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이 다가옵니다. 손님들이 추석에는 문을 여는지 물어봅니다. 추석 전날인 10월 2일은 금요일이지만 문을 열고, 추석 당일에는 열지 못하고, 추석 다음날인 10월 4일에는 문을 여니까 굶지 말고 꼭 오셔서 식사하시라고 알려드렸습니다.
우리 손님들은 명절이 제일 서글프다고 합니다. 밥을 먹을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예 굶는 사람도 많습니다.
명절 다음 날 손님들께 어제 무엇을 드셨는지 물어보면 컵라면 하나 먹었다는 분, 김밥 두 줄 사먹었다는 분, 물만 마시고 굶었다는 분이 대다수입니다. 그래서 민들레국수집에서는 설날과 추석에는 명절 전날과 다음날에는 반드시 문을 열기로 했습니다. 명절 전날에는 컵라면을 나눠드립니다. 그런데 컵라면을 드려도 뜨거운 물을 얻을 주변머리가 없어서 굶는 손님들이 있습니다. 지적발달장애로 자기표현조차 못하는 손님들입니다.
배추 두 포기로 묶은 한 단이 육천 원입니다. 아무래도 추석 전에 배추김치를 담그기는 무리인 것 같습니다. 너무 비쌉니다. 할 수 없이 배추 대신에 열무와 얼갈이로 김치를 담그기로 했습니다. 열무는 한 단에 이천 원이고 얼갈이배추는 한 단에 천 원입니다. 얼추 백단은 담가야 추석 명절까지 손님들 대접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덤으로 무 다섯 상자로는 깍두기를 담았습니다.
참 희한합니다. 치아가 부실한 우리 손님들이 깍두기는 드시지 못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깍두기는 잘 드십니다. 치아가 부실한 손님께 달걀 프라이를 해 드리면서 드시기 좋게 ‘살짝 익혀드릴까요?’ 물어보면 거의 모든 분들이 ‘완전히 익혀 달라’고 하십니다. 반찬을 남긴 손님께 ‘왜 김치는 남기셨어요?’ 물어보면 ‘치아가 부실해서 그래요.’ 합니다. 그런데 불고기나 갈비찜은 참 잘 드십니다. 아니 그냥 삼켜버리십니다.
전에는 토요일에 손님이 많이 오셨는데 요즘은 월요일에 민들레국수집에 손님이 많이 오십니다. 정말 손님이 많이 옵니다. 서울에서 오신 손님이 많습니다. 멀리 천안에서 오신 손님도 보입니다. 수원과 평택에서도 오십니다. 얼마나 손님이 많이 오시는지 저는 계속 국을 담아 드리는 것만도 벅찰 정도였습니다. 오늘은 20킬로 쌀 일곱 포대로 밥을 했습니다. 온종일 쌀을 씻었습니다. 35인용 전기밥솥 3개와 55인용 가스밥솥으로 온종일 쉬지않고 밥을 했습니다. 손님들이 참 맛있게 드십니다.
민들레 식구인 주헌씨가 오랜만에 설거지를 하러 나오지 않았더라면 봉사자들이 꽤나 고생할 뻔 했습니다. 주헌씨는 매달 20일에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나오는 돈이 통장에 입금되면 갈등에 휩싸입니다. 술을 마시고픈 유혹에 참다 참다 한 잔만 입에 대면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열흘이나 보름 정도 술에 파묻혀 지냅니다. 그러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오늘도 ‘이젠 술을 마시지 않겠다.’라고 합니다.
냉장고의 냉동실이 고장이 났습니다. 수리하시는 분이 오셔서 냉각 팬이 고장 났다면서 갈았습니다. 아주 속이 시원할 정도로 냉동이 잘 됩니다.
민들레 꿈 공부방의 텔레비전도 고장이 났습니다. 내일 수리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수리비가 이십 만원도 넘습니다. 공부방의 컴퓨터는 486기종이라서 아이들이 게임도 못한다면서 손도 대지 않습니다. 나중에 민들레국수집 여유가 되면 게임도 할 수 있는 좋은 컴퓨터를 마련해 주기로 하고, 민들레 희망지원센터로 옮겼습니다. 486이지만 사무용으로는 쓸 만합니다.
옛날에는 국수집에 쌀이 열두 포대나 쌓여있으면 마음이 든든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스무 포가 쌓여있어도 마음이 아슬아슬합니다. 참 마음이란 것이 요상합니다. 아직도 열두 포나 남아있는데 말입니다.
열무 얼갈이김치, 무생채, 파김치, 고추장아찌, 상추, 쌈장, 오이무침과 달걀 프라이를 내다가 오후쯤에는 가지볶음, 참나물, 상추 겉절이, 취나물볶음, 브로콜리와 초고추장과 돼지불고기를 내었습니다. 국은 콩나물 김치 국을 내었습니다. 오늘은 후식을 내지 못했습니다.
이슬왕자님은 이슬을 너무 좋아합니다. 2005년부터는 거의 병원에 입원해 있는 셈입니다. 여섯 달에서 하루 모자라는 날에 퇴원해서 두세 달 정도 이슬을 마시다가 다시 죽을 것 같이 힘들면 입원하기를 지금껏 반복해 왔습니다. 이젠 술을 끊어야한다고 하면 술을 끊지는 못하겠고 조금씩만 마시겠다고 합니다. 죽을 때까지 술을 입에 대면 안 되는데도 또 술을 입에 댑니다.
알코올 치료를 위해 정신과 의원에 입원해 있는 이슬왕자님을 베로니카가 면회 갔습니다. 포도와 도넛을 가져갔습니다. 정근 씨가 치아가 부실해서 먹기 부드러운 음식을 가져가야 합니다. 용돈도 육만 원을 넣어주었답니다. 정근 씨가 베로니카를 얼마나 간절하게 기다렸는지 놀랬다고 합니다. 속이 아파서 내과병원을 가야하는데 돈도 없고 또 보호자가 찾아와서 외출 허락을 얻어주어야 하는데 오늘에야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오후 5시까지 귀원하기로 하고 외출 허가를 받아주었다고 합니다.
민들레 희망지원센터에서는 오늘 이용 손님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서른아홉 명이나 센터에 와서 지냈습니다. 너무 좋다고 합니다. 샤워하고 양말과 속옷 갈아입고, 쉬다가 영화도 봤다고 합니다. 컴퓨터는 거의가 게임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손님들이 참 깔끔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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