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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산행지인 보래봉(寶來峰, 1324m)과 회령봉(會靈峰,1331m)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과 홍천군 내면에 위치한 강원도 산골의 높은 산으로 전체적인 산세는 부드러운 육산 형태를 띄고 있다.
첫 관문인 보래봉(1,324 m)을 향해 올라가는 행렬에는 타등산객들도 섞여 있다. 경상도 말을 쓰는 걸 보니 남쪽지방에서 왔나 보다.
왼쪽으로 틀어지는 완만한 林道를 따라 우선은 보래령(1,065 m)으로.
곧게 뻗은 가늘고 키 큰 나무들과 잡초 사이로 난 좁은 오르막 길.
늘어진 나무가지들. 평창군 봉평면 일대는 해발 600-800m 를 이루는 고랭지(高冷地)지대의 특이한 지형인 까닭에 주위가 온통 산으로 둘러 쌓여있는데 인적이 드물고 개발이 늦어 아무도 돌보지 않는 오래된 나무들은 이렇게 힘없이 쓰러지는 걸까?
뿌리째 뽑혀 쓰러진 巨木
보래령에 오르자 넓고 편평한 공간이 나타나며 많은 등산인들이 숨을 고르고 있다. 나도 한쪽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불어 오는 산들바람을 맞으며 얼음물과 복숭아를 먹고 더위도 식혔다.
보래령에는 별다른 이정표가 없다. 옛날 평창군 봉평면과 홍천군 내면 사람들이 오르내리던 이 고개 길은 주능선 등산로로서 동서의 방향 구분이 분명하고 가지에도 갖가지 리본이 많이 붙어 있다.
현재 공사 중인 보래령터널이 올해 완공되면 평창과 홍천을 쉽게 오갈 수 있을것으로 보인다.
이 고개에서 왼쪽으로 곧장 올라가는 70도 각의 급경사 길은 150 m 가 넘어 30층 계단을 단숨에 오른 듯한 에네르기가 소모되었다. 김정옥 씨도 이 사진을 찍기 전에는 연신 가쁜 숨을 내몰아 쉬었다.
홍천(洪川)이 고향인 병무가 이 산을 빠질 수는 없지.
보래령을 지나서 보래봉으로 가는 숲길. 주능선에 오르니 바람이 불어 시원하다.
잡목이 무성한 숲속.
모두가 힘들지만 참고 걷는다. 보래령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숲가에는 山竹이 피어 있고 40분 후에는 보래봉(1,324 m)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별다른 표지석 없이 길 표시 이정표만 달랑 세워져 있어 기념촬영은 생략하고 두 세군데의 경사진 암릉지대를 내려가자 앞서 간 선두일행이 점심 먹을 자리를 펴고서 후미를 기다리고 있다.
근래에 드물게 휘산회 등산에 동기생 14명이 모였다. 인원이 많으니 반찬도 가지가지.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캔맥주가 있어 배낭도 풀기 전에 맥주부터 입안에 흘려 넣었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차갑고 짜릿한 맛은 최고의 경지(境地).
거대한 V 자형 나무 앞에서. 회령봉(1,331m)도 보래봉처럼 온 만큼 똑같은 시간을 걸려 도달했다. 연지기 마을의 집합시간이 4시이므로 하산까지 남은 시간은 약 2시간. 능선과 사면(斜面)에는 낙엽송과 잡목이 빼곡히 들어차 장쾌한 조망은 관람할 수 없지만 부드러운 육산의 전형으로서 강원도 오지의 심산을 만끽할 수는 있다. 반면에 특별히 즐길만한 경치나 풍광이 없고 가도 가도 똑 같은 숲길의 연속에다 이따금씩 오르막 코스도 수차례 나와 숨이 차고 지루하기도 하다. 그래도 앞에 가는 65회 안영원 선배는 눈에 보이는 쓰레기를 긴 집게로 일일이 집어서 비닐봉투에 넣고 있다.
1309봉에서 동쪽 능선을 타고 내려가는 구간은 산죽으로 덮혀있고 위치에 따라 급사면이 군데군데 이어져 내리막을 조심해야 한다. 경사진 흙길이라 발은 안전한데 신발 끈을 느슨하게 매었더니 발이 꽉 맞질 않아 미끄러질 때마다 발바닥이 아프다.
갑자기 정체된 걸 보니 앞에 무엇인가 있나 보다.
여기가 첫번째 위험구간으로 급속히 떨어지는 낭떠러지가 있다.
로프나 철계단 같은 안전시설이 전혀 없어 눈 덮힌 겨울이라면 상당히 위험할 것 같다.
그래도 잡을 데가 있어 조심하면 문제 없지만.
이 길을 내려 갔다.
두번째의 급경사 바위지대.
여자들은 이래 저래 엄살이 많다.
가파르고 흙먼지 날리는 마지막 길을 1시간 걸어 하산 완료. 山行이라기 보다 산악훈련을 한 것 같다.
쌓인 피로와 먼지를 한방에 날려 버리듯 이 계곡에서 상/하체를 씼었다. 무너진 돌제방을 타고 내려가니 씼을 만한 물은 흐르고 있다.
오늘 걸었던 먼 산들을 다시 한 번 둘러 본다.
다시 버스를 타고 봉평 시내로 향함.
기수별로 하산주와 토속음식을 즐기는데 우리는 이 "남촌막국수" 집을 골랐다. 농부와 당나귀 동상이 재미있고 입구에는 할머니가 불판 앞에 앉아 메밀전병과 메밀지짐이를 만들고 있다.
메밀막국수 |
5,000원 | |
메밀비빔국수 |
5,000원 | |
순메밀막국수 |
6,000원 | |
묵 사 발 |
5,000원 | |
메밀묵 |
5,000원 | |
메밀묵무침 |
5,000원 | |
메밀부침 |
5,000원 | |
메밀전병 |
5,000원 |
골고루 맛본 후 식사는 각자 비빔막국수와 물막국수를 시켰다. 야채가 듬뿍 올려진 비빔막국수는 향긋한 들깨기름 향이 입맛을 돋군다.
인조 꽃들.
장터 구경
거리의 악사.
그 者, 그래도 노래는 잘 부르더라. 그래서 사람들이 몰려 드나? 왕년의 어떤 딴따라 출신일까.
많은 관객이 운집한 악대 옆의 노천음식점에 들어가 보이는 메뉴를 안주삼아 한 잔 더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
봉평(蓬坪) 장터에는 없는게 없다. 남대문시장의 축소판이라고나 할까. 2일과 7일이 장날인데 오늘이 6일인 걸 보니 5일장인가 보다.
늠름하군.
장터 유람은 대강 끝내고 이제 메밀꽃 구경을 가자.
두 사람은 왜 얼굴을 찡그리고 있을까?
다리 위의 애드벌룬
제11회 평창효석문화제는 9월4일~9월14일(11일간)까지 봉평면 일원(문화마을 일대)에서 열린다.
올해로 11년째 이어지는 효석문화제는 축제가 회를 거듭하면서 메밀 꽃밭도 넓어진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메밀 수요가 많아지니 다시 메밀 농사를 짓는 사람이 늘어나 봉평면 어디서나 하얀 보석 흩뿌려진 듯한 메밀 꽃밭을 만날 수 있다. 8월 말부터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한 메밀꽃이 절정을 이루는 때는 효석문화제 기간인 이만 때의 10일 간이다.
징검다리 앞에서의 3총사
메밀꽃밭은 흥정천에 걸쳐진 남안교 다리 건너 효석문화마을이 조성된 계곡 일대에 가장 많이 펼쳐진다. 지름 5mm 정도에 불과한 꽃 수천만 개가 다듬은 듯 고르게 펼쳐진 드넓은 꽃밭은 가히 장관이다.
야트막한 하천.
꽤 다정하네.
평창은 이효석(李孝石, 1907-1942)의 고장이자 메밀의 고장이다.
1930년대의 한국 문단을 풍미한 심미(審美)주의 작가 이효석은 평창 봉평에서 태어났고 고향의 메밀꽃을 주무대로 한 서정적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 이란 소설로 文名을 떨쳤는데 메밀꽃밭이 없었다면 소설도 탄생하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이광수나 이상, 심훈, 김소월 보다는 빛을 발휘하지 못했다. 국어 교과서에도 그의 작품은 소개되어 있지 않고 나 또한 이 소설을 읽어본 적도 없다.
性의 본능과 개방을 추구한 에로티시즘(Eroticism) 작가였다는 게 걸림돌이 되었을까.
어느 음식점 앞의 물레방아인데 윗부분이 안보여 조금 멀리서 찍었으면 좋을것 그랬다. 떨어지는 물도 꽃과 나무에 가려지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
흥정천은 1급수 청정수역이다.
인도에는 화단의 노란 꽃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분당 방향파 8명은은 미금역 앞 영풍치킨집에서 생맥주로 가는 길을 장식. 종업원에게 사진을 찍어 달랬더니 무척이나 성의 없게 찍었다. 전원이 다 나와야지 일부만 나오면 되나.
6조각이 14,000 원이어서 12조각을 시켰는데 양도 적고 맛도 없다. 4년전에 왔을 때도 그랬지만 또 이렇게 탄 걸 주니 어떻게 먹나? 홍성호는 기름이 나빠서 그렇다는데 과연 그래서 일까? "26년 전통의 노하우가 있고 항상 신선한 닭을 기본이며 프라이드 파우더의 튀김은 바삭거리며 눅눅하지 않다." 고 선전은 하는데 치킨 집 맛치고는 이 집이 제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직도 망하지 않은게 이상할 정도.
첫댓글 그래! 분당파 니그들끼리 잘 마시고 잘 살아라. 잠실에서 내려서, 순간 담배불을 붙이고 났더니, 다 도망가고 남아있는 사람은 박신섭과 나, 단 둘뿐. 술을 안마시는 신섭을 데리고 무엇을 하랴. 집으로 가는수 뿐이. 사진을 보니 이래저래 심통만 나누만. 어째서 내얼굴이 쉽게 인식될수 있는 사진은 달랑 한장일까? 동천에게 밉보여서일까? 동천이하고 살풀이 한번 해야겠네.
짬짬이 많이도 찍었네. 동천이 후기에는 중독성이 있나보다. 얼렁 뚱땅 다녀와서 산행 복기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