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와 오리
유기섭
훈련소 앞 연못가에 오리 한 마리가 떠 있다. 연신 물을 축이며 몸단장에 열중이다. 여름이 한창 무르익었다. 머리를 짧게 자른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그 앞을 지난다. 자유를 만끽하는 오리가 부러운 듯 물끄러미 쳐다보며 무거운 발길을 부대로 향한다. 그러한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오리는 한가로이 연못을 가로지르며 솜씨를 뽐내듯 헤엄만 치고 있다.
몇 년 전까지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웠던 검은 부리를 가진 오리 생각이 난다. 연못에 있는 오리와 생김새가 꼭 닮았다. 우리는 그에게 ‘오돌이’ 라는 애칭을 지어주었다. 어디에서든 그를 부르면 곧잘 따라주었다. 아이들은 막내가 생긴 것이라고 좋아하고 그날부터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 모두가 부지런해졌다. 아침 일찍 동녘이 트이자마자 ‘꽥꽥’ 소리를 지르며 주인을 부른다. 아침을 알린다. 그 소리에 모두의 시선은 베란다로 통하고 늦잠 자던 아이들도 싫지 않은 듯 오돌이를 반긴다.
기세가 오른 오돌이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져가고 아파트 동과 동 사이를 지나 야산으로 젖어든다. 이웃집 아저씨의 단잠을 깨우지나 않았을까 민망하다. 그의 입을 막아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통통한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더욱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도 그가 밉지 않다. 가끔 먼 산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떠나온 어미의 품이 그리워서인지 양지바른 구석을 찾아든다.
오후가 되면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가 집으로 달려온다. 넓적한 부리에 얼굴을 비비며 반갑게 이야기를 나눈다. 넓적한 부리를 위로 치켜들고 점심은 잘 먹었노라고 의기양양해한다. 그는 잡식성으로 무엇이든 잘 먹는다. 뛰어난 소화력으로 청산가리와 같은 독극물도 거뜬히 소화할 수 있다고 한다. 배설하였을 때는 냄새 또한 지독했다. 사람과 거의 똑같은 식사를 했으니 말이다. 오돌이 집 청소는 퇴근 후의 내 담당이었다. 옆집사람들이 이해를 잘 해주어서 다행이었다. 콘크리트로 뒤덮인 숲에서 오리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오히려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들이 고마웠다. 오돌이는 더욱 기가 살아나는 듯 으쓱해 한다. 오돌이는 아이들을 더 따랐다.
아이는 부대 앞 연못가의 오리에게 오랫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훈련 소집기간 중에 오랫동안 보지 못함이 못내 아쉬운 것 같았다. 통지서를 받아든 아이의 표정이 의외로 담담하다. 모든 각오가 되어 있는 듯하다. 마냥 어리광아이로 보아왔는데, 몰라보게 큰 아이가 대견하다. 우리의 걱정은 기우가 되었다. 젊은이가 거쳐야 하는 당연한 길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래 전 생각이 난다. 훈련소행 기차를 타고 어머니와 헤어지던 날, 돌아서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객지생활에 익숙해 있었지만 그때는 또 다른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이를 굳게 물고 현실과 부딪혔다. 때로는 약해지는 나를 스스로 채찍질하며 이겨나갔다. 젊은이의 값비싼 도전이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며 귀중한 시간이었음을 느끼게 된다. 아이는 결심한 듯했다. 전혀 새로운 조직문화에 자신을 적응시켜, 인내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겠다는 결의가 보였다. 마음이 놓였다. 한편으론 난생처음 부모의 품을 떠나는 아쉬움이 어떨까. 뒤로 돌아서서 눈물 흘릴 아이의 얼굴이 보인다. 여름이 한창 익어 가는 삼복더위에 고된 훈련을 잘 견딜 수 있을까. 깊은 산 속에 있는 푸른 막사 앞에 이르렀다.
인적이 드문 계곡은 녹음으로 뒤덮이고, 가끔 산새들이 길옆 풀숲에서 숨바꼭질하듯 길을 앞장선다. 연못가에는 갈대가 숲을 이루어 오리의 쉼터를 마련해준다. 전에 집에서 쉬는 시간이면 오돌이와 대화하며 정을 나누곤 하던 아이였다. 훈련기간 중 부대 앞 연못을 지키는 오리를 얼마나 보고 싶어할까. 마지막 인사를 하며, 훈련 마칠 때까지 오리가 무사하기를 빌겠다고 한다.
무거운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따르던 오돌이가 집을 떠나간지도 몇 해가 흘렀다. 어디에선가 그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새끼를 돌보며 잘 지내고 있을까. 시끄럽다고 이웃으로부터 미움을 받지는 않을까. 넓적한 부리로 손바닥을 더듬으며 반가움을 표시하던 오돌이가 오늘따라 오래도록 떠나지 않는다. 저 연못에서 혼자 놀고 있는 오리는 오늘도 짧은 머리의 장병들과 눈인사를 주고받는다. 부대로 향하는 발걸음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려는 듯이 말이다.
지루한 여름장마로 후덥지근한 날씨가 여러 날 계속된다. 평소 아이는 땀을 많이 흘린다. 도보행군을 잘 견딜 수 있을까. 엄습하는 졸음을 참을 수 있을까. 다행히 입소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소식이 날아왔다. 밤이면 별과 친구가 되어 이야기하며 지낸다고 한다. 자기의 마음을 가장 알아줄 것 같아서라고. 풀벌레도 깊이 잠든 밤, 집 소식은 흘러가는 별에게 물어보며 스며드는 졸음을 쫓는다고 한다. 아이가 성숙해지고 있다. 부모의 품을 떠나서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가고 있었다.
훈련을 마치는 날 부대 앞에서 작별인사를 하고 아이와 돌아오는 길, 연못에는 입소할 때 보았던 그 오리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까. 지난번 홍수 때 갈대잎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것일까, 헤어진 어미를 찾아간 것일까. 여름밤은 더 깊어가고 멀리 떠나간 오돌이를 그려본다. 해가 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베란다에서 반갑게 맞이하던 오돌이가 보인다. 그가 다가오고 있다.
-문학서초 2024년 28호 게재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