을 들으며 우리가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우리 성도들에게 복을 주시어 산상수훈과 같은 삶을 사는 복을 내리어 주시옵소서. 우리가 예수님의 기준에 합당하게 하여 주시고, 바른 믿음을 가지고 주님과 동행하며 나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들을 때 육의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듣고, 말씀에 귀 기울임으로써 완전히 변화되어지고, 온전한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