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해 전, 문민정부를 내세웠던 김영삼 정권 출범 직후 외국 수반 가운데 가장 먼저 우리 나라를 방
문한 독일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 대통령은 자신이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칸트와 헤
겔 같은 독일 철학에 대해 잘 안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독일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 만일 칸트와 헤겔에 대해 잘 알지만 우리에게도 원효와 지눌, 화담과 율곡과 퇴계 같은 철학자가 있
었다고 말했더라면 독일 대통령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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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선종이 후기 신라 말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었습니다.
신라는 말기에 이르러 왕권이 약해지면서 진골이 중심이 된 지배 세력의 힘이 경주를 중심으로 한 일부
지역에밖에 미치지 못하였고, 그에 따라 각 지방에서는 호족들이 세력을 키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
은 신라의 왕권을 지탱시켜 주는 이데올로기인 교종과 차별되면서 자신들을 지지해 줄 수 있는 대안 이
데올로기를 찾던 중이었습니다. 그 무렵 자리 잡기 시작한 선종은 그러한 대안이 되기에 알맞았고, 따
라서 지방 호족들은 선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섯 개의 교종 종파와 아홉
개의 선종 종파가 난립한 가운데 5교 9산으로 표현되는 선종과 교종의 양대 산맥이 고려 중기까지 이
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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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感氣)란 말 그대로 氣를 느꼈다는 뜻으로, 우리가 가장 쉽게 걸리는 병이기도 합니다.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것도 氣이고 몸 밖의 대기도 氣이기 때문에, 우리는 평소 물고기가 항상 물 속에서 살면서
도 자신이 물 속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내 몸 밖의 氣와 내 몸의 氣를 다른 氣라고 느끼지 않
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오싹해지면서 몸 밖의 氣를 다른 氣라고 느끼게 되면 바로 감기에 걸리
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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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덕은 재상 김안국이 부채를 선물로 보내 오자, "김재상이 부채를 선물함에 감사하며"라는 시를 지
었습니다.
묻노니 부채를 흔들면 바람이 생긱는데
바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만일 부채에서 나온다고 한다면
부채 속에 언제부터 바람이 있었는가?
만일 부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필경 바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부채에서 나온다고 해도 말이 안 되고
부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 안 되네
만일 허(虛)에서 나온다고 한다면
오히려 저 부채를 떠나 허가 어떻게 스스로 바람을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고 보네
부채가 바람을 몰아칠 수는 있지만
부채가 바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로세
바람이 태허에서 쉬고 있을 때는
고요하고 맑아서 아지랑이나 티끌 먼지가 일어나는 것조차 볼 수 없다네
그렇지만 부채를 흔들자마자 바람이 곧 몰아치네
바람은 氣라네
氣는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해서
물이 계곡을 꽉 채워 조금의 틈도 없는 것과 같네
더 바람이 고요하고 잠잠할 때는
그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모습을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氣가 어찌 빈 적이 있으리오
노자가 '빈 것 같지만 다함이 없어서 움직일수록 더욱 나온다'고 한 것이 이것일세
그 부채를 흔들자마자 몰려가서는 氣가 들끓어서 바람이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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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적과 조한보가 논쟁을 벌인 것은 500년 전 일입니다. 논쟁의 중심 주제는 인간의 도덕이었습니다.
두 사람 다 인간의 본질을 도덕성으로 본 것은 같았지만 그 본질을 현실의 인간 속에서 찾을 것인가 아
니면 초월적인 무언가에서 찾을 것인가 하는 점이 달랐습니다. 유학은 본래 종교적이기는 하나 종교는
아닙니다. 죽은 뒤의 내세를 문제 삼지 않고, 하나님 같은 믿음의 대상도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유학이
종교라면 현실의 구체적인 인간을 넘어서서 절대적 힘을 지닌 신을 상정하고 그 신의 뜻을 따르면 될
뿐, 그 이상의 논의가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학은 현실을 떠난 인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
고 그 인간은 노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이미 자기 속에 완전한 인간이 될 가능성을 가지
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면의 도덕성입니다. 따라서 현실외에 다른 세계를 허용하지 않으며 오직
현실에서 도덕적 삶을 통해 인간다움을 실현해 나갈 뿐입니다. 이런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착한 일을
하더라도 마음으로 느끼는 뿌듯함 외에 다른 보상은 없습니다. 전통 유학을 삶의 지표로 삼았던 사람들
의 사회적 헌신성은 이러한 인간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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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가 말하는 선비 정신이란 이 같은 사림파들의 비판 의식을 가리킵니다. 선비들의 비판 정신
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의 기개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가장 큰
한계 상황은 죽음이지만 그 죽음을 넘어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종교입니다. 종교는 언제나 그 종교를 믿고 따르다가 박해를 받고 죽더라도 죽음 뒤에 더 나은
세상이 있다고 말함으로써 사람들이 죽음이라는 한계 상황을 넘어설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러나 유교에
는 내세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선비들이 올곧은 정신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행동하
지 않는다면 사람답지 못하다는 인간 내면의 도덕성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도를 따라 사는 것이 목표였으며 그런 까닭에 도학자라고도 불렸습니다. 도학자들은 방안에 혼자 있더
라도 천장이나 이불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