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길
이순원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 어머니의 전화가 왔다.
시간은 벌써 자정이 다 돼 가고 있었다. 내가 먼저 여보세요, 하고, 저쪽에서 다시 여보세요, 할 때 나는 그것이 어머니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았고, 무엇엔가 쫓기듯 몹시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과 거의 동시에 얼마 전 아버지가 원주 기독병원에 열흘 가까이 입원해 계셨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언제부턴가 밤늦게 걸려오는 전화라 까닭 없이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더구나 강릉에서 걸려오는 어머니의 전화거나 형님의 전화일 경우 저쪽에서 여보세요, 하는 순간 무언가 가슴까지 다 서늘해지고 마는 것이었다.
"자는 걸 깨웠디나?"
순간 어떤 안도감처럼 아버지의 일 때문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정맞은 생각인지는 몰라도 그랬다면 어머니는 자는 걸 깨웠디나? 하고 물을 하이도 없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할 말부터 먼저 했을 것이다. 또 그런 일이 아니라면 자정 다 된 시간에 전화를 하고말고 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아뇨. 막 누우려던 참이었어요."
"느 놀랜다구 밤 늦구러는 전화를 안 한다는 기 안 할 수 있어야재."
"집에 무슨 일이 있었어요?"
"읍에 아재가 죽었어야."
"읍에 아재요?"
"그래. 기한이 어머이 말이다."
"지금 어디 있는데요?"
나는 그 아재가 죽었다는 소리를 방금 듣고도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의 안부를 묻듯 지금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 아재를 아는 사람 누구에게 전화를 해도 모두 첫마디에 그렇게 물었을 것이다. 사람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도 왜 죽었는지보다 그 동안 어디 있었는지가 더 궁금한 사람이 바로 읍에 아재였다.
"맹간 전에 숨을 놨는기. 올라믄 진즉에 오던지 하지, 나간 정신에 그래두 숨 떨굴 때하구 자린 알구 왔는지 어쨌는지, 무슨 팔자가 거지구 그런 상거지가 없이 해 가지구 온 걸 받아 눕혔더니만, 고만에 하루를 못 넹기구성 그래 가고 마는구마..."
"그 동안 어디 있었대요?"
"모르제 그거사. 다 죽게 돼 와 노니 지 할 얘기는 어떻게 뚬벅뚬벅 해두 거 대해선 입두 쩍 안 하니 묻길 하나 뭘 하나 그럴 분수도 아니었구. 그래다 저렇게 덜컥 숨부터 떨궈놓는기..."
"기한이 형은 어디 있는지 모르지요?"
"알믄사 거부텀 기별하제. 그래서 둘째한테 기별하구성 시방 니한테 기별하는 기다. 낼 모레가 장산디 어예 올 수 있겄나? 아버지는 둘째만 내려오믄 된다구 하지만서두 그래두 그게 어디 그라야제. 남들이 와 봐도 그렇지. 느 형제들이 곁에 같이 서 있는 기 나머 눈에 보기에두 날 거구."
"그래야지요. 일이 좀 있어 내일 일찍은 못 떠나더라도 저녁 땐 닿도록 할게요. 그런데, 아버님은 좀 어떠세요?"
"느 아버지야 늘 고만고만하지야. 병원에선 아무 탈이 없다구 해두 당신이 아프다니 그기 탈인 거지 뭐 다른 기 탈이긋나."
"날씨가 추워서 더하실 거예요. 얘기를 들으니 살구씨 기름이 좋다던데..."
"것두 누가 얘기해줘 안 해본 기 아이다. 다 해본 거지. 금, 그만 들어가구 자거라. 둘째는 시방 준비해 새벽에라도 닿는다는데, 니는 늦게라두 어떻게 좀 짬을 내구."
"막내한텐 제가 전화를 할게요."
"그래라. 괜히 집에서 전화를 해 놀래라다나... 사람이 무슨 팔자를 타고나 어째 죽는 것두 꼭 그래 죽는지. 생전 좋은 시절 한번 구경두 못하구성... 어여 자거라."
그리고 어머니는 전화를 끊었다.
아버지의 일이 아닌 게 다행스러운 한편 그게 읍에 아재의 세상 떠난 소식이었다는 것이 바람처럼 못내 가슴 한구석을 훑고 지나갔다. 어린 시절에 본 읍에 아재의 모습은 그런 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오래도록 끊을 수 없는 끈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전화를 하자 동생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아재가 어디 있었느냐고 묻고, 아버지는 좀 어떠시냐고 물었다. 전화를 끊을 무렵 기한이 형 얘기를 물은 것도 나와 똑같았다.
그러나 누구보다 읍에 아재의 죽음에 대해선 둘째 형님이 제일 생각이 많을 것이었다. 어쩌면 자다 일어나 형수님도 함께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더구나 그쪽 애들은 한 이틀쯤 스스로 챙겨 먹고 학교 다닐 나이들이 되었다.
"시골에 누가 돌아가신 모양이지요?"
동생과 통화를 끝내고 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내가 물었다.
"아마 당신은 모를 거야. 읍에 작은댁 아재라고..."
"우리가 작은댁이 어디 있어요? 아버님 형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러니 모른다는 거지. 본 적도 없을 테니."
"누군데 그래요? 형제가 다 내려가야 한다는 걸 보니 먼 친척 같지는 않은데..."
"그 동안 살기를 멀리 살아서 그렇지 다지면 가깝고말구지. 우리한테 당숙모 되시는 분인데."
"몰라요, 난 그런거. 당고모니 당숙모니 하고 촌수 따지는 것도 골치 아프고."
"그럼, 당신 지난 여름 작은할아버지 산소 이장한 건 알지? 그때 왜 방학이라 애들 데리고 다 내려갔다 왔잖아."
"알죠, 그거야. 이다음 아버님 돌아가시면 둘째아주버님이 그분 제사를 모셔야 한다는 할아버지 아니에요?"
"바로 그 할아버지의 며느린데, 더 쉽게 설명하자면 아버님한테 사촌 재수씨가 되는 거구."
"그럼 뭐 멀진 않아도 아주 가깝지도 않네. 난 또 형제들이 다 내려가야 한다길래 엄청 가까운 친척인 줄 알았더니."
"이런 사람하고는. 그보다 더 가까우면 바로 아버지 형젠데, 아버지한테 형제가 없으니 다른 집 사촌들보다 더 가깝다는 거지. 당신이야 아버지 형제가 많으니 당숙이 뭔지 가까운지도 모르고 살지만..."
"그래, 내일 갈 거예요?"
"갔다와야지. 형님은 형수님까지 데리고 지금 떠난다는데."
"일할 거 많다면서요."
"많으니 어떡해? 그래도 갔다올 덴 갔다와야지. 애들이 크다면 당신도 가야 할 자리를 혼자 가는 건데."
그러니 거기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하지 말라고 입막음을 한 것인데, 먼저 형님 댁에는 형수님까지 내려갈 거라는 얘기를 들어서인지 아내도 더이상 가라 마라 없이 순순히 물러서는 것 같았다.
"그럼 얼른 누우세요. 내일 또 운전해 내려가자면..."
"일찍 올라온다 해도 모레 저녁 때쯤이나 올라오게 될 거야. 베개 이리 주고."
"그나저나 지금 내려가자면 둘째형님 힘드시겠다. 아주버님이야 아버님이 정한 일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그러나 자리에 누워서도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무슨 옛날 얘기 속에 나오는 것처럼 죽기 하루 전 읍에 아재가 이십 년 가까이 전에 떠났던 집을 찾아왔다는 것도 그랬고, 지난 여름 작은할아버지의 산소 이장 때 아버지가 작은형에게 했던 말도 그랬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앞일에 대한 이런저런 요량과 준비가 생기는 건지 그 두 가지의 일이 마치 한일처럼 생각되는 것이었다. 거기다 거지도 그런 상거지가 없이 해 가지구 온 걸 받아 눕혔더니만, 하던 어머니의 말이 영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왜 안 자고 그래요?"
"그 아재 말이야."
"자꾸 생각하지 말고 그만 자라니까요. 내일 가야 한다면서 어떻게 하려고..."
"당신 말이야, 당신 같으면 열여덟 살 때 시집을 가 아들 하나 낳고 난 다음 남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 채 행방 불명되었다면, 아니지, 전쟁 때 행방 불명되었으면 십중팔구 죽은 거나 다름없겠지. 그런데도 그 아들 하나 바라보고 평생을 혼자 살 수 있겠냐고?"
"묻는 것도 꼭... 누구 귀신 만들 일 있어요?"
"그렇다고 개가를 말릴 시부모가 있는 것도, 팔아먹을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그 아재라는 분이 그랬어요?"
"그래. 그러다 나중엔 그렇게 쳐다보고 살던 아들 때문에 정신까지 이상해지시고."
"그런데, 아들이 있다면서 왜 둘째아주버님이 그 할아버지 제사를 모시고 또 지금 한밤중에 내려가고 그래요?"
"그거야 있어도 그럴 만하니 그러지. 이건 그냥 내 생각인데, 아버님이 그 할아버지나 아재에 대해 마음속으로 어떤 빚 같은 것을 가지고 계시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결혼한 지 십 년이 다 되는데도 강릉 일은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어머니가 오셔서 하는 얘기를 들어 봐도 별일도 아닌 일에 이 사람 저 사람 얽혀 복잡하기만 하고."
"시골 집안일이라는 게 어느 집이나 다 그렇지."
"그만 얘기하고 자요. 나도 잘 테니까."
아내는 한 손으로 베개를 쓸어안은 채 비스듬히 등을 보이고 돌아누웠다. 그러나 나로서는 쉽게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았다. 억지로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건 이따금 돌아오는 제사 때마다 어김없이 시골 큰집에 와선 자루 짧은 부엌 수수비를 들고 나와 있는 대로 허리를 굽혀 앞마당을 쓸고 있는 젊은 읍에 아재의 야무지고도 단정한 모습이었다. 그러다 또 그 그림은 어느 결에 마당 앞자리에 내다 깐 멍석 위에 행주치마를 두르고 앉아 잿가루(옛날 기왓가루)를 묻힌 짚으로 놋제기들을 닦으며 제사 뒷설거지를 하는 모습으로 바뀌곤 했다. 그때 어머니는 시골에 살면서도 파마를 하거나 고대머리를 했는데, 읍에 아재는 강릉 시내에 살면서도 늘 할머니들처럼 쪽진 머리를 한 다음 비녀를 꽂았다.
언젠가 두 분 중 한 분은 벽에 붙인 거울 앞에서, 또 한 분은 조각거울을 문지방에 비스듬히 세워 놓고 앉아 머리를 손질하다가 아재의 쪽진 머리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아마 제사를 지낸 날 아침, 어머니는 시장으로 쌀을 내러가기 위해 머리를 다듬고, 읍에 아재는 다시 아재가 일하는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머리를 다듬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은데, 머리 묶을 짧은 고무줄을 입에 물고 쓰다듬듯 두 손을 올려 빗질을 하는 아재에게 먼저 어머니가 말했다.
"이봐 동서, 자네두 인자 그만 머리를 바꾸지 그러는가. 감느라구 더디구 말리느라구 더디구 묶어 쪽찌느라구 신경 쓰구 하지 말구."
"지는 괜찮아요. 늘 이래 놔 이게 편키두 하구요."
"그래두 짧은 기 편할 낀데. 어디 출입할 일 있으믄 자른 머리를 뒀다 얹거나 고대를 해 부풀리믄 되구. 나(나이)도 젊은 사람이 남 보기두 그게 나을 끼구."
"아이구 형님두, 서방 잡은 년이 눌 보라구 머릴 손질해 뭘 하게요. 당장 큰사랑 (큰)아버니 보셔두 그렇지."
"아버니가 왜? 나두 언제부텀 이렇구러 했는데."
"어디 형님하구 지하구 같애야지요. 형님이야 서방님 계시니 괜찮아두 지야 그랬다간 큰댁 대문에 발그림자두 못 비치게 하실 낀데."
"아무렴 그러시기꺼정 할라구."
"형님은 모르셔요. 기한이만 해두 지 에미 입성이 조그만 달라져두 눈을 치뜨구 내리뜨구 하는기."
늘 그렇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읍에 아재의 모습은 제삿날 아침이거나 전날의 야무지고 단정한 모습이었다. 또 내 기억으로 우리는 읍에 아재가 집에 온 것만 보고도 오늘 밤 제사구나 알 정도로 한 번도 제삿날을 빼놓은 적이 없었다. 기한이 형은 안 올 때가 있어도 아재는 한 번도 명절이나 제삿날을 어기지 않았다. 어쩌다 무슨 일로 제사에 들지 않은 날 읍에 아재가 다니러 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그런 출입은 일년 가도 한 번 있을까말까 한 정도였는데, 그건 아재가 기한이 형과 함께 살며 일하는 곳에서 제사처럼 특별한 날이 아니면 쉽게 몸을 뺄 수 없다는 얘기디기도 하다. 뒤늦게 깨달은 일이지만 강릉 시내에서도 제일 큰 여관에서 식모살이를 한다는 게 이만저만 해야 할 일이 많은 게 아니었을 것이다.
"하여간 읍에 아이는 무얼 하나 하는 걸 봐두 야무지구 알뜰하기가 여간 아니다. 세월만 망한 것 안 만났어두 알토란처럼 살림 일궈 살 애를 그 망할 눔의 세월이 그 난리를 쳐놨으니..."
읍에 아재가 다녀간 다음이면 할아버지도 꼭 그 소리를 했다. 삼십 년 안팎 전, 아들과 함께 먹고 살 자리를 찾아 여관에서 식모를 살며 이일 저일 바쁜 중에도 아재는 서른 개도 넘는 객실에서 나오는 담배꽁초를 죄 모아 제사 때마다 할아버지에게 갖다 드리곤 했다. 처음엔 늘 그 꽁초 포대를 기한이 형이 사랑에 들고 와 내놓고 해 다들 기한이 형을 칭찬하곤 했는데, 그것도 다 아재가 어른들 앞에 기한이 형의 낯을 내주기 위해 일부러 갖다 드리는 일만 따로 시켰던 것이었다. 우리가 알기로 기한이 형은 아무리 시간이 나더라도 누굴 위해 곰살궂게 그걸 모을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어른들 앞에 아재가 신경 썼던 건 기한이 형과 동갑인 작은형이었다. 생일은 기한이 형이 다섯 달인가 여섯 달인가 빨라도 공부와 행실은 늘 작은형이 저만시 앞섰다고 했다.
형과 기한이 형이 한 학교를 다니던 국민학교 4학년 때까지만 해도 읍에 아재는 바로 뒷집에 살았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그때의 일은 희미하게라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는 기한이 형의 가장 먼 모습은 반듯하게 중학생 모자를 쓴 채 제삿상 앞에 절을 올리던 모습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떠오르는, 그 모자를 부러워하던 작은형의 모습으로 비루어 그때 기한이 형은 중학생이었던 게 아니라 멋으로 중학생 모자를 쓰고 다니는 국민학교 6학년생쯤 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우리 형제가 그 아재를 읍에 아재라고 부른 것도 아마 그 아재가 시내 여관으로 식모살이를 하러 들어간 다음부터의 일일 것이다. 강릉이 읍에서 시로 바뀐지 오래 된 다음의 일인데도 어른들은 시라고 부르지 않고 여전히 읍이라고 불렀다. 읍에 갔더니, 읍에는, 읍에 누가 그러는데, 읍에 사람들은... 어머니는 우리가 살던 면이 그 시의 일부로 편입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시내 번화가 쪽을 읍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때 우리도 어른들이 하는 것처럼 강릉 시내 지명이 '읍'이라는 말인 줄 알고 썼다. 또 이웃 아이들에 대해 읍에 가까운 친척이 한다는 것에 어떤 긍지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더구나 우리는 읍에 아재의 집인 줄 알고 있었다. 형들은 몰라도 나와 동생은 그랬다. 언제 봐도 읍에 아재는 단정했고, 기한이 형은 멋쟁이였다.
그런 읍에 아재가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흑흑 소리내 울던 때가 있었다. 그때 큰형은 대학시험을 몇달 앞둔 고등학교 졸업반이었고, 작은형과 기한이 형은 고등학교 일학년이었는데, 무슨 제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며칠째 읍에 아재가 해 떨어진 다음 저녁 늦게 집에 와선 어른들과 된다, 안 된다, 애원하듯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우리가 일어난 아침이면 옛날 이야기 속의 우렁이처럼 다시 읍으로 돌아가 모습을 감추곤 했다.
"글쎄, 그건 내가 이래라저래라 하기 보담두 어느 쪽이든 느들이 의논해서 정해라. 나야 느들 의논 나는 대로 도장을 찍든 말든 할 것이니."
그건 어느 날 한밤중, 뒤가 무거워 일어나 들은 할아버지의 소리였다.
"(큰)아버니 계시구 서방님 계시지만, 지두 그 냥반 살아 있다구 생각하지는 않아요. 아니요, 벌써 저 세상 사람 되구 말었겄지요. 살았다믄 돌아와두 벌써 돌아왔을 기구, 그 해 져울에 나가서 햇수루다 십육 년이 지난 안죽꺼정두 소식이 없는 걸루다 봐선 어쩌다 목숨이 붙어 있다구 해두 그건 삼팔선 너메 목숨이지 이녁 목숨은 아니겄지요. 그렇지만 암만 그렇다구 해두 지 눈으루다 주근ㄴ 걸 봤나, 죽은 걸 본 것두 아닌 냥반을 으떻구러 죽었다구 사망 신고를 낸대요. 지는 못해요. 아버니하구 서방님 말씸 다 따라두 그것만은 지 손으루다 못해요. 지는 그런 신고 안 해요. 할 수 없어요."
그때 이미 아재는 울고 있었다.
"아주머이요, 대구 그렇게 안 된다구 할 기만 아이라 어디 내 말 좀 들어보우, 아주머이가 그 해 동생이 집을 나간 다음에도 지금꺼정 혼자 사는 기 누구 때문이우? 첨이사 동생 돌아올 날 기다리느라 그랬다지만 그것두 한두 해지, 나중엔 기한이 때문에 그런 거 아니우? 내 얘긴 그 일두 아주머이 말대로 십육 년이나 지났으니 인자는 기한이 앞날을 생각하자는 거지요.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는 아주머이도 잘 알잖수. 여게 아버지가 간 것두 아니구 삼촌이 그때 의용군으로 간 집 아 하나가 지난번에 경찰 시험을 봤는데 어떻게 된 줄이나 아우? 남 잘 때 안 자구 공부해 기껏 시험에 오르구 나니 나중에 신원조산가 뭔가 나와 그게 그만 사단이 돼 죽두 밥두 안 된 거 왜 모루. 그깟 순경 하나 뽑는 시험에두 그 낭개를 치는데, 이다음 기한이가 공부를 해 판검사 시험이라두 친다믄 그때는 으떻구러 하겠수? 옛날에는 양반 상놈 갈라서 상놈 자식들은 암만 재주가 있어두 과거시험을 못 보게 했지만, 시방은 그 양반 상놈을 난리통의 일루다 갈라 그런 집 아들 출세를 막는다는 걸 왜 모루? 막말루 해서 우리 아들들은 한 치 건너구 기한이는 바루 한 치 아니우? 또 아주머이 하는 기 기한이 하나 잘되는 거 보구성 사는 기구."
"그래두 서방님 난 못해요. 내 손으로 으떻구러 죽는 걸 본 것두 아닌 사람을... 그때 그 냥반 떠나던 해, 멀쩡히 누워 있는 사람을 큰어머니 편찮던데 큰댁에 좀 가 데다 보라구 등을 떠밀었던 것두 내가 그 냥반 잡아먹을라구 그랜 기 아닌가 싶어 얼굴을 들지 못하구 사는데, 거다 인자 당신은 이 세상 사람 아니다 하는 신고꺼정 으떻구러 지 손으로 낸대요."
"알아요. 나두 아주머이 마음 다 안다구요. 그렇지만 설령 동생이 어딘가 살아 있다구 해두 인자는 동생보다 기한이를 더 생각해야지 않겄수. 다른 건 다 그만두구 기한이 앞날만 생각해 보라구요. 갸가 공부를 해서 이다음 뭘 하재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걸 생각해 보라구요. 판검사 시험을 봐 그 시험에 올랐는데, 나라에서 뒤로 신원조사를 나왔다구 생각해 봐요. 호적엔 시험에 오른 이기한이 아버지가 살아 있는 걸루 되어 있는데, 실지룬 이기한이 아버지가 없다, 그럼 이기한이 아버지는 어디에 있나, 또 조사를 하니 일사 후퇴 바로 다음 이쪽에서 다시 치구 올라 갈 때 북쪽 군대 짐을 져주러 끌려가선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렇게 되믄 앞날이 구만리 같은 갸 인생은 거기서 그냥 끝나구 만다 이 말이우. 더구나 지금 호적에 동생은 바루 여기 이 집 주소에 살아 있는 걸루다 돼 있어 놔 선거 때믄 선거하라구 통지 나오구, 뭐 하면 뭐 하라구 나오구, 이러다간 언젠가는 동생이 여기 없는 걸 면사무소에서 먼저 알구 행방 불명으로 정리를 해버린다 이 말이우. 지금 이것두 내가 먼저 이렇게 하자구 생각해 낸 기 아니우. 지금 동네 이장하는 이가 나라에서 곧 그런 사람들의 호적을 다시 정리할 모양이니 동생 얘기를 하며 그 전에 먼저 손을 쓰라구 일러줘서 내가 아주머이보고 이젠 돌아오지 않을 사람보다 기한이 앞날을 생각하자구 하는 얘기란 말이우."
나는 더이상 무거워진 뒤를 참지 못해 막 깨어나는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도 잠결인 듯 눈을 비비며 어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야가 들은 게 아니야? 하고 놀란 얼굴을 하고, 읍에 아재는 얼른 고개를 돌리고 앉아 눈물을 훔쳐냈다.
"왜 안 자구 일어났나?"
어머니가 책망하듯 말했다.
"똥이 마려워서..."
"달르(닭) 삼신이 들었나? 나이두 그만한 게 제적잖게 밤똥을 누게. 이리 온나. 에미가 데려다 줄 테니."
어머니는 바깥 변소까지 어릴 때에도 한번 해 주지 않던 밤똥 동무를 해 주었다.
"아끄매 금방 일어나던 참이었나?"
"어."
"아버지하구 읍에 아재하구 무슨 얘기하는 거 들었디나?"
"몰라. 무슨 얘길 했는데?"
"아이다. 아무 얘기두. 나는 니가 벌써 일어나 밍기적거리고 있었나 해서... 인자는 그거 달그새기 주고 밤똥 누지 마라."
그러나 아버지가 아무리 기한이 형을 팔아도 그건 기한이 형을 위해서가 아니라 큰형이나 작은형의 앞날을 위해서 꾸미는 일일 것이었다. 어린 내 눈에도 기한이 형은 오르고 떨어지는 건 둘째치고 이다음 과연 그런 시험을 볼 재목조차 될지 의심스러웠다. 지난 겨울, 아직 중학교 졸업식도 치르지 않은 기한이 형 주머니 속엔 한 갑에 60원 하는 신탄진 담배와 아무 데나 대고 긋기만 하면 불이 켜지는 딱성냥개비가 들어 있었다.
결국 그날, 읍에 아재는 아버지의 의견을 따르기로 한 모양이었다. 아침이 되었는데도 시내 여관으로 돌아가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부엌일을 하는 아재의 눈이 벌에라도 쏘인 것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막 아침 밥상을 물릴 즈음, 동네 이장이 와 무슨 서류를 펼쳐 놓고 거기에 읍에 아재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도장을 차례로 찍고, 그 마지막에 자신의 도장을 찍어 면사무소로 가져갔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 아버지는 그 일 이후 이장에게 양복 한 벌을 지어주고, 또 기한이 형의 그 해 남은 월사금을 모두 내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후에도 기한이 형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읍에 아재는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한결같이 쪽진 머리를 하고 집에 오곤 했다. 그러나 기한이 형은 올 때보다 올 때보다 안 올 때가 훨씬 더 많았고, 그때마다 읍에 아재는 같이 가자니 갸가 공부 때문에 못 온다구 그러잖우, 하고 기한이 형의 편역을 들었다. 아마 그때까지, 아니 이후에도 나는 읍에 아재가 양장을 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 어쩌다 여관으로 심부름을 갔을 때, 아재는 남색 몸빼에 회색 스웨터를 걸치고 있곤 했는데, 내 눈엠 그것만으로도 다른 모습으로 보일 만큼 아재는 늘 한복을 입고 출입하곤 했다.
그렇게 늘 야무지고 단정해 보이던 아재가 오락가락 정신을 놓기 시작한 건 기한이 형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부터였다. 그해 작은형은 서울대학교에 들어가고, 기한이 형은 그 해 처음으로 실시된 예비고사에조차 떨어져 대학 문턱은 고사하고 시험조차 치지 못했던 것이었다.
"기한이는 왜 안 오구?"
제사 때 누가 그렇데 묻기라두 하면 아재는,
"갸, 지금 학교 댕기잖우."
하고 천연덕스럽게 말하곤 했다.
"기한이가 학교를 들어갔단 말이제? 어느 학교에 들어갔는데?"
"갸, 지난봄에 서울대학에 시험 봐 올랐잖우. 그래서 며칠 전에두 돈 부치라구 편지가 왔는기."
그때 기한이 형은 서울에 올라가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해에도 기한이 형은 예비고사에서 떨어지고, 아재는 누가 묻기 전에 먼저 우리 기한이 지금 서울대학에 다니잖우, 말했다. 그러다 누군가 기한이가 무슨 서울대학에 다녀, 서울대학은 이 집 기진이가 다니지, 하면 왜요, 우리 기한이두 올해 기진이가 다니는 그 학교에 들어갔는데 안죽 모루? 했다. 사람들은 아재가 안 보는 곳에서 기한이가 대학에 한이 진 게 아니라 어머이가 한이 진 거라고 수군거렸다. 후에 아재의 입에선 서울대학 외에도 고레대학과 연새대학이 연달아 나왔고, 이제 곧 기한이 형이 고등고시 시험을 봐 판검사가 될 거라고 했다. 어쨌거나 아재가 십년도 넘게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해 모은 돈을 기한이 형이 죄 바닥내고 말았다는 소문이 돈 건 아재의 그런 증세가 깊을 대로 깊고, 삼수 끝에도 예비고사에 오르지 못한 기한이 형이 입대를 위해 다시 강릉으로 내려왔을 무렵이었다. 그리고 거의 같은 무렵 작은형은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적잖이 아버지가 걱정하던 신원조사도 무사히 끝났다. 아버지의 말로는 읍에 방첩대에서 면소에도 나오고 동네에도 나와 그 조사를 해 갔다고 했다.
"흥, 기진이가 누구 덕에 고등고시 시험을 보고, 누구 덕에 뒤탈 없이 시장이 되고 군수가 돼 나갈 건지 알기나 하우? 지도 나랏법을 어긴 죄가 있어 놔 그 얘길 짚이 못해서 그렇제, 그때 지가 기한이 아버지만 생각하구 큰댁 서방님 말하는 거 안 된다구 뻗댔더라믄 시장 군수가 다 무어냐, 기진이는 그런 시험 근처두 못 갈 아였다는 거 아니우, 지말은."
"동서, 무슨 소리래 그게? 사람들 많은 데서."
"왜요, 사람 많으믄 할 얘기두 못하구 사우, 형님은. 인자 말이 났으니 하는 얘기지만서두, 지 말은 큰댁하구 우리하군 이상하다 이 말이지요. 전에 용강정에 점을 보러 갔는데, 지가 기한이 아버지 사주하구 기한이 사주를 대니 거게 구신도가 그러데요. 이 아버지는 곁에 다른 사람 때문에 명 재촉하러 나갈 사주고, 아는 또 곁에 다른 자손 때문에 앞날이 막혔다구 하구. 듣구보니 틀린 얘기가 아니잖우? 그해 져울에 아 아버지가 끌려간 것두 보믄 그 구신도가 하는 말 그른 것두 없구요."
사람들은 대놓고 이제 읍에 아재가 완전히 실성을 한 것이라고 했다. 기한이 형이 잘됐으면 아무 일 없을 것인데, 한 쳐다보고 사는 자식이 남 하는 값을 못하니 에미가 저렇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횡설수설 끝에도 읍에 아재는 다시 서울대학과 판검사 시험을 말하고 큰댁 기진이가 암만 앞에서 막고 널뛰어도 기한이가 이제 군대만 마치고 오면 저절로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다고 말했다.
당숙의 호적 정리로 기한이 형에게 온 유일한 신분상의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군대를 현역으로 입대했다는 것뿐이었다. 만약 그때 그걸 그냥 두어 뒤늦게 행불 처리되었다면, 기한이 형은 입영 면제를 받아 다시 한 번 예비고사를 쳤거나 많이 짊어져야 특례 보충역 근무를 하는 정도였을 것이다. 어쨌거나 기한이 형은 군대에 간 지 육 개월 만에 부선망독자로 의가사 제대해 오히려 한 해 일찍 군에 간 큰형보다 빨리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읍에 아재는 십년도 넘게 일하던 여관에서 나와 시내 변두리로 따로 방 한 칸을 얻어 들고 한복 바느질을 시작했다.
뒤늦게 어머니가 그 여관을 찾아갔을 때 주인 여자는 암만 오래도록 같이 살아도 그렇지 메개 장사도 장산데 손님 비위 맞추며 장사하는 집에 정신나간 사람을 둘 수는 없는 일 아니겠냐고 하더라고 했다. 주인 여자의 말대로라면 아재는 시도 때도 없이 아무 손님방에나 뭐 필요한 것 없냐며 들어가선 아들이 서울대학을 다니다 지금 군에 가 있으며, 제대를 해 나오면 나라에서 어련히 알아 판검사 자리 하나를 마련해 주도록 되어 있노라고 식은소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말을 들은 손님들도 처음엔 대단한 아주머니구나 하다가도 한 번 들어왔던 방에 또 들어오고 또 들어오고 하면 나중엔 실성끼가 있어 그러는 걸 알고 다른 데로 방을 옮기겠다며 내실로 항의를 한다는 것이었다.
"여러 날 묵는 손(님)들이 그런다믄 자기두 십년 옛정으루다 이핼 하겠대요. 그런데 이건 하루 묵고 떠날 손들이 그런 항의를 해댈 정도니 내보낸 자기를 야뱍타구만 말구 그걸 장사하는 사람이 누가 감당해 내겟냐구 그러더라구요. 그리구 전에는 그러지 않다가 식은소리를 하면서부텀은 주인 여자한테 대구두 그렇구러 큰집 숭을 본다데요. 당신 숭두 보구 내 숭두 보구 아덜들 숭두 보구..."
그건 기한이 형 때문에 생기기 시작한 아재의 실성끼가 조금씩 깊어져 가고 있다는 뜻일 것이었다.
"그래두 여잔 무던하데요. 내보내민서두 방두 여자가 얻어 주구, 재봉두 여자가 사 주구, 일감두 반은 여자가 끌어대 주는 모양이구요. 그 장사야 손으루 하는 장사지 입으루다 하는 장사가 아닐 끼다믄서..."
"일감은 많대?"
"가 데다보잖았으니 그거야 알 재간 없지만, 솜시루만 따진다믄야 읍 바닥 다 뒤져 내두 그 손끝 따라갈 솜씨두 흔치는 않을 끼구만요. 전에 지 일신에 걸친 입성두 다 지가 지어 입구, 일하던 여관에 방방이 해 단 커탱두 다 지가 감만 끊어 해 달은 거니까."
"아주머이두 아주머이지만 지금이라두 기한이부텀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할 긴데. 언제꺼정 즈 어머이 속끓이고 살 것두 아니구..."
"그러니 하는 말 아니우. 즈 어머니한테는 지 혼자지만 지는 지 혼자가 아인데 나(나이) 스물스이 먹구두 그 경중을 모르구 하니..."
그러나 그런 어른들의 염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기한이 형은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뒤늦게라도 마음을 다잡고 시험 준비를 하거나 일자리 찾아 올라간 것도 아닌 모양으로, 어머니가 몇가지 일감을 가지고 갔을 때 한바탕 북새를 떨고 난 다음, 있는 돈 없는 돈 죄 긁어 가지고 가 방에 남은 거라곤 아재의 부서진 재봉틀 하나뿐이더라고 했다. 떠나는 것은 보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우리 식구가 들은 기한이 형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아재는 병세가 급격히 깊어져 바느질 일감마저 손을 놓고 일정한 거처도 없이 '읍'의 이곳 저곳을 떠돌기 시작했다. 어느 땐 큰집이라고 들어와 예의 그 서울대학과 판검사 타령으로 한겨울을 나기도 했지만, 또 어느 땐 일년이 다 가도록 발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기도 했다. 아마 그 무렵쯤부터 나는 아재의 소문을 어디서 무얼 한다는 식으로 더러 떠도는 말로 듣기는 했어도, 실제 그렇게 사는 모습을 보거나 얼굴을 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더구나 그때 나는 대처에 나와 학교를 다니고 있어, 그렇게 듣는 소문이라는 것도 방학 때 오다가다 한마디씩 어머니가 하는 것을 얻어듣는 것이 고작이었다. 바람처럼 집을 나간 기한이 형은 한 번도 연락이 없었다.
"느는 서울에 살믄서 기한이 소식 못 듣나?"
"서울이 어디 강릉 같아야지요."
"하기사 질가서 더러 마주치구 지낸대두 눈여게 안 봄 그기 기한인지 누군지두 모르구 말 끼구마."
"아재는요?"
"모르지야. 어(디)서 뭘 하구 사는지두. 이태 전인가 삼 년 전인가 사천 친정에 와 있는 걸 누가 봤다는 소릴 듣군 말았는기."
"안됐어요. 아재나 형이나..."
"그러게 말이다. 그때 한 이태 지둘러(기다려) 봐서 간 사람 안 오믄 나(이) 젊을 때 어데 다른 데 팔자를 고치구 말지 그깟 자식한테 무슨 뉘를 볼 기 있다구 그래 키워 놔 가지구... 기한이 그것두그런 즈 어머이 성깔 빼놔노니 간 지가 언젠데 돌아오지두 않는 기구."
"한 오륙 년 됐나요? 기한이 형 집 나간 게."
"아매 그렇게 됐을 기다. 그렇지만 갸 어떻구러든지 즈 어머이 소식 듣구는 있을 기다. 그러잖음 사람이 독하잖아 세상 없어두 그렇제, 그래두 질 낳은 어머인데 와두 벌써 왔을 낀데 즈 어머이 정신 놓구 산다는 소릴 들이니 더구나 오구 싶지 않은 거 아니겄나. 그러니 어머이는 어머이대루 더 정신 빼구 살구, 자식은 자식대루 더 오구 싶잖은 기구. 거다 여편이래두 얻었대봐라. 그런 즈 어머이를 여편한테 보이구 싶겄나 말이제."
그러나 언젠가, 그것도 아주 썩 수, 기한이 형이 아무도 몰래 내려와 본적까지 서울로 옮겨 갔더라고 했다. 그리고 그때쯤 읍에 아재는 아주 '읍'을 떠난 모양으로 어디서 무얼 해 어떻게 먹고 사는지조차 모르게 떠도는 소문마저 싹 끊기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식구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읍에 아재와 기한이 형을 잊었다.
아버지가 다시 기한이 형을 찾기 시작한 건 작은할아버지의 산소 이장 문제가 나오던 지난해 가을부터의 일이었다. 해방 전에 돌아가신 분이라 집에 산이 있어도 선산에 묘를 쓰지 못하고(왜정 땐 법으로 그걸 막았다고 했다) 읍으로 나가는 입목의 공동산에 묘를 썼는데, 그 공동산에 새로 학교 터가 들어선다고 했다. 나도 지난봄 아버지 생신 때 내려가 그 분 묘 이장 공고를 보았다.
"느는 몇년을 서울에 살민서두 기한이 하날 못 찾나?"
"억지로 찾으려면 찾겠지만, 찾는다고 해서 기한이 형한테 나아질 게 있는가도 생각해야지요."
아버지의 말에 작은형이 대답했다.
"찾으믄 찾는 거지 나아지구 말구는 또 뭐냐?"
"오히려 그렇게 찾았다가 멀쩡히 살고 있는 사람 다시 숨어 들게만 만드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죠. 제 발로 오기 전엔 그냥 좀더 두고 보지요."
"그럼 느는 느 형제가 그렇게 집을 나가도 안 찾나?"
"..."
"말이 육촌이구 재종형제지 느한테 기한이는 형제가 다름없다. 아버지하구 기한이 아버지가 큰 걸 봐두 그렇구..."
그러면서 아버지는 이제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난리 때의 일을 이야기했다.
"느들 다 크믄 할라구 참았던 얘기가 있는데, 기한이 아버지 말이다. 느 작은할아버니하구 작은할머이가 해방 전에 세상 뜬 건 다 아는 얘기구, 그래노니 어릴 적부터 우리집에서 나하구 같이 컸다. 내가 두 살 맏인데, 그래서 장개두 내가 먼저 들구 이태 있다 기한이 아버지두 장개 들여 느 할아버니가 집 뒤에, 지금은 그냥 밭이지만 거게 오막 하나 지어 살림을 냈더란다.
난리가 터진 건 내가 큰아 닐 낳구 이태 있다간데, 기한이 아버지가 기한이를 낳은 게 바로 난리 터지던 해 가슬이구 내가 둘째 닐 낳은 게 져울난리(일사후퇴) 무렵께니라. 그때 둘째 닐 낳구 삼칠일두 안 지낸 저녁인데, 인민군이 치구 내려왔다가 다시 쫓여 북으루다 가믄서 우리집으로 들어왔더라. 들어와선 대뜨번에 하는 말이 즈가 후퇴를 하믄서 가져가야 할 짐이 있는데, 그 짐을 날더러 사금령꺼정 져달라더구나. 그러니 느 할머이가 그 얘기를 듣군 아 낳은 지 삼칠일두 안 지났는데 안 된다구 뻐팅기구 인민군들은 시간이 없다구 총으루다 내 등을 찌르미 재촉하구 하는데, 그때 기한이 아버지가 저 앞에, 그때는 대문을 사립으로 해 달았는데 그걸 삐죽 열구 들어와 뜨락 앞까지 와 섰다가 안에서 가자, 못 보낸다 하구성 이상한 소리가 나니 겁이 덜컥 나 다리 사립을 열구 나가려는 참인 걸 느 할머이가 붙잡았더라. 그때 사립 앞에 바지랑대를 기대 놨는데 그만 기한이 아버지가 급히 돌아서느라구 아매 그걸 건드린 모양이라. 그러니 느 할머이가 안에 있으믄서두 그게 기한이 아버진지 으떻구러 알구 작은아나, 작은아 니 일루 좀 들어온나, 하구 붙잡은 거제. 기한이 어머이두 그때 인민군들이 기한이 아버지가 방에 들어와 있을 걸 끌구 간 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때 일이 그랬니라. 뒤의 얘기는 뭐 더할 것두 없구 말이제. 인민군들이 끌기두 했지만 느 할머이가 손으루 다 찍어 주진 않았대두 둘 중 누굴 데리구 갈지 지목해 밀었던 것두 컸구. 그러니 나는 그렇구러 떠나믄 돌아오기 십잖다는 걸 알믄서두 또 그게 같이 크던 동생이니 내가 갔다오마구 말하구 싶은데, 그기 속에 마음뿐이지 입 밖으루다 그 말을 내지 못했다. 그만에 목이 콱 쟁겨 기한이 아버지더러 잘 댕겨오라구 말두 못하구 그냥 손짓으루만 그렇구러 했는데, 그걸 기한이 아버지는 어서 떠나라는 말루다 들었는지두 모르구.
그러니 살믄서 그기 얼매나 큰 죄겄나. 기한이 아버지한텐 말할 것두 없구 느 작은할아버니나 작은할머이에 대해서두 그렇구, 기한이 어머니나 기한이한테두 그렇구... 거다 기한이두 해당 안 되는 건 아이다만 느 앞날 생각해 기한이 아버지 호적을 정리한 것두 내가 앞장서서 한 일인데, 기한이가 반듯하게 커서 잘됐다믄 몰라두 것두 느만 위한 일이 돼 버린 것 같구 말이제..."
자리에 누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지난 여름 작은할아버지의 산소를 이장하고 난 다음부터 아버지가 병원에 출입하게 된 것도 그 일과 한 끈인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었다.
다른 형제들은 몰라도 그 동안 아버지와 작은형 사이엔 몇번 얘기가 있었던 듯, 작은할아버지의 산소를 이장하던 날에도 작은형은 이미 이틀전에 집에 내려가 있었고, 다음날 막내와 내가 내려갔을 땐 기한이 형이 해야 할 몫을 작은형이 하고 있었다. 그리고 산소 이장을 끝내고 내려오던 길로 아버지가 우리들에게 말했다.
"느 느이 중 어느 한 자식 나한테는 귀하지 않은 기 없다. 둘재는 먼저 알구 있다만 느들두 알아야 하는 일이겠기에 하는 얘긴데, 안죽 깊은 얘기가 오간 건 아이다만 이번 가슬에 문중에서 다시 족보를 정리하는 모ㅇ이더라. 그래서 느들 다하구 의논해야 할 일이나 우선 둘째하구만 얘기를 했는데, 아침에 느 당숙 족보를 옳게 좀 정리하는 얘기를 할라구 했다.
다른 얘기가 아이라 느 알다시피 기한이 갸가 언제 올 줄도 모르는 일이구, 그렇다구 아주 안 오믄 이담에 애비 죽은 다음 오늘 이장한 작은할아버니 산소를 절할 사람도 없이 손 끊기게 내버려 둘 수두 없는 일이구. 그래서 내 둘째보구 얘기했다. 이담에 내 간 담에도 기한이가 안 돌아오믄 니가 이 산소를 맡으라구. 무슨 얘기냐믄 내 생각 같아선 이참에 문중의 족보를 정리할 때 기한이는 기한이대루 지금 있는 대루 두믄서 둘째를 작은집에 양재(양자)루 하나 더 올리구 싶은데, 거야 뭐 기한이갸 영 안 온다믄 둘째가 당숙 아들루다 대를 이으믄 되구, 나중에 기한이가 온다 해두 느 당숙한테 아들이 둘이 있어 나쁘라는 것두 없구 해서 그렇구러 했음 하고 생각했었는데, 둘째 얘긴 그렇구러 알구 작은할아버니 제사를 모시되 족보에꺼정 양재를 올리는 건 기한이를 좀더 지두린다(기다린다)는 생각에서두 다음 번 정리 때꺼정 좀더 두고 보자구 하니, 것두 얘기가 된다 싶어 일단은 그렇구러 하기루 했다.
낸들 느들 중 어느 하나 같은 핏줄의 자손이구 조상이든 다른 집에 양재를 넣구 싶겠냐만, 그래두 생각을 해 보니 간다믄 둘째가 가는 기 제일 낫지 싶어 그런 말을 했더니라. 니가 공직으루 나갈 수 있었던 것두 우선 니가 잘해서 된 일이겄지만, 지금은 더서 뭘 하구 사는지두 모른다만 그때 느 당숙모 덕이 적달 수두 없는 일이구. 니가 이제 더 올라가믄 예전 정승 판서나듯 장관이 될지 그보다 더 윗자리가 될지 누가 알겄나. 나두 그런 아들을 족보 속에 천대 만대 내 밑으루다 두고 싶구. 하지만 이젠 느들두 알다시피 우리 집안 내력이라는 게 내가 느 당숙 간 길 가구 느 당숙이 지금 내처럼 여러 자식 거느리구 살지두 모를 게 서로 운명을 바꾼 일두 있구, 또 그러믄 셋째하구 끝에아는 세상 구경두 못하구 또 먼저 난 느 둘두 느들이 지금 기한이처럼 되구 기한이가 지금 느들처럼 이래 형제가 둘러앉아 내 후사 걱정하구 느들 걱정하구 있을지두 모르구 말이제."
그 일이 있고 나서 아버니는 바로 병원에 출입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것을 썩 나중에야 알았다. 까닭 없이 자꾸 목이 잠기듯 답답하기도 하고 따끔거리기도 한다는 것이었는데, 담배를 끊은 것도 작은할아버지의 산소를 이장하고 나서 바로였다고 했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추석 때 함께 모시고 사는 큰형님을 빼곤 명절 때면 늘 그랬던 것처럼 저마다 이런저런 선물들과 함께 담배 한두 포씩을 꺼내 놓았다.
"참 느들은 모르지. 이제 아버님 담배 안 태우셔."
그 말을 하면서도 형님은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왜요?"
하고 막내가 물었고 형님은,
"뭐 벌써 끊으셨는데, 내가 느들한테 얘기를 안 해 놓으니..."
하면서 조심스럽게 그것들을 한쪽 옆으로 밀어 놓았다. 그러자 막내가 물어선 안 될 것을 물은 것처럼 잠시 어쩔 줄을 몰라했고, 나도 까닭 없이 죄송스러워져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그것은 아버지가 건강을 생각해 담배를 끊은 것이 아니라 더이상 담배를 피워선 안 될 만큼 아버지의 건강이 나빠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뭐 심한 건 아니구... 그래두 느들이 하 온 건데 이건 저기 얹어 둬라. 내 나중에라도 다시 찾을 날이 있을지 아나."
그러면서 아버지는 지난 여름부터 목이 아프기 시작했다는 말을 했다.
"나두 왜 그런지 모르겠구만은 어떤 때는 조금만 찬물을 먹어두 콱 쟁기는 것 같기두 하구 그랴."
나중에 큰형님한테 들은 얘기로는 작은할아버지의 산소 이장을 끝내고 우리가 서울로 올라간 다음날, 아버지는 몸살이 난 거 같은 기 어째 말하기두 힘드게시리 목이 쟁기네, 하시더니 그때부터 담배를 찾지 않으신다는 것이었다.
"느한테는 걱정한다고 말하지 말라니 못했던 거고. 모시고 살아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맏이라는 자리가 그래. 부모님 어디 편찮으셔도 그걸 동생들한테 일일이 얘기하기가 어려워. 어른 보시기에도 그렇고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맏이 짐 벗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고... 그래서 접장을 해도 전근을 안 다니는 사립학교 접장을 하고 있는 거고."
"그래도 그렇지요. 아버님 일인데 알릴 얘기는 알려 줘야지요."
"시내 이비인후과에선 별 증상이 없다지만, 그래도 종합 진찰을 받아 봐야 되지 않나 싶어 이번 명절 끝나면 큰 병원으로 모시고 갈 생각이다."
그 후 아버지는 두 군데 종합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다. 먼저 다니던 이비인후과와 마찬가지로 처음 종합 검진을 받은 강릉 병원에서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자꾸 목이 잠기는 것 같다고 해 큰형님은 다시 아버지를 원주의 큰 병원으로 모셨다. 거기서도 기관지가 조금 약해지긴 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 오히려 염려해야 할 쪽은 목이 아니라 위장이라고 했다. 진찰 기간을 포함해 아버지는 열흘 가까이 병원에 계셨다.
"아프지두 않은 배는 왜 자꾸 탈하누? 시방두 목이 쟁겨 물을 넴기기가 고약하달수록."
내가 병원에 갔을 때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던 날, 큰 형님의 전화를 받고 적이 놓였던 마음이 아버지의 그 소리를 듣자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인후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의사는 분명하게 말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계속해 목이 잠기듯 아프다고 말했고, 어머니는 하다하다 안 되자 양약이 아니라 한방으로 다스려야 할 병인 모양이라고 했다.
한밤중에 걸려 온 전화가 늘 불안했던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이유없이 아버지는 목을 앓고 있었다.
그러나 새벽쯤 나는 그 이유를 알았다. 아버지의 그 목병은 어쩌면 사십여 년 전 겨울, 그 목 잠김의 재발이 아니었을까 하고. 그리고 또 어쩌면 먼 길, 나간 정신에도 본능처럼 돌아와 누워야 할 자리를 알고 돌아와 숨을 거둔 아재의 마음속 화해로 내가 도착할 때쯤이면 아버지가 다시 지난 추석 때 선반 위에 올려 둔 담배를 꺼내 태우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그것은 기한이 형까지 그렇게 마음속의 용서로 돌아와야 비로소 나은 목 잠김인지도 몰랐다.
바깥은 아직도 어두컴컴한 새벽이었다.
나는 그 새벽 속에 먼 길을 떠날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