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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에는 이상한 가게가 있다.
간판에는 양주집(?)이라고 붙어있는데 아니 정확하게는 맥주/양주 일체라고 붙어있는데
알루미늄 섀시유리창 너머로는 공주처럼 차려입은 언니들이 붉은 조명아래 서있다.
‘서서 술을 파남?’
유리창 너머로는 한번도 술따위를 마시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
그저 남자손님이 그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쪽으로 이끌려 사라지는 모습만 보일 뿐이다.
때로는 혼자서 술을 마시러 오는 신기한 손님도 있는 모양이다. 대학생처럼 보이는 학생이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그 가게유리창에는 짙은 커텐이 드리워지게 되었다.
파출소 경찰들이 술집골목을 자주 왔다갔다 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결국은 유리문에 채인 자물쇠를 보았다.
하지만 들리는 얘기로는 뒷문으로 몰래 영업을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차라리 집에서 마시지 뒷문으로 몰래 들어가는 술집이 어떤 술집일까 호기심이 들기도 했다.
밤 10시.
그날도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 집앞을 지나칠때 커텐 안쪽으로 뭐가 희끗 지나간것처럼 보였다.
‘사람이 안에 있나?’
유리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있었다.
캄캄한 커텐가까이 다가가 안을 들여다 보려고 했지만 보일턱이 없었다.
그저 느낌으로 안에 무언가 있다고 느껴졌을 뿐이었다.
이상한 기분으로 뒤돌아 집으로 향하면서도
커텐뒤에서 누군가 등뒤를 보고있다는 찜찜한 느낌을 떨쳐버릴수없었다.
집에는 삼촌이 와있었다.
“영미 이제 들어와? 고3이라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지?”
“네.. 별로.”
이상하게 피곤함을 느끼곤 내방으로 올라가 눕자마자 잠이 들어버렸다.
그날 밤.
처음으로 꿈속에서 귀신이 다가오는걸 보았다.
생시에서 귀신을 본적도 없지만 아마 생시에 보았더라도 이처럼 무섭진 않았을것이다.
자다가 눈을 뜨고 천장을 보았을때 방문옆 모서리에 누가 쪼그려있는걸 느꼈다.
고개를 들어 그쪽을 보자 어둠속에서 그 사람은 벌떡 일어섰다.
하얀 잠옷드레스같은 옷을 걸친 여자였는데 긴 검은 머리사이로 내민 얼굴은 잘 보이지않았다.
얼음같은 냉기만이 온몸을 오싹하게 휘감았고 놀라서 소리를 지르려했지만 아무 소리도 낼수가 없었다.
일어선 귀신은 한발, 한발.. 침대 곁으로 걸어왔다.
“어, 엄마!”
여자귀신의 얼굴이 눈앞가까이까지 다가왔을때서야
간신히 소리를 지르고 깨어난 내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꿈이었구나’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옆으로 고개를 돌렸을때 하얀 여자얼굴이 바로 옆에 누워있었다.
“꺄악!!!”
컴컴한 방안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후닥닥 열고 뛰쳐나왔다.
거실에는 삼촌과 엄마 아빠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땀에 흠뻑 젖어서 질려있는 내 얼굴을 보더니 엄마는 놀란 표정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니?”
“저, 저기... 침대위에...”
엄마가 방안에 들어서 불을 켰을때 환한 형광등아래 침대위에 있는 것은 옆으로 놓인 베게였다.
“너 요즘 많이 허한가보구나. 약이라도 한첩 지어줄까?”
“아니. 괜찮아..”
욕실에 들어가 세수를 하면서 거울을 보자 문득, 오다가 보았던 그 가게가 생각났다.
밖으로 나와서 엄마한테 물어보았다.
“엄마, 오다가 골목안에 문닫은 그 술집을 봤는데..”
“응, 왜?”
“거기.. 요즘도 영업해?”
“아니.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니?”
“그 안에 사람이 있는걸 봤어..”
옆에서 삼촌과 함께 술이 한잔 올라 얼굴이 벌개진 아빠가 한마디 거들었다.
“무슨 소리야. 거기 문닫았는데.”
“아.. 불법영업한다는 그 술집 말이죠? 겉으론 닫아놔도 안으론 다 영업해요.”
“아니, 그 집은 화재가 나서 사람이 다 죽었어.”
갑자기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사람이 죽었다는 얘기에 다들 말문을 잊은듯했다.
“안으로 불이 나서 공기도 안통하는 밀실에 갇힌 애들이 질식해서 다 죽었어. 딱하게 됐지..”
“아.. 뉴스에 나왔던 이 동네 술집이 바로 거기였어요?”
멍청하게 선 내 귓가에 아빠 얘기가 계속 울리고 있었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오면 뉴스를 통 안보니 알턱이 없었지만 이렇게 가까운데서 그런 사고가 있은 줄도 몰랐다.
“글쎄, 미성년자를 도망못가게 안에 가둬놓고 영업했다는구만,”
“참, 말세는 말세군요.. 등잔밑이 어둡다더니,”
아까 한 내 얘기는 다들 신경도 안쓰고 다른 얘기들만 나누고 있었다.
나는 등골이 오싹해져서 잠이 올때까지 밝은 거실한켠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피곤해 견딜수없어질때서야 내방에 다시 들어가 이불을 꼭 뒤집어쓴채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야간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무서워 견딜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그 집앞으로 발걸음이 이끌리고 있었다.
그리고 겁도 없이 컴컴한 유리창앞에다 얼굴을 가져다댔다.
아무도 없는 듯했다. 그럼 어제 본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안쪽이 더 잘 들여다보일수있게 커텐틈이 약간 벌어진 유리창앞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두손을 옆으로 가렸다.
‘안에 사람이 있을리가 없잖아..’
그때 어둠속에서 커텐이 갑자기 싹 벌어지며 어떤 얼굴이 코앞에 나타났다.
“악!!”
놀라서 자빠질뻔한 나는 뒤도 돌아보지않고 집을 향해 달음박질쳤다.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것처럼 정신없이 벨을 눌러댔다.
엄마가 무슨 난리인지 놀란 표정으로 문을 열자 다급히 소리쳤다.
“어, 엄마, 귀, 귀신...”
“무슨 소리니? 얘가..”
“귀, 귀신 살아.. 그 집에.”
“뭔말이야, 도대체..”
“오다가 그 술집에 사람있는거 봤어. 얼굴이 갑자기 마주쳤는데,”
엄마는 별 뚱딴지같은 소리를 다한다는 표정으로,
“사람이 가봤겠지,”
하며 별 대수롭지않게 말했다.
하긴 요즘 세상에 귀신이 사는 집이란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엄마 말대로 내가 요즘 허해져서 악몽을 꾼거로구나 하고 빨리 잊으려 마음 먹었다.
따뜻한 우유를 한잔 마시고 간신히 진정된 마음으로 잠이 들수있었다.
하지만 그날밤에도 어김없이 한밤중에 눈이 떠졌다.
캄캄한 천정이 올려다보였다. 한기가 오싹하게 들었다.
설마.. 하며 고개를 들어 방문옆 모서리를 보니 스르륵 일어서고있는 여자귀신을 볼수있었다.
몸이 굳은것처럼 움직일수가 없었다.
한발, 한발 다가오는 걸 보면서 오늘은 소리도 지를수 없었다.
코앞까지 다가와 온몸을 덮쳐누르자 벼랑에서 떨어지는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고 나서 아직 캄캄한 방안에 있는 귀신에게 말하듯 속으로 외쳤다.
‘나한테 왜이래요? 나한테 왜이래...’
그후론 학교에서 쉬는시간에 엎드려 잠들때에도 귀신이 보였고 수업시간에 옆에 누가 서있는게 느껴지기도 했다.
화장실을 혼자 가는 것도 무서워졌다.
친구에게 말했더니 그 집을 지나치면서 아무래도 네가 귀신에 덮인것 같다고 다들 대답했다.
무당을 찾아가보라고 했지만 그것도 황당한 소리처럼 들렸다.
하지만 기어이 괴짜라고 소문난 반애로부터 절앞에서 사왔다는 부적몇장을 넘겨받을 수 있었다.
울긋불긋한 그림속에 귀신 귀자가 적혀있는 종이였다.
어쨌거나 그애의 말대로 그 부적을 방문앞에 붙이고 한개는 머리맡에 붙여놓고 잠을 청했다.
한밤중이 되어 눈이 떠졌을때 또 꿈이구나 하는 생각부터 이젠 먼저 들었다.
이제는 고개를 들지않아도 문앞에 누가 서있는게 보였다.
보란듯이 부적을 붙여놓은 그 바로앞에 떡하니 서있었다. 그리고 내게로 다가왔다.
얼굴위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내가 땀을 흘리는 것인가 싶었지만 웬지 귀신이 울고있는걸로 느껴졌다.
‘울어?’
내가 부적을 붙였다고 우는것인가.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상하게 무서움은 덜해졌다.
그리고 가만히 귀신을 지켜보려고 했는데 얼굴은 역시 보이지않았다.
몸위로 덮쳐온 귀신의 얼굴이 코앞까지 왔을때 입술이 따뜻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죽은 입술처럼 차가워야 할텐데 차갑지가 않았다. 산 사람의 입술 같았다.
오한이 돋아있던 온몸의 한기속으로 그 입술을 통해 온기가 퍼져나가는것 같았다.
정신이 나른해져왔다. 이 여인이 내게 왜 이러는지 알수가 없었지만 몽롱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꿈에서 깨었을때 아직도 옆에 누가 와 앉아있는것처럼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내일도 꿈에 찾아와준다면..’
문득 귀신이 내일도 나타나기를 바라고있는 자신을 발견할수있었다..
학교에서 꿈에 귀신이 울었다는 얘기를 했더니
그냥 악몽일 뿐이라고 여겼던 애들조차 궁금한 표정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차마 입을 맞추었다는 얘기는 하지 못했다.
부적을 준 애는 자못 의기양양해했다.
“거봐, 부적이 효험있다니까,”
“근데.. 부적이 효험있으면 귀신이 이제 안나타나야지..”
다른 애가 이렇게 이의를 제기하자, 잠시 머뭇하더니
금새 머리를 굴려 소설같은 스토리를 엮어내기 시작했다.
“그건, 부탁하고 싶은게 있어서 나타난거야, 그 부탁만 들어주면 이젠 나타나지않겠다고..”
“무슨 부탁?”
“무슨 부탁일까..?”
애들은 갈수록 재미있다는 듯이 얘기에 열을 올렸다.
“아마도 범인을 찾아달라거나.... 아직 뼈가 못묻혀서... 찾아서 묻어달라는,,”
“꺄악, 무서워..”
수업이 시작하는 벨이 울리자 내 주위에 모여있던 애들은 후닥닥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와 씻고 잠들기 전에,
침대에 앉아 방문 모서리를 보며 나지막히 말했다.
“오늘도 와줄거죠?”
그리고 한밤중에 어김없이 찾아온 귀신에게 내 몸을 맡겼다.
무겁다고는 느껴지지않았지만 팔 다리 배 가슴 할것없이 나른하게 온몸을 눌러놓은것 같았다.
따스한 입맞춤의 온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눌려진 다리사이로 압박하는 기분에 야릇한 쾌감을 느꼈다.
깨어났을때 속옷이 흥건히 젖어있는걸 깨닫고 부시시 일어나 옷장서랍을 열고 새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나서 아까 내 몸위를 누르던 몸무게대신 곰인형을 부둥켜안고서 다시 잠이 들었다.
일요일이었다.
나는 그 집을 찾아가면서도 내내 마음속으로 망설이고 있었다.
그 집안에 어떻게 들어갈수있을지도 몰랐고 들어가서도 어떤 것이 튀어나올까 두려웠다.
벽장에서 타다남은 시체가 튀어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등..
집주위를 돌아보다가 반대쪽 골목으로 들어가니 녹슨 철문이 보였다.
‘삐이걱’
의외로 쉽게 열렸다.
가져갈 물건도 없어서 그런지 흉가가 된채로 그냥 내버려져있는 모양이었다.
떨어진 뒷문을 젖히고 들어서자 아직 집안에 배어있는 연기냄새가 퀘퀘했다.
좁은 복도를 따라 몇개의 방이 있었는데 열어본 방안엔 하나같이 분홍색침대만이 놓여있었다.
작은 창문엔 쇠창살이 달려있었고 벽지에는 손톱으로 긁은 다섯줄의 세로 줄무늬가 새겨져있었다.
이곳에서 숨도 못쉬고 죽어갔을 모습들을 상상하니 섬칫했다.
반애가 얘기한대로 그 벽에 부적을 붙이면서도 주저하는 마음이 들었다.
‘정말 다시는 나타나지않을까.’
그래도.. 좋은 곳을 찾아서 떠날수있다면 빨리 보내주어야겠지..
‘부디 다시 태어날때는 행복한 생을 살 수 있기를.. 좋은 사람도 만나서 예쁜 사랑도 하고..’
나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짧았던 인연이었지만 나는 웬지 그 귀신이 나쁘게 느껴지지않았다.
이제는 산 사람처럼 그녀의 따뜻한 체온까지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똑, 똑, 똑,’
그때 귓가에 들리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잘못 들었나싶어 숨을 죽였다.
정적 속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자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똑, 똑, 똑,’
분명히 들렸다. 문득 어디선가 읽었던 귀신과의 대화얘기가 떠올랐다.
‘예’는 한번, ‘아니오’는 두번,
이런 식으로 집안에서 들리는 소리와 대화를 해서 귀신의 신분과 살인한 범인까지 찾아냈다는.
“계세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떼서 말했다.
무섭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웬지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여기 계세요?”
텅빈 집안에서 내 목소리만이 울렸다.
잠시 후에 다시 그 소리가 들려왔다.
‘똑, 똑, 똑,’
그 소리가 이곳 어딘가에서 난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하지만 소리가 나는 곳을 알수 없었다.
막대기를 주워들고 벽을 쿵쿵 두들기면서 다시 말했다.
“어디 계세요?”
그리고 행여 소리가 끊기지 않도록 조마해하면서 귀를 곤두세웠다.
소리는 집밖에서 나고있었다.
좁은 뒷마당한켠에 냉동고같이 생긴 쇳덩어리가 놓여있었는데
군데군데 찌그러지고 구멍이 뚫려 고철처럼 내버려져있었다.
작은 두드리는 소리는 그안에서 들리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 소리가 그때 집안에 있는 내 귓가에 전해질수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었다.
빗장을 젖히고 열려다가 순간 무엇이 튀어나올까 다시 마음을 크게 한번 가다듬고 당겨 열었다.
‘아’
검은 머리를 풀어헤친 흰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보였다.
그 여자는 눈이 부신지 자기얼굴을 가렸다.
몇일이나 이 속에 갇혀있었을까. 스테인레스 바닥에 빵봉지와 물통이 보였다.
기운이 빠진 목소리로 여자가 애원하듯이 말했다.
“잘못했어요, 다신 도망치지않을게요. 제발 내보내주세요..”
세상에... 자기가 오늘 여기 와보지않았더라면 이 여자는 이속에서 생매장되듯이 숨을 거두었을 것이다.
“괜찮아요. 이제 아무도 해치지않아요. 사람을 부를께요.”
“안돼요. 제발.. 부르지마세요.”
이 여자가 사람을 두려워하고있다는 것을 느끼고 간신히 달랬다.
“그럼 우리집으로 가요. 안심할 수 있는 곳이에요.”
걸을 기운도 없는 그녀를 등에 업고서 집으로 향했다.
친지 결혼식에 간 엄마 아빠가 돌아올때까지 그녀를 씻기고 죽을 사다가 끓여먹였다.
거울앞에서 검은 긴 생머리를 빗겨주면서 그녀가 나와 같은 또래임을 알았다.
그녀의 이름은 가영이라고 했다.
“저랑 같은 ‘영(英)’자를 쓰네요.”
부모가 지어준 이름인지 업소에서 쓰이던 예명인지 꽃봉오리처럼 아리따워야할 나이에
누가 그녀의 꽃을 이렇게 꺾었을까.
“옷 어떤거 입을래요?”
내 옷을 골라주면서 물어보자 그녀는 흰색을 좋아하는지
“그냥 흰옷 아무거나 주세요.”
하고 대답했다.
“오늘 나랑 한숨 푹자고 내일 병원에 함께 가봐요.”
그러면서 엄마한테 어떻게 얘기해야 좋을지 생각해보았다.
내가 학교를 가게 되면 어차피 엄마가 병원에 데리고 가야할텐데
혹여 경찰에 신고하면 갱생시설 같은 곳에 보내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가영은 내 침대위에서 베게가 놓여있던 안쪽에 누워 자게 했다.
엄마 아빠는 밤늦게 돌아왔지만 지금 얘기꺼내서 밤새 잠을 설치고 싶진않았기에 내일 아침에 말하기로 하고 그냥 잠이 들었다.
잠결에 눈을 뜨자 천정을 보는대신 옆을 먼저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순간적으로 다시 오한이 끼쳤다. 또 꿈을 꾸는구나.
아니면 혹시.. 내가 오늘 데려온게 죽은 그녀 귀신을 데리고 온 것이 아닐까...
비몽사몽간에 이렇게 온갖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방문 모서리를 보았을때,
거기 그곳, 귀신이 매일 앉아있던 방모서리에 그녀가 쪼그려앉아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내가 몸을 일으켰다.
“가영씨...?”
그녀는 조그맣게 말했다.
“무서워요.. 무서워요...”
어두컴컴한 속에서 내가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
“무서워하지말아요. 괜찮아요. 이리 와요..”
아직 부적이 붙어있는 방문앞에 스르륵 일어선 가영의 키가 매일 꿈속에서 봐왔던 그녀..와 같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한걸음 한걸음 침대곁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가까이 오자 품에 안아 내몸위로 올렸다. 따스한 느낌.. 내몸으로 느끼는 그녀의 몸무게도 같았다.
다른사람의 몸과 포개져있는 것이 그녀는 전혀 어색하지않은듯이 자연스럽게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이제 괜찮아요.. 아무도 안해쳐요.. 이제..”
“이게 꿈은 아니겠죠,”
“가영씨 체온이 이렇게 따뜻하게 느껴지는데 어떻게 꿈이겠어요?”
가영은 살짝 고개를 들어 어둠속에서 내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고마워요. 정말...”
내 얼굴 위로 그녀의 눈물이 떨어졌다.
살짝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 그녀의 입술이 보드랍게 내 입술위로 포개졌다.
이렇게나마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다는 그녀의 마음이 느껴졌다.
밤새 몇번이나 눈을 떠서 옆에 누워자고 있는 그녀의 흰 얼굴을 보았다.
‘그래, 이젠 꿈이 아닐꺼야.’
팔베게를 해준 손으로 머릿결을 쓰다듬다가 어깨를 꼬옥 보듬어안았다.
그러나 아침에 눈을 떴을때 그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생명을 구해준 은혜는 평생 잊지않을게요’
남겨진 쪽지에는 그렇게 적혀있었다.
그리고 꿈속에서도 영영 그녀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붙자 나는 상경해서 자취를 하게 되었다.
열심히 공부한 대학생의 특권인마냥 일없이 대학로를 거닐곤하는 습관이 생겼는데
그날도 혼자서 무심히 마로니에공원을 거닐다 연극이나 한편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마로니에 공원을 돌아서 나올때 못보던 가판대가 눈에 띄였다.
목걸이와 악세사리 같은 거였는데 내가 보기에도 너무 평범해서 여기서 팔릴까 싶은것들이었다.
그때 가방에서 물건을 꺼내고있는 노점상과 눈이 마주쳤다.
‘아!’
긴 검은 생머리를 어깨 옆으로 가지런히 늘어뜨리고 흰 벙거지모자를 눌러쓴 그녀는
꿈에서조차 이젠 다시 못볼줄 알았던 그녀, 가영이었다.
"가영씨, 가영씨 맞죠?“
“영미씨....”
한동안 말을 잊고있던 그녀가 해맑게 웃었다.
“이런데서 보네요.”
“가영씨도.. 잘지내시는것 같아 다행이에요.”
“네, 덕분에..”
나는 문득 그녀가 잊고있던 과거를 다시 떠올리는게 아닌가 염려되었다.
물건을 보고있던 손님이 값을 치루고있을때 얼른 그녀에게 인사했다.
“그럼.. 잘 지내세요.”
“네. 그럼......”
씁쓸히 뒤돌아서면서 한참을 걸어가다 웬지 그녀의 마지막 인사에 아쉬움이 묻어있는걸 느꼈다.
다시 그곳에 돌아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가판대를 세워놓고 서있는 그녀의 뒷모습은
세상앞에 서있는 그녀모습과도 같이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것 같기도 했다.
‘어차피 나같은 여자는...’
나는 눈물이 날뻔한걸 꾹 삼키고 떨리는 걸음으로 다시 그 자리에 나타났다.
“저기...”
“아!”
놀란듯 나를 돌아보는 그녀의 눈에도 언뜻 이슬이 맺혀있는걸 볼수있었다.
“연극 같이 보러갈래요?”
“아... 네!”
가영은 처음보는 밝은 웃음으로 내게 대답했다.
첫댓글 재밌네요^^
어..잘 이해가 안돼요 ㅠㅠ 그니까..그귀신이 살아있는 사람이었던건가요? ㅠㅠa
재밌게 잘보았습니다:D
재밌게 봤어요~ ㅋㅋ 내용이 다 그려져서 초반에 너무 무서웠다는
와우ㅋ처음에조금무서웠는데ㅋ재미있게읽었어용ㅋ
처음에 너무 귀신의 모습이 상상되서 안읽을려했는데 꾹참고 보니까 재밌네요 ㅋ 저 두사람 아마 잘됬겠죠? 재밌게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