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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담양에는 자연을 거스리지 않고 약간의 손질만 더하여 조화를 이룬 원림 건축의 백미인 소쇄원이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송순이 세운 면앙정, 정철과 관련된 송강정과 환벽당, 식영정 등 10여 개의 정자가 있다.
이곳에서 공부하며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는데, <면앙정가>, <사미인곡>과 <속미인곡> 등을 남겼기에
이를 기념하고자 근처에 조선 중기 선비들의 정서를 소개하는 가사문학관도 조성해 놓았다.
또한 대나무 숲 사이로 바람이 서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죽녹원,
200년 이상 된 푸조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벚나무, 개서어나무 등으로 조성된 관방제림,
거대한 가로수가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숲터널을 이룬 메타스퀘어 길로 말미암아
담양은 정적(靜寂) 이미지가 더해진다.
송강 정철은 가사문학의 대가라고 높이 추앙받고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극단적인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린 <사미인곡(思美人曲)>을 읽으면서 나는 오래전부터 의문을 품어 왔다.
이는 1588년 탄핵으로 조정에서 물러나 창평(전라도 담양)에서 지내면서 지은 글로,
선조 임금을 사모하는 간절한 연군의 정을
님을 생이별하고 연모하는 여인의 마음으로 나타내어 자신의 충정을 토로하고 있다.
지극한 정성이 통해서일까, 정철은 1년 만에 우의정으로 발탁되어 *정여립 모반사건 국문을 주도하였다.
20개월 계속된 *기축옥사(己丑獄事)로 인해 사망자와 유배자가 각각 수백 명에 이르렀는데,
물론 잔인한 고문이 자행되었고 억울한 희생자도 적지 않았다.
"조선시대 엘리트의 절반을 잃었다."라고 개탄할 정도로 혹독한 옥사였는데,
그 중심에는 송강 정철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지나친 미문(美文)이나 달변(達辯)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월감을 포함하여 지나친 자신감이나 혼자 정의롭고 진실을 말하는 듯 행세하는 이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내 개인적으로 볼 때는
송강의 시가를 읽거나, 정철이 머물렀다는 담양의 정자들을 둘러 볼 때마다 마음이 그리 편치 않다.
2
나온 김에 기축옥사(己丑獄事, 정여립 모반사건)에 대해 알아볼까.
선조 22년(1589) 전라도와 황해도 지방을 중심으로 대규모 반란을 꾀하려던
정여립(鄭汝立) 모반사건은 결국 누설되어 실패로 끝났다.
전주 출신의 정여립은 원래 이이(李珥)의 제자로 명망높은 학자였으나 서인 사림정치에 한계를 느끼고
급진적인 일부 동인 사림과 널리 연계를 맺고, 승려, 천민, 평민을 끌어 들여
진안(竹島)에 대동계(大洞契)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새 왕조를 세워 보려는 혁명까지 꿈꾸었다.
기축옥사로 인해 서경덕, 조식 학파가 피해를 많이 입었으며,
호남지역은 반역의 향으로 낙인찍혀 중앙 정계로 진출하는 일이 급격히 줄어 들었다.
정여립이 강직한 성격이기는 하지만 과연 모반을 도모했는가에는 다른 주장도 있고,
정철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선조에게 이용당했다는 견해도 있다.
변죽이 죽 끓듯한 선조이지만 자의든 타의든 송강이 행동대장(악역)을 맡은 건 명백한 사실이다.
정여립 모반사건은 전라도 인물이 정계에서 소외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는데,
담양 정자를 설명하는 이들은 송강 정철의 미문(美文)만을 칭찬하고 있으니
글쎄,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3
잠실산악회에서는 담양호변에 조성한 국민관광단지 주차장에서 시작하여
동굴과 보리암을 거쳐 보리암 정상(692m)에 올랐다.
시원스레 펼쳐진 전경을 즐기며 능선을 걷다가 추월산 정상 (731m)을 밟고
삼거리에서 방향을 틀어 월계를 거쳐 다시 국민관광단지로 내려왔다.
시작부터 가파른 경사로를 오르다 보니 누구를 막론하고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전망대에서 주변을 살펴보니 가히 절경이더라.
용추봉과 추월산 사이에서 흐르는 물이 모여 이룬 담양호는
마치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올라가는 용의 형상을 하고 있다.
건너편에는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강천산과
고려시대에 쌓았다는 금성산성이 한 편의 수묵화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보리암 정상 바로 아래 위치한 보리암이 있었다.
힘들여 찾아가 보니 마당도 없는 별 볼 일 없는 암자라고 입을 모아 볼멘 소리를 한다.
'보리(菩提)'란 불교 최상의 이상인 깨달음의 지혜, 또는 그 지혜를 얻기 위한 수도 과정을 말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가 아닐진대, 작은 것에서도 깨달음을 얻으라는 메시지는 아니었을런지...
추월산은 담양읍에서 바라다 보면 노 승려가 누워있는 형상이기에 와불산(臥佛山)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우리는 무엄하게도 스님 육신을 하나하나 밟고 보리암봉에서 추월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걸었다.
군림하는 자세가 아닌 닮아가라는 가르침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고,
마침 부처님 오신 날 바로 전의 산행이라서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다.
하산 길에 또다른 동굴 근처에서 쉬었다.
어느 분이 배낭에서 꺼낸 소주에 즉석에서 참외, 오이 안주가 차려졌다.
어느덧 술 한잔에 참외를 먹으니 참외주, 또 한 잔에 오이를 집어드니 오이주가 되더구먼
담양호를 끼고 조성된 용나루길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곳곳에 대나무가 함께 있기에 그 정취가 그만이다.
다른 일행은 마침 며칠 동안 많은 비가 온 직후라서
각종 산나물뿐 아니라 죽순, 칡순을 충분하게 따서 그런지 배낭이 불룩해 있더라.
4
가을 추(秋), 달 월(月), 추월산이라, 단풍으로 물든 가을날의 경치가 눈에 그려지고,
산봉우리가 걸린 보름달이 호수에 비춰지면 그 모습 또한 장관이려니.
올해 만추(晩秋)에는 보리암에서 하룻밤을 청해 볼까나.
며칠 전 비가 많이 내리고 난 직후라서 하늘이 뚫린 듯 햇살이 내려 쬐고
뭉개구름도 한없이 높은 청명한 날씨이다.
늦은 봄날 한낮에 녹음(綠陰)으로 우거진 산을 오르는 재미도 만만치 않구나.
그래서 추월산(秋月山)이 아닌, 만춘일운봉(晩春日雲峰)의 정취를 한껏 즐겼다.
"자네, 길을 아는가? 이 강은 바로 저들과 나 사이에 경계를 만드는 곳일세. 언덕이 아니면 곧 물이란 말이지.
인간의 윤리도 같은 법, 그러므로 길이란 다른 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사이'에 있는 것이라네. "
압록강을 건너기 전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한 말이다.
그는 길 위에서 깨우친 도(道)를 『열하일기』(청나라를 다녀 온 견문록)로 남겼다.
여행, 또는 산행은 곧 길이고, 길은 곧 삶이고, 삶은 곧 길이다.
나는 길에서 삶의 비전을 찾고,
그것을 글로 정리하여 자신의 길을 찾으면,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길에서 길, 도(道)를 깨우쳐 가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잠실산악회와 함께 땀 흘리는 등산이 즐겁다.
첫댓글 반복적인 내용인 것 같은 역사 공부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져 소홀히 여겼는데
부회장님의 글을 보면 항상 그 속으로 빠져듭니다.
제가 학교 다닐때 부회장님을 만났다면 당연히 우등생이 됐을 것 같아요.
좋은 뜻 마음에 담으면서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_^*
안정적인 일가(一家)을 이루고, 주변에 대한 배려도 아끼지 않는
회장님은 人生 최우등생이십니다.
대장, 부회장 10명을 모두 합쳐 놓아도
회장 1명을 못 따라가는 산악회 능력자이고 말입니다.. ^^
@오창훈 넘 過讚을 하셨네요.!!
모두가 협조하니 잘 되는거지요.
이쁘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