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하동군 북천의 넒은 들판은 가을이 되면 코스모스가 지천이다.
사진 가운데 가장 멀리 보이는 하동 이명산에 올랐다. 꽃 축제장에서 산행을 시작해 꽃밭으로 되돌아오는 원점회귀니 산행을 핑계 삼은 가을꽃
나들이인 셈이다.
간이역 풍경에는 코스모스가
어울린다. 경남 하동군 북천면에 있는 북천역은 아예 '북천코스모스역'을 내세운다. 가을만 되면 역사 주변이 온통 울긋불긋한 코스모스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흰 눈꽃이 내려앉은 듯한 은은한 메밀꽃밭까지 어우러져 가을의 정취가 한껏 느껴진다. 북천은 코스모스가 만개해 '북천 코스모스·메밀꽃 축제'가 열리고 있다. 40만㎡(약
12만 평)의 드넓은 들판에 꽃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축제 현장에서 산행이 시작되는 이명산(理明山·572m)을 이번 주 산&산에서
다녀왔다. 산행 출발점 북천 '코스모스·메밀꽃 축제'
밋밋한 산세의 허전함 달래주기에 충분
■산행을 핑계 삼은 가을꽃 나들이
이명산은 산세가 멋지거나 쾌감을 주는 조망이 없다. 하지만 가을의
전령사가 만개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원점회귀 코스는 가을꽃 나들이를 덤으로 즐기는 이점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꽃 축제가 열리는
곳은 직전마을과 이명마을 일대. 휴경지를 놀리지 않고 관상용 꽃을 심은 것이 입소문이 나서 발걸음이 몰리더니 지금은 전국 최대 규모 급의 꽃
축제로 성장했다.
산행의 기·종점은 북천한우단지
주차장. 꽃 축제 주차장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곳이고, 북천역과도 1㎞밖에 떨어지지 않아 접근성이 좋다. 이곳에 차를 대고 '직전1' 건널목을
넘어 포장된 길 끝에서 입산한 뒤 계명산(382m)~시루떡바위~마애석조여래좌상~이명산~계봉(시루봉·548m)을 거쳐 살티재에서 꺾어서 하산하는
길이다. 10㎞ 남짓 거리를 삼각형을 그리며 빙 돌아 원점회귀하는데 5시간 정도 걸렸다. 이 코스는 중간 탈출로가 없다. 일단 발걸음을
내디뎠으면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마침표가 찍힌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산중턱에만 오르면 온 산에 밤나무가 지천이다.
코스모스꽃이 절정일 때 알밤도 여물어 밤나무 근처에 가면 떨어진 밤송이가 수두룩하다.
산&산 팀은 당초 계봉을 지나
지·능선을 따라 하산하려 했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우회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사유지 밤나무밭으로 이어진 등산로가 출입금지 상태였기
때문이다. 도리 없이 황토재 쪽으로 가다 도중에 안부(살티재)에 내려서 하산길로 접어든 바람에 계획보다 2㎞ 이상 더 걸었다. 이 우회로에서도
길 끝에 사유지 밤나무밭 한가운데를 지나쳐야 한다. 수확철에 손길이 바쁜 농민들은 예민하다. 과수원 근처를 지나칠 때는 '외밭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 주의가 필요하다.
짧게 걷고 싶다면 이명산 정상만 밟고 바로 되돌아오는 것도 방법이다. 반면 긴 호흡을 원하면 하동
다솔사에서 출발해 봉명산~이명산~계명산을 거쳐 꽃 축제장으로 내려서도 된다.
■산은 알밤이 지천…정상에선 남해
조망
북천한우단지 입간판을 왼쪽에 끼고 '직전1
건널목'을 건너면 산행이 시작된다. 포장된 길이 끝나는 곳의 주택 옆 숲으로 입산. 동네 뒷산이라 되레 헛갈리기 쉬운데 뚜렷한 길을 따라가면
분묘를 연속해서 마주친다. 석축 분묘를 만났을 때 뒤로 치고 올라가면 금세 계명산 정상에 이른다. 정상은 편백숲에 둘러싸여 조망이 없다. 하산
느낌으로 내려왔지만 금세 오르막이다. 본격적인 이명산 산행이다.
세월의 더께를 눌러쓰고 앉은 퇴적암 '시루떡바위'가 눈길을
잡아끈다. 묵묵히 선 채로 풍상을 견뎌내다 보니 주름살이 가득했다. 두 번째 시루떡바위는 전함처럼 위세가 당당하다. 마애석조여래좌상을 거쳐
정상까지 일사천리다.
이명산까지 500m를 알리는 이정표. 일단
정상까지 갔다가 이곳으로 되돌아와서 계봉(시루봉)으로 간다. 이명산은 조망의 감동이 없다. 계봉이 차라리 낫다. 다시 요철이 반복된다. 내리막이
끝나고 가풀막에 올라서서 뒤로 돌아보니 방금 지나쳐 온 계명산과 이명산이 아늑한 산세를 드러내고 있다.
계봉 정상에 서니 사천만
너머로 남해가 펼쳐진다. 삼천포와 남해섬 쪽도 시원스럽다. 이명산의 유래가 계봉 표석에 새겨져 있다. 산 아래 못에 사는 용의 해코지 때문에
맹인이 많아져서 이맹산(理盲山)으로 불렸다. 주민들이 합심해서 용을 쫓아낸 다음 산 이름에 밝을 명(明)을 넣었다고.
황토재
쪽으로 가다가 지·능선으로 내려서려고 했지만 통행금지 팻말에 막혀 도리 없이 가던 길을 계속 이었다. 계봉에서 2㎞가량 걸은 지점에서 안부를
만나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인적이 드문지 길이 흐릿해서 애를 먹지만 금세 반듯한 길이 나타난다.
계곡이 나타나더니 갑자기 밤나무 과수원의 한가운데로 들어와 버렸다. 농기계가
들어오는 길이라 등산로로 치면 고속도로다. 마을에 내려선 뒤 다리를 건너지 말고 바로 오른쪽으로 꺾어 숲길로 나아간다. 우회하는 바람에 멀어진
거리만큼 되돌아가는데 시간이 걸린다.
다시 밤나무 숲이 펼쳐졌다. 잘 익은 밤송이가 툭툭 터지고 있다. 수확하는 손놀림이
한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