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인아,
뭐가 그렇게 급하더냐?
요즘이야 이제 인생 시작이라는 오십아홉에 떠나다니...
뭐라고 할 말이 없구나.
넌 나를 두 번이나 울리는 못된 친구가 되어버렸다.
새벽같이 너 떠난 소식을 듣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일어나 서성거렸구나.
스마트폰을 뒤져 지난 봄에 갈맷길 같이 걸으며 찍었던 너의 사진을 보았단다.
웃진 않았지만... 너무나 말쑥한 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구나...
이제 모든 걸 놓고.. 시골에 가서 조용히 살고 싶다던 너...
40년의 인연이 눈에 선하다.
까까머리로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검정반에서 만났구나.
2학년 올라가면서.. 넌 대학진학을 꿈꾸며 진학반으로 간다는 것으로
나를 시샘나게 만들었는데..
집안사정으로 사회반에 남았고 우린 더욱 친하게 지냈지.
졸업후 넌 범냇골 D실업에 취업했고,
난 한국은행부산지점에 근무하게 되어... 우리 우정은 더욱 깊어졌었지.
술한잔 못하던 나에게 술은 가르친건 너라고 할 수 있었단다.
현인아,
그 때 마치 우린 남녀사이나 되는 것처럼.. 편지까지 주고받았던 기억이 나는구나.
학사주점에서 소주 한 병에 맥주 두병이면 둘이서 술이 취했지.
기숙사생활 하던 나는 연산동 너 집에 가서 신세를 졌고,
아침에 어머니께서 끓여주시던 해장국을 맛있게 먹고 출근했던 생각이 나는구나.
참.. 그 때 너 여동생도 있었는데...이젠 시집가서 잘산다고 했지.
너가 나를 처음 울린 것은.. 군대갈 때였단다.
같이 친하게 지내던 오명환이랑 너가 같은 날 입대를 했었지.
부산진역에서 둘을 배웅하고 남은 나는 세상에 혼자 남은 것 같았단다.
혼자 역앞 중국집에 들러 못하는 소주를 한병시켜 먹고..
펑펑 울었던 젊은 날이 지금도 선명히 기억나는구나...
그 때 너는 나를 두고 떠난 나쁜 놈이었단다.
넌 내가 본 어떤 사람보다 성실한 사람이었다.
내가 너에게 배운 건 삶에 대한 성실함 바로 그것이었지.
그런데 인생은 말이야....성실한 땀만으로는 안되는게 있더구나..
그걸 운이라고 하나...
몇 군데 회사를 옮겨 다녔는데 그 회사들이 부도를 맞았고,
혼자 어떻게 해 보던 일도 그렇게 어렵게 되었었지.
그래도 넌 특유의 성실함으로 택시운전대를 과감히 잡더구나...
정말 넌 나에게 성실함을 보여주었지.
그러던 너가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고...
이젠 쉬어야 되겠다고... 일을 그만 두었지.
마침 연구년으로 빈둥거리던 나랑 같이 갈맷길 몇 코스를 걸었지.
모처럼 둘이 오붓한 시간을 가지면서,
소주 한잔에 옛날 얘기로 좋은 시간을 보냈던 게 불과 몇 달 전이구나.
몸이 갑자기 안 좋다고 아침에 약속 못 지키겠다고 전화할 때
사실 기분이 좀 그랬다.
지난 달 모임 때 산에 가자고 내가 전화했을 때...
이제 재미없어졌다고.. 술도 한잔 못하고.. 친구들이랑 밥도 제대로 못먹게 되었다고 했을 때 정말 기분이 좀 그랬다.
그 통화가...너의 마지막 목소리로 남게 될줄 어떻게 알았겠느냐.
이틀전 모임에 안 나온 너가 궁금해서,
전화하니 너 부인이 받아.. 병원에 있다고 전하더구나.
부랴부랴 너 보러 간 게 어제 아침이구나...
병원에서 눈 한번 안주고...목소리 한번 안들려 주더구나..
냉정하게 누운 너를 보면서..
난 할 말을 잊었단다.
너 보고 온 뒤... 잠을 설치는 나에게..
오늘 새벽 넌 결국 나를 두 번째로 울리고 떠났구나...
나쁜 놈아.!!
천국에선 부디 평화를 누리길 빈다....
2013년 11월 12일
이 세상에 남은 친구 명환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