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리야 보리야1)
20614 문지현2)
“엄마, 아빠 제발 사주면 안돼요? 사주면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서로 싸우지 않을게요. 그리고 만약에 사면 밤마다 재워주고, 산책도 시키고, 밥도 잘 주고, 똥도 잘 치울게요. 제발요, 네?”
오늘은 내 동생 성현이의 생일이다. 동식이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해서 며칠 전부터 계속 사달라고 했지만 엄마 때문에 안 될 것 같다.
“엄마가 안 된다고 했잖니! 안되면 안 되는 줄 알아! 강아지를 키워서 뭐하려고......”
결국 성현이는 설움이 복받쳐 울고 말았다.
“으앙, 누나 생일 때에는 누나가 갖고 싶어 했던 것은 다 사줬으면서 나는 왜 안 사주는데!”
“엄마, 성현이 생일이니까 한 번만 사주시면 안 될까요?”
나도 성현이를 도와서 졸랐다. 동식이가 불쌍해서 조른 것이 아니라 사실 나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 그때 엄마가 한숨을 쉬며 말씀하셨다.
“동물들은 자연 속에서 크는 거야. 왜 집에서 키우려고 그러는 거......”
아빠가 엄마의 말씀을 자르셨다.
“여보, 그냥 사주지그래. 애들 징징거리는 목소리 평생 들을 바에야 그냥 강아지 한 마리 사주고 안 듣는 것이 좋지. 안 그래?”
“당신! 개가 얼마나 털도 잘 날리고, 짖으면 얼마나 시끄러운 줄 알아?”
“성현아, 내일 아빠랑 강아지 사러가자. 알겠지? 이제 그만 울고, 무슨 강아지 사고 싶은지 말해봐.”
엄마는 아빠에게 짓궂은 표정을 지으시다가 결국 허락하셨다. 성현이는 얼굴에 눈물, 콧물 다 묻은 채로 히죽거리며 좋다고 웃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족은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다. 막내 정현이도 물론, 나도 방긋 웃으며 기뻐했다.
다음날 저녁, 우리가족은 차를 타고 마석까지 가서 엄마가 아시는 교회 분께 황토색 새끼 진돗개 한 마리를 샀다. 그 강아지는 코와 입 주위가 새까맣고, 털은 짙은 갈색인 수컷이었다. 강아지를 사고 집으로 오면서 동생들과 나는 강아지가 신기해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이름을 지으면서 갔다.
“누나는 이 강아지 이름 무엇으로 지을 거야? 난 몽키로 하고 싶어.”
“몽키? 얘가 원숭이니? 초코는 어때? 털이 초콜릿 같은 갈색이잖아.”
“초코는 너무 여자 이름 같잖아. 아빠, 이 강아지 이름 무엇으로 정하죠? 누나랑 저랑 이름 못 지을 것 같아요.”
“음....... 보리는 어떨까? 아빠도 어렸을 때 강아지 한 마리를 키웠었는데, 이름을 ‘꽁보리’라고 했었어. ‘꽁’자는 이상하니까 ‘보리’라고 부르자구나.”
동생들과 나는 보리에게 첫인사를 했다. 보리는 집에 가는 내내 우리가 무서운 건지 아님 가족의 곁을 떠나서인지 침을 줄줄 흘리며 울기만 했다. 그리고 집에 가기 전에 동물병원에 들려서 예방주사도 맞히고 사료와 비타민을 사가지고 왔다. 집으로 들어왔을 때에는 보리가 안절부절 해하면서 왔다갔다 거렸다. 그리고는 거실구석에 앉아 다리를 하나 들더니 오줌을 싸버렸다. 막내 정현이는 보리의 오줌을 보더니 호들갑을 떨었다. 엄마는 정현이에게 조용히 하라며 걸레를 가져다 닦았다.
그때 성현이는 갑자기 밖에 나가더니 10분 후에 커다란 상자를 하나 들고 왔다.
“성현아, 그게 뭐니?”
“이걸로 보리 집 만들어 줄꺼야.”
“형! 나도 같이 만들래.”
정현이와 성현이는 같이 작은방에 들어가더니 한참 후에야 작품을 들고 나왔다. 동생들이 만든 보리의 집을 보자 나는 놀랐다. 동물병원에서 파는 애완용 집을 뺨치듯 잘 만들었기 때문이다. 비록 종이상자이지만 보리에 대한 동생들의 정성이 느껴졌다. 보리의 집 안에는 여러 수건과 천들이 바닥을 깔아서 따뜻하게 해주었고, 쓰지 않는 플라스틱 그릇을 밥그릇으로 써서 한쪽 구석에 잘 놓아져 있었다. 그리고 집 옆쪽에는 신문지를 몇 겹씩 쌓아서 화장실을 만들었고, 집 겉에는 색종이와 스티커로 알록달록하게 장식을 해놓았다. 동물병원에서 파는 강아지 집보다는 예쁘지는 않아도 보리를 위해 정성을 다했기 때문에 제일 멋져보였다. 보리는 그 집을 보더니 자기 집임을 눈치라도 챈 듯 들어가 엎드려 누웠다. 그리고는 밥도 먹지 않은 채 잠이 들었다. 나도 시간이 늦어 보리가 잠이든 후에 나도 자려고 누웠다. 하지만 보리 때문에 마음이 들떠있어 잠이 잘 오질 않았다. 그러다 나는 날을 샐 것 같아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서야 잠이 들었다.
보리를 키운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학교가 끝나면 곧 바로 보리에게 달려가서 동생들과 공놀이도 하고, 서로 장난도 치며 놀았다. 그리고 보리가 싼 배설물들도 스스로 치우고, 같이 산책도 했다. 이렇게 하루하루 지냈던 것이 꿈만 같았다. 하지만 밤에 보리를 재워놓고 보리의 집안으로 들여보내면 잠이 계속 깨어서 잠이 들 때까지 자장가도 불러주고 간지러운 곳은 긁어 주어야만 잠이 잘 들었다. 그리고 밤이 지나 새벽이 되면 보리는 아기의 울음처럼 시끄럽게 울곤 했다. 그래서 잠자던 중에도 일어나 보리를 달래줘야만 했다. 이런 날이 계속되자 너무 힘들었지만 곧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 우리가족은 보리를 데리고 수락산을 갔다. 이 날은 학교 개교기념일이기도 하고 아빠도 쉬는 날이시기 때문에 가족끼리 갈 수 있어서 좋았다.
“보리 이 녀석, 오랜만에 밖에 나오니까 물 만난 물고기가 따로 없구나. 허허.”
“아유~ 재빠르기도 하지. 겨울인데 미끄러지지는 않으려나?”
엄마와 아빠는 힘차게 달려가는 보리를 보고 말씀하셨다. 이제 엄마도 보리를 많이 예뻐하는 것 같다. 처음 강아지를 사달라고 했을 때에는 개털이 날리고 냄새도 많이 난다면서 제일 싫어하셨던 분이셨는데, 지금은 우리가족 중에서 보리를 제일 아끼시고 가족들보다 보리를 더 챙기신다.
올라 온지 몇 시간 후, 산에 다 올라왔을 때에는 보리는 거친 숨을 내쉬며 “헥헥”거렸다. 내가 올라가기에도 숨이 차고 힘이 드는데, 보리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보리와 함께 올라와서 다른 때 보다는 덜 힘들었다. 이제 산에서 내려가는데, 나는 보리가 내려갈 때에도 힘들까봐 걱정이 되어서 내 품에 꼭 안고 내려갔다. 내 품에 안긴 보리는 힘들게 올라왔던 피로가 다 풀려서 잠이 들었다. 하지만 보리를 안고 내려가는데 동생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성현이와 정현이는 내 품에 안긴 보리를 가지고 안고 갈 거라고 서로 다투었다. 동생들의 다투는 소리를 들은 아빠는 동생들에게 꿀밤을 하나씩 먹이시더니 내가 안고 있던 보리를 빼앗아 아빠가 안고 가셨다. 동생들은 서로 탓을 하면서 중얼거리며 산에서 내려왔다.
집에 도착하니 시간은 숫자 육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빠는 정현이와 성현이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깨끗이 씻겼다. 그리고 보리를 데리고 들어가서 깨끗이 씻겼다. 동생들과 아빠, 그리고 보리가 화장실에서 나온 후에야 나는 씻을 수 있었다. 내가 씻을 동안 엄마는 부엌에서 저녁준비를 하고 계셨다. 샤워를 마치고 맛있는 냄새가 나서 엄마께 물어보았다.
“엄마, 이거 무슨 냄새야? 냄새 좋다.”
“이건 지민이가 제일 좋아하는 갈비찜이지.”
나는 갈비찜이라는 말을 듣고 방방 뛰었다. 동생들도 갈비찜이라는 말을 듣고 방방 뛰었다. 보리도 꼬리를 흔들면서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여보, 성현아, 지민아, 정현아 와서 저녁 먹어라.”
식탁에 가서 앉는데 아까보다도 더 많이 갈비찜 냄새가 나의 코를 자극했다. 나와 동생들은 저녁식사 기도를 끝마치기가 무섭게 갈비를 잡고 열심히 뜯어 먹었다. 식탁 밑에 앉아있던 보리도 사료를 다 먹고 나서 맛있게 먹고 있는 우리를 향해 짖었다. 나는 보리에게 갈비를 하나 주려고 했다. 하지만 아빠는 강아지에게는 고기를 주면 안 된다고 하셨다. 나는 보리에게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아빠가 먹이면 안 된다고 하셔서 고기만 발라먹고 남은 뼈를 주었다. 보리는 그 뼈를 가지고 이리저리 핥아도 보고 가지고 놀았다. 그러다가 보리는 또 짖었다. 그 뜻은 또 달라는 소리이다. 나는 이번에 큰 갈비를 하나 골라서 먹은 다음 남은 뼈를 주었다.
저녁을 다 먹고 엄마와 아빠는 과일을 드시면서 뉴스를 보셨고 동생들과 나는 보리를 데리고 놀았다. 보리와 한창 장난을 치고 놀고 있는데 보리가 갑자기 울부짖었다. 나는 아까 사료를 많이 먹어서 배탈이 난줄 알고 배를 쓰다듬어 주었다. 하지만 보리는 눈이 빨개져서 계속 울부짖으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나는 뭔가 이상해서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보리가 이상해. 계속 울어.”
“속이 안 좋은가보지. 계속 배를 쓰다듬어 줘봐.”
나는 아빠 말을 듣고 열심히 배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보리는 화장실로 가더니 토해버렸다. 나는 보리의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보리는 아주 힘겨워 보였다. 그런데 토한 색을 보니 피는 아니지만 빨간 색이었다. 그리고는 갈비뼈 하나를 토해내었다. 나는 순간 놀랐다. 저녁때 먹고 남은 갈비뼈를 보리에게 좀 주었는데 보리는 그걸 갖고 놀다가 삼켜버린 것이었다. 동생들은 보리가 토하는 것을 보더니 죽는 것 인줄 알고 울었다. 나는 동생들에게 그냥 토한 것뿐이라며 안심시켰다. 엄마, 아빠는 동생들의 우는 소리에 달려와서 보리가 토한 것을 보았다. 그리고는 나한테 뼈를 왜 주었냐며 화내셨다. 보리는 화장실에서 나와서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동생들은 보리에게 가서 좀 더 따뜻하고 푹신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빠는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면서 늦었다고 자라고 하셨다. 나는 자기 전에 보리에게 가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사과를 한 후 보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 방으로 들어가 잤다.
“끼잉, 끼잉, 끼잉”
보리가 또 울기 시작했다. 어디가 아픈 건 아닌데, 혼자 자는 게 무서운 걸까? 아님 외로운 걸까? 매일 밤마다 저러니 이제는 재워주기도 싫어졌다. 나는 자다가 일어나서 보리를 안고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시간을 보니 2시였다. 나는 감기는 눈꺼풀을 억지로 치켜 새우며 보리가 잠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보리는 잠이 들지 않고 눈만 초롱초롱하게 떠있었다. 나는 도저히 재울수가 없을 것 같아 동생 성현이를 깨웠다. 성현이는 짜증을 내며 다시 자버렸다. 할 수 없이 막내 정현이를 깨웠다. 하지만 정현이는 아직 어린지라 일어나지도 않았다. 나는 울고만 싶었다. 처음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을 때는 너무 즐겁고 좋았는데 밤마다 이러니까 짜증만 나고 키우게 된 것이 후회가 됐다. 보리를 안고 있은 지 몇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보리는 겨우 잠이 들었고 나는 다음날에 또 학교에 지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후로도 다음날은 성현이, 그 다음날은 정현이, 또 그 다음날은 나. 이렇게 번갈아 가면서 보리를 재우기에 바빴고, 우리 셋은 늘 학교에 지각을 하고 엄마에게 늦게 일어난다고 꾸중을 들었다.
다음날 밤, 보리는 오늘도 여전히 울었다. 이번에 보리를 재울 사람은 정현이었다. 정현이는 보리를 재우려다가 화가 났는지 울면서 엄마를 깨웠다. 그리고는 보리 때문에 잠을 못 자겠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이제야 엄마는 우리가 매일 밤마다 보리를 재워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때문에 매일 지각을 하고 늦잠을 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정현이와 보리를 재우고 나서 주무셨다.
학교를 다녀왔는데, 엄마가 우리 셋을 불러 놓고 말씀하셨다.
“지민아, 성현아, 정현아. 우리 보리 다른 사람한테 주는 건 어떨까? 너희들 매일 보리 때문에 힘들잖아. 그리고 이제 강아지도 한번 키워봤으니까 괜찮지?”
“난 싫어. 내 생일선물이잖아. 누나랑 정현이가 힘들면 내가 재워주고 내가 다 할꺼야.”
“성현아, 누나랑 정현이랑 힘든데 네가 어떻게 다 한다고 그러니.”
성현이는 계속 끝까지 싫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는 성현이를 계속 설득했다. 그러다 성현이는 울면서 엄마의 말에 찬성했다. 그날 저녁 엄마는 아빠께 보리를 다시 판다고 말을 하셨다. 아빠도 처음엔 반대를 하셨지만 우리들이 매일 밤마다 재워주고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얘기하자 아빠도 찬성하셨고 내일 교회를 갔다가 목사님께 주기로 했다.
늦은 밤이 되자, 보리는 또 다시 울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동생들과 내가 모두 일어나서 마지막으로 재워주었다.
“목사님, 보리 잘 키워주세요.”
“물론 잘 키워야죠.”
교회를 갔다 온 후 우리가족은 보리를 목사님 댁에 주고 왔다. 보리를 키운 지 세 달도 안 되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집에 남아있던 사료와 동생들이 만든 집, 그리고 나와 동생들과 매일 가지고 놀았던 공과 함께 주고 왔다. 목사님 댁에서 나오자 성식이와 동식이는 계속 울었고 나도 애써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날 밤, 보리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조용하니까 뭔가 어색했다. 매일 밤마다 시끄러웠는데, 이제는 조용하다. 보리가 없는데도 나도 모르게 새벽에 일어나버렸다. 목사님께 주기 전에는 보리의 울음소리는 나를 짜증나게 만들었는데, 이제 보리가 없으니까 그 울음소리는 그립기만 하다.
<후기>
4년 전의 일을 기억해서 쓰는데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아빠한테도 물어보고 엄마한테도 물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보리를 키우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재우는 것이었다. 자장가를 불러줘도 안자고 가려운 곳 긁어주어도 안자고 같이 자려고 해도 안자고 너무 힘이 들었다. 또 마지막 부분을 쓰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별로 슬프지는 않아도 보리와 헤어질 때 진짜 많이 울었기 때문이다. 헤어질 때 보리 집에다가 가족사진을 붙여놓고 잊지 말라고 붙였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보리 덕분에 내가 싫어하던 등산도 거의 매일 하게 되어서 부지런해졌고 동생들과도 더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가끔 보리를 키우고 있는 목사님 댁에 전화를 하는데 많이 커서 집안에서는 못 키우고 밖에서 키운다고 하셨다. 그리고 보리와 헤어진 후로 한 번도 본적이 없는데 지금 얼마나 컸을 지도 궁금하다.
또 내 소설을 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예전에도 써보려고 했지만 내용이 뒤죽박죽이어서 쓰다말기도 했다. 하지만 국어시간 때 자세히 알게 되어서 잘 쓸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