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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 영산암 응진전에서)
낙동강의 상류 지역이자 경북 내륙의 오지인 安東이 두 고속도로(중부내륙, 중앙)의 개통으로 서울에서 3 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게 가까와졌다.
후삼국 시절 왕건이 이 부근 전투에서 이곳 토호들의 도움으로 견훤을 물리쳐 동쪽이 평안해졌다는 뜻으로 安東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하던가.
안동 金씨, 안동 權씨, 풍산 柳씨등 손 꼽히는 세도가와 양반, 사대부, 선비들의 가문이 이 고장에 즐비하고 그에 걸맞게 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숨쉬는 고장이라는데 자주 듣는 兩班이라는 말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며칠 전에 읽은 역사 에세이 속의 장면들이 머리 속에 주마등처럼 그려진다.
제사 음식 같은 먹는 음식에 경제력에 따라 班常의 구분이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가지만 말도 안되는 악랄한 신분 차별이 이 양반(문반, 무반)제도에서 비롯된 것이고 조선 역사 내내 조정에 진출한 힘 있는 양반 사대부들이 관료가 되어 사림과 당파를 만들어 똑똑치 못한 임금을 끼고 돌며 피의 보복을 되풀이하여 근원적으로 국가 발전의 원동력을 없애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양반이 좋은 것인지 조선 후기에는 족보를 사거나, 매관 매직, 과거 대리 시험 등등의 숫법으로 양반들의 숫자가 꽤나 불어났다 하는데 군대도 안 가고 세금도 안 내는 족속들이 양반이라는 것이 아닌가.
누구나 대체로 조상들이 양반이라고 하지만 부끄러운 조선 역사를 만든 사람들이 바로 양반이라 한다.
연산군과 중종, 선조 때의 양반 내지 자타칭 사대부 관료들이 일으킨 사화, 옥사 사건으로 수 많은 인재들이 죽어 나자빠진 것도 억울한 일인데 조선 후기만 하더라도 정조의 아들인 순조 때부터 병약한 헌종, 나무꾼 노릇하다가 왕이 된 철종까지 60년 동안 양반 金씨들이 왕을 농락하며 엄청난 끗발을 부려 재물을 착취한 것이고 김씨 일문이 대원군의 철퇴를 맞은 후에도 대원군의 앙숙인 민비 덕분에 양반 閔씨들이 뒤늦게 등장하여 더 악랄한 방법으로 苛斂誅求의 재탕, 삼탕을 하였다 하던가.
이런 역사의 뒤에는 요망한 세 여인이 있었다 한다. 중종 계비 문정왕후 尹씨, 영조 계비 정순왕후 金씨, 고종 비 명성왕후 閔씨인가.......열 받는 이야기들인데 자고로 왕비를 끼고 돌아야 한탕 해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내일이 白露라 하지만 벼이삭 익어가는 들녁에 햇볕이 따갑다. 이 따가운 햇살에 안동 사과의 단물이 익어가고 뒷동산의 밤송이가 절로 익어 벌어지는가.
차가 예상 보다 일찍 안동에 도착한지라 천등산 鳳停寺부터 들린다.
봉황(영어 번역을 보니 不死鳥)이 머물렀다는 이 절의 由來야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이지만 절 입구에서 극락전에 이르는 오솔길의 분위기가 너무 좋다,
한폭의 살아있는 고운 그림이 따로 없다. 소나무 그늘 드리워진 산길에 솔가지를 가벼게 흔들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바람결에 은은한 솔향기가 전해진다. 허파 깊숙히 맑은 공기를 삼키며 휘휘 걷고 싶은 오솔길이다. 10년 전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 길을 걸었던가.
절뜰 앞의 600년 된 은행나무가 은행을 탐스럽게 주렁주렁 매달고 발걸음을 맞아주는데 靈駕를 불태우는 燒臺도 다른 절에서 보기 어려운 것이다.
신라의 양식을 이어 받은 고려 때의 건물이자 국보인 극락전은 국내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 건물이라 한다. 부석사의 무량수전보다 오래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일자식 지붕 건물을 주심포 맞배지붕이라 부르던가. 목조 건물이 이제까지 남아있는 것은 누군가가 주기적으로 副材를 갈며 유지, 보수의 노력을 한 덕분이 아닌가. 입장료만 내는 것은 조금 미안한 일인가.
제일 오래된 절집에서 마음의 다짐을 하며 부처와 마주치는 몇 초의 순간은 소중하다. 누군가 법당에 써 놓았다. 이 순간은 지나가기에 아주 소중한 것이라고.....
바로 옆 조선 초기 때의 건물인 대웅전도 국보이다. 다포식 건물에 처마 꼬리가 날아갈 듯 휘어지는 팔작지붕이라 하던가......마침 염불 기도 소리가 흘러 나온다.
누군가 제법 시주를 하였는지 어디 사는 아무개의 사업 번창을 비는 내용인데 기독교의 칼빈이 스님으로 환생하신 것인가.......누군가 다른 이의 행복, 성공을 빌어주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만 조용한 산사에서 이런 기도 소리를 듣는 것은 조금 못마땅하다. 빌어서 된디면 안 될 일이 어디 있겠는가. 걸맞는 자신의 노력이 우선이리라.
이 절에서 고찰의 그윽한 분위기가 제대로 배어나오는 곳은 아무래도 영산암이다. ㅁ字 형태의 절집에 고풍 스런 건물이 아기자기하게 배치되어 있고 마당에 줄기가 땅속부터 여럿으로 갈라져나온 소나무의 모습이 그윽하다. 영화"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촬영지라 한다.
집착과 번뇌를 끊고 근본적 고뇌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집에서 면벽을 하고 수양을 했을 것인가. 산행도 苦行이지만 인생도 苦海라 생각하니 조금 숙연한 마음이 생기는가.
마침 앞마당 누각에서 후불벽탱화인 "영산회상도"의 국보 지정을 위한 감정단이 불교 문화재 작품 실사를 하고 있다. 둘둘 말린 두루마기 크기가 엄청난데 수십 명이 동원 되어 크기를 재고 보관 상태, 색상과 회화의 내용을 살피는 듯하다. 이렇게 국보기 탄생하는 것인가.
안동 시장에 도착한 시간이 마침 점심 시간이니 이것 저것 먹고 싶은 것이 많다. 치악산 휴게소에서 마침 눈에 띄는 노루궁뎅이 버섯 몇 개 사서 애피타이저 삼아 날로 먹었으니 이제 메인을 들 차례이다.
헛제사밥도 먹고 싶고 안동 한우는 날로도 먹고 구어도 먹고 싶고 낙동강 물줄기 따라 안동까지 흘러왔을 봉화 송이도 구워 먹고 싶고 한 동안 유행하던 찜닭(이곳에서는 통닭)도 뜯고 싶은데 일찌감치 선택한 것은 서민의 밥상인 간고등어 정식이다. 식당 옥호가 "양반밥상" 대신 "만인의 밥상"이라 하였으면 더 좋았을 것을.......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석쇠에서 노릇노릇 구워지는 동안 풍겨오는 고소한 냄새에 회가 동하는데 소금 간이 슴슴하게 배어 적당하게 구워진 등푸른 생선 고등어 살코기의 맛에 밥 한그릇 뚝딱이다. 한 동안 고등어 통구이인 고갈비를 많이 먹었었는데......
눈요기겸 쇼핑겸 시장을 둘러보니 큼지막한 문어를 삶아 주는 곳이 많다. 포항에서 오는 문어가 물량이 부족하여 생각 보다 비싼 가격이고 추석 때까지 값이 계속 오른다 하는데 살듯말듯 하니 계속 다릿살을 큼지막하게 베어준다. 역시 바다속에서 좋은 것 많이 먹는다는 문어 살의 맛은 구수하게 좋다.
또 흔하게 보는 것은 이 지역의 젯상에 자주 오른다는 상어이다. 돌고래 정도 크기의 상어를 꽁꽁 얼렸다가 포로 저며 파는 것인데 맛은 어떨런지 알 수가 없다.
횟집에서 정말 촌스럽게 숭덩숭덩 썰어주는 가을 전어를 소주 한 잔 곁들여 맛을 보는데 전어는 역시 썰어내는 방법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말을 실감한다. 기름진 맛은 느낄 수 있지만 국수 가닥 썰어내듯 길고 얇게 썰어내는 것이 맛도 더 좋고 먹기도 좋지 않겠는가.
단물이 제법 든 햇사과의 맛을 보고 끝물인 복숭아, 햇땅콩을 조금 산 다음 안동의 명물이라는 버버리 찰떡을 산다. 안동의 유명한 마는 어디로 갔나.
다섯 종류의 고물을 입히는 찰떡은 아침 식사나 요깃거리로 아주 적당할 것 같은데 떡메를 치며 만드는 과정이 모두 고생스런 수작업이라 맛이 좋을 것 같은 느낌이다. 이 떡메를 아들도 치고 아버지도 치고 며느리도 치고 우체부도 친다는 것인가. 서울 가는 동안 고물이 상하지 않도록 냉동 포장을 해 준다.
시장 보기의 끝은 간고등어이다. 영덕이나 포항에서 잡힌 고등어를 우마차에 싣고 안동에 이를 쯤이면 고등어의 맛이 변하기 일보 직전이 된다 하는데 이때 소금간을 해서 저장을 하면 그 숙성된 맛이 생고등어 보다 낫다는 이야기이다. 집식구들의 단백질 보충을 위해 여러 손을 사니 가져가기 좋게 한마리씩 진공 포장을 해준다.
소화도 시킬 겸 돌아오는 길에 차가 물돌이 마을이라는 河回 마을을 들른다. 몇 백년 된 풍산 柳씨 집성촌을 낙동강가의 바위 절벽인 부용대가 조용히 내려다 보고 있다.
집들의 방향이 마을을 270도로 감싸고 돌아 드는 낙동강을 향했기에 모두 제각각 이라는데 오래 된 기와집들은 조선 중기의 전형적 사대부 집으로 대문간채, 사랑채, 안채, 사당등의 건물이 있으니 이른바 사대부집의 宗宅이다.
종택들이 50~60칸 정도의 크기인가. 양반, 선비들이 공자왈 맹자왈 책을 읽고 서원을 운영하며 살아가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가.
중앙 정계에서 은퇴, 낙향한 사대부 양반들이 이곳에서 소찬을 즐겼는지 모르지만 마침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곳에서 받았다는 생일상의 모형을 보니 입이 떡 벌어진다. 살면서 저런 정도의 상은 한 번 받아야 되는 것이 아닌가. 영국의 왕족이 조선 양반 음식에 담긴 정성, 다채로움, 풍요로움에 놀랐을 것이다.
서애 류성룡의 종택인 충효당을 둘러보는데 유물인 신발 크기가 의의로 크다. 이순신도 작달만 했고 대원군은 더 작았다는데 류성룡은 꽤 컸던 것인가. 류성룡이 영의정 제수 하루만에 파직이 된 적도 있으니 얼마나 당파 싸움이 심했던 것인가. 멍청했지만 간교했던 선조가 못이기는 척 신하들의 반대파의 청을 들어주었나.
마침 벌어지는 하회별신굿탈놀이 공연을 관람한다. 신을 즐겁게 하는 놀이라는 민속 가면극이다.
등장하는 탈의 모습이 주지(사자 같은 짐승), 중, 양반, 선비, 초랭이, 이매(하인), 부네(술집 여자?), 백정, 각시, 할미의 모습이라 하는데 마침 보는 장면이 양반, 선비가 서로 부질없이 다투는 이야기이다.
양반, 선비들의 위선, 거짓, 이중 기준을 웃음과 해학으로 희롱하고 풍자하여 양민들의 억눌린 감정을 어느 정도 풀어 해소시킨다는 것인데 여자 싫다는 인간도 없지만 여인을 밝히는 땡중의 모습도 그려진다. 땡중과 어울리는 여인은 기생 첩 정도 되는 술집 여자인가.......땡중의 용기와 능력이 가상한 느낌인데 탈들의 과장 된 몸짓과 춤사위, 둥둥거리는 북소리에 해학적 분위기가 한층 고조 된다.
탈놀이에 등장하는 인물 군상들을 보니 한떄 밉더라도 미워할 수 없는 인간이 있고 좋은 듯 하지만 결국 미워할 수 밖에 없는 인물이 있다는 느낌이다. 나는 어떤 인간이고 어찌 되는가.
어쨌든 여러 탈의 표정이 희노애락을 담은 것이 참으로 오묘하고 해학적이다. 턱이 없는 이매탈은 미완성이라 하였던가. 몇 가지 탈은 실종 되었다는데 탈의 원본은 모두 국보라 한다. 오늘 어느 정도 면무식은 했는가......
서울에 돌아 온 시간이 저녁 8시경이니 아직 초저녁이다. 마늘빵 몇 쪽 굽게 하여 시원한 생맥주 몇 모금 마실 수 있는가.(다음 시장 투어는 내 고장 충북 제천의 약초 시장에서)
章
2009. 9
(노루궁뎅이 버섯, 요즈음 수경재배를 많이 한다하는데 노루 꼬리처럼 노랗게 색깔이 든 것이 맛과 향이 더 나을 듯, 살짝 데쳐먹어도 되고 날것을 즉석에서 찢어 기름 소금에 찍어 먹는다)
(봉정사 삼층석탑과 극락전, 극락전은 현존하는 최고령 목조 건물이다. 최근의 단청 때문에 어려 보인다. 왼쪽 처마가 보이는 절집은 보물인 古今堂, 스님들의 공부방이다. 주련의 글자 내용들이 아주 좋다는데 무식한 南모가 그뜻을 모두 헤아리기에는 역부족이네)
(극락전의 복화대 단청, 연꽃을 엎어 놓은 모양, 심오한 뜻이 깃들어있다는 설명)
(봉정사 대웅전, 얼마 전 보물에서 국보 시험을 통과, 단청이 낡아 극락전 보다 나이 들어 보이네)
(후불벽탱화 국보 지정을 위한 감정 작업, 슬그머니 끼어들려 하다가 야단만 맞고 물러 남)
(절집의 밑반찬 보관소, 맛이 그럴 듯 하겠는데.....)
(영산암 마당의 소나무 밑에 앉은 般若珠 보살, 소나무 모습이 진기하다. 이곳에서 촬영된 영화의 주인공이 기독교인이었는데 거리에서 캐스팅 되었다고.....한참 후 이 영화가 무슨 큰상을 수상하게 되어 주인공에게 연락하였더니 뜻밖에도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였다는 뒷이야기이니 정말 인생 무상이다.)
(찜닭 파는 구시장, 찜닭을 통닭이라 부른다)
(간고등어 정식, 한 마리를 통채로 구어주는 것은 좋은데 2인분이 한 마리이다)
(버버리 찰떡, TV 덕택으로 너무 잘 팔리는 때문인지 이것저것 따지는 사람에게 적당한 핀잔도 주던데....)
(문어 내장, 호남정맥에 맛보기로 얼려 갈 예정......양반들은 머리와 다리를 먹고 상민들은 더 좋은 내장 먹으면 될 듯)
(숭덩숭덩 썬 전어, 이렇게 썰면 맛이 덜한 느낌, 촌놈들이 이렇게 먹어야 더 맛있다고 기를 박박 쓰니 입맛이 쓰다. 이가 나쁜 사람은 씹다가 뼈를 뱉어내야 한다.)
(간고등어 판매점, 크기 별로 값차이가 있다, the bigger, the better, 한 손: 2마리에 5천원 꼴)
(하회마을의 한약방?)
(하회마을을 감싸는 낙동강과 부용대)
(사공은 어디 가고 빈배만 매여 있나)
(벼이삭 익어가는 들녁, 가을 풍경은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부르다. 올해 햅쌀 보시는 어떻게 되는가)
(따가운 햇살에 고추가 제대로 마르네, 주인집이 대식구 같은데......)
(때마침 등장한 탈은 이매, 이매의 넋두리를 들으니 양반의 하인쯤 되나, 멍청한 듯하지만 똑똑해서 머리 싸움에서 능히 양반을 이길 수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